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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의 격변기,
‘제3의 집’을 찾아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넘은 초고령사회. ‘돌봄’의 전환점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효(孝)의 방식도 바뀌고 있다. 변화한 가족 구조 속에서 의료와 복지가 교차하는 새로운 돌봄 시스템의 필요성이 커졌다. 우리가 맞이할 노년, 그리고 우리가 돌봐야 할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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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한국, 집집마다 돌봄 고민

“편찮으신 어머니 어디에 모셔요?”최근 최대 고민거리가 ‘부모 부양’이라는 중년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부모는 아픈 곳이 늘어가고, 부양을 위한 각종 비용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부모를 어떻게 하면 잘 모실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더군다나 과거와 달리 동거하며 부모를 부양하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고, 핵가족화된 데다 효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2023년 기준 노인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의 비중은 10.3%. 10명 중 9명은 자녀와 따로 살며, 이들 중 상당수는 독거노인이다.

과거 부모를 모시던 자녀의 자리를 이제는 다양한 사회적 자원과 서비스가 대신한다. 하지만 정보 부족, 제도적 한계, 돌봄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많은 이가 돌봄의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한국은 65세 이상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돌봄 문제가 몇몇 집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요양병원, 요양원, 실버타운의 차이는?

집외에 연로하고 편찮으신 부모님을 모실 만한 서비스와 시설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있다. 두 시설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나 설립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요양병원은 말 그대로 ‘병원’이다. 만성질환이나 노인성 질환이 있는 환자가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아 입원할 수 있다. 연로한 노인의 경우 대부분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실상 ‘누구나’ 원하면 입원이 가능하다.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24시간 상주하면서 필요한 의료적 처치, 처방, 투약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 응급 상황 발생시 빠른 대처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반면에 요양원은 복지시설이다. 정부는 홀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어르신에게 신체 활동 및 일상생활 지원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기요양 보험제도를 운영 중인데, 요양원은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어르신만 입소가 가능하다. 본인부담금은 20% 정도로, 비용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국가 공인 시험을 통과한 전문 간병인인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면서 이들을 돕는다. 다만 요양원은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 행위가 불가하며, 진료나 처치가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을 찾거나 촉탁의에게 요청해야 한다.

시설에 가지 않고 집에 머무는 어르신들을 위한 서비스도 있다. 재가(在家) 돌봄 서비스는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어르신의 집에 요양보호사가 방문해 필요한 도움을 준다. 청소, 식사, 목욕 등의 일상생활을 보조한다. 또 집에 머물면서 어느 정도 거동이 자유로운 어르신은 주간 보호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주중 낮 시간에 어르신들이 보호기관을 방문해 간호, 식사, 재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저녁에는 귀가하는 방식이다. 이런 비(非)시설 서비스는 어르신들이 자신이 살던 집에 머무르며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꼭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여가와 편의 시설을 누리기 위해 노인들에 특화된 주거시설을 찾는 경우도 많다. 주로 ‘실버 타운’, ‘시니어 타운’, ‘시니어 레지던스’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시설은 입주자가 일정 비용을 부담하고 건강한 노후를 보내도록 지원한다. 균형 잡힌 식사 제공, 벽에 손잡이 설치 등 노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여가 활동을 즐기면서 이웃들과 교류할 수도 있다.

 

편찮으신 부모님, 어디에 맡겨야 할까

어떤 형태의 돌봄 시설, 서비스가 적절할지는 어르신의 상태나 가정 여건 등에 맞춰 선택해야 한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어 장기요양 등급이 있으면서 자녀나 간병인이 집에서 부모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요양원을 가장 먼저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만성질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 의료진의 주기적 진료와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요양병원이 더 적합하다. 요양원에 가야 할 상황이라면 가까운 곳에 병원이 있는지, 촉탁의가 얼마나 자주 방문하는지 등을 살피는 것도 좋다.

