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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오분 전'이라고? 듣는 개는 억울하다

어른들의 문해력 향상을 위한 '일상 속 어휘사전' <지적인 어휘 생활>을 서머리한다. 당신의 더욱 높은 차원의 언어생활과 문해력 향상을 위해 알아두면 좋은 말을 꼽았다.

  • 입력 2023.09.22 16:57
  • 수정 2023.09.22 16:58
  • 2023년 10월호
  • 이영민 에디터

 

사례 소개에 앞서 다음 문제의 단어를 읽고 떠오르는 것을 체크해 보자.

Q . 개판 오분 전

① 멍멍이

② 한국전쟁

③ 씨름 경기

 

Q . 밀월여행

① 신랑 신부의 비밀 여행

② 꿀처럼 달콤한 여행

 

Q . 기생

① 술집 여자

② 연예인

③ 연기자

 

Q . 독불장군

① 고집 센 사람

② 사람들과 협력해 뭔가를 이루는 사람

 

Q . 보리 문둥이

① 경상도 출신 고집불통

② 보리농사 짓는 집안의 학생

 

Q . 대박 나라

① 흥부전

② 해외에서 들어온 큰 배

 

위 퀴즈에서 3개 이상 ①번을 떠올렸다면, 올바른 어휘 사용에 문제가 있다. 글을 쓰거나 말할 때 그 뜻을 제대로 모른 채 감으로만 어휘를 선택하면 실수하거나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반면 어휘의 태생과 유래를 알면 올바른 말을 사용하고 글을 쓸 수 있다. 문자, 이메일, 뉴스, SNS 등 소통이 많은 시대에 유용한 어휘만을 추렸다.

 

알고 보니 좋은 말

개판 오분 전, 개는 억울하다

‘개판 오분 전’은 개들이 난리 칠 것 같은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개는 죄가 없다. ‘개판 오분 전’의 ‘개판’은 원래 개판(開板)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한자어를 풀어 쓰면 ‘판으로 된 솥뚜껑을 열기 오분 전’이란 말이 된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서 피란민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던 때, “개판 오분 전”이라고 외치면 곧 솥뚜껑을 열어 배식을 시작한다는 말이었다. 이내 굶주린 피란민들이 무질서하게 모여들고, 그런 상황을 일컬어 ‘개판 오분 전’이라는 말이 파생된 것으로 본다.

알아야 할 어휘: 開(열다 개), 板(널조각 판)

 

꿀처럼 달콤한 밀월여행

어느 순간부터 전 세계 많은 사람이 서양의 결혼식을 따라 하고 있다. 결혼식이 끝나면 바로 신혼여행을 가는 문화가 대표적인 예다. 신혼여행 문화가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한자로 ‘밀월(蜜月)여행’으로 표기했다. 밀월은 허니문(Honeymoon)을 직역한 것이다. 우리는 신혼의 달콤함을 ‘깨가 쏟아진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꿀처럼 달콤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를 직역하다 보니 밀월여행이라 표현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밀월여행이 무슨 비밀스러운 여행 정도로 통용되기 시작했다. 밀월여행은 알고 보면 좋은 말이었던 셈이다.

알아야 할 어휘: 蜜(꿀 밀), 月(달 월)

 

기예를 펼치는 연기자, 기생

기생(寄生)을 우리말로는 ‘더부살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옛날 잔치에서 가무로 흥을 돋우던 기생을 ‘손님에 기생해서 사는 여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오늘날 우리 대부분의 인식 속에 기생은 그와 같은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기생(妓生)은 엄연히 기예(技藝)를 가진 여성이다. 사지, 즉 손과 다리를 나긋나긋 움직이며 춤과 노래를 부른다는 의미가 기(技)와 기(妓)에 있다. 기예(技藝)를 펼치는 자를 연기자 또는 연예인이라 한다. 기생은 단순한 작부가 아니라 오랜 훈련을 통해 쌓아온 기예를 펼치는 연기자였다.

