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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복제인간, 디지털 클론의 세계

  • 입력 2024.08.26 17:00
  • 2024년 9월호
  • 최연진(한국일보 IT 전문기자)

영화로 접했던 상상 속 이야기인 것만 같은 디지털 클론. 우리 생활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shutterstock<br>
ⓒshutterstock

사람을 닮은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복제인간(클론)은 공상과학(SF)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 영화 '그녀(Her)'에서는 사람보다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 AI가 등장해 급기야 사람과 사랑을 나눈다. '에이아이(AI)'에서는 자식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기 위해 제공된 AI 클론이 피노키오처럼 사람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눈물샘을 자극한다. 또 '아이, 로봇(I, Robot)'에서는 사람 대신 궂은일을 하던 로봇들이 사람처럼 행복해지는 꿈을 꾸며 반란을 일으키고,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에서는 불완전한 인류를 전멸시키기 위해 AI과 클론을 과거로 보내며 싸움이 벌어진다.

이처럼 영화 속 디지털 클론 또는 AI 클론이나 클론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디지털 클론을 개발한다. 영화를 통해 접하다 보니 디지털 클론이 그저 상상 속 이야기 같지만 이미 생활 전반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늙거나 죽지 않는 AI 배우가 스크린에 등장한다?

AI 클론이란 AI 기술을 활용해 개인의 외모, 목소리, 행동, 사고방식 등을 복제해 디지털 형태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한마디로 AI를 이용해 사람을 흉내 내는 가상인간을 만든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든 AI 클론은 영화, 게임, 교육,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되고 있다.

그중 AI 클론을 활용하기 위한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분야는 엔터테인먼트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대형 연예 기획사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 에이전시(CAA)는 여러 AI 업체와 협업해 소속 배우들의 AI 클론을 준비하고 있다. 브래드 피트, 리즈 위더스푼을 비롯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스타가 된 이정재, 강동원 등 국내 배우들도 CAA에 소속돼 있다. CAA는 구체적으로 어떤 배우들을 AI 클론으로 제작할 계획인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늙거나 죽지 않는 AI 배우가 스크린에 등장할 전망이다.

AI 클론으로 만든 연예인은 여러 장점이 있다. 사람과 달리 결코 병들거나 늙지 않기 때문에 인기만 유지할 수 있다면 항상 같은 모습으로 오래 활동할 수 있다. 그만큼 연예인 입장에서도 연기 생명을 늘릴 수 있다. 나이나 신체적 한계를 극복해 다작을 할 수 있고 오랫동안 활동도 가능하니 수입이 증가할 수 있다. 또 할리우드에서는 더러 미국 배우 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에서 임금 인상이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면 영화나 드라마 제작이 중단되기도 하는데, AI 클론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일자리가 줄어들 위험은 AI가 적용되는 모든 분야에 상존한다. AI 클론이 배우로 활동하려면 초상권 등 연예인의 권리 보장이 선행돼야 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AI 클론을 허용하는 실제 인물의 권리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5월 연예인들이 미국 배우 방송인노동조합을 통해 영화사와 방송사를 상대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가 근 4개월 만에 타결됐는데, 여기에 AI 클론을 이용하는 조건 등도 포함됐다.

 

아담부터 플레이브까지, 버추얼 휴먼의 활약

국내에서도 이미 실제 인간이 아닌 가상인간, 즉 버추얼 휴먼이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데뷔한 6명의 소녀로 구성된 걸 그룹 이세계아이돌과 지난해 등장한 5인조 보이 그룹 플레이브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외모를 만들고 신분을 숨긴 사람이 따로 노래를 녹음하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각 구성원이 이름까지 갖고 가상 인격을 지닌 채 실제 사람처럼 활동한다. 플레이브를 만든 제작사 블래스트는 MBC 사내 벤처로 출발해 분사한 뒤 네이버 관계사 IPX의 투자를 받아 플레이브 활동을 지원한다.

버츄얼 휴먼 5인조 보이 그룹 ‘플레이브’ ⓒplave_official
버츄얼 휴먼 5인조 보이 그룹 ‘플레이브’ ⓒplave_official

이들의 팬 동원력을 보면 가상인간이라고 무시하기 힘들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여의도점에서 약 한 달간 진행한 팝업 스토어 행사에 10만 명 이상 다녀가 매출이 평소 대비 7배 이상 뛰었다. 이를 통해 플레이브의 음반, 기념품 등 각종 상품도 단기간에 50억 원 이상 팔렸다. 또 지난 4월 서울올림픽공원에서 열린 플레이브의 첫 공연은 예매 시작 10분 만에 매진됐다. 이는 방탄소년단, 아이유 못지않은 인기다.

