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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스미스가 말하는
번역 철학 ② [인터뷰]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경계에서, 데보라 스미스는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의 지평을 확장해 왔다.

사이의 존재, 데보라 스미스 번역가 ① [인터뷰]에 이어집니다. 

 

데보라 스미스 번역가가 영국 랭커스터의 한 서점에 진열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영문판을 가리키고 있다. ⓒ데보라 스미스
데보라 스미스 번역가가 영국 랭커스터의 한 서점에 진열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 영문판을 가리키고 있다. ⓒ데보라 스미스

 

한국어 공부는 어떻게 했나?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마치고 몇 달 뒤, 온라인으로 한국어 교재를 구입했다. 그리고 케임브리지 유일의 한국 음식점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혀 나갔다. 1년 뒤에는 런던으로 이사해 런던대학교 동양·아프리카학부(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을 밟았고, 이후 현대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전문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국어를 가장 많이 배웠다.

 

한국어는 영어와 언어 구조가 다른데, 번역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성인이 되고 나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에 번역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항상 원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었다.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면, 영어로 옮기는 일은 비교적 수월했다.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경어법이다. 영어에는 경어법이 없지만, 대신 격식체와 비격식체라는 유사한 개념이 존재해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격식체는 공식적인 상황이나 문어체에서, 비격식체는 친구나 가족 간 일상 대화에서 주로 사용된다.

또 소설 번역에서 중요한 것은 등장인물의 말투를 살리는 일이다. 인물의 말투를 보다 섬세하게 표현하기 위해 ‘정중하게’, ‘공손하게’, ‘겸손하게’ 같은 부사를 덧붙여 미묘한 뉘앙스를 전달하기도 했다.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번역은 곧 문화를 전달하는 일이기도 하겠다. 다른 문화권의 작품을 번역하며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이었나?

특정 문화를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본질주의적 시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실제로 [채식주의자]의 초기 서평 중 일부는 작품 속 가부장제나 성폭력을 보편적 문제로 확장해 바라보기보다 마치 한국 사회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현상처럼 다루었다. 그러나 작품이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자신이 속한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확대 적용하는 문화제국주의적 시각도 경계했다. 예를 들어 일본어 단어 중 일부는 영어 번역에서도 원어 그대로 유지하곤 했는데, 그렇다면 한국어 단어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형’, ‘언니’ 같은 친족 호칭은 영어에 정확한 대응어가 없을 뿐 아니라 한국인에게 특별한 정서적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한국 고유의 단어를 영어식으로 풀어 쓰기보다는 가능한 한 한국어 발음 그대로 옮기려 했다.

‘만화’라는 단어를 번역할 때에는 일본식 표현인 ‘만가(Manga)’를 차용할 수 있었지만, 한국 문화가 일본 문화의 파생물로 보이게 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한국 작품을 읽고 번역하면서 한국 문화, 한국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번역서에 관심이 기울었다. 번역서를 읽는 일은 내가 나고 자란 지방의 소도시나, 다소 편협한 영문학 정전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와 관점을 접하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를 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문화는 추상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단일체가 아니며 국경이라는 틀 안에 가지런히 담을 수 있는 성격의 것도 아니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식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나에게 한국은 사람과 장소, 그리고 감각적 인상이 이어 붙은 하나의 패치워크 같다.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번역을 통해 한국 문화 자체보다는, 한국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고 말하고 싶다.

 

2016년 [백의 그림자] 영문판 출간 당시 기념행사. 왼쪽부터 조용경 통역사, 황정은 작가, 그리고 틸티드 악시스 대표로 자리한 데보라 스미스. ⓒ데보라 스미스
2016년 [백의 그림자] 영문판 출간 당시 기념행사. 왼쪽부터 조용경 통역사, 황정은 작가, 그리고 틸티드 악시스 대표로 자리한 데보라 스미스. ⓒ데보라 스미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잇는 매개자로서 지키려 하는 가치나 태도가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존중’이다. 작품을 개선하려 하거나, 바꾸려 하거나, 개인적 의도를 관철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원문의 예술성을 존중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바로 언어를 다루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아울러 언어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언어 사용의 정치성, 즉 번역이 이루어지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누구도 완전하거나 완벽한 지식을 가질 수 없기에, 그 한계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배워나가려 한다.

