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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인가 흉터인가, 바람 잘 날 없는 대통령의 생가

최고 권력자를 배출한 집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역대 대통령의 ‘터’는 최고의 명당인 동시에 최악의 흉터로 알려졌다. 대부분 기가 센 ‘터’이다 보니 그곳에 사는 사람도 웬만큼 기가 세지 않으면 터의 기를 감당하지 못해 오히려 화를 입는 것이다.

또 한 번 대통령이 나올 귀한 터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또 한 번 대통령이 나올 귀한 터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

6대, 7대, 8대, 9대 대통령 박정희

1917~1979년(62세) 경상 북도 구미 출생

다시 대통령 나올 귀한 터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위치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신혼부부가 와서 자고 아이를 얻으면 그 아이가 또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곳은 풍수학 이론으로 보면 금오산의 지기를 강렬하게 받고 있다. 이 집터가 있는 상모동 마을을 에워싸는 왼쪽 산 능선은 동네 전체로 볼 때 변방에 위치한다.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성빈 씨가 이곳에 집을 지은 지 1년 후인 1917년에 아들 박정희가 태어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사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사진

 

강렬한 땅의 기운이 화를 불러

풍수적으로 지기가 흐르는 능선 끝머리에 자리한 곳은 강렬한 땅의 기운을 받는다. 그러나 동네의 중심지가 아닌 주변부의 왼쪽 산 능선 자리는 그리 좋은 터가 아니다. 일례로 이곳 생가 관리를 맡고 있던 김재학(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장)씨가 지난 2008년 3월 정신병력이 있는 20대 괴한에게 피살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는 땅의 기가 워낙 세서 행운과 불행을 동시에 전하는 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는 땅의 기가 워낙 세서 행운과 불행을 동시에 전하는 터다.

11대, 12대 대통령 전두환

1931년~(80세) 경상남도 합천 출생

길흉화복의 극단을 보여주는 집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는 역시 박 전대통령처럼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 위치한 생가는 동네 왼쪽 산 능선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마을의 실질적 주산(풍수에서 묏자리나 집터의 운수 기운이 매였다는 산)은 정상에 ‘못재’라는 연못이 있는 산이다. 이 못재가 있는 곳에서 몇 줄기 능선이 뻗어 내려 내천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이때 동네의 왼쪽 산줄기에 해당하는 청룡 끝 줄기에 전두환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퇴임 후 화염병으로 불탄 본채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이 집터를 ‘넓은 모래밭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형상’의 명당이라고 자랑한다. 마을 앞을 감싸 흐르는 황강 모래밭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형상의 산세이며, 그 주둥이 부분이 전두환 생가터라는 것. 그런데 기러기가 착륙할 때 부드럽게 착지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충돌할 수도 있으므로, 이러한 땅은 길흉화복에 극단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풍수 속설에 ‘평사낙안형의 명당이 진짜가 아니면 후손이 끊긴다’는 말이 나온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다. 실제로 전두환이 태어나기 전에 어린 두 형이 떨어져 죽은 것도 그러한 땅의 성격에 적응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극단적인 길흉화복의 터에 자리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
극단적인 길흉화복의 터에 자리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

13대 대통령 노태우

1932년~(79세) 대구시 동구 출생

‘용의 머리’에 위치한 명당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향은 대구시 동구 신용동 용진 마을로 대구의 명산 팔공산의 한 자락 끝에 자리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기에도 이 일대 지세를 가리켜 ‘한 마리의 큰 용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며, 마을이 바로 ‘용의 머리’에 위치한다고 적었을 만큼 보통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동네에서 비교적 잘사는 사람들이 이 동네의 우백호 능선 품안에 자리하고 있는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는 동네 끝 집이라는 것도 다른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연암반의 강력한 기운 뿜어내

이곳 생가는 2~3m 높이의 계단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그 계단들이 자연 암반으로 되어 있다. 동네 뒷산에서 이어지는 산 능선이 노태우 생가 마당 끄트머리에서 끝이 났다는 증거다. 또 마당 입구와 집 뒤에는 자연석 암괴가 박혀 있다. 이렇게 집터 주변이나  무덤 주변에 바위가  있을  때 좋은 바위이면 권력을, 나쁜 바위이면 재앙을 불러온다는 극단적인 길흉화복 해석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버지의 교통 사고사를 겪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불행을 야기했던 5·18 전후의 노태우의 행적도 어느 정도 이 살기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마을에서 가장 좋은 터에 자리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
마을에서 가장 좋은 터에 자리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
생가 복원 기념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복원 기념식에 참석한 김영삼 전 대통령

14대 대통령 김영삼

1927년~(84세) 경상남도 거제 출생

대대로 동네 중심부 자리한 최고 명당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자리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생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와는 입지조건이 다르다. 김 전 대통령은 조상부터 인근에서 알아주는 큰 부자였기 때문에 자택의 터 또한 동네에서 가장 좋은 곳이다. 이 생가는 산 능선이 동네 한가운데로 뻗은 곳의 끝집이면서 동네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즉, 능선의 지기를 오롯이 받으면서도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그다지 살기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생가

이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 터(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 새말)와도 같다. 이 점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윤보선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풍수적으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집터가 마을에서 가장 좋은 터인 동시에 마을의 중심부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보선과 김영삼 생가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반면,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대중 생가에는 관리인 이외에 실제 생활을 하지 않고 있음도 하나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육지와 바다의 접경지에 자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
육지와 바다의 접경지에 자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