이세계아이돌도 지난 7월 경희대학교에서 공연을 했는데, 오후 7시에 시작한 공연을 보기 위해 팬들이 낮 12시부터 길게 줄을 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세계아이돌을 만든 곳은 패러블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다. 네이버 관계사인 네이버제트와 KT 지니뮤직이 이 회사에 투자했다. 특히 KT 지니뮤직은 패러블엔터테인먼트가 이세계아이돌의 팝업스토어를 개설하는 데도 참여했다.

업계에서는 사람처럼 늙지 않고 마약이나 음주 운전, 스캔들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것도 가상인간의 장점으로 꼽았다. 또 남성 아이돌의 최대 고민인 한창 인기 있을 때 입대를 해서 발생하는 공백 기간도 없다.

이런 특성을 지닌 가상인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1998년 데뷔해 사이버 가수로 관심을 모은 아담은 요즘 인기 있는 이세계아이돌이나 플레이브의 조상 격인 가상인간이다. 하지만 아담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컴퓨터 환경과 곡의 특징, 제작사 지원 등 여러 요인을 비롯해 팬들의 수용 태도가 요즘과 달랐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현실 같은 뛰어난 컴퓨터그래픽의 온라인 게임과 가상공간(메타버스) 등에 익숙한 요즘 세대는 사이버 공간을 실제 공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아담이 활동하던 시대와 기술은 물론이고 팬들의 수용 태도도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일상생활에 가까이 다가온 AI 클론 시대

직장 생활에서도 본격적인 AI 분신의 등장을 예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여행업체 익스피디아가 지난 5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한 포럼 ‘익스플로어 24’에서 배리 딜러 회장은 AI의 미래를 그리며 앞으로 5년 내 사람의 분신 같은 AI 클론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많은 사람이 각자 자신을 닮은 AI 클론을 비서처럼 부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얘기다.

세계 최대 여행업체 대표답게 배리 딜러 회장은 AI 클론 시대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AI 클론이 대신 일을 하게 되면 사람은 일주일에 3일만 일해도 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여행, 레저 등 여가 활동을 하며 관련 산업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배리 딜러 회장은 단순히 전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에 대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AI 클론 개발에 뛰어든 기업들

이미 AI 스타트업 신디시아, 델파이 등에서는 AI 클론을 개발해 고객 상담이나 팬 미팅 등에 활용하고 있다. 영국 스타트업 신디시아는 AI로 만든 유명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등장하는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이 업체는 다양한 언어로 AI 클론이 등장하는 영상을 제작해 마케팅과 기업 교육 등에 활용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포춘>이 선정한 100대 기업 중 아마존을 비롯해 55개 기업에서 이 업체의 AI 클론을 도입했다. 이 업체는 세계 최대 AI 반도체 제조업체 엔비디아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9000만 달러(약 1246억원)를 투자받으며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레플리카는 AI 친구 서비스를 표방하는 디지털 클론 업체다. 즉 대화창에 나타나는 가상인간과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는 서비스다. 이용자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된 이 서비스는 일일 활성 이용자가 67만 명에 이른다. 월 이용료가 19.99달러, 연회비 69.99달러라는 적지 않은 비용에도 이용자가 제법 많은 편이다. 여기에 디지털 클론의 옷이나 외모를 바꾸기 위한 각종 아이템을 판매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통화 기능이 있는 것이다. 대화창 옆에 전화기 아이콘이 있는데, 이를 누르면 AI와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레플리카에서는 대화창의 가상인간과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blog.replika.com
레플리카에서는 대화창의 가상인간과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blog.replika.com

그런데 레플리카는 디지털 클론의 부작용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무료 대화 버전에서는 가벼운 대화만 가능하지만 유료 회원이 되면 성적 대화까지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아주 노골적인 묘사까지 가능한 일종의 대화형 포르노가 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중에 딥브레인이 사람을 닮은 디지털 클론 개발에 적극적이다. 이들은 실제 인물의 영상을 수집해 AI가 사람의 모습과 목소리를 분석한 뒤 딥러닝과 컴퓨터 비전, 음성 합성 기술을 결합해 목소리까지 그대로 닮은 디지털 클론을 만든다. 해당 인물이 자주 쓰는 표정과 제스처까지 정교하게 구현해 실제 사람과 유사하게 행동한다.

