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랑이든 파리 새끼든 다 때려잡을 겁니다.”
시진핑
習近平
중화인민공화국 제7대 국가 주석. 칭화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푸젠성, 저장성 등 오랫동안 동남부 지방 정부 관료를 지냈고, 2007년 상하이로 건너온 이후 정치적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8년 3월 국가부주석이 된 뒤 2012년 11월 후진타오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았다. 이듬해인 2013년 3월 14일 임기 10년의 국가 주석에 선출되었다. 1987년 중국의 국민가수인 펑리위안과 재혼했다.
출생 : 1953년 6월 15일(63세)
키 : 180cm
배우자 : 펑리위안
자녀 : 시밍쩌
“내 매력 중 하나는 내가 엄청난 부자라는 점이다.”
도널드 존 트럼프
Donald John Trump
제45대 미국 대통령. 기업가 출신으로 부동 개발업을 주목적으로 하는 트럼프 기업의 회장을 지냈으며,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를 설립해 전 세계에서 호텔과 고급 콘도미니엄 사업을 했다. 리얼리티 TV 쇼 <어프렌티스> 진행자로 활약했고, 2015년까지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개최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고, 11월 8일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두 번 이혼 후 2005년 슬로베니아인 모델 멜라니아 트럼프와 결혼했다.
출생 : 1946년 6월 14일 (70세)
키 : 191cm
배우자 : 멜라니아 트럼프
자녀 : 이반카 트럼프, 티파니 트럼프, 에릭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바론 트럼프
성장 (成長)
시진핑
몰락한 태자당 소년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혁명 원로의 자제와 친인척으로 구성된 태자당 출신이다. 부친은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習仲勳, 1913~2002). 시진핑 가족은 베이징의 고급 주택에서 경비원과 요리사, 가정부를 두며 남부러울 것이 없이 살았다. 하지만 유복한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1962년 류즈단 사건으로 부친이 반당 집단으로 몰려 실각하자 시진핑은 16세 때 산시성 토굴로 쫓겨나 7년간 하방당한다. 시진핑은 이때의 기억을 “노동자들과 함께한 7년은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라고 회고한다. 이후 중국 명문 칭화대학교를 졸업한 시진핑은 공산당 문을 열 번이나 두드린 끝에 1974년 2월 입당했다.
부친 시중쉰은 외교 활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 평상시에는 무명옷에 헝겊 신을 신고 다닐 만큼 검소했으며, 가족에게도 검소함을 요구했다. 그래서 시진핑은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정부 관료로서 지방에 있을 때도 그는 늘 낡은 군복을 입고 검은색 헝겊 신을 신었으며, 멀리 출장을 떠날 때 이외에는 관용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도널드 존 트럼프
군사학교로 쫒겨난 악동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 외곽인 퀸스에서 백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매우 유복하게 자랐지만 마냥 부잣집 도련님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부친 프레드 트럼프는 자식들에게 매우 엄격했으며, 가업을 철저히 배우도록 강요했다. 프레드 트럼프는 일주일 내내 쉬지 않는 일 중독자였다. 또 유전자가 뛰어난 남녀가 만나야 우월한 자손이 태어난다고 믿었는데, 트럼프 역시 부친의 그런 생각을 물려받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어린 시절 엄청난 악동이었다. 친구 생일에 가장 먼저 케이크를 집어 던지는가 하면, 장난감 블록을 쌓으면 어떻게든 무너트렸다. 참다 못한 그의 아버지는 트럼프를 엄격하기로 유명한 뉴욕 군사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기숙 생활에 엄격한 규율을 강조하는 군사학교에서도 그는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잘 적응하며 인기를 독차지했다. 1964년 군사학교를 졸업한 트럼프는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으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수완 (手腕)
시진핑
실사구시에 능한 지략가
시진핑의 첫 직장은 요직으로 손꼽히는 중앙군사위판공청이다. 하지만 그는 “자극 없는 생활이 불안하다. 노동자와 함께 살고 싶다”며 기층 업무를 자처했다. 그 결과 허베이성 정딩현 현위부 서기를 거쳐 1985년 6월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으로 전임했다. 그 후 1985년부터 2002년까지 샤먼시 부시장, 링더지구위 서기, 푸저우시위 서기, 푸젠성장(長)을 역임했다.
특히 링더지구위는 푸젠성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곳이었다. 그는 서기로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간부들이 개인 주택을 위법으로 건설한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간부 가운데 부현장급 242명, 과장급 이상 1399명이 처벌을 받았고, 이후 지역에서는 불법으로 개인 주택을 짓는 풍조가 사라졌다. 2000년 푸젠성장에 취임했을 때는 ‘경제 구조를 조정하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뒤 5년간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거쳐 푸젠성 GDP를 전국 10위 이내로 향상시켰다.
2002년 푸젠성에서 저장성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최연소 서기로 당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7년 3월 상하이시 서기로 자리를 옮기면서 정치적 입지가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하루아침에 이룬 결과가 아니었다.
