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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충동은 정신질환이다", 맵헤드 이현동 대표 인터뷰

“여행을 가고 싶다는 건 정신질환이 생긴 것”이라고 이현동 대표는 말한다.
다소 과격한 그의 표현에 당황하게 되면서도, 여행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다 보면 또 납득이 된다.

 

 

ⓒ Den
ⓒ Den

 

여행과 정신질환을 엮다니, 독특한 표현이다

평소에는 밥 한 끼 먹으면서도 누가 돈을 더 낼지, 덜 낼지 따지던 사람이 여행지에 가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기분’이라며 팁을 주기도 한다. 일평생 오페라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유럽의 한 극장에서 오페라를 보고는 눈물을 펑펑 쏟기도 한다. 인생에서 10일 남짓한 기간에 몸과 정신이 평소와 전혀 다르게 작용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이상하다고 밖에 볼 수 없지 않나.(웃음)

 

여행사 ‘맵헤드’를 운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80년대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현지에서 학생 신분으로 지내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당시 중동에서 귀국을 위해 로마에 잠시 머무르던 한국인 노동자가 많았는데, 이들을 위해 이탈리아의 역사 등을 소개해 주는 일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탈리아 정부가 한국 VIP를 의전하는 일을 맡겼다.

 

과거에 한 방송사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 강의 제목을 ‘내가 만난 사람의 99%는 형무소에 갔다’로 지었을 정도로, 격동의 시기에 VIP를 많이 만나봤다. 이후에 여러 일을 하다가 모 여행사의 제안으로 여행 기획자의 삶을 살게 됐다.

 

수년간 유럽 생활에서 얻은 경험으로, 지도만 봐도 그 장소가 입체적인 이미지로 떠오른다. 우연히 켄 제닝스가 저술한 지도광들의 이야기 <맵헤드>를 보고 그 단어에 꽂혀 회사 간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획하는 여행 상품에 대해 설명해 달라

맵헤드는 SIT와 VIP로 구분해 여행을 기획한다. SIT(Special Interest Tour)는 특수 목적 관광을 의미한다. 관심 분야와 관련된 여행으로, 여행지에서의 구체적 관광 형태와 목적을 설정하고 기획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관광과 차별된다.

 

SIT 여행이 일반적인 패키지여행과 다른 점이 있나?

패키지여행이 가격과 편의를 기준으로 떠나는 효율적인 여행이라면, SIT는 취향을 기준으로 설계한 고객 맞춤형 기획 여행이라는 점이 다르다. 여행 의뢰자에게 연락이 오면 의뢰자와 한두 번 식사하며 그의 소양과 성향을 알아간다.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여행을 기획한다. 여행의 테마뿐 아니라 숙소, 식사 등 모든 코스가 고객의 니즈에 맞춰져 있다. 그런 면에서 문화 테마 여행은 SIT 여행에 속한다.

 

여담이지만, VIP 의전 등의 경험을 토대로 상대의 성향과 니즈를 파악하는 재주가 있다.(웃음) 여행을 기획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됐다. 여행사마다 심리학자나 사회학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 기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동선이다. 미쉐린 가이드 3스타를 받은 식당에 가고 싶다고 해도 나라의 끝과 끝을 갈 수는 없지 않나.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최선의 동선을 짜야 한다. 이를 위해선 즐길 만한 다양한 소재를 알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 Den
ⓒ Den

 

가장 중요한 건 고객 입장에서 여행을 만족하느냐는 것이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의 오너도, 평범한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SIT는 고객의 꿈을 여행으로 현실화하는 것,

VIP는 고객의 강력한 니즈를 수용하는 데 초점을 둔다.

 

예술을 테마로 잡을 때, 어떤 방식으로 기획하나?

