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드러내고 이어붙여 끝이 아닌 다음으로 나아간다.
완전함보다 아름다운 어떤 불완전함에 대하여.
감추지 않아 빛나는
킨츠기(金継ぎ) 혹은 킨츠쿠로이(金繕い)는 깨진 도자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본의 전통 도자 수리 기법이다. 조각난 그릇의 이음새에 밀가루 풀이나 옻을 칠해 수선하고, 금가루나 은가루를 뿌려 깨진 자국을 오히려 돋보이게 만든다. 깨진 모양 그대로 생긴 금줄, 고스란히 드러난 망가진 흔적이 매력이다. 킨츠기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혼킨츠기와 합성 재료 등으로 보다 손쉽고 빠르게 수리하는 간이킨츠기로 나뉜다. 혼킨츠기는 천연 옻 혹은 합성 옻, 금가루, 은가루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만을 사용하며, 완성하는 데만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든다. 깨진 조각을 천연 옻으로 이어 붙이려면 온도, 습도 등 여러 조건을 세심히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천연 재료만 사용하는 데다 모든 공정을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완성도와 가치가 매우 높다. 간이킨츠기는 합성 접착제, 공업용 퍼티 등 현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작업 기간을 단축한 간편한 방식이다. 일상적인 복원이나 간단한 킨츠기에 도전해 보려는 입문자에게 적합하다.
킨츠기는 보통 ‘조각 붙이기–틈 메우기–다듬기–장식하기(마키에)-건조하기’의 다섯 단계로 구성된다. 먼저 깨진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으로 접착한 뒤 틈을 메우고 사포질로 이음새를 다듬는다. 그 위에 생옻과 안료를 여러 번 얇게 칠하고, 금가루나 은가루를 뿌려 장식한 뒤 충분히 말려 마무리한다. 순서만 늘어놓으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작업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금가루의 농도와 바르는 방식, 옻칠의 두께, 이음새의 섬세한 균형, 여러 번 옻을 칠하고 말리는 과정 등 눈에 띄지 않는 요소 하나하나가 장인의 숙련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미세한 선 안에 시간이 쌓이고, 손끝의 정성이 담겨 함께 응고된다. 그렇게 수리한 물건은 금빛으로 빛나는 두 번째 생명을 얻는다.
와비사비와 모타이나이의 철학
킨츠기에는 장인정신만 담긴 것이 아니다. 와비사비, 마키에, 모타이나이 등 일본인이 예부터 소중히 여겨온 철학을 포함한다. 와비사비(侘び寂び)는 불완전함의 미학을 일컫는 일본의 관념 중 하나다. 결함이 있거나 불완전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라는 의미로, 겉치레보다 본질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와비(侘び)’는 소박함이나 단순함, 불완전함을, ‘사비(寂び)’는 세월의 흐름에서 드러나는 정취를 뜻하는 단어다. 두 단어가 만나 생겨난 개념 와비사비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것이 킨츠기다. 사용감이 묻어나는 도자기, 즉 세월의 멋을 알고, 이미 부서졌었다는 사실조차 미학으로 받아들여 도자기 본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다. 수리 방법 역시 모타이나이(勿体無い)와 관련이 있다. 모든 사물과 자원, 생명에는 고유한 가치와 에너지가 존재하니 그것을 낭비하거나 무의미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깨진 그릇을 버리지 않고 수리해 쓰는 킨츠기와 결이 같다. 단순한 수리 방법으로 여기기에는 묵직하고 진중하다.
