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캠핑을 다니게 된 계기는?
원래 낚시의 한 종류인 '플라이낚시' 마니아였다. 매주 플라이낚시를 하기 위해 강원도 계곡을 찾던 것이 자연스럽게 오지 캠핑으로 이어졌다. 낚시하기 위해 다음 날 읍면 소재지 숙소에서 계곡까지 다시 가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 캠핑을 하게 된 계기다. 플라이낚시의 대상 어종인 송어나 산천어 등은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 먹이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아예 텐트를 치고 자리 잡고 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판단했다.
막상 해보니 오지 캠핑의 진짜 매력은 무엇이었나?
오롯이 자연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생각해 보라. 우리는 평생 콘크리트로 된 정육면체 건축물에서 태어나 콘크리트 속에서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지금의 삶이 영화 <매트릭스>에서 보듯이 머리 뒤에 기다란 케이블을 꽂고 살아가는 ‘가짜 속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머리 뒤의 플러그를 뽑고 자연으로 나가면 이게 바로 ‘참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공기부터 다르고, 탁 트인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 곧이어 보이지 않던 미물인 자연 속 곤충과 각종 동식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왔던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기억에 남는 오지 캠핑 장소를 몇 곳 꼽는다면?
가장 인상적인 곳은 경북 북부의 ‘양원마을’이다. 영화 <기적>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이쪽에 라벤더 농장이 한 군데 있다. 차량으로 갈 수 없는 오지 중의 오지이기 때문에 백팩커들의 로망이 된 장소다. 특히 라벤더가 필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는 1년 전부터 캠퍼들의 예약이 쇄도할 만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곳에 가면 지역에서 난 산나물로 만든 장아찌 등 진정한 로컬 가정식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주민들에게 부탁해야 하지만.(웃음) 주민들은 근처 산골짝마다 자신만 아는 산나물 군락지가 따로 있다. 그 위치를 이웃에게는 말해주지 않지만, 외지인들에게 주는 밥 인심만큼은 푸근하다.
강원도 평창 ‘계촌마을’도 기억난다. 스위스 알프스 같은 곳을 저렴하게 다녀오고 싶다면 가볼 만한 곳이다. 이곳에는 2대째 가꾼 목장이 있는데 대관령 양 떼 목장처럼 붐비지 않고 해발 700m 높이에 위치해 공기가 서늘하다. 시원한 공기를 맘껏 호흡하며 사방을 둘러보면 영락없는 알프스다. 사람들을 처음 맞이하는 것은 청명하게 울리는 작은 금색 종, 밟으면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하는 나무 데크로 올라가 작은 종을 쳐보자. 검은색 염소 떼가 구름처럼 몰려든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이론처럼 염소 떼가 종소리에 반응한다. 건초 더미를 건네면 오물거리며 씹는 모습이 귀엽다. 염소 떼를 뒤로하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오지 캠핑은 온몸을 자연 속에 던져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펜션이나 호텔 등에서 묵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밥을 짓거나 책을 읽어도 숲 아래에서, 놀이를 해도 숲 아래에서 한다.
아침 공기가 다르고 밤공기가 다를 것이며,
아침의 색 온도와 저녁의 색 온도가 다를 것이다.
가만 있다 보면 다람쥐가 자신의 발 근처에서 노니는 것도 목격하게 된다.
저서 <대한민국 오지여행>을 보니 오지 여행에 대한 개념도 다시 정의한 것 같다
흔히들 오지라고 생각하면 자동차도 가기 힘들고 오로지 백팩에만 의존해 가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장소는 의외로 캠핑이 금지된 곳이 많다. 자연보호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거나, 너무 외딴 곳이라 화장실 문제 등이 굉장히 곤란해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오지 캠핑이라고 해서 꼭 100% 야생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이 가기 힘들고 찾기 힘든, 힘들지만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그런 오지를 소개하는 것이 내 철학이다.
오지 캠핑 하면 왠지 백패킹, 노지 캠핑 등 야생이 떠오른다. 차를 타고 쉽게 가기도 하나?
물론이다. 불법을 저지를 순 없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이 자연보호를 위해 캠핑이 금지된 곳을 일부러 찾아가 야영을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반면 양원마을처럼 오지이지만 기차를 타고 간 뒤 다시 백패킹을 한 채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오지 캠핑의 취지에 맞다. 반드시 걸어서 가야만 하는 오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는 해외만큼 볼거리가 없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아 싫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 오지 캠핑은 해결책이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람이 많은 곳을 찾아가 놓고는 구경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는 것은 모순이다. 사람 많은 게 싫으면 오지 캠핑을 떠나면 된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북도 등 전국 곳곳에는 합법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오지 캠핑 장소가 널려 있다. 오지라고 해서 야생 체험은 아니고, 화장실과 개수대 등이 간단하게 갖춰져 있다. 오히려 해외에서 느낄 수 없는 아기자기한 매력이 산재해 있으니 좀 색매력을 느낄 수 있다.
오지 캠핑을 할 때 꼭 가져가는 준비물은 무엇인가?
가벼운 오리털 침낭은 반드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오리털이나 거위털은 가볍고 보온력도 높은 데다 콤팩트한 크기로 수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리를 위한 ‘리액터’는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필수품 중 하나다. 구조가 간단하고 바람이 불어도 쉽게 꺼지지 않는 구조로 된 MSR사의 제품을 추천한다. 조리가 간편하고 화력이 센 점이 매력이다. 조리하지 않을 때는 분리해 히터 대용으로도 쓸 수 있으니 활용도도 남다르다.
식재료는 어떻게 마련하나?
요즘은 쉽게 짐을 꾸릴 수 있는 간편식이 많아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 많은 이가이 삼겹살, 김치 등 무거운 것을 준비하는데 오지 캠핑에서는 이런 식재료는 지양하는 게 좋다. 조촐하게 먹고 자연을 즐기는 데 더 큰 목적을 두는 게 오지 캠핑의 취지에는 더 적합하다. 국물 요리나 거창한 요리 등은 뒤처리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비화식 간편 요리를 추천한다.
당신은 국내 최고 여행 기자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여행가 기질이 있었나?
대학생 때 ‘가장 잘나가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다. 영어 과외를 통해 여행 경비를 벌었다. 그 비용으로 수시로 동남아 오지를 돌았다.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때부터 오지가 좋았다. 특히 동남아 오지는 각종 신기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여행의 만족도가 더욱 높았다.
1995년 필리핀 보라카이를 처음 갔을 때 마음에 들어 44일간 머문 적이 있다. 이후 추억을 잊지 못해 3년 뒤인 1998년에 다시 갔는데 그동안 너무 많이 변해 실망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내가 오지를 여행하는 건 지금은 개발되지 않은, 과거의 원시 상태 그대로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급격한 산업화로 그나마 있는 자연도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원시의 아름다움을 경험한다는 건 돈 주고 사려고 해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은 적이 있나?
없다. 오지라고 해서 꼭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을 일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지로 캠핑을 떠나는 이들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설렘은 낯섦에 대한 기대다. 익숙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곳에서, 자연에 나를 맞춰가는 것이 오지 캠핑의 재미다. 근심과 걱정은 일상에 잠시 놓아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오지 캠핑을 떠날 준비를 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