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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재즈 싱어' 웅산, 음악이 곧 수행

때론 성난 파도처럼~ 때론 순수하고 여린 여자처럼~ 때론 누구보다 농염하게~

 

그의 이름 ‘웅산’이 법명에서 온 것도 ‘음악이 곧 수행’이라 말하는 배경과 연관이 있다. 본명은 ‘은영’. 스무 살 무렵 출가해 2년여 동안 절에서 살았다. 불교 연구자인 부친의 영향이 컸다.
그의 이름 ‘웅산’이 법명에서 온 것도 ‘음악이 곧 수행’이라 말하는 배경과 연관이 있다. 본명은 ‘은영’. 스무 살 무렵 출가해 2년여 동안 절에서 살았다. 불교 연구자인 부친의 영향이 컸다.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 귀는 얼마나 트여 있을까. 무엇부터 듣는 게 먼저일까. 다 아는 척, 태연한 척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너무 헷갈린다. 재즈 얘기다. 

집밥 같지 않고 품위 있는 외식 메뉴 같은 그 음악은 왠지 쉽지 않다. 심연으로 파고드는가 하면, 농염한 열정을 치솟게 해 이래저래 마음을 흔든다. 그렇게 마음을 헤집어놓는 재즈 가수로는 단연 웅산을 꼽겠다. 청중을 쥐락펴락하는 재주가 빌런급. 그 흔들림이 꽤 심하다.

27년 차 가수인 웅산은 늘 “음악은 수행”이라고 말해왔다. 시끄러운 ‘텐션’과는 거리 먼 그의 노래는 낭송과 독백 사이 그 어디쯤. 가슴은 녹아내려 텅 비워지고, 머릿속은 안개가 걷히고 맑아진다.

그의 이름 ‘웅산’이 법명에서 온 것도 ‘음악이 곧 수행’이라 말하는 배경과 연관이 있다. 본명은 ‘은영’. 스무 살 무렵 출가해 2년여 동안 절에서 살았다. 불교 연구자인 부친의 영향이 컸다. 원체 또래보다 조숙하고 사색에 잠기길 좋아한 것도 싹수이긴 했다. 그

러다 친구가 전해준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속세로 돌아왔다. 전설의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의 ‘I′m a fool to want you’.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띵했다.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에 들어선 기점이었다.

웅산의 매력은 ‘수려한 외모와 중저음의 농염한 보이스’에 있다고들 한다. 발라드와 블루스, 펑키, 라틴까지 다양한 장르를 혼을 담아 소화한다고 호평한다. 판소리 등 국악을 가미한 재즈를 실험한 것도 오래전이다.

실력과 매력만큼이나 이력도 화려하다.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앨범상과 노래상 등 2관왕, 같은 해 ‘리더스폴 베스트 보컬리스트’ 선정, 일본 ‘빌보드 라이브’와 일본 최고의 재즈 명예의 전당 ‘블루노트’에 초청받은 최초의 한국인 등 기록상 ‘업

적’도 탄탄한 가수. 한국재즈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것은 물론 지인들끼리 작당한 ‘지구수비대’라는 비공식 모임도 이끈다. 지구 환경을 걱정하며 할 일을 찾는 중이다.

새로 개방된 노들섬에서 지난해와 올해 연이어 재즈 페스티벌을 열었다. 세계 재즈의 날(4월 30일)에 맞춘 공연은 그가 발의한 환경 캠페인과 맞물려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2월 대구 콘서트도 성황리에 마친 그의 일정은 6월 뉴욕 공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코로나19로 공연을 못했을 텐데 어떻게 지냈나

지난해 10월에 있었던 세종문화회관 공연 <I′m not a butterfly>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큰 에너지를 얻어 2월에 대구 공연, 4월에 제2회 서울재즈페스타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답답했던 지난 3년을 보상받는 느낌이다. 6월 15일에 뉴욕 공연이 있어 짐을 싸는 중이다.

 

노들섬 공연 마지막 날 장대비가 쏟아져 안타까웠다

“그날은 정말 눈물을 머금고 아니, 눈물을 흘리며 무대에 섰다. 비가 막 쏟아지니 어쩔 수 없어 ‘이제 노래 없어요. 이제 가셔야 해요’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나도 나지만 부족한 형편에 어렵게 무대를 준비한 뮤지션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마지막 앙코르 무대는 연주자 전원이 함께한 협연이었다. 그걸 다 봐야 진정한 재즈의 맛을 더 느끼셨을 텐데, 너무 아쉽다.(웃음) 항상 강한 척하고 앞에서 리드하던 내가 그날은 약한 모습을 들켰다. 빗물에 가려졌지만 눈물이 보였을 거다. 하지만 서로 안타까운 마음들이 다 통해 더 따뜻한 느낌도 있었다.