또 치매, 파킨슨병 등 특정 질환을 앓는 경우 ‘치매 전문 요양병원’ 등 전문 요양병원을 찾아보는 것이 낫다. 이런 병원에는 특정 분야를 오래 진료하고 연구해 온 의료진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요양병원과 요양원 모두 편찮으신 어르신을 모시는 기관인만큼 욕창,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에 대한 세심한 케어가 적절히 이뤄지는지, 이에 맞는 설비가 잘 갖춰져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기존 환자들의 표정과 식단, 시설의 청결 상태도 미리 살펴야 한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가족들이 자주 찾기 힘들거나 면회가 많이 제한되는 곳이라면 어르신의 정서적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가능하다면 자주 왕래가 가능한 거리 내에서 적절한 시설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 의료진, 간병인 등 돌봄 인력이 환자 수 대비 충분한지, 오래 일한 ‘베테랑 직원’이 많은지도 파악해야 한다. 최근 이 같은 어르신 돌봄시설은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잦은 야간근무, 어르신을 씻기는 등 육체노동으로 일이 힘들고 처우가 열악해 오래 일하는 사람이 적다. 그러다 보니 ‘초보’라도 일할 의지만 있으면 간병인으로 고용하는 시설도 적지 않아 간병의 질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

 

다양해지는 어르신 시설

과거 어르신 주거시설이라고 하면 ‘최고급 실버타운’과 산속 외진 곳에 있는 낙후된 곳으로 양분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비용과 시설 등 이런저런 측면에서 선택지가 다양해지고 있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여러 기업이 너도나도 시니어 주거사업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이런 시설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어르신 시설은 ‘더 쾌적하게’, ‘더 접근성 좋게’ 바뀌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은평구엔 KB골든라이프케어의 요양시설 ‘은평빌리지’가 문을 열었다.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인이 주거시설은 외관은 대학가의 신축 오피스텔과 비슷하다. ‘시설이 아닌 집과 같은 환경’을 목표로, 24시간 상주하는 간호사의 케어를 받을 뿐 아니라 물리치료와 재활치료 걱정도 없다. 전문 영양사가 개별적으로 영양을 관리해 주는 것도 장점이다. 어르신들의 높은 삶의 질을 위해 음악, 미술, 원예, 요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서울에 위치해 다른 요양시설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가족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입소문을 타면서 개소도 하기 전에 190명이 입소를 신청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는 앞서 위례와 서초 등에도 비슷한 어르신 주거시설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프리미엄 실버타운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프리미엄 실버타운 ‘더시그넘하우스 청라’가 들어섰다. 단지는 총 131실 규모로, 전용면적 11.5평형의 실속형부터 부부가 여유롭게 거주할 수 있는 34.4평형까지 총 11개 타입으로 구성돼 있다. 식당과 사우나, 피트니스센터를 비롯해 북 카페, 골프 연습장, 노래방, 탁구장, 당구장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췄고, 150석 규모의 영화관도 있다. 또 모든 가구에 비상벨과 동작 감지 센서를 설치, 응급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처할 수 있게 했다. 보안과 안전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과 간호사가 상주해 응급 상황 발생 시 신속한 조치가 가능하다. 환자가 발생할 경우 단지와 의료 협약을 맺은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으로 즉시 이송한다.

프리미엄 실버타운 ‘더시그넘하우스 청라’의 외부(위)와 내부 모습.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프리미엄 실버타운 ‘더시그넘하우스 청라’의 외부(위)와 내부 모습. ©더시그넘하우스 청라

보험회사, 건설사 등 업종을 불문하고 여러 기업이 어르신 주거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어르신 주거시설의 선택지는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첨단기술도 시설에 접목되고 있다. 대구의 한 요양병원은 병실에 설치된 센서로 어르신의 낙상 여부나 생활을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위급 상황이 생기면 자동으로 비상벨이 울려 의료진에게 알린다. 침대에 달린 레이더는 환자의 혈압이나 호흡수 등을 체크한다. 이렇게 쌓인 환자 데이터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하는 데 활용된다. 이처럼 어르신들을 위한 시설도 계속 ‘스마트화’되고 있다. 자동 식사 보조기기, 원격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 인지 훈련 VR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도 한다.

