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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예술의 접점을 넓히다,
핀즐 진준화 대표 [인터뷰]

매월 새로운 그림을 받아 보는 구독 서비스로 국내 예술시장에 변화를 불러온 기업이 있다. 바로 예술의 일상화를 목표로 2016년 문을 연 ‘핀즐’이다. 변화하는 시장에 발맞춰 예술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진준화 대표를 만났다.

진준화<br>· 핀즐 대표
진준화
· 핀즐 대표

일상에 예술을 더하면 삶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집이나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공간 분위기를 바꾸고, 책상 위에 놓인 굿즈가 일상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하지만 미술 전문가가 아닌 이상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을 고르기는 쉽지 않다. 부담스러운 가격 역시 걸림돌이 된다.

핀즐은 이런 고민을 해결해 주는 아트 플랫폼이다. 독일어로 ‘화풍’이라는 의미의 사명처럼 구독자에게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 삼아 2018년 세계 최초로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를 론칭하고, 최근에는 IP 라이선스 비즈니스와 아티스트 에이전시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진준화 대표는 “시장의 니즈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예술을 친근하고 접근 가능한 일상의 경험으로 바꾸고 싶다”라고 말한다.


핀즐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사회 초년생 시절, 집 안 인테리어를 하면서 그림을 하나 걸고 싶었는데,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예산에 맞는 작품은 마음에 들지 않았고, 구입하고 싶은 작품은 국내에서 구하기가 어려워 결국 그림을 걸지 못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던 중, 그때 기억이 나 시장조사를 해보니 예술시장은 고가 작품 위주로 유통 구조가 형성돼 있어 초심자들이 접근할 진입로가 거의 없었다. 새로운 수요층이 유입되지 않으니 시장도 정체된 상태였다. 나 같은 초심자가 편하게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장기 고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좋은 예술로 사람들의 일상을 단계별로 개선하고, 예술의 경험을 무한히 연결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예술을 경험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내 공간에 그림을 거는 것은 굉장히 특별하고 상징적인 행동이다. 단순한 인테리어를 넘어 자신만의 감각과 취향을 공간에 투영하고,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않으면 그림을 걸고 싶어도 어떤 그림을 어디에서 구입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가격이 적절한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사실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그림을 매달 바꿀 필요가 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그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하면 만족감이 굉장히 클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슬로건에 미술 큐레이션을 통해 고객 스스로 자신의 예술적 취향을 발견하며, 나아가 그 경험이 삶을 더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

 

핀즐은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와 함께 판화 에디션과 원화 판매도 진행한다. ⓒ핀즐
핀즐은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와 함께 판화 에디션과 원화 판매도 진행한다. ⓒ핀즐

핀즐의 그림 정기구독 서비스를 소개해 달라

그림을 걸고 싶지만 자신의 취향을 아직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한 서비스다. 매달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대표 작품의 프린트 에디션을 발송한다.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A1 사이즈의 아트 포스터와 함께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나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부클릿을 제공하고 있다. 작품은 계절감이나 아트 신(scene)의 흐름을 반영해 선정하는데,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일상과 공간이 리프레시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화풍이나 장르, 컬러감은 매달 달라진다.

 

원화가 아닌 프린팅 작품을 발송한다는 것이 생소하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창업 초기 펀딩 플랫폼에서 구독 서비스를 소개했을 때,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질타도 많이 받았다. 한 달이면 생명이 다하는 프린팅 작품이 어떤 의미가 있냐는 질문도 많았다. 하지만 구독자 한 명 한 명이 한 달씩 작품을 감상한다면, 결과적으로 누적 감상 시간은 원작 한 점을 개인이 소장할 때보다 훨씬 길다. 구독자 입장에서는 원작을 구입하는 것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작품을 경험할 수 있고, 작가 입장에서는 더 많은 이에게 이름을 알리고 판로가 열리는 것이기에 의미가 있다고 봤다.

처음에는 프린팅 작품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를 실제 경험해 본 구독자 중에는 그동안 몰랐던 여러 아티스트의 작품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는 분이 많다. 매달 새로운 화풍의 작품을 큐레이션하기 때문에 모든 구독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는 어렵지만,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자주 접하다 보니 점점 취향이 생겼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도 있다.

 

구독자 규모와 주요 소비층이 궁금하다

현재 구독자는 약 1500명이다. 구독자 비율은 병원, 약국, 카페 같은 상업 공간을 운영하는 분이 35%, 일반 거주 공간을 꾸미는 분이 65% 정도다. 일반 구독자 중에는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공간을 새롭게 꾸미고 싶어 하는 신혼부부나 사회 초년생 비율이 상당히 높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도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다양한 예술 작품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교육적 목적으로 구독하는 분이 적지 않다.

 

ⓒDen
ⓒDen

자신만의 그림 취향이 생긴 경우 구독자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 서비스 이용자 확대 및 유지를 위한 전략이 있나?