 

원문에 대한 존중과 번역가의 해석적 자유 사이에 균형은 어떻게 잡으려 하나?

흔히 번역을 직역과 의역으로 나누지만, 이는 허상의 이분법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미의 직역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역이라는 표현도 부정확하다.

번역은 기존 텍스트에 대한 응답이며, 그 과정에서 원문의 특수성을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다. 때론 이러한 제약 속에서 창의성이 촉발되기도 한다. 만약 어떤 번역이 문법이나 구문 측면에서 원문과 다소 멀어 보인다면, 이는 어조·의미·맥락 등 다른 요소에 충실하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정확성’이라는 엄격한 잣대에 오역은 피할 수 없는 위험인 듯하다

오역과 관련해서는 항상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상적으로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자신의 번역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살펴보거나, 혹은 다른 이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작업에서 오류를 발견하는 일이 언제나 더 쉽기 때문이다.

 

AI로 대체되기 쉬운 직업 순위에서 번역가는 늘 상위권에 오르곤 한다. 인공지능이 단순 작업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 번역가가 지니는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번역가는 단순히 기술적 숙련도만으로는 정의될 수 없는 존재다. 번역하는 작품에 개인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고, 그 과정에서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나아가 정치적 입장을 지닌다. 번역가가 하는 일은 텍스트를 옮기는 것 이상이다. 작품을 선별하고, 에이전트 역할을 하며, 행사를 주관하고, 독자·평론가·작가와의 관계를 구축한다. 책이 사람에 의해 쓰이는 한, 사람이 번역해야 한다.

 

번역가는 기술적 숙련도만으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번역할 작품을 선택하고,

책을 둘러싼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책이 사람에 의해 쓰이는 한,

사람이 번역해야 한다.

 

한국문학 번역에 막 뛰어들었던 10여 년 전과 비교해 가장 체감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이제 고향에 한국 식료품을 파는 슈퍼마켓이 생겼다. 그만큼 한국의 위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그러나 문학은 대중적이지 않기에 여전히 지원이 필요하다. 더 많은 재능 있는 작가들이 세상에 알려져야 하고, 더 많은 논픽션과 고전, 그리고 지역 작가들의 작품이 활발히 번역되길 바란다.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문학에 대한관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은 특정 국가의 문학 전체에 주는 상이 아니라 작가 한 명의 독자적 작품 세계를 인정하는 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같은 언어로 쓰인 작품이라 해도 그 목적과 기법은 매우 다양하며, 독자들이 단지 한국 작가의 작품이거나 한국이 배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아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모든 한국문학을 ‘K-문학’이라는 용어로 통칭하기보다는 작품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현재는 어떤 작업에 집중하고 있나?

지난 5년간은 소설 번역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번아웃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번역 작업은 워낙 낮은 보수에 비해 노동 강도가 높아 생계를 유지하려면 쉴 틈 없이 일해야 한다. 마감 일정도 촉박한 경우가 많다. 또 34세에 신경다양인 진단을 받으면서 결국 더 이상 일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다.

번역가로서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싶은지 고민한 끝에, 지금은 소설 대신 동화와 시 번역에 집중하고 있다.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도 꾸준히 번역 작업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대개 분량이 적어 부담이 덜하고, 아이를 키우며 시간을 내기에도 적합했다. 20대 시절 [채식주의자]를 번역할 때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지만, 지금의 삶은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처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시되거나 저평가된 것에 시선을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 주목하는 곳은 영국 사우스요크셔주의 도시 동커스터, 바로 내 고향이다. 최근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동커스터는 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주민 대부분이 노동자 계층이며 문학작품 속에서 흔히 웃음거리로 묘사되어 왔다.

10대 시절에는 교사와 미디어가 전하는 메시지, 즉 동커스터에는 가치 있거나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한국문학을 번역함으로써 이곳에 없다고 여겼던 ‘문화’와 세계성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역사와 계급정치, 그리고 출판 구조를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그때 들은 이야기가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 주목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리고 동시에 현실적 선택이기도 하다. 아이가 생겨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번역을 통해 세상에서 소외된 것에 주목하려 했다면, 이제는 논픽션 글쓰기를 통해 그 목표를 이어가고자 한다. 번역가로서 쌓아온 기술을 바탕으로,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과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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