알아야 할 어휘: 寄(부칠 기), 妓(기생 기)

 

어린 학동, 보리 문둥이

경상도를 왜 ‘영남(嶺南)’이라 부를까? 고개나 재의 남쪽이란 뜻으로, 여기서 재는 문경새재를 가리킨다. 영남은 재가 많은 곳으로 보리농사가 주요 작물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경상도 하면 보리를 떠올렸다. 그러나 보리농사로는 가문이 번성하기 어려워 과거에 급제하도록 아이들을 글공부에 매진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아이들을 문동(文童)이라고 한다. ‘경상도 문둥이’ 하면 한센병 환자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학동(學童)을 가리키는 것이다.

알아야 할 어휘: 文(글월 문), 童(아이 동)

 

하늘을 섬기고 숲을 신성시한 배달의 민족

‘배달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은 우리 고유의 장구한 역사를 의미한다. 그 뿌리는 신화에서 비롯됐다. 배달(倍達)은 나무 이름 ‘박달’의 변음으로, 하늘에서 환웅이 여러 신과 함께 신단수인 박달나무에 강림한 단군신화를 나타낸다. 단군(檀君)의 ‘단’도 박달나무를 뜻한다. 즉 배달의 민족은 박달나무를 신성시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긴 성스러운 단어인 셈이다. 최근 음식을 배달(配達)하는 플랫폼 회사의 마케팅으로 의미가 전혀 달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다.

알아야 할 어휘: 倍(곱 배), 配(나눌 배), 達(통할 달)

 

 

제대로 알아야 좋은 말

황금과 상관없는, 금자탑

금자탑(金字塔)은 후세에 길이 남을 뛰어난 업적을 가리킨다. 그래서 금자탑 하면 변치 않는 황금처럼 시간이 지나도 굳건한 불후의 탑 정도로 추측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금자탑은 ‘금(金)이라는 글자와 같은 모양의 탑’이라는 뜻일 뿐 황금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애초에 금자탑은 피라미드를 가리키는데, 그 형태가 삼각형인 만큼 비슷한 모양의 한자를 찾아 이름 붙이려고 했다. 마침 쇠 금(金)에 있는 집(亼)이 피라미드의 삼각형과 가장 비슷해서 금자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집자탑(亼字塔) 혹은 삼각탑이 적당하다.

알아야 할 어휘: 金(쇠 금), 字(글자 자)

 

그 지역 고유의 문화를 배운다, 관광

관광(觀光)은 단순히 경치나 경관을 보러 다닌다는 의미가 아니다. 거기에는 보다 넓고 깊은 뜻이 있다. 관광은 본래 경치보다는 문화 혹은 문물을 보고 배우는 의미가 강하다. 물론 ‘광(光)’에 풍광(風光), 광경(光景) 등의 뜻도 있기에 수려한 경치를 감상하는 게 포함되어 있다. 결국 관광이라 하면 그 나라 혹은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풍경을 접하고 느끼는 일 모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알아야 할 어휘: 觀(볼 관), 光(빛 광)

 

손 없는 날은 곧 귀신 없는 날

이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손 없는 날’을 알아본다. 언뜻 듣기에는 손해가 없는 날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손은 ‘손님’ 할 때의 ‘손’이다. 손님은 한자로 객(客)인데, 한자를 풀이하면 신줏단지(口)에 담긴 기도에 응해 사당(宀)에 내려온 귀신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천연두 같은 전염병을 역신(疫神)으로 보고 ‘손님마마’라 불렀다. 즉, 예부터 귀신을 손이라 불러온 셈이다.

알아야 할 어휘: 客(손님 객)

 

처음에는 좋았다가 점점 싫어지는 염증

‘질리다’는 표현에 해당하는 한자어가 염증(厭症)이다. 싫증과 비슷하게 사용되지만 엄연히 다르다. 어떤 이유에서든 처음부터 싫어하는 것이 싫증이고, 처음에는 싫지 않았으나 계속된 접촉으로 싫어지는 것이 염증이다. 사람이든 음식이든 사물이든, 처음에는 좋고 새로웠지만 자주 접하면서 물리게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또 염증이 지닌 부정적 느낌 때문에 부어서 열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염증(炎症)과 같은 말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단어다.

