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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취미생활' 트레킹 하는 소아과 의사 김영준

걷는 동안 제대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 김영준 원장. 그는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을 따라 하루 종일 걸으며 비로소 자유를 만끽한다.

Profile 김영준•1967년생•부천 미래로소아과의원 원장
Profile 김영준
•1967년생​
​​​​​​•부천 미래로소아과의원 원장

 

 

김영준 원장은 트레킹 전문가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곳곳을 찾아다니며 걷는 묘미에 빠졌다. 하루에 10시간을 걸을 때도 있다. 처음엔 발도 많이 아프고 배낭의 무게도 천근만근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 잡념이 사라지면서 한 가지 일념이 가득 차오르는데, 김영준 원장은 이런 순간이야말로 트레킹의 묘미라고 말한다.

코로나19로 해외 트레킹을 하지 못하던 아쉬움도 잠시, 요즘 그는 틈날 때마다 전국 곳곳의 산을 찾아 무르익은 봄을 만끽하고 있다. 이제 격리가 풀리면 그토록 기다리던 해외 트레킹을 떠날 수 있을지 모른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수십 년간 걸어오면서 그에게 걷기는 삶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나?

전혀 아니다. 오히려 운동과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체력장 시험을 봤는데, 1000m 달리기를 하다가 쓰러졌을 정도로 체력이 약했다. 학교에서 5km 교내 마라톤 대회가 열렸을 때 반 대표를 뽑아 출전시키는 것을 보고 ‘사람이 어떻게 쉬지 않고 5km를 달릴 수 있을까?’ 속으로 의아해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떻게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즐기며 살게 되었나?

공간이 인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는데, 나 역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2003년 목동으로 이사했는데 인근에 공원과 산책로, 체육 센터 등이 많아 자연스럽게 운동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때 처음 달리기를 시작해 결국 도쿄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고, 걷기에 묘미를 느낀 후 전 세계 유명 트레킹 코스를 섭렵했다.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지금은 제법 즐기며 운동할 수 있게 됐다. 요즘도 매일 새벽 6시에 수영을 한다. 트레킹뿐 아니라 마라톤, 수영 등은 내 삶의 일부가 됐다.

 

<히말라야 걷기 여행>, <존 뮤어 걷기 여행> 등을 출간했을 만큼 걷기에 일가견이 있다. 걷기에 매료된 계기가 무엇인가?

한동안 골프에 빠진 적이 있다. 골프는 재미있는 운동이지만, 한편으론 피로감도 느꼈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공이 제멋대로 날아가기 일쑤였고, 같이 라운드하는 친구들과 팀을 나누어 경쟁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도 했다. 7~8년 정도 골프에 빠져 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등산을 하게 됐는데, 골프장에서 느낄 수 없던 만족감이 밀려왔다. 탁 트인 야외 공간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걷는데, 필드 위에서 걷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 자연 속을 걷는 트레킹의 묘미에 눈뜬 것 같다.

 

걷기를 통해 얻는 즐거움은 무엇인가?

삼천 배를 하거나 사이클링을 하거나 걷는 것이 다 비슷하다.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몸은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이상하게 정신은 맑아진다.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지만 계속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일념(一念)에 이르는 것이다. 이 상태가 더 발전하면 종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나에게 걷는 것은 즐거운 고통이며, 가장 본질적인 신앙 고백이다.

 

수백 킬로미터를 걷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몸에 무리가 오지 않을까?

풀코스 마라톤과 10km 달리기가 전혀 다른 운동인 것처럼, 하루에 끝내는 트레킹과 4~6일간 계속 걷는 트레킹은 성격이 다르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정말 많이 힘들다. 쉽게 지치고 몸도 힘들고, 짐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틀만 고생하면 셋째 날부터는 조금씩 수월해진다. 우리 몸이 이미 적응을 끝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몸도 덜 긴장한다. 그때부터는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뭔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걷는 것이 즐겁고 마지막 날이 되면 더 걷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파도 아프지 않고,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고 해야 할까? 아마 이런 묘미 때문에 수백 킬로미터를 걷는 게 아닐까. 물론 부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중요하다. 걷기 전에 반드시 스트레칭과 체조로 몸을 풀어줘야 한다. 등산 스틱을 사용하는 것은 필수다. 산을 오르내릴 때 스틱을 사용하면 무릎 관절 보호에 큰 도움이 된다.