‘갑질’하지 않는 여행을 기획한다. 예를 들어 음악 여행 패키지는 테마가 잡혀 있다는 이유로 음악을 강제한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하루에 공연을 몇 개씩 보러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고객이 좋아하는 예술의 로망을 극대화하면서도 ‘여행’이라는 재미를 놓치지 않도록 기획한다. 공연장이나 미술관의 예술을 감상한 후 그 예술가의 인생에서 중요한 곳을 방문해 그 역사를 설명해 준다. 여행 자체를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VIP 여행 기획도 궁금하다

현재 맵헤드 업무의 8할이 VIP 여행일 정도로 인기가 많고, 공을 많이 들이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4명 정도로 구성한다. VIP 여행은 기획의 디테일이 중요하다. VIP 대우를 받는다는 건 그들이 시간을 대우받는다는 것이다. VIP를 재촉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도록 세밀하게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한국에서 VIP라는 말 자체가 너무 흔하게 쓰인다고 생각한다. VIP 명품 투어에 따라붙는 건 ‘좋은 호텔’이다. 호텔 숙박비가 여행 경비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는 너무 쉬운 방법이다. 그냥 돈을 많이 내면 VIP라는 취지에 동의하지 않는다.

 

VIP 여행은 마작을 하듯 준비한다. VIP는 부유한 만큼 경험한 것도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버킷 리스트에 가까운 그들이 강렬히 원하는 것과 더불어, 경험하지 않은 나만의 히든카드를 적절히 엮어 즐거움을 준다. 히든카드를 얼마나 보유하는지에 따라 기획자의 역량이 드러난다.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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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다른 여행 기획보다 훨씬 어려울 것 같은데?

쉬운 일은 아니다. VIP 여행 기획에서 딜레마에 빠지는 부분은 호텔이다. VIP라면 응당 하루에 몇백만 원씩 하는 최고급 호텔에서 묵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유럽 호텔은 시설보단 ‘품위’를 우선시한다. 침대에서 삐그덕 소리가 날지언정 그 나름의 역사와 전통을 갖춘 호텔이 유명 프렌차이즈 호텔보다 높은 대우를 받는다.

 

프랜차이즈 럭셔리 호텔에 간다면 시설이야 훌륭하겠지만 한국의 럭셔리 호텔과 다를 바 없다. 일상을 벗어나 ‘정신질환’을 얻고자 떠나왔는데, 다시 일상의 경험을 느끼는 셈이다. 큰돈을 지불하고도 일상과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한다면 만족스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서 납득하는 고객이 있고, 납득하지 않는 고객도 있어 결정하기 쉽지 않다.

 

VIP의 특징은 주변에 ‘예스맨’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여행은 ‘정신질환’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나. 정신질환을 얻은 VIP와 함께 애인처럼 친구처럼 받아들이고 동행한다는 마음을 갖는다.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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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여행은 마작을 하듯 준비한다.

고객이 강렬히 원하는 경험과 그들이 경험하지 않은

나만의 히든카드를 적절히 엮어 즐거움을 선사한다.

히든카드를 얼마나 보유하는지가 바로 기획자의 역량이다.

 

프리미엄 테마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식사 시간이 넉넉한 여행을 떠나길 바란다. 최소 두 시간은 갖기를 권한다. 식사 시간이 짧으면 밥을 먹으면서도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 출발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쫓기게 된다.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고통스럽다. 혹여 식사를 빨리 마치더라도 커피 한잔 마시며 여행 자체를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본인이 꼭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의 키워드를 여럿 생각하고, 이를 토대로 여행 기획자와 소통하는 게 좋다. 지인을 통해 여행 기획자를 소개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형 회사가 아닌, 여행 기획자와 따로 소통한다면 본인에게 최적화된 만족스러운 테마 여행을 구성할 수 있다.

 

여전히 열정이 가득한 모습이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나는 드라이빙 투어를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 과거엔 유럽 최남단에서 시작해 북단 끝자락까지 올라가는 여행도 해봤다. 언젠가 북한의 국경이 열리면 우리나라에서 시작해 북한까지 넘어서는 드라이빙 투어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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