알아야 할 어휘: 厭(싫을 염), 炎(불꽃 염)

 

옷깃과 소매가 만나는 영수 회담

영수 회담은 조직의 최고 우두머리가 의제를 논의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수는 ‘통솔한다’는 뜻의 령(領)과 ‘머리’를 뜻하는 수(首)의 조합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는 영수(領袖)로 쓰는데, 이는 옷깃과 소매를 가리킨다. 령은 고개를 나타내지만 옷에서는 목 부분의 옷깃을 가리킨다. 옷깃과 소매는 옷의 가장자리라 닳기 쉽고 때도 잘 탄다. 또 가장자리는 외부의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입구여서 이를 막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 그래서 영수(領袖)가 중요한 인물, 지도자를 지칭하게 됐다.

알아야 할 어휘: 領(고개 령, 거느릴 령), 袖(소매 수)

 

 

역사가 담긴 말

무사 정신이 깃든 말, 무데뽀

‘무데뽀’라는 말은 일본식 한자어에서 유래한다. 일본 전국시대, 조총을 뜻하는 ‘철포(鐵砲)’ 없이 싸운다는 데서 나온 단어다. 즉 무철포(無鐵砲)로 전쟁에 나간다는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데뽀’라고 통용된 것이다. 말로만 보면 대책 없어 보이는 걸 지칭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전국시대 당시 오다 노부나가와 다케다 신켄은 라이벌이었다. 오다는 서양의 철포인 조총을 받아들여 싸웠지만, 무사 정신을 중요시한 다케다는 칼과 활을 고집했다. 다케다는 철포를 멀리서 상대를 쏴 죽이는 비겁한 무기로 여겼다. 하지만 철포 없이, 무데뽀로 싸우는 건 무리였다. 다케다는 끝내 오다의 철포 앞에 패배했다. 중요한 건 무데뽀라는 말에는 무기도 없이 무모하게 전장에 나간다는 의미보다는 무사의 정신을 지킨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알아야 할 어휘: 鐵(쇠 철), 砲(대포 포)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 독불장군

모든 일을 혼자 결정하고 처리하는 고집스러운 사람을 속되게 일컫는 말로 ‘독고다이’가 있다. 그와 비슷한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독불장군(獨不將軍)’이다. 무슨 장군을 뜻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혼자서는 장수가 될 수 없으니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구전되면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장수’를 의미하는 어휘로 사용됐다. 두 가지 의미는 다르지만, 결국 고집불통을 의미한다는 건 같다.

알아야 할 어휘: 獨(홀로 독)

 

북방 오랑캐가 가져온 호두

호두과자 하면 떠오르는 충남 천안. 그렇다면 천안이 호두의 고향일까? 호두는 한자로 호도(胡桃)라고 쓴다. 호는 북방 오랑캐를 가리키지만 17세기 초엽에 들어선 청나라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호두의 원산지는 중동으로, 중국을 거쳐 고려 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때 천안에 처음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부스럼을 예방하고 이를 튼튼히 하기 위해 정월대보름 때 호두로 부럼 깨기를 하는 풍속이 있다. 호두의 ‘호’는 서역, 원나라(몽골)와 관련해 붙은 것으로 추정된다. 호가 들어가는 말인 호빵, 호떡, 호밀, 호주머니, 후추(호추), 호래자식 등도 모두 호두처럼 오랑캐(서역, 북방 민족)와 관련이 있다.

알아야 할 어휘: 胡(오랑캐 호), 桃(복숭아 도)

 

황제와 싸우다 죽은 붉은 악마

한국 축구 대표팀의 응원단 ‘붉은 악마’는 치우(蚩尤)를 가리킨다. 치우는 우리 민족이 속한 동이 계열의 신으로, 탁록의 들판에서 황제(黃帝)와 싸우다 죽었다고 전해진다.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공격하자, 황제는 응룡에게 기주에서 그를 공격하게 한다. 응룡이 공격하기 위해 물을 모아두자 치우가 풍백과 우사에게 그 물을 폭풍우로 쏟아지게 한다. 황제가 이에 천녀(天女)인 발(魃)에게 비를 멈추게 하고 치우를 죽인다. 이 죽음을 안타까이 여겨 동이 민족을 중심으로 치우를 군신으로 섬겨 왔는데,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알아야 할 어휘: 皇(임금 황), 帝(임금 제)

 

더 많은 내용을 원한다면 주목할 책!

지적인 어휘 생활, 김점식 저, 틔움출판,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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