 

지난해 10집 앨범을 발매했다. 또 새 앨범이 나올 때가 아닌가?

그럴 마음이었지만 중간에 사고가 생겨 일단 연기했다. 한국 재즈 1세대로 김준 선생님이 계시다. 재즈를 너무 사랑할 뿐 아니라 인품도 훌륭한 선배님이어서 늘 존경해 왔고,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왔다. 어느 날 문득 후배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때가 되면 고기 사 들고 방문하거나 병원에 계실 때 찾아뵙는 게 대수는 아닌 것 같았다. 후배들 공연장에 빠지지 않고 오셔서 조용히 응원하고 돌아가시는 분이다. 한결같으시다. 어느 날 문득 은혜에 보답하는 뜻으로 헌정 앨범을 내야겠다 싶었다. 친하긴 해도 선생님 음악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제대로 자료를 찾아보니 근사한 곡이 너무 많았다.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드라마 같았다.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라 후배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 기꺼이 호응했고, 최소한의 개런티로 한두 곡씩 맡아 부르기로 했다. 저작권 문제로 한 곡이 모자라 녹음 바로 전날 김장훈 씨를 급히 섭외해 선생님 곡을 부르게 한 해프닝도 있었다. 선생님은 힘주지 않고 천천히, 바람처럼 구름처럼 산 분이다. 그래서인지 음악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이번 헌정곡은 모두 ‘고음불가’였다. 악기도 최소화하고, 기교도 없다. 고음을 내는 데 익숙한 김장훈 씨가 1절을 부른 뒤 간주 때 소리를 꽥 지르더라. 고음을 내지르지 못하니 오죽 답답했겠나. ‘평생 이렇게 느리고 낮은 노래는 처음 불러봤다’며 볼멘소리를 해 웃음바다가 됐다.(웃음) 그래미 어워드 녹음상을 수상한 엔지니어가 참여했다. 재즈 마니아는 물론 오디오 마니아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앨범이다. 500장 한정판이니 만나려면 서둘러야 할지 모른다.

 

뜻깊은 프로젝트라 소회가 특별하겠다

누군가 큰돈을 쾌척해 만든 앨범이면 이만큼 특별하진 않았을 거다. 어느 날 내 마음에서 우러나 자발적으로 사비를 들여 한 작업이라 기분이 묘하고 애정도 남다르다. 헌정 앨범 제목이 <What a Wonderful World>다. 정말 세상은 놀랍고 아름답다. 선생님이 민망해하실까 봐 헌정 앨범 만들겠다는 얘기를 사모님께 먼저 드렸다. 지금까지 받은 과중한 사랑, 앞으로 받을 사랑을 생각하며 앨범을 만들어드리겠다 말했다. 선생님이 옆에 계시다 전해 듣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더라. 묵묵하게 재즈 음악인으로 살아온 선배를 본받아 우리도 좋은 어른이 되고자 만든 프로젝트다. 많은 분이 진가를 알아주시면 좋겠다.

 

한국재즈협회 차원의 프로젝트 아니었나?

협회는 나보다 돈이 더 없다.(웃음) 그냥 내가 했다. 선생님 지인 한 분도 도와주셨다. 후배들한테까지 부담 주긴 싫어 노래만 해달라고 했다. 

 

<김준 베스트 앨범> 출반에도 나섰다고 들었다 

그 사연도 재미있다. 선생님 음반은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나왔다. 하도 옛날 회사라 없어진 줄 알았는데 웬걸,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더니 살아 있더라. 음반 출시는 거의 안 하고 있었지만 선생님 자료가 남아 있었다. 선곡해 줄 테니 베스트 앨범을 제작해 달라고 청하자 취지에 공감하고 흔쾌히 결단을 내려주셨다. <김준 베스트 앨범>도 헌정 앨범처럼 500장 한정판.(웃음)

 

최근 수년 만에 팬 미팅한 걸 봤다

평소 동네에서 산책이나 등산하는 걸 좋아한다. 코로나19가 지나고 처음으로 팬들과 함께 산행을 했다. 오랜만이라 더더욱 반가웠다. 그 자리에서 헌정 앨범에 대해 처음 공개했다. 정기 모임은 없지만 사정 되는 대로 팬들과 소통한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웅사모(웅산을 사랑하는 모임)’ 카페가 있다.

 

뉴욕 공연에 대해 소개해 달라

2016년부터 미국 공연을 시작했다. 첫 공연은 워싱턴, 그다음 해부터는 뉴욕에서 매년 6월 무대에 섰다. 코로나19 탓에 멈췄고, 4년 만에 다시 간다. 뉴욕은 세계적인 문화 중심지이자 가장 힙한 도시 아닌가.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 스탠더드도 아닌, 메인스트림 재즈도 아닌, 나만의 재즈를 선보이러 간다. 웅산의 유니크한 재즈를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직접 보여준다.(웃음) ‘K-재즈’를 알리는 무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루는 극장 공연을 하고 이후 몇몇 클럽 무대에 서는 일정이다.

