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그 시선을 즐기며 자신의 에너지를 자유롭게 발산하는 사람.’ 김솔이 변호사를 두고 떠오른 말이다. 그는 3년째 평상시에는 변호사로서 법정에 서고, 쉬는 날에는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선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건 어릴 적부터 남들 시선에 압도되기보다 당당히 즐기는 성격 덕분이다.
그는 취미 모델을 하는 것에 대해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스쳐가듯 지나가버리는 젊음을, 내 가장 예쁜 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이 즐겁고 의미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가장 예쁜 날의 모습’은 어떤 걸까? 인터뷰 날, ‘자신이 기록하고 싶은 가장 예쁜 모습’을 하고 와달라고 요청했는데, 의외로 검은 정장차림의 수수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어떻게 모델 일을 하게 되었나?
2019년 1월 변호사 시험을 치렀고, 그해 4월 합격 통보를 받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3개월 동안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태프로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거기서 사진작가들을 만났다. 재미 삼아 몇 번 촬영한 사진이 SNS에서 인기를 얻으며 아예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온라인 사진 모임 카페에 가입하면서 결과물이 쌓여갔고, 본격적인 취미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나?
어릴 적부터 카메라 앞에 서는 걸 좋아했다. 끼가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좋아하다 보니 푹 빠져든 것 같다. 그래서 아나운서를 꿈꾸기도 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방송기자단 활동부터 고등학교 방송반, 대학교 때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기까지, 모든 건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즐거워서 선택한 것이었다. 모델 일도 그 연장선 같은 거다.
모델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그런 취미를 처음 알았다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봐주는 반응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직접 취미 모델에 도전하고 싶다며 조언을 요청해오기도 한다. 지금도 관심이 많아 SNS에 사진을 조금만 늦게 올려도 ‘요즘 왜 사진 안 찍냐’며 난리가 난다.
오늘 의상이 '자신이 기록하고 싶은' 모습인가?
모델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정작 본업인 변호사로서 모습을 담은 사진은 별로 없더라. 그래서 고민 끝에 검은 정장을 입었다. 평소 가장 많이 보는 내 모습인데 카메라에는 못 담아본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다. 머리를 묶고 촬영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변호사로서는 익숙한 모습이지만 모델로서는 낯선, 몇 장 없는 내 모습을 기록하는 일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촬영에 임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
뭔가를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늘 <Den> 촬영처럼 원하는 콘셉트가 있다면 거기에 맞는 그림을 그리느라 생각을 하게 되지만, 보통 때는 그냥 별 생각 안 하고 느낌 가는 대로 포즈를 취한다. 말 그대로 취미 아닌가.(웃음)
촬영 스케줄은 어느 정도 주기로 잡나?
술을 안 좋아하기 때문에 여가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쓰려고 하는 편이다. 취미 모델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정말 즐거워서 매주 주말 촬영을 했고, 시간을 쪼개가며 평일 퇴근 후에도 촬영했다. 찍고 보니 일주일에 5일을 촬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진 촬영이라는 게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크더라. 단순히 촬영이 끝이 아니라 사전에 헤어와 메이크업도 신경 써야 하고 평소 다이어트 등 몸 관리도 해야 한다. 여러모로 일과 병행하기 힘들다고 생각되어 지금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촬영하고 있다.
촬영 텀을 너무 길게 잡는 건 아닌가?
취미는 취미일 뿐 본업에 안 좋은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촬영 횟수를 줄인 거고, 영상 촬영 등 다른 활동으로 취미가 확장되는 것도 경계하고 있다.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촬영 대신 집에서 쉬어보니 그것도 내 취향에 잘 맞더라.(웃음)
취미가 확장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건 어떤 의미?
취미 모델의 경우 대부분 인스타그램으로 섭외 요청이 온다. 그중에는 TV 연예 프로그램 출연 요청도 포함되어 있다. 아직 승낙한 적은 없는데 고민을 깊이 했다. ‘TV 출연으로 유명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유명인이 되면 돈도 많이 벌고 좋겠지만 애매하게 얼굴이 알려진다면?’, ‘방송에 얼굴이 나오는 게 내게 좋은 걸까?’ 같은 생각. 확신이 들지 않아 출연을 고사했다.
사진 작업을 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케이스마다 다른데, 보통은 사진작가들이 콘셉트를 정해 연락을 준다. 거기에 맞춰 헤어, 메이크업, 의상 등을 정하고 장소와 시간도 계속해서 상의하며 진행한다. 특히 날씨가 중요한 야외 촬영은 2~3주 전부터 실시간으로 상의하는 편이다. 촬영 후에도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소통하며 함께 한 장의 사진을 완성한다.
취미로 하는 사진 작업은 상호 무페이가 원칙이다. 사진작가와 모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모두 무보수로 작업하고 비용 발생 시에는 N분의 1로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나처럼 취미 모델들은 촬영을 즐기고, 포트폴리오가 필요한 사진작가나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할 기회를 얻는, 일종의 윈윈(win-win) 방식이다.
모델이니만큼 남다른 관리도 필요하지 않나?
일주일에 3~4일은 헬스장에 간다. 한 번 가면 기본 3~4시간은 운동을 하고.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헬스장 출입이 제한되면서 한두 번 쉰 것이 그 흐름을 끊어버렸다. 최근 수개월 동안 쭉 쉬고 있다는 말이다.(웃음)
반면 장소의 구애가 덜한 요가, 걷기 등은 꾸준히 하고 있다. 댄스 스튜디오에서 방송 댄스를 배우기도 했고. 또 친구들이랑 모임을 만들어 ‘하루 1만 보 걷기 챌린지’를 할 정도로 걷기에는 열성적이다.
사진작가와 나는 서로 무보수로 일한다.
나는 취미를 즐기는 거고, 사진작가는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는
윈윈(win-win) 방식이랄까.
이렇게 이득을 따지지 않고 부담 없이
진짜 좋아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모델 일이 변호사 업무에 영향을 주기도 하나?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모델 일을 하는 건데, 촬영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마음이 안 맞는 사진작가를 만날 수도 있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마음에 안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도 있고.
어떤 화보를 찍고 싶나?
얼마 전 핼러윈데이를 맞아 분장을 하고 콘셉트 사진을 찍었다. 그동안 공원이나 한강에서 일상적이고 무난한 ‘데일리 스냅’ 사진을 많이 찍어왔다면 스스로 파격 변신을 시도한 거였다.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콘셉트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안 해본 걸 하고 싶었고, 결과물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이제 웬만하면 평소에 못 하는 걸 시도해보려고 한다. 오늘의 내 모습은 인생에서 딱 하루뿐이니까 매번 똑같은 느낌으로 기록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우선, 지식재산권 분야에 매진해 해당 분야에 특화된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삶을 꿈꾼다. 그러려면 시간이든, 돈이든, 건강이든 모두 안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산다’는 건 누구나 바라는 행복이겠지만, 그걸 달성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을 테니까.
삶을 재미있게 사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나는 술, 담배, 커피를 안 한다. 이런 나를 보고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몸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넘쳐난다. 내겐 취미 모델이 바로 그런 것이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경험한 뮤직 페스티벌도 굉장히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2019년 한 해 동안 국내 뮤직 페스티벌은 다 갔다고 보면 된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신나게 춤 추고 노래 부르다 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다. 그것만큼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취미가 또 있을까 싶다.
모델 다음의 목표가 음악일 것 같다
정말로 디제잉을 배울 생각이다. 혼자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진짜 DJ가 되는 것이다. EDM 장르를 워낙 좋아해서 이전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못 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때가 된 것 같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