도널드 존 트럼프
포기를 모르는 협상가
1970년대 중반 트럼프는 고향 퀸스를 떠나 맨해튼으로 진출했다. 그의 꿈은 뉴욕 맨해튼에 호텔을 갖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매일 아침 그랜드센트럴 터미널과 전철역에서 쏟아지는 통근자들을 바라보며 미래의 모습을 그렸다. 이때 트럼프의 눈에 들어온 것이 적자에 허덕이던 코모도어 호텔이었다. 호텔 인수 의사를 밝힌 그는 이후 경영인을 물색하기 시작했고, 하얏트를 낙점했다. 마침 하얏트는 당시 호텔업계 후발 주자로서 뉴욕에 호텔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다.
트럼프는 하얏트와 뉴욕시, 은행을 상대로 삼각 협상을 벌인 끝에 향후 40년간 재산세 완전 면제를 조건으로 뉴욕시의 자금 지원을 이끌어냈다. 이 협상안에 대해 뉴욕시와 호텔 협회는 불공정 특혜라며 크게 반발했다. 당시 언론은 이 협상에 관해 “어떻게 40년간이나 세금을 면제받았느냐”며 공격적인 질문을 퍼부었는데, 트럼프는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가 50년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랜드 하얏트 호텔은 1980년 9월 개업하자마자 대성공을 거뒀다.
통솔(統率)
시진핑
온건하지만 실속 있는 개혁가
시진핑은 가급적 적을 만들지 않는다. 발톱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일을 진행하지만 실속을 챙기는 부류다. 사실 공산당 총서기로 가장 유력했던 사람은 리커창 현 국무원 총리였다. 리커창은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 출신으로, 후진타오 주석이 후계자로 낙점한 뒤 정계에 진출하자마자 고속 승진했다. 리커창이 언론의 주목을 받을 당시 시진핑은 한낱 지방 서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광은 시다다(習大大, ‘시진핑 아저씨’라는 뜻의 애칭)에게 돌아갔다.
권력을 이양받은 뒤 반부패 개혁에 앞장서면서 카리스마를 드러내기 시작한 시진핑은 ‘공산당 내 부패를 뿌리 뽑지 못하면 중국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강도 높은 부패 척결안을 만들고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시집가려면 시다다(시진핑 아저씨)
같은 사람에게 가세요.
그는 행동에 단호하고 일에 진지해요.
파리든 호랑이든 모두 때려잡아 도망 못 가게 해요.”
- ‘시다다(習大大)’ 노랫말 중
도널드 존 트럼프
쇼맨십에 능한 달변가
부동산 재벌이자 엔터테이너인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전 세계가 놀란 이변이었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중에 각종 논란과 비판에 직면했음에도 상처받거나 전혀 기죽지 않았는데, 이는 선거를 하나의 게임으로 즐겼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리얼리티 쇼를 진행한 것이 증명하듯, 트럼프는 탁월한 달변가다. 숱한 막말에 가려졌지만 그의 언어는 ‘미국인 중심으로 제조업을 육성하고 그 어떤 것에서든 미국인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을 정확히 겨냥한 메시지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자들은 나를 싫어한다. 나를 좋아하는 건 택시 기사와 노동자들”이라며 서민들에게 친근함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평소의 트럼프는 차분한 성격이라고 한다.
진정한 재미는 게임에서 비롯된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문제는 그
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좋은 평판은 나쁜 평판보다 낫고,
나쁜 평판은 평판이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
- 도널드 트럼프 <거래의 기술>(살림) 중
원칙(原則)
시진핑
하나의 중국(一个中国)
시진핑은 지난해 남중국해 영유권에 관한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 판결이 나온 직후 “남중국해는 중국 것”이라고 불복하면서 전투태세를 지시했다. 그가 철저하게 ‘하나의 중국’을 원칙으로 움직인다는 뚜렷한 증거다.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은 소수민족 분리 운동에 대한 강경 기조를 취하며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람들을 테러 분자로 판단해 단호히 대응하고 있다. 홍콩 우산 시위(2014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일어난 민주화 시위) 역시 이 같은 원칙에 반발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와 함께 중국은 태자당 중심의 독재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데, 시진핑은 보시라이 숙청을 시작으로 권력을 종신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중국공산당 집단 지도 체제의 핵심인 상무위원회의 권한을 약화시켜 자문 기구 성격으로 격하하는가 하면, 위원 수도 현행 7 명에서 5명으로 축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사실상 ‘시진핑 1인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으로, 미국에맞서 중국이 전 세계 패권을 거머쥐기 위해서는 권력 집중화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이때문에 시진핑을 두고 ‘신중화제국의 시황제’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널드 존 트럼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 대통령의 원칙은 ‘미국 우선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취임하자마자 오마바 행정부가 추진하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에 서명하고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거론하는 것도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는 미 국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서슴지 않는다. 일본 자동차회사 토요타에 “멕시코가 아닌 미국에 공장을 지어라.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국경세를 내라”고 강짜를 부리는가 하면, 애플과 아이폰 제조업체 폭스콘에 생산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라고 종용했다.
