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는 누구인가?
소현세자는 인조와 인열왕후 한씨의 적장자로 1612년에 태어났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아버지가 왕이 되자 1625년 왕세자에 책봉된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청나라 태종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3번 큰절하고 9번 머리를 조아리는 배례)로써 굴욕적인 항복을 한 후 아우들(봉림대군, 인평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간다.
8년 간의 볼모 생활
인평대군은 이듬해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은 8년 뒤인 1645년에야 귀국하게 된다. 소현세자는 반청주의자였던 봉림대군과는 달리 개혁적이고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청에 머무는 동안 현대의 ‘외교관’처럼 청나라와 조선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며 청의 발전된 문물은 물론이고 서양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익혀나갔다.
돌이킬 수 없는 부자 관계
소현세자는 귀국할 때 천문과 산학 등에 관한 각종 서책과 서양 물품들을 몇 수레에 싣고 돌아온다. 조정 대신들에게 변화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나 조선에 치욕을 안긴 원수의 나라에 물들어 배신 행위를 한다는 오해만 사게 된다. 인조는 세자가 청나라의 힘을 빌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의심해 끊임없이 감시하고 박대한다.
소현세자의 의문스러운 죽음
소현세자는 귀국한 지 두 달 만에 병석에 누웠다가 나흘 뒤 급사한다. 그를 죽음으로 이끈 병은 ‘학질’로 기록되어 있으나 항간에는 독살설이 나돌았다. 인조의 총애를 받던 소용 조씨(조귀인)가 소현세자의 치료를 맡았던 의원 이형익을 시켜 그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인조는 의관 이형익을 처벌하라는 신하들의 주청에도 불구하고 나흘 만에 입관을 단행한다.
소현세자 일가의 비참한 최후
소현세자에게는 부인 민회빈 강씨와 세 아들이 있었다. 인조는 며느리 강빈을 자신의 수라에 독을 넣었다는 혐의로 폐위시켜 별당에 가둔뒤 사약을 내리고, 이후 세 명의 손자는 제주도로 유배를 보낸다. 그 후 강빈의 4형제와 어머니까지 처형시킨다. 소현세자의 장남과 차남은 제주도에서 병에 걸려 죽고 셋째 석견은 살아남는다.
온몸이 전부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의 일곱 구멍에 선혈이 흘러나왔다.
검은 천으로 얼굴 반쪽만 덮어놓았으나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얼굴빛을 분별할 수 없어서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런데 이 사실을 외부 사람들 중 아는 자가
없었고 상도 알지 못했다. 당시 종실 이세완의
아내가 인열왕후의 배다른 동생이었던 까닭에
소현세자의 염습에 참여했다가 그 이상한 것을
보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다.
(인조실록 인조 46권, 23년 6월 27일)
그 후의 이야기, 추노
드라마 <추노>에서 소현세자는 함께 원대한 꿈을 이룰 것을 결의했던 조선 최고의 무장 송태하(오지호)에게 비밀 편지를 남기고 죽음을 맞이한다. 송태하는 소현세자의 유일한 혈육인 이석견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으리라 믿고 그 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역사 속 석견은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지만 드라마 속 석견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아직 미지수다.
소현세자를 만날 수 있는 책
1. <왕이 못 된 세자들>(함규진 지음, 김영사)
조선시대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세자들의 기구한 삶과 그들이 왕이 되지 못한 이유를 살펴보는 대중적인 역사서.
2. <소현세자>(박안 식 지음, 예담)
소현세자의 의혹에 찬 죽음을 추리기법으로 전개해 인조의 피해망상, 주화파와 주전파의 논쟁 등 역사 속에서 부침한 인물들을 그려냈다.
3. <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이덕일 지음, 다산초당)
조선 중기 이후 임금인 인종부터 고종까지 조선 왕 4명 중 1명이 독살설에 휩싸였다는 충격적 미스터리를 흡인력 있는 문체로 그려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