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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경영개발원 설립자 故 장봉애, 여성 기업인의 새 역사를 쓰다

평생 교육과 인재 육성에 헌신하며 대웅제약의 성장을 이끌고 기업 정신을 세운 고 장봉애 명예회장. 기업가를 넘어 참된 교육자이자 후원자로서 남긴 그의 일생을 돌아보며 추모의 뜻을 올린다.

장봉애 원장(왼쪽)과 시인 신달자 ⓒ 대웅제약
장봉애 원장(왼쪽)과 시인 신달자 ⓒ 대웅제약

장봉애

· 1933~2025

· 대웅경영개발원장

 

꿈은 이루기 위한 것.

그러나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리더십’이라는

씨앗은 준비되어 있는 토양에서만 자랄 수 있다.

자신의 현대와 미래는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결코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 故 장봉애 원장

지난 3월 13일, 고 윤영환 대웅제약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대웅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장봉애 원장이 영면에 들었다. 장봉애 원장은 교육자로 시작해 기업가로, 나아가 사회 공헌의 길을 걸어온 선구적 여성 리더였다. 그는 교육에 대한 헌신과 비전, 인재 육성을 향한 깊은 애정으로 대웅제약의 기업 문화 형성과 사회적 책임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

단순히 기업 성장만을 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과 기업 활동의 융합을 통해 미래 인재 양성과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이에 그는 모교인 숙명여자대학교의 디지털휴머니티센터 설립을 지원하는 등 인문학과 디지털 기술 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교육자 정신으로 기업 경영과 사회 공헌의 새 길을 개척한 장봉애 원장. 그의 혁신적 행보는 대한민국 여성 리더십 역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배움과 가르침의 길에서 기업 경영의 세계로

장봉애 원장은 거창여고를 졸업한 후 숙명여자대학교에서 가정영양학을 전공했다. 여성의 대학 진학이 흔치 않던 시대에 고등교육을 받은 것은 그의 강인한 의지와 배움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대학을 마친 그는 모교인 거창여고에서 교사로 활동했다.

교사 시절 그가 가르친 제자 중에는 시인 신달자가 있다. 신달자 시인은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년 스승의 날이면 장봉애 원장에게 꽃을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신달자 시인은 “장봉애 원장은 어린 시절 꿈을 품게 한 참된 스승이었다”라고 회고하며, 자신의 삶에서 장봉애 원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절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컸다. 그의 삶은 윤영환 대웅제약 명예회장과의 결혼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그는 단순한 경영자의 배우자가 아닌 적극적인 경영 참여자로서 대웅제약 상무, 대웅재단 이사장, 대웅경영개발원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회사의 중심 인물로 자리 잡았다.

장봉애 원장은 ‘대웅’이라는 회사명을 직접 창안했고, 회사의 사가와 심벌 마크 제작에도 깊이 관여했다. 특히 그의 창의적 감각은 백일섭, 최불암, 정한용 같은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기용하는 획기적인 홍보 전략을 추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마케팅 접근법이었다.

여성 기업인으로서 장봉애 원장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보기 드문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교육자로서의 경험과 안목을 기업 경영에 접목하고, 인재 육성과 조직문화 형성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기업과 사회의 상생 관계를 강조했다. 이러한 철학은 대웅제약의 기업문화와 경영방식에 깊이 뿌리내렸다.

 

교육에 대한 헌신과 미래를 위한 비전

장봉애 원장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기업 활동으로 옮겨간 후에도 계속됐다. 그는 1996년부터 모교인 숙명여자대학교 발전을 위해 꾸준히 기부를 했으며, 2023년에는 기부금 규모가 20억 원에 이르렀다. 이 기부금은 ‘장봉애디지털휴머니티센터’ 설립의 밑바탕이 됐다.

센터 설립과 관련해 그는 “뉴노멀 시대의 새로운 인재 양성을 위해 숙명여대의 교육 방향을 지지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인문학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이라는 미래지향적 교육 환경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숙명여자대학교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창학 116주년 기념식에서 그에게 공헌상을 수여했다.

장봉애 원장은 교육과 기업 활동을 별개의 영역으로 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기업의 성장이 사회와 교육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디지털휴머니티센터 설립 지원은 인문학적 소양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이라는 미래지향적 교육 비전을 보여준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윤영환 명예회장(왼쪽)과 장봉애 원장 ⓒ 대웅제약
윤영환 명예회장(왼쪽)과 장봉애 원장 ⓒ 대웅제약

 

교육과 인재 육성의 지속적 여정

장봉애 원장의 인생은 부군 윤영환 명예회장과 함께한 사회 공헌 활동으로도 빛났다. 윤영환 명예회장은 1984년 대웅재단 설립과 2014년 석천나눔재단 설립을 통해 사회적 나눔 활동을 실천했으며, 부부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사회적 책임과 기업 경영을 병행했다. 그들의 나눔 철학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교육과 인재 육성에 중점을 뒀다. 이는 장봉애 원장이 교육자로 시작한 경험과 신념이 기업가가 된 이후에도 일관되게 이어진 결과다.

이들의 사회 공헌 활동은 단발적 기부가 아닌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특징이다. 대웅재단과 석천나눔재단을 통해 이들은 교육, 의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 특히 부부가 함께 공유한 비전과 가치는 두 재단의 활동 방향성에 일관성을 부여했으며, 이는 한국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에 있어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온라인 추모관에 영원히 보관될 고인의 철학

가족들은 전통적 장례 방식을 벗어나 장봉애 원장의 삶과 철학을 중심으로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해 많은 이가 그의 인생을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게 했다. 이는 그가 평생 추구한 가치관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교육자에서 기업가로, 다시 사회공헌가로 확장된 그의 여정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 스토리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장봉애 원장의 철학과 가치는 그가 설립하고 지원한 기관들과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을 통해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다.

연보

1933. 11. 20. 경남 거창 출생

1957. 11. 18. 석천 윤영환과 결혼

1960. 4. 부산사범학교 교사

1962. 2. 부산진여자상업고 교사, 거창여고 교사

1966. 3. 대한비타민 이사

1974. 대웅 사시, 사훈, 가족훈 등 대웅 경영이념 정립

1975. 대웅 사가 작곡·작사

1976. 대웅 사보 발행 제안 및 추진

1977. 2. 대한비타민 감사

1978. 대한비타민에서 대웅제약으로 사명 변경, 대웅 심벌 마크 기획 및 제작

1980. 3. 대웅제약 상무

1984. 1. 대웅재단 이사장

1995. 7. 대웅경영개발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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