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중국의 인공지능(AI) 개발업체 딥시크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딥시크가 선보인 AI 때문이다. 오픈AI가 개발한 GPT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되는 개발비로 비슷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딥시크는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세상을 놀라게 한 딥시크가 공개한 AI는 두 가지다. 지난해 12월 26일 출시된 딥시크 V3와 올해 1월 20일 나온 R1이다. V3는 챗GPT처럼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반적인 대화형 AI이고, R1은 이보다 고도화된 옴니모델 AI다. 옴니모델은 문자 이외에 음성, 그림, 영상, 소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할 수 있고, 답변도 마찬가지로 문자, 음성, 그림, 영상, 소리 등 여러 가지 결과물을 보여준다.
딥시크에 따르면 자체 성능 조사 결과 V3의 경우 오픈AI의 GPT-4, 앤트로픽의 클로드 3.5, 메타의 라마 3.1 등과 비슷하거나 일부 앞선 성능을 보여줬다. R1도 오픈AI의 GPT-4o보다 성능이 일부 앞섰다.
오픈소스의 힘
예상 밖으로 뛰어난 성능도 그렇거니와 저렴한 개발 비용이 더욱 놀랍다. 딥시크는 R1 개발과 학습에 557만 달러, 약 82억원을 사용했다. 생성형 AI 개발에 최소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 비용을 투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AI 개발과 서비스 운용에 꼭 필요한 AI 반도체도 엔비디아의 고가 반도체 H100보다 저렴한 저사양 반도체 H800을 사용했다. 미국이 첨단 AI 반도체 H100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자 대안으로 이보다 사양이 떨어지는 H800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딥시크는 자체 개발한 AI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오픈소스란 개발에 사용한 프로그래밍 코드를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도록 개방한 것을 말한다. 오픈소스인 대표적인 AI가 메타가 만든 라마다. 덕분에 수많은 기업이 라마의 오픈소스를 토대로 각자 필요한 AI를 개발했다. 오픈소스의 무서운 힘은 확장성에서 나온다. 누구나 활용 가능하다는 것은 그만큼 널리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딥시크는 우군을 확보할 수 있다. 즉 AI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에 맞서 중국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이미 세계 1, 2위 클라우드 서비스업체인 미국의 아마존웹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가 딥시크 오픈소스를 활용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즉 AWS와 MS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은 딥시크 AI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정보 빼내기의 허와 실
오픈소스 정책의 밑바탕에는 딥시크가 AI 이용 정보를 중국으로 가져갈 것이라는 ‘정보 빼내기’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 있다. 오픈소스를 이용해 기업이 자체 내부 전산시스템에 맞게 AI를 개발하면 내부 데이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오픈소스와 연결 프로그램(API)은 구분해야 한다. 딥시크는 오픈소스를 가져다 자체 AI를 개발할 능력이 없는 곳을 위해 챗봇처럼 간단히 붙이면 바로 AI 이용이 가능한 API도 제공한다. API는 오픈소스와 달리 딥시크의 중국 서버로 이어지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딥시크 API를 이용하면 이용자의 각종 정보가 딥시크로 넘어갈 수 있다.
딥시크는 이용자 약관에 이름, 생년월일,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등 이용자가 제공한 정보와 인터넷 접속장치의 식별 번호, 사용 기기, 각종 앱과 인터넷 사이트 접속 기록 등을 가져간다고 명시했다. 심지어 이용자가 어떤 자판을 눌렀는지 자판 입력 정보까지 가져간다. 자판 입력 정보를 파악한다면 경우에 따라 은행 통장과 주식 거래 등 각종 인터넷 비밀번호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딥시크가 가져가 중국 서버에 보관한 정보는 중국 데이터보안법에 따라 중국 정부가 들여다볼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이 속속 딥시크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정부기관에서 보급한 기기로 딥시크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호주와 이탈리아, 대만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여러 부처와 기업도 딥시크 접속을 차단했다.
인재 블랙홀 된 딥시크
이를 넘어서서 딥시크는 전 세계 AI 개발자들도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 구인 구직 사이트 보스즈핀에 1월 30일부터 딥시크 개발자를 찾는 채용 공고가 올라오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고액 연봉이다. 기계학습 분야 개발자의 경우 월급이 8만~11만 위안, 약 1600만~2200만원이다. 연간 두 번 지급되는 보너스를 포함하면 연봉이 3억원을 훌쩍 넘는다. 연봉이 가장 낮은 직무도 연 50만 위안, 약 1억원을 받는다. 지난해 중국 대졸자 초임이 연 7만3000위안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다.
딥시크를 창업한 량원펑(梁文锋)은 2002년 대입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한 뒤 항저우의 명문 저장대학교를 다녔다. 어려서부터 수학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정보통신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 전 컴퓨터를 이용한 금융투자업체 하이플라이어를 창업했다. 퀀트 트레이딩으로 2021년 약 20조원의 자산을 관리할 정도로 많은 돈을 번 그는 정교한 금융투자를 위해 2023년 딥시크를 창업해 AI 개발에 뛰어들었다.
딥시크 뒤에는 중국 정부의 AI 지원 정책이 있다. 중국 국무원은 2017년에 2030년까지 자국 AI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중국의 AI 개발업체는 자그마치 167만 개다. 이 같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면서 딥시크는 세상을 놀라게한 AI 인재들을 확보했다.
딥시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AI 전문가들은 딥시크의 성능이 떨어지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아무래도 H100보다 사양이 낮은 H800에 최적화된 점이 곧 성능 제한을 의미한다. 신재민 트릴리온랩스 대표는 “딥시크 코드를 살펴보면 저사양 반도체인 H800에 최적화된 기능들이 있다”며 “이는 고사양 반도체인 H100에서는 효과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특히 한국어 지원 성능이 GPT-4보다 떨어진다. ‘AI 전도사’로 통하는 넥스트인텔리전스의 박종천 AI 어드바이저는 “딥시크는 영어와 중국어에 비해 한국어 지원 성능이 GPT-4보다 떨어진다”며 “한국어 어휘 학습이 덜 된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용자가 몰리면 아예 답을 하지 못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 서비스 지연도 문제다. 이기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많은 이용자가 한꺼번에 쓰면 열 번을 물어야 한번 답을 하거나 30분에 한 번 정도만 응답한다”며 “딥시크 내부에서 자원 활용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딥시크가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게임체인저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는 AI 스타트업들의 전망이 엇갈린다. 함명원 파인더스에이아이 대표는 “낮은 개발 비용은 상용화를 위해 중요하다”며 “딥시크는 다른 AI업체들이 비용을 낮춘 AI를 내놓는 촉매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신재민 대표는 “딥시크는 성능 제한과 중국으로의 데이터 유출 등 보안 문제 때문에 확산에 한계가 있다”며 “딥시크에 대한 관심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