재활 로봇이나 인공지능(AI)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지난 3월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의료기기 전시회 ‘국제의료기기·병원설비전시회(KIMES) 2025’에서는 ‘노인 돌봄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헬스케어, 재활 기기 등 총 3만7000여개 품목이 전시됐다. 치매와 경도인지 환자들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맞춤형 인지 훈련을 제공하는 ‘치매 평가 솔루션’, 실시간 온도 습도를 조절하는 센서를 장착해 욕창을 예방하는 매트리스도 나왔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재활을 돕는 로봇도 있다. 바지처럼 입고 걸으면 다른 보조기구나 사람의 도움 없이 걸을 수 있다.

 

‘어르신 시설 천국’, 일본

어르신 돌봄 문제는 우리나라만의 고민이 아니다. 한국과 문화가 비슷하면서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말 그대로 ‘어르신 시설 천국’이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은 일상생활에서 돌봄을 제공하며 높은 삶의 질을 누리게 해주는 어르신 주택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정부·지자체, 민간기업이 힘을 합쳐 다양한 주택 유형을 만드는 ‘돌봄시설 실험’을 통해 어르신들이 소득 수준과 건강 상태, 취향 등을 고려해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일본 지바현 도요시키다이 단지는 ‘어르신 맞춤형’ 마을이다. 도쿄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과거 도쿄 직장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이 지역은 저출생 고령화로 점차 인구가 줄면서 슬럼화됐다. 그러자 2009년부터 시작한 도시재생을 통해 ‘어르신 마을’로 거듭났다. 보행 노인의 안전을 위해 자동차는 시속 20km로 다니고, 고령자를 위한 교육·운동·요양 시설이 마을 안에 갖춰져 있다. 어르신 일자리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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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어르신 시설이 등장했다. 2021년 도쿄 이타바시구 주택가 가운데에 ‘집으로 돌아가자’ 병원이 문을 열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역 인근 통유리로 된 외관은 밖에서 보기엔 유명 카페나 쇼핑몰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시설은 급성기 환자는 아니지만 재활이 필요한 어르신들이 잠시 입원하는 곳이다. 어르신들이 살아온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벗어나지 않고 여생을 보내는 것을 뜻하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를 실현하는 셈이다. 또 접근성도 뛰어나 친구나 가족과 단절되지도 않는다.

세대 통합형 어르신 주택도 등장하고 있다. 유치원, 보육원, 청년 시설을 노인주택 안에 만들어 어르신들이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세대 간 교류를 활발히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일정 부분 돌봄에 참여하고, 어르신들은 영유아 돌봄에 관여한다. 도쿄 ‘오렌지 하우스’ 같은 시설이 대표적인 예다. 노인·아이 돌봄시설이 함께 있는 이 복합 시설에서는 노인들이 동화책을 읽어주며 아이를 돌보고, 아이들은 어르신들과 산책하며 이들을 돌본다. 이런 시설은 홋카이도 등 일본 전역에 있다.

 

돌봄 패러다임 바뀌어야

어르신 돌봄은 더 이상 개별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돌봄은 이제 개인의 부담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 앞으로 그 수요는 계속해서 크게 확대될 것이며, 이에 따라 돌봄의 방식과 접근도 더 다양화될 필요가 있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요양시설에 머무르며 단순히 생을 연명하는 것이 아닌, 가능한 한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며 ‘웰다잉(Well-dying)’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일본처럼 더 많은 시설과 서비스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용 부담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급형 주거시설이나 저렴한 실버타운도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개인의 상황과 필요에 맞는 서비스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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