 

병원을 운영하면서 장기 해외 트레킹을 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다 비슷하겠지만, 시작은 동네 뒷산부터였다. 그러다 좀 더 멀리, 좀 더 높은 곳을 찾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난도를 추구하게 됐다. 해외 트레킹에 마음을 빼앗긴 건 사이토 마사키가 쓴 <세계 10대 트레일 걷기 여행>을 읽고부터다. 책에 등장한 곳을 나도 가보고 싶다는 소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병원을 운영하면서 수백 킬로미터를 걷는 해외 트레킹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을 이전해야 할 상황이 생겼는데, 보통은 오픈 준비를 다 해두고 쉬는 날 없이 곧장 이전하지만 나는 약 한 달간 시간을 두고 해외여행과 트레킹을 떠났다. 그때의 경험 이후, 이제는 트레킹 코스를 완주한다는 생각 대신 주어진 일정 안에서 최대한 걷고 온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난 후 세계 곳곳의 훌륭한 트레킹 코스를 다녀올 수 있었다.

 

 

몸이 힘들수록 정신은 맑아지고,

복잡했던 머릿속은 단순해진다.

흩어졌던 기가 한 군데로 모이며

무언가를 해냈다는 희열이 찾아온다.

 

해외와 국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곳을 걸었다. 그중에서 최고의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모든 곳이 다 좋았다. 공간이 다르니 느낌도, 뷰도 다 다르고 각각 다른 추억이 되어 잊지 못할 곳으로 남는다. 그래도 굳이 한 곳을 고르라면 역시 히말라야다. 당시 해발 5500m까지 올라갔는데, 마지막 200~300m를 오를 때에는 정말 힘들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게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무중력 상태를 걷는 것 같았다. 그러다 포인트에 당도해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는데, 구름이 산에 걸치고 아침 햇살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장관이 눈에 들어왔다. 압도적이었다. 다른 산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영적인 기운이 온몸을 타고 전해졌다. 히말라야는 등산가 사이에서 영적인 산으로 통한다. 히말라야를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나 역시 그런 점을 절절히 깨달았고, 그때의 경험과 느낌을 <히말라야 걷기 여행>에 남겼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트레킹 여행이 있나?

스위스에 오트 루트(Haute Route)라는 곳이 있다. 프랑스 샤모니에서 스위스 체어마트까지 약 180km 길인데, 일정이 허락하는 선에서 120km 정도 걸을 예정이다. 비행기 티케팅도 이미 해두었다. 해외 트레킹을 떠나려면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데, 나는 이 준비 과정부터가 너무너무 즐겁다. 요즘은 구글 맵이 있어 여행 준비가 예전에 비해 한결 수월해졌다.

 

언제까지 트레킹을 할 것인가?

죽기 전까지 계속 걸을 예정이다.(웃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계획을 세워두었다. 65세까지는 병원을 계속 운영하면서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다가 65세가 되면 은퇴할 것이다. 그 후 10년 동안은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살고 싶다. 1년 중 6개월은 외국에서, 나머지 6개월은 한국에서 보낼 계획이다. 그리스, 영국 등 가보고 싶었던 나라의 지역 한 곳을 정해 두고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을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속초 등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또 6개월을 그곳에서 지내는 식이다. 원 없이 두루 세계 여행을 다니다가 75세가 되면 태백산이나 지리산, 오대산 등 좋아하는 산자락을 찾아 정착하고 싶다. 그곳에 작은 통나무 오두막을 지은 뒤 산책하고, 음악 듣고, 채마밭을 가꾸며 사는 삶을 꿈꾼다. 그렇게 10년을 살다가 85세가 되면 실버타운으로 들어가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 트레킹은 항상, 언제나 내 삶의 일부가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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