 

왜 6월인가?

그냥 6월이 좋다. 막 더워지기 전이라 날씨가 좋고, 그래서 마음껏 걸어 다니기에 그만이다. 공연 마친 뒤 뉴욕 거리와 공원을 산책하는 건 특별한 즐거움이다.

 

올해의 뉴욕 공연은 뭐가 다른가?

더 자유로워진 웅산을 만날 기회라는 점, 그리고 처음 만나는 뮤지션들과의 공연이라는 점이다. ‘너희가 생각한 재즈가 그거라면 내가 하고 싶은 재즈는 바로 이거야’라고 진하게 보여주고 올 예정이다. 4명의 뮤지션이 연주 경험뿐 아니라 아예 한 번도 만난적 없는 사람들이다. 도착해 하루 쉰 뒤 그다음 날 리허설하고, 또 그다음 날이 공연이다. 걱정도 있지만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다.

 

재즈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일단 이해하고 즐기다 보면 세상이 너무 재미있어진다.

 

합을 맞춰야 할 텐데 주어진 시간이 겨우 하루? 무모하지 않나?

공감한다. 하지만 재즈가 원래 그렇다. 재즈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덤벼!’다. ‘와이 낫(Why not)?’이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지만 어떻게든 다 잘될 거다.(웃음)

(6월 15일 맨해튼 라마마 극장에서 웅산의 K-재즈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보이스 색채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도 가장 좋아하는 소리, 가장 편한 소리는?

그때그때 다르다. 어떤 때는 성난 파도처럼 노래하고 싶고, 어떤 때는 순수하고 여린 여자처럼 노래하고 싶고, 또 어떤 때는 누구보다 농염하게 노래하고 싶다. 그런 모든 순간이 가장 편하고 가장 좋다.

 

노래는 물론 라디오 디제잉 멘트도 좋았다

그립다. 다른 오퍼가 금방 들어올 것 같았는데, 없다. 매우 섭섭하다고 전해 주시기 바란다.(웃음)

 

‘지구수비대’는 무고한가?

여력이 된다면 2차 프로젝트도 준비해야 하고 곡도 써야 하는데 총알이 다 떨어졌다. 하고자 하는 지인은 적지 않은데 강력한 스폰서가 없다. 조금씩 모아지면 다시….(웃음)

 

재즈 가수는 쉬는 날 어떤 음악을 듣나?

쉴 때니까 말 그대로 휴식 같은 음악을 듣는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차분한 음악을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중 찾아 듣는다.(이 질문을 받자마자 그가 내게 폰으로 전달한 링크가 있었다. ‘My Time’. 카를라 브루니가 ‘Winner Takes It All’을, 샘 오크가 ‘Remember’를 나지막이 부르고 있었다. 인터뷰 직전까지 듣고 있었던 <사랑, 그 그리움> 앨범 속 웅산의 톤과 무척 닮은듯하다.)

 

재즈 하면 와인이 떠오른다. 왜일까?

색감과 풍미가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우선 와인도 재즈도 ‘레드’를 연상시킨다. 색채가 섞인 보디감이 비슷하다. 와인이 품종에 따라 연식에 따라 제각각 맛이 다른 것처럼, 재즈도 다 같은 것 같지만 진하고 섹시한 재즈, 마일드한 재즈, 라이트한 재즈로 갈린다. 공통분모는 있되 다양하다는 점이 닮았다. 즐기는 사람이 겹치는 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젠틀맨이 재즈를 200%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젠틀맨이라면 재즈가 어떤 음악인지 잘 몰라도 이미 즐길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재즈는 젠틀맨의 품격을 더하기에 더없이 좋은 음악이다. 잘 모르겠으면 유튜브에서 ‘웅산의 재즈야 놀자’를 찾아보시길 추천한다.(웃음)

친절하게 설명해 놓아 도움이 될 거다. 재즈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일단 이해하고 즐기다 보면 세상이 너무 재미있어진다. 가까운 재즈 클럽에 가서 직접 듣고 보고 느끼면 더욱 좋다. 재즈는 누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주관적인 음악이다. 라이브 클럽에 가면 와인과 재즈가 왜 어울리는지도 저절로 알게 된다.(웃음)

 

웅산의 소확행은?

앞서 말하지 않았나? 그때나 지금이나 집 근처 산책과 등산이다. 캠핑 의자 하나 들고 올라가 숲속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멍때리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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