15대 대통령 김대중

1924~2009년(85세) 전라남도 신안 출생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고 있는 형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목포에서 2시간 뱃길 거리에 있는 하의도 맨 끝으로 알려져 있다. 하의도 선착장이 있는 웅곡리 면소재지에서 ‘김대중 대통령 생가’ 안내판을 따라가면 후광리가 나온다. 후광 2구와 후광 1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1km 떨어진 곳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생가 마을을 바라보면 마치 거북이가 목을 길게 빼고 있는 형상이다. 김대중 생가가 자리한 터는 거북이 머리 부분이다. 이곳은 하의도 북동쪽 끝으로 후광마을에서도 끝 집이자 왼쪽 외딴집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것으로 생가의 순기능 다하다

집터는 마을 뒷산에서 내려온 산 능선의 끝부분에서 반달 모양의 언덕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원래의 생가는 없어졌고 마늘밭으로 변해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인 1999년에 복원한 생가가 2002년 방화의 아픔을 겪는 등 생가 또한 그의 생애만큼이나 시련을 겪었다. 대통령을 배출한 것으로 생가의 순기능은 끝났다는 뜻일까. 게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산으로 둘러싸여 바다가 보이지 않으나 언뜻언뜻 바다 기운이 비쳐, 바다가 집을 훔쳐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육지와 바다의 접경지이기 때문인데, 파란만장한 정치인의 흔적을 엿보는 듯하다. 

 

최고 권력의 기운과 살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최고 권력의 기운과 살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16대 대통령 노무현

1946~2009년(63세) 경상남도 김해 출생

최고 권력 기운 돌지만 살기 또한 만만치 않아

퇴임 후 생가에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있다. 원래 그의 생가는 방 3칸에 부엌이 딸린 단출한 초가삼간이었는데,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들어선 이후 사저 앞쪽에 옛 모습대로 재현해놓은 상태다. 그의 생가 역시 역대 대통령의 경우처럼 ‘집 바로 뒤로 산 능선이 이어지는 곳’이다. 즉, 좌청룡의 끝 집에 위치한 집터의 경우 최고 권력이라는 달콤한 기운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그 살기 또한 만만치 않다. 

마을 사람들 여전히 ‘봉화산 정기’를 믿고 있어

터의 기운을 받은 이들은 고향에 대한 원초적 감정이나 추억이 결코 편안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문에 그 터를 떠나고 만다. 풍수적으로 말하면 고향 땅의 성격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에 정면으로 맞서 다시 생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퇴임 후 오히려 더 인기가 높아진 듯했지만, 결국 고향은 그를 거부하고 말았던 것. 하지만 봉하마을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봉화산의 정기’를 믿고 있다. 마을 주민 선진규 씨(봉화산 정토원 원장)는 “예로부터 평지에 솟은 돌출 산에는 특별한 인물이 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가로 알려진 포항시 덕성리의 친척집. 일본에서 태어난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 이곳에 거주한 적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생가로 알려진 포항시 덕성리의 친척집. 일본에서 태어난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 이곳에 거주한 적이 없다.

17대 대통령 이명박

1941년~(69세) 일본 오사카 출생

일본에서 태어나 친척집이 생가로 둔갑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 당선된 뒤 그의 고향으로 알려진 포항으로 수많은 풍수 호사가들이 방문했다. 그의 고향인 포항시 흥해읍 덕실마을은 진입로에 ‘이명박 대통령 고향마을’임을 알려주는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포항시는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이 대통령이 거주한 적이 없는 친인척의 집(덕성리 561번지)을 사실상 생가로 홍보하고 있다. 덕실마을에서 이 대통령의 ‘고향 집터’로 불리는 곳(덕성리 538번지)이 이명박 대통령의 아버지가 거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사카의 생가 예사롭지 않은 길지로 추정

따라서 사실 이곳은 이 대통령 아버지의 고향이지,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고향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그의 오사카 출생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그의 형제들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과정을 미뤄 짐작해보건데 오사카의 생가가 결코 예사롭지 않은 길지였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Mini Interview

안영배(동아일보 출판팀 기자, <풍수여행> 공동집필자, 풍수지리학 박사과정 수료) 

한국은 대통령 생가가 관광지가 될 만큼 인기 있다. 해외는 어떤가?

미국의 경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서 현재의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태어난 생가는 관광객들의 관광 코스 혹은 사진거리로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뿐 아니라 오늘의 중국경제를 이끌어낸 덩샤오핑, 한국을 강탈하는 데 앞장선 일본의 권력자 이토 히로부미 등 전 세계적으로 최고 권력을 향유한 사람들의 생가 터는 늘 사람들의 방문으로 북적거린다.

역대 대통령들 생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대통령들의 생가 터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태어나면 과연 대통령의 기운을 가지는 것일까?’,  ‘혹시 내가 이런 터에서 성장했으면 권력을 쟁취했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땅의 기(地氣)가 인체의 기(人氣)와 만나 상생(相生) 관계를 가질 때 복이 이루어진다. 반면에 땅과 사람이 상극 관계일 때 재앙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의 생가는 상생과 상극이라는 극한 대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최고 권력자를 배출한 생가의 상당수가 방화 또는 테러를 당하거나 그 가족들이 불행을 겪었다. 

명당이 꼭 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던데?

역대 대통령은 권력을 지향하는 땅의 기운을 받고 실제로 최고 권력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가족들의 남모르는 희생과 불행을 감내해야 했다. 이를테면 교통사고로 죽거나(노태우 아버지), 떨어져 죽거나(전두환 둘째 형 규곤), 병들어 죽은(김대중 누이동생) 가족 등이 있었다. 대개 이런 집터는 후에 폐가가  되거나  그곳에 오래 살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이 그 터의 기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논리에서 보자면 땅은 만인하게 공평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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