또 하나는 그가 보수 기독교주의자라는 것. 트럼프가 반이슬람주의자라는 오명을 쓰면서까지 반이민 행정 명령에 서명한 속내는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특정 이념을 겨냥한 행정명령은 국제사회는 물론이거니와 미국 내에서도 강한 지탄을 받고 있는데, 민주당 세가 강한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내전에 가까운 갈등을 빚고 있다. 이민 정책 역시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가 독일과 스코틀랜드에서 온 이민자이며, 아내 역시 슬로베니아 출신 이민자라는 사실이다.
우군(友軍)
시진핑
문고리 권력 리진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판공청 주임. 우리나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을 합친 자리다. 주군이 황제의 위상을 확립하면서 덩달아 몸값이 치솟고 있다. 올가을 열리는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상무위원회 진입이 유력시된다. 시진핑과 달리 공청단파로 분류되지만 태자당과도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하이브리드형’ 정치인이다.
전략적 제휴 왕왕
국무원 부총리. 후진타오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의 핵심 인물이다. 시진핑과는 정치적 파벌과 지향점이 다르지만 중국을 개혁하자는 뜻을 같이 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하방한 수년 동안 모진 노동에 시달려 정치 현장에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18대 상무위원에 오르지 못한 그는 시자쥔(시진핑 인맥)을 활용해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은둔의 책사 왕후닝
공산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시진핑의 1인 지배권력을 상징하는 ‘시 핵심’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살아 있는 제갈량’으로 불린다. 현재 중국의 경제 핵심 사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경제권) 정책을 이끌고 있다. 중앙 정치 무대의 경험은 없지만 시진핑 후광으로 상무위원에 오를지 주목된다
도널드 존 트럼프
보수 이너서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인디애나 주지사로 6선을 지냈다. 정치 아웃사이더인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공화당 주요 인물들과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앙이 먼저이고 정치는 맨 나중”이라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복음주의 개신교도로 주지사 시절 종교를 이유로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종교자유보호법안에 서명한 바 있다.
보수 경제 교사 피터 나바로
백악관 내 신설된 무역위원회 위원장. 미국 내 대표적인 반중 학자다. 그는 교수 시절 쓴 책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을 통해 “중국이 미국을 죽이고 있다”면서 중국의 환율 조작을 비롯해 미국에 대한 안보 위협, 환경오염, 일자리 착취, 정치적 탄압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수 싱크탱크 에드윈 퓰너
미국 보수 성향 싱크 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설립자. 트럼프 정권인수위원회 선임 고문을 지낸 그는 북한 문제에 정통해 트럼프의 대북 정책 기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인물로 꼽힌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등의 위협으로 중국을 대놓고 자극했다. 시진핑 주석 역시 가만 있지 않았다. 지난해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시진핑은 기조연설을 통해 “보호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어두운 방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과 같고 무역 전쟁에서는 아무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며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서로 으르렁대던 두 지도자 사이에 최근 변화의 기류도 감지된다. 두 사람은 지난 2월 10일 트럼프 당선 이후 처음으로 전화 통화를 했는데,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존중 의사를 밝히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날 두 정상은 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하자는데 합의했다.
비교(比較)
경제력
GDP(국내총생산)에서 미국은 18조5619억 달러로 1위, 중국은 11조3916억 달러로 2위(2016년 IMF 발표 기준)를 차지한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미국은 11년째 3%를 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2000년 중반 10% 넘는 고속 성장을 시작으로 현재도 평균 7%대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구매력 평가(PPP)를 기준으로 볼 경우 중국 GDP는 2014년부터 미국을 앞섰다. 머지않아 중국 경제가 미국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지만, 이는 양적인 경제를 말하는 것으로 질적인 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군사력
미국은 전 세계 최고 군사력을 보유한 ‘지구방위대’다. 2016년 국방비로 6100억 달러를 지출했는데, 이는 상위 10개국을 합친 액수보다 많다. 반면 중국의 2016년 국방 예산은 1450억 달러 수준으로 미국에 한참 못 미치지만, 세계 인구 1위 국가답게 현역 230만, 예비역 230만 명으로 미군(현역 140만명, 예비역 110만명)을 압도한다. 해군력을 비교해보면 미군은 총 해군함 475대, 중국 총 해군함은 677대로 숫자로는 중국이 앞선다. 하지만 해군력의 정수로 꼽히는 항공모함의 경우 미군이 20대를 보유한 반면 중국은 단 1대(랴오닝호)만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자체 기술로 항공모함을 건조 중인데, 2020년까지 3개 항공모함 전단을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나라는 G2의 틈에 끼어 위기를 맞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행 5년이 된 한미 FTA가 미국 측에 불리하게 맺어졌다며 재협상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고, 주한 미군에 대한 방위분담금 인상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 줄곧 한국에 우호적이던 시진핑마저 2016년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중 관계를 악화시키고 갈등을 유발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후 중국은 자국에 유입되는 한류 문화를 차단하고 한국 공산품 수출에 제동을 거는 등 노골적으로 경제 보복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