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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스테이블코인'의 힘

  • 입력 2025.08.12 17:00
  • 수정 2025.09.02 09:43
  • 2025년 9월호
  • 최연진(한국일보 IT 전문 기자)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안정적 코인’이라는 이름 그대로 가치 변동성이 거의 없는 디지털 화폐가 돈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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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미국 상원은 금융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킬 중요한 법안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과시켰다. 정식으로 법이 선포되려면 하원 통과와 대통령 서명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8월까지 법령 공포를 위한 서명을 원하고 있어 빠른 시일 내 하원 통과가 예상된다.

지니어스법은 디지털 기술로 발행하는 암호화폐의 일종인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의 발행을 명시한 법이다. 법이 마련된다는 것은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에 정식 포함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정부에서 인정하는 금융결제 수단이 된다는 얘기다. 그동안 정부에서 발행한 화폐만 인정하던 미국 정부가 처음으로 민간이 발행한 디지털 결제 수단을 화폐처럼 인정하겠다는 의미여서 전 세계 금융권과 정보 기술(IT)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화폐가치가 안정적인 ‘스테이블코인’

스테이블코인은 원본 기록을 여러 곳에 나눠 보관하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위조나 변조, 복제가 불가능하도록 개발된 디지털 암호화폐다. 그러나 다른 암호화폐와 달리 달러, 원화 등 실물화폐와 연동되도록 만들어 가격 변동성이 적은 만큼 안정적이다. 즉 1코인이 1달러 또는 1원의 가치를 갖는다. 기업이 마음대로 화폐가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코인 발행 수량만큼 같은 액수 또는 그보다 많은 액수의 연동 화폐나 국채를 은행 등에 예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1코인당 1달러의 가치를 갖는 스테이블코인 10개를 발행하려면 은행에 10달러 이상을 예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조치를 통해 실물화폐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 코인의 부도를 막는 역할을 한다.

대신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다른 암호화폐처럼 몸값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일이 없어 투자가치는 높지 않다. 대신 실물화폐처럼 가치가 안정적이어서 각종 결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고, 인터넷만 연결되면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여서 24시간 송금, 환전 등이 가능하다.

그러면서 디지털 화폐답게 다른 암호화폐처럼 암호화폐거래소를 통해 사고팔 수 있다. 몸값이 크게 뛰지도 않아 투자가치가 높지 않은데 무슨 이유로 스테이블코인을 거래할까? 가장 큰 이유는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기준이 되는 기축통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갖고 있는 디지털 자산을 안정적으로 지키려는 사람들이 거래를 할 수 있다.

다른 암호화폐는 시장 상황에 따라 화폐가치가 크게 오르내린다. 10원의 가치를 지닌 암호화폐가 갑자기 100원으로 치솟기도 하고, 1원으로 급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10원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스테이블코인은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화폐 가치를 유지한다. 따라서 여러 암호화폐를 스테이블코인으로 교환해 놓으면 다른 암호화폐가 1원으로 곤두박질치는 급락장에서도 디지털 자산의 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다.

그만큼 신뢰할 만한 스테이블코인은 다른 암호화폐의 교환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 원화나 달러를 주고 암호화폐를 사는 것처럼 화폐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 스테이블코인을 암호화폐의 매매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굳이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

화폐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면 화폐를 사용하면 될 텐데 굳이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디지털 화폐의 장점’ 때문이다. 기존 화폐는 국경을 넘어 송금하려면 은행 간 결제 시스템을 거쳐야 해 은행 업무 시간에만 할 수 있는 데다 은행 간 비싼 중개 수수료가 붙는다. 하지만 디지털 화폐는 은행 업무 시간과 상관없이 24시간 인터넷만 연결되면 송금이 가능하고, 수수료도 저렴하다. 이런 이유로 각국 정부가 스테이블코인을 인정하면 기업 간 거래에 많이 이용될 것으로 본다.

또 환율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달러당 자국 화폐가치가 급락하는 국가에서는 대신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혁신적 요소, 발행처

흥미로운 것은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다. 스테이블코인은 각국 정부에서 발행하는 화폐와 달리 허가받은 민간기업이 발행할 수 있다. 돈을 찍어내는 한국은행 역할을 민간 기업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점이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혁신적인 요소로 꼽힌다.

이를 금융권과 IT업계에서는 ‘탈중앙화(DeFi)’라고 부른다. 탈중앙화란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정해진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해 놓은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일 뿐 화폐처럼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통화량을 조정할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포함시킬 경우 정부의 역할이 약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경우 최근 상원을 통과한 지니어스법에 따라 연방 정부나 주정부의 인가를 받은 법인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또 요건만 부합해 승인을 받으면 외국 기업도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단, 개인은 발행이 불가하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모든 법인은 발행 수량만큼 현금과 국채 등을 지급준비금으로 은행 등에 예치하고 매달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 등 제도권에서 활발히 논의하고 있으며, 국회에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발의된 상태다. 이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은 자기자본금 5억원 이상의 국내 법인을 발행 주체로 규정한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시장 안정성을 해치지 않도록 은행 등 금융기관에 국한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일본과 유럽의 입장은 한국은행과 비슷하다. 일본은 2023년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은행과 신탁업체 등 금융기관 위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했다. 한편 유럽연합은 7월부터 암호화폐 관련 규정을 마련해 은행이나 사전 승인을 받은 전자화폐 발행 기관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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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나드는 결제 수단으로 급부상하다