주로 실시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뉴스 앵커, 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하거나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가상 비서, 온라인 교육을 실시하는 AI 강사, 연예 활동을 하는 가상 인플루언서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업체에서 만든 김주하 앵커를 그대로 닮은 디지털 클론이 MBN 뉴스에 등장한 적이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흉내 낸 디지털 클론도 선보였다.

델파이는 아예 세계 최초의 디지털 클론 제작 플랫폼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들이 주로 겨냥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과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들이다. 델파이는 창작자나 인플루언서들이 디지털 클론을 만들어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인터넷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공동 창업자 다라 라제바르디안도 외신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디지털 클론을 갖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익스피디아 배리 딜러 회장과 같은 전망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투자를 받은 AI 스타트업 터치캐스트는 AI 클론을 앞세워 투자자들과 투자 상담을 하기도 했다. 이 업체는 실제 인물의 음성과 표정, 행동까지 그대로 따라 하는 디지털 클론을 1~ 2분 안에 생성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 이를 이용해 이 업체의 에도 시걸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을 닮은 AI 클론을 제작해 투자 상담을 받았다. 사실상 CEO의 일을 AI 클론이 대신한 것이다.

디스크립트는 ‘오버더브’라는 AI 음성 클론으로 특화된 스타트업이다. 오버더브는 사람 목소리를 그대로 복제해 새로운 오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AI다. 이를 토대로 문자를 입력하면 AI가 실제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 읽어준다. 또 하나의 내 목소리인 셈이다. 오버더브는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일반인의 목소리를 AI가 학습해 다양한 오디오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주로 인터넷 라디오인 팟캐스트나 오디오 북 제작, 강의 자료 같은 교육 콘텐츠와 영상에 목소리를 덧입히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가 사람 목소리를 대신해 책을 읽어주는 오디오 북을 만들 수 있으며, 이미 세상을 떠난 인물의 목소리를 AI가 학습해 영상에 해설을 곁들이거나 오디오 강의를 하는 식이다. 그만큼 이 업체에서는 콘텐츠 제작의 유연성이 발휘될 것으로 본다.

소울머신은 디지털 뇌를 가진 AI 클론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특이한 스타트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 뇌란 신경과학과 AI를 결합해 인간의 뇌 기능을 모방한 브레인 클론이다. 디지털 뇌가 적용된 AI 클론은 사람처럼 상황을 인식하고 반응한다. 이 업체에서는 디지털 뇌가 적용된 AI 클론은 대화 상대인 이용자의 감정을 인식해 그에 맞는 표정과 반응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특히 환자와 상호작용하며 건강관리를 조언하는 등 돌봄이 필요하거나 고객 상담, 교육처럼 상호작용이 필요한 분야에 적합할 듯하다.

소울머신의 가상인간은 고객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알맞은 목소리 톤과 얼굴 표정으로 대답한다. ⓒsoulmachine
소울머신의 가상인간은 고객의 감정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 알맞은 목소리 톤과 얼굴 표정으로 대답한다. ⓒsoulmachine

 

AI 클론의 등장이 야기하는 문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AI 클론은 사람과 AI의 공존 시대를 상징한다. 문제는 AI 클론의 등장으로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우려할 만한 일도 분명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 클론을 각종 범죄에 악용하는 경우부터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문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적용 등 갖가지 논쟁거리가 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AI 클론 시대를 머지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미국 정부, 공공기관, 업계가 함께 모여 AI 클론과 공존하는 시대가 도래하면 산업과 일자리는 어떻게 변할 것이며, 세금부터 복지제도 등 각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논의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문화체육관광부 등을 중심으로 AI 기술 발달에 따른 저작권 보호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저작권법 등을 정비해 AI 기술 발달로 일어날 수 있는 저작권 침해 등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AI 클론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긍정적 효과를 높이려면 저작권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즉 정부와 학계, 업계 등이 머리를 맞대고 AI 기술의 진흥과 규제, 윤리적 기준을 논하는 정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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