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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환 치료의 기준을 제시하는 글로벌 명의 [Den이 만난 명의]

 

 

수많은 연구와 임상 경험을 통해 간질환 치료의 방향을 제시하며 환자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가 있다. 학자로서, 의사로서 연구와 치료의 경계를 허물어온 글로벌 명의, 안상훈 교수를 만났다.

 

ⓒ Den
ⓒ Den

의학(醫學)은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다. 한 줄의 연구 논문이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도, 치료법 하나가 의료계의 표준을 바꿀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연구가 수천만 명의 생명을 좌우하는 셈이다. 하지만 그 변화는 쉽지 않다. 수십 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다시 쓰고, 의료 관습과 정책까지 변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난관 속에서도 의학의 변화와 혁신에 앞장서는 인물이 안상훈 교수다. 오직 환자를 향한 열정 하나로 연구에 매진하는 그는, 단순한 연구를 넘어 의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다.

안상훈 교수는 간질환 분야에서 혁신적 연구와 치료법 개발을 주도하며 세계 의료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최초 연구자 주도 다기관 전향적 임상시험을 이끌었고, B형간염 치료제의 가이드라인을 바꿨으며, 540편 이상의 SCI(E) 논문을 발표하며 간질환 연구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했다. 그는 석사논문이 미국간학회지(<Hepatology>)에 실리며 젊은 시절부터 학술적 성과로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세계 3대 학술지로 꼽히는 미국간학회지, 유럽간학회지(<Journal of Hepatology>), 아시아태평양간학회지(<Hepatology International>)의 편집위원을 모두 역임하며 ‘간질환 학술지 편집위원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국내에서 이런 업적을 이룬 인물은 안상훈 교수가 유일하다.

안상훈 교수에게 연구는 선택이 아닌 사명이다. 그는 단순히 환자 치료를 넘어 진료 가이드라인을 바꾸고, 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내며, 의학의 틀을 다시 마련하는 일을 해왔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동시에 의학의 미래를 설계하는 의료인, 안상훈 교수는 지금도 연구실과 진료실을 오가며 더 나은 의학을 향한 길을 닦고 있다.

 

안상훈 교수는…

1995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브라운대학교 간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수료했다.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호주 멜버른대학교 감염연구소에서 연수를 마쳤으며,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병센터장과 소화기내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B형간염, 간경변증, 간암 치료 분야에서 신약 개발과 약제 내성 연구를 수행하며 540편 이상의 SCI(E) 국제 논문을 발표했다. 국내 최초로 간염 치료제 다기관 연구를 주도하며 보험 기준을 새로 마련했고, B형간염 치료법 가이드라인을 변경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까지 100건 이상의 다기관 임상 연구를 이끌며 신약 승인과 임상 적용에 기여, 간질환 연구와 치료의 국제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의사가 된 계기와 간 전공을 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에 뇌진탕으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며 의사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닫고는 자연스럽게 의사의 길을 택했다.

한때는 위장관 분야를 희망했는데, 전공의 시절 간질환을 연구하던 교수님의 권유로 간질환 관련 논문을 쓰게 됐다. 그 논문이 미국간학회지에 실리고 의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간 분야 전문가의 길을 걷게 됐다.

 

간질환 치료의 선구자가 원래 다른 전공을 희망했었다니, 흥미롭다

처음에는 위나 식도 같은 상부 위장관을 전공하려고 했다. 선천적으로 식도질환을 앓기도 했으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대학 입학 후 담임반 교수제를 통해 간 분야 전문의인 스승님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간 관련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한국에서 미국간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해외 연수를 다녀온 교수들이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국내파 전공의가 독자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운도 따랐지만, 그만큼 연구를 인정받았다는 뜻이었다.

이후 주변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간 분야 전문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길이 그렇게 정해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선택한 길이지만, 지금은 만족한다. 간 연구와 치료에 집중하며 후회 없이 내 길을 가고 있다.

 

세계 3대 간 분야 학술지의 편집위원을 모두 역임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미국간학회지(<Hepatology>), 유럽간학회지(<Journal of Hepatology)>, 아시아태평양간학회지(<Hepatology International>). 이 세 가지 학술지는 간질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꼽힌다. 세계 주요 간학회지 편집위원을 모두 역임하며 ‘간질환 학술지 편집위원 그랜드슬램’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국내 유일의 성과라는 점에서 뿌듯하고 자부심을 느낀다.

이들 학술지는 간 분야에서 연구력이 검증된 소수의 학자만 논문을 게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저널이다. 편집위원이 되려면 투고 논문을 평가하고 게재 여부를 결정할 만큼의 연구력과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간질환과 관련한 국내외의 다양한 활동이 편집위원 선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다수의 논문 발표, 100건 이상의 다기관 임상 연구뿐 아니라 정부 과제 연구책임자로 수행한 여러 프로젝트, 수많은 해외 초청 강의, 세계적 간질환 연구자들과의 교류 등이 그 예다.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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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건 이상의 다기관 임상 연구, 54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꼽자면?

베시보정(베시포비어)의 제3상 임상시험이다. 국내 22개 대학병원이 참여한 대규모 연구로, 연구 디자인부터 수행까지 주도했으며, 그 결과가 미국소화기학회지(<Clinical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 2019년 판에 제1저자로 게재됐다. 연구가 성공하면서 현재 만성 B형간염 초치료 약제로 베시보정이 사용되고 있다.

2000년대 후반에는 국내 최초로 연구자 주도 다기관 전향적 임상시험을 수행하기도 했다. 5개 대학병원이 참여해 라미부딘 내성 환자에게 엔테카비어를 투여한 연구로,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들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여했다.