그만큼 민간기업에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자격을 부여한 미국의 지니어스법은 매우 파격적이다. 이렇게 되면 규제가 까다로운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원할 경우 미국으로 기업을 옮겨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도 미국의 힘이 커지는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금융시장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속속 나오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리플은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현재 약 1500억 달러(약 205조원)에서 2028년까지 2조8000억 달러(약 382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분석업체 딜로이트그룹도 스테이블코인이 국경을 넘나드는 결제 수단으로 부상하며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 업체는 최근 발표한 ‘미래 금융의 축을 바꾸는 8가지 메가트렌드’ 보고서에서 7개 중앙은행과 41개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프로젝트 아고라’를 통해 올해 말 스테이블코인 등을 활용하는 결제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2030년까지 해외를 넘나드는 결제 수수료 비용이 연평균 53%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빠르게 뛰는 국내외 기업들

여기에 맞춰 전 세계 많은 기업이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 은행 등 금융기관만 가능하던 금융시장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송금과 예금, 대출이 가능해 많은 자본을 끌어 모을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홍콩에서 설립된 테더(Tether)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체인 테더는 달러와 연동되는 USDT, 금과 연동한 XAUT 등 다양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 USDT는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60% 넘는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올해 미국 증시에 상장한 미국 업체 서클(Circle)은 달러와 연동되는 USDC, 유로와 연동되는 EURC 등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 유명한 결제대행업체 페이팔과 미국의 블록체인업체 리플도 각각 달러와 연동되는 페이팔USD와 리플USD라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했다. 또 뱅크 오브 아메리카, 아마존, 모건스탠리, 월마트 등 대형 금융사와 유통업체들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 중이다.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양대 포털이 움직이고 있다. 네이버는 자회사 네이버페이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추진한다. 이와 관련해 박상진 네이버페이 대표는 지난 6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도적 준비가 이뤄지는 대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주도하겠다”라고 밝혔다. 특히 네이버는 국내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손잡고 원화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NKRW 등 원화 대응 스테이블코인 상표를 출원했다.

카카오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지만 지난 6월 카카오페이를 통해 KRWKP, KWRP 등 원화에 대응하는 스테이블코인 상표권 10여 건을 특허청에 출원했다. 이에 비쳐 카카오도 관련 법이 마련되는 대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수의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기술(핀테크) 스타트업 트래블월렛이 7월 1일 해외 블록체인업체 아발란체와 손잡고 스테이블코인을 공동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트래블월렛은 해외여행시 필수품으로 꼽히는 수수료 없이 현금 인출이 가능한 체크카드 서비스 ‘트래블월렛 카드’로 유명하다. 이곳은 원화에 일대일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계획이다. 여기에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디지털 화폐의 특징을 살려 매달 특정 날짜에 일정액을 자동 지불하는 등 예약 기능을 접목할 예정이다.

국내 데이터업체 쿠콘도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확대한다. 토스, 카카오페이, 업비트, 빗썸 등 핀테크 기업 등과 연결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이 업체는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 국내 200만 개 이상의 가맹점과 4만 대 이상의 현금자동인출기(ATM)에서 QR코드로 결제 및 출금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련 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논의하고 있다.

국내 핀테크 기업 헥토파이낸셜도 블록체인업체 하이파이브랩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을 개발한다. 헥토파이낸셜은 전자지불 결제 대행(PG) 등 다양한 결제 서비스를 금융업체, 전자상거래업체 등에 제공한다. 지급 결제, 선불 충전 수단 및 지역화폐로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검토하는 이 업체는 국내 및 미국 업체들과 제휴를 논의 중이며, 일본에도 해외 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 금융 앱 ‘토스’로 유명한 비바리퍼블리카도 토스뱅크를 통해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여럿 출원해 관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자결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토스페이먼츠에서 관련 사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도 연합해 스테이블코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SC제일은행, 농협, 수협, IBK기업은행 등 8개 시중 은행이 오픈블록체인·DID협회에 참여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등을 논의한다. KB국민은행은 KBKRW 등 스테이블코인 상표권도 출원했다.

 

소중한 자산이 휴지 조각이 되지 않으려면

다만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발행 주체의 신뢰성이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 곳이 자본준비금 부족이나 부실 운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미국 지니어스법처럼 예치금 현황과 변동 내용 등을 매달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부실 운영으로 암호화폐가 휴지 조각이 되는 경우가 여러 건 발생했다. 대표적인 대형 부도 사건이 암호화폐 테라와 루나 사건이다. 테라와 루나는 2018년 권도형 대표가 설립한 테라폼랩스에서 발행한 암호화폐다. 테라는 1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루나와 연동되는 암호화폐로 설계됐다. 그러나 2022년 테라의 가치가 1달러보다 낮아지자 이를 막기 위해 루나를 대량 발행하면서 가치 하락을 더욱 부추겨 일주일 만에 테라 가치가 0.1달러로 폭락했다.

그 결과 루나까지 폭락하면서 전 세계 투자자들이 59조원의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그 결과 권도형 대표는 사기 혐의로 국제사법경찰기구(인터폴)의 추적을 받다가 2023년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돼 미국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철저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주체에 대한 예치금 내역 공개 등 투명성을 확보하고, 유사시 은행의 예금자보호제도처럼 일정 한도 내에 자동 상환이 이뤄지는 기능 등 소비자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기술적 보호 조치 등의 기준을 엄격히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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