구독 서비스의 리텐션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 고객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독을 통해 예술적 취향을 갖게 된 고객에게 적합한 판화 에디션과 원화 판매를 시작했다. 판화 에디션은 프린팅 제품이지만, 구독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것과는 제작 방식이 전혀 다르다. 원본 질감을 최대한 살려 제작하는데다 한정 수량만 판매하므로 소장 가치가 있다. 판화 에디션은 20만~30만원대, 원화는 작품별로 천차만별이지만 주로 200만~500만원대 작품을 판매한다.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소개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원화가 아닌 프린팅 작품을 배송하다 보니 초반에는 작가들의 동의를 얻기가 어려웠다. 국내 작가들과 콘택트하기 쉽지 않아 해외 작가들에게 메일을 보내봤는데, 그중 80% 정도의 작가에게 긍정적 회신을 받았다. 아마도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다른 나라에 알리고 싶은 니즈가 핀즐과 잘 맞은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해외 작가들과 함께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업계에서는 핀즐을 ‘글로벌 아티스트 전문 기업’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플랫폼이 점차 알려지고 서비스가 안정화되면서 지금은 국내 작가들과의 협업도 활발히 이어가는 중이다.

 

작품 유통을 넘어 IP 라이선스 사업으로 외연을 확장했다

핀즐의 미션은 예술 경험을 연속시키는 것이다. 그러려면 예술이라는 콘텐츠를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저작권 사업으로의 확장은 핀즐이라는 회사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 꼭 필요한 발판이었다. 현재 핀즐은 파리, 베를린, 런던, 뉴욕, 도쿄 등 전세계 20여 개 도시의 작가 100여 명과 전속계약을 맺고 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해당 작가들의 그림을 세일즈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을 굿즈로 상품화할 권리를 가진다.

 

올해 초 이니스프리와 진행한 아트 컬래버레이션. ⓒ핀즐
올해 초 이니스프리와 진행한 아트 컬래버레이션. ⓒ핀즐

B2B 비즈니스로의 확장에도 강점이 있었을 것 같다

기업마다 아트 콘텐츠 협업 방식이 다른데, IP를 보유하고 있다 보니 어떤 형식의 콘텐츠든 제작이 가능하다. 기업에 따라 상품이나 패키지 디자인에 그림을 활용하길 원하는 경우도 있고, 디스플레이에 스트리밍할 수 있는 디지털 아트를 요청하기도 한다.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생활용품 및 코즈메틱 기업과는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상품 패키지 디자인을, LG전자와 협업해서는 액자처럼 아트워크가 탑재된 가전제품을 선보였다.

오프라인 공간이 있는 곳은 물리적인 아트 콘텐츠 경험이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전시나 팝업 기획, 공간 맞춤형 아트 큐레이션이 필요하다. 실제로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등에 쇼핑 공간을 갤러리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원화 및 한정판 판화를 활용한 전시를 기획해 제공했고, 지자체나 여러 기업체의 사옥에 맞춤 컨설팅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기업이 핀즐 서비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업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자 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특정 작가와 협업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기획하려고 하는데 톤앤매너가 맞는 작가나 작품이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적합한 작가를 찾았어도 기업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작업을 진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광고, 상품 패키징, 전시 등 용도에 따라 작품을 가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핀즐은 다양한 아티스트를 전속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작품에 대한 독점 IP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 콘택트부터 컨설팅, 실행과 시공이 모두 가능하다. 기업이 아트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파악한 후 적합한 작가를 큐레이션하고, 해당 작가의 IP를 활용한 맞춤형 기획을 제안해 시공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타깃이 있나?

작년부터 예술시장이 침체돼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시장이 어려워질수록 소비는 양극화되는 경향이 있다. 한쪽에선 고가 작품에 대한 수요가 이어지고, 다른 한 쪽에선 비교적 가벼운 소비로 만족감을 얻으려는 흐름이 생긴다. 우리는 예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클래식한 접근법보다는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래서 최근에는 캐릭터 라이선스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국내 미술시장은 5000억~1조원 규모지만 캐릭터 라이선스 시장은 약 15조원에 달한다. 우리와 전속계약을 맺은 작가 중에는 고유의 캐릭터를 가진 이가 많다. 그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독립 상품으로도 충분한 완성도를 지닌다. 실제로 영국 작가 테스 스미스 로버츠의 내한 전시 당시 잠실과 망원동에서 굿즈를 출시해 시장 반응을 테스트했는데, 반응이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앞으로는 이처럼 다양한 캐릭터 자산을 활용해 캐릭터 중심의 라이선스 상품 브랜드로 사업을 확장해 보고자 한다.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나?

한국 미술시장이 좋지 않다 보니, 글로벌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다행히 우리는 디지털 기반의 콘텐츠를 다뤄 물리적 장벽이 높지 않다. 작업 대부분이 디지털 파일로 오가고, 커뮤니케이션 역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므로 해외 클라이언트와도 충분히 협업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현재 해외 기업과의 협업을 위해 클라이언트를 찾고 있다.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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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한다. 창업 9주년을 맞을 수 있었던 비결은 ‘유연함’에 있는 것 같다

예술 분야에서 스타트업으로 살아남기는 정말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가 9년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아티스트를 넘어 시장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해왔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사업이 되기 위해선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읽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구독 서비스를 시작으로 IP 비즈니스, 전속 아티스트 에이전시, 캐릭터 라이선스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술시장에서 핀즐이 목표로 하는 포지션은 무엇인가?

사람마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원하는 예술적 경험이 다르다. 그 순간 가장 적합한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그러려면 다양한 영역을 아우를 수 있는 종합 사업체여야 한다. 구독 서비스, 아트 굿즈나 한정판 판화 판매, 아트 에이전시 등 비슷한 플랫폼이 많지만 핀즐은 IP를 기반으로 전 영역을 아우르는 회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접근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예술 향유를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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