이 외에도 대부분 임상시험이 글로벌 제약사의 대규모 연구였으며, 연구 디자인 단계부터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를 통해 연구력을 키우고 국제 교류를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B형간염 치료법의 가이드라인을 바꿨다

과거에는 B형간염 치료제의 내성 문제가 심각했다. 환자들이 약을 오래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고, 그럴수록 치료가 어려워져 결국 간 기능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하지만 내성이 적은 약제를 조기에 투여하면 간질환 진행을 막고, 간암 발생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 치료 가이드라인이 바꿨다. 이를 위해 국내 최초로 연구자 주도 다기관 전향적 임상시험을 수행했고, 그 결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새로운 연구가 반드시 기존 표준을 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치료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치료의 빈틈을 메우고, 환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연구의 목표다.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로, 표준을 바꾸는 길은 험난하다. 이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쉬운 일이 없었던 것 같다.(웃음) 오히려 실험실에서 일하는 것보다 연구비를 마련하는 과정이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기초연구에서는 국책 연구 과제를 수주해 연구비를 확보하고, 우수한 연구 인력을 구성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임상시험도 마찬가지다. 다기관 연구를 진행하려면 여러 대학병원의 교수들을 설득해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또 연구 윤리를 준수하면서 전향적 연구 디자인을 설정하고, 환자를 등록해 치료하고 추적 관찰하는 과정까지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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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구일수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비도 많이 들고, 과정도 쉽지 않다.

하지만 고된 연구로 얻은 작은 성과가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 결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학술적 측면에서 큰 성과와 업적을 남겼다.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나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사다. 하지만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이 많았다. 이런 질문들을 연구로 풀어가면 더 나은 진단과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고, 결국 환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병원에서 연구를 계속하라는 은사님의 조언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학병원의 연구는 단순히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구 결과가 진료 가이드라인을 개선하고, 또 보건정책을 바꿔 더 많은 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사회적 공헌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연구가 재미있었고,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됐다.

 

간질환 진료와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최고의 진료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 신념이 연구를 지속하는 원동력이 됐다. 전공의 시절, 수많은 환자가 복수나 위장관 출혈로 입원했고, 간암과 간부전으로 삶을 마감하는 환자도 많았다. 간질환 치료제가 많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복수나 출혈을 조절하고, 간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연구로 이어졌다.

좋은 연구는 진료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연구 결과가 실제 환자 치료에 적용되고,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을 보며 여전히 보람을 느낀다. 이런 경험이 선순환이 되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병원과 학회 내 의료진뿐 아니라 기업, 기관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고. 본인만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좋은 관계는 결국 신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신뢰는 탄탄한 실력 위에 쌓인다. 탁월한 역량을 갖춰 상대의 신뢰를 얻고, 이를 통해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한 원칙으로 여긴다. 적대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존중은 단순히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상대를 존중하면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지 않고 원활히 협력할 수 있다. 상대를 이해하면 니즈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나의 니즈와 접목해 서로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명의를 만드는 명의’가 꿈이라는 그는 제자 육성에 힘쓰며 제자들과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 Den
‘명의를 만드는 명의’가 꿈이라는 그는 제자 육성에 힘쓰며 제자들과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 Den

 

간질환 연구에서 AI 기술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간질환 분야에서도 개인 맞춤형 진단과 치료법 개발, 질병 진행 예측, 치료 반응 평가 등의 영역에서 AI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이를 통해 보다 정밀한 치료가 가능해지고, 신약 개발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높이며 개발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

AI는 이미 연구와 학술 교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계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분석하고,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국제학회에서의 발표와 소통 과정에서도 AI는 널리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간질환 연구와 치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의료인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진심이 전해질 때다. 연구 성과나 행정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직접 만나고 치료하면서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했구나’ 실감할 때 감동을 받는다.

환자가 건강을 되찾고 감사 인사를 전할 때, 단순한 의료 행위를 넘어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연구는 의학을 발전시키고 행정은 의료 환경을 개선하지만, 환자와의 만남에서 얻는 감동은 그 어떤 성취보다도 크다.

 

스스로 생각하는 ‘명의’는 무엇인가?

과거에는 치료를 잘하는 의사를 명의라고 불렀다. 뛰어난 시술 능력과 정확한 처방이 명의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명의는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를 제공하며,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의사가 될 것이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맞춤형 치료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개인의 유전자, 바이오마커, 생활 습관 등을 분석해 환자에게 최적화된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다가오는 시대 속 명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의사가 이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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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명의 편작(扁鵲)은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고의 의술’이라고 말했다. 탁월한 치료법과 환자를 향한 마음을 전제하면서 질병 예방까지

힘쓰는 의사가 진정한 명의다.

 

본인만의 의료 철학이 있다면?

젊은 의사 시절에는 질병을 무조건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치료 방식을 바꿀 수 있었고, 환자와 환자 가족의 의견보다는 의학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치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며 깨달은 점이 있다. 질병이 아니라 사람을 치료해야 한다는 것. 환자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까지 고려해 마음까지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야 환자와 보호자의 진정한 미소를 볼 수 있었고, 그때야 비로소 치료가 완성된다는 걸 알게 됐다.

의사는 결국 환자가 행복해지는 치료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최고의 실력으로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를 존중하고, 환자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의사가 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명의를 만드는 명의’, 더 나아가 ‘글로벌 명의를 만드는 글로벌 명의’가 되고 싶다. 대한민국의 젊은 교수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내가 국제적으로 경험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영어와 AI 활용 능력이 뛰어나 국제 교류가 어렵지 않다. 세브란스병원의 제자들도 벌써 국제 학회에서 수상하고 초청 강의를 진행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앞으로도 이 흐름을 이어가며 ‘청출어람’ 인재들과 함께 의료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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