그릇이 어떻게 있고 싶은지 듣는 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름다움을 살리는 일입니다.” 킨츠기 작가 헤키 미오는 깨짐이라는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그리고 시간이 만든 붕괴의 흔적에 주목했다. 그의 작업은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형태, 질감, 세월이 남긴 상처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재구성될지 상상하며 계획한다. 그다음 과정은 그와 그릇이 나누는 대화에 가깝다. 수십 번에 걸친 반복 작업 속에서 손끝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눈은 더욱 정밀해지며,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감각되는 옻의 질감 속에서 그릇의 목소리를 듣는다. 헤키 미오는 이 작업을 단순한 복원이나 창작으로 여기지 않는다. 작가의 미감을 억누르고 그릇이 본래 지니고 있던 강인함과 섬세함, 고유의 존재감을 되살려내는 데에 집중한다. 그러다 완성된 형태가 자연스레 마음에 그려지면 작가의 손은 저절로 형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있는 그대로, 그릇이 어떻게 있고 싶은지를 듣는다”라는 그의 말은 킨츠기 작가로서 공예를 바라보는 태도를 비춘다. 그릇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생명을 담고 나누는 도구다. 여기에 킨츠기까지 더해지면 신과 자연에 기도하던 옛사람들의 삶과 철학을 현대인이 엿볼 수 있는 매개가 된다. 나무에서 비롯한 옻으로 그릇을 고친다는 행위는 인간과 자연, 시간과 기억을 잇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손을 거친 그릇에는 수리의 흔적만이 아니라 그가 인생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금빛 선을 따라 아로새겨진다. 킨츠기란 결국 금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관계, 나아가 마음을 이어 켜를 쌓아가는 일이다.
Info.
헤키 미오 日置美緒 @mioheki
교토시립예술대학교를 졸업, 국보·중요 문화재 등 역사건축·불상·고미술 등의 수복 공방에서 수복사로 활약하다 독립했다. 무용가의 몸을 장식하는 옻칠 장식은 물론 주얼리 제작이나 해외 예술가와의 무대 연출도 진행한다. 2022년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한 <Japanese Traditional Crafts: にっぽんのサスティナブル> 외에도 파리, 네덜란드 등 국내외 전시에 참여한 경험도 다수. 전 세계에서 킨츠기 수리 의뢰를 받고 있다.
전통에서 현대까지, 요즘 킨츠기
전통과 있는 그대로의 멋을 중시하는 킨츠기. 이에 영감을 받아 색다른 제품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도 적지 않다.
밀레니엄 갤러리 JP
일본의 전통공예를 현대 라이프스타일과 연결하는 큐레이션 갤러리 ‘밀레니엄 갤러리 JP’는 브랜드가 큐레이션한 제품 라인으로 킨츠기 도자기를 소개한다. 찻잔, 그릇 등을 소량 제작하거나 주문 제작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일본에서 활동하는 장인들과 협업해 제품을 빚는다. 킨츠기가 태동한 나라답게 이가 나간 부분을 퍼티로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두어 구멍을 드러내는 작품도 눈에 띈다. 일본 전통 도자기의 멋, 킨츠기 기법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돋보여 고전적인 매력의 킨츠기 제품을 만날 수 있다(https://millenniumgalleryjp.com).
셀레티
이탈리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셀레티(Seletti)는 디자이너 마르칸토니오와 협업해 킨츠기 컬렉션을 내놓았다. 흰색이 돋보이는 세련된 접시를 금가루로 이어 붙인 흔적이 선명하다. 단순히 킨츠기 기법을 연출한 것만이 아니라 조각과 선에 어울리는 그림을 새겨 넣어 더욱 고급스럽다. 일본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다과를 대접할 때 부러 킨츠기 찻잔이나 그릇을 냈다고 하는데, 셀레티의 감각적인 제품을 손님맞이에 활용하거나 선물하기에도 안성맞춤일 듯하다.
베르나르도
1863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프랑스 도자기 브랜드 베르나르도(Bernardaud)도 킨츠기에 관심을 보였다. ‘Kintsugi-Sarkis’라는 컬렉션으로, 예술가 사르키스와 파트너십을 맺어 출시했다. 킨츠기 특유의 금줄을 흰 자기 표면에 세련되게 장식했는데 접시, 잔뿐 아니라 텀블러 모양의 컵, 접시·스푼·받침대로 구성된 캐비아 전용 세트, 테이블 나이프 등 다양한 식기로 구성되어 있다.
킨츠기 리본
‘킨츠기 리본(Kintsugi Reborn)’ 역시 킨츠기 기법을 루는 작가가 손수 가공한 그릇을 선보인다. 잔, 그릇, 종지 등 구성은 여느 브랜드와 비슷한데, 이곳에서 내놓은 특이한 제품은 트리 오너먼트다. 하트, 별, 동그라미, 트리 모양으로 구운 도자기 조각을 킨츠기 기법으로 이어 붙였다. 그릇이나 컵 등 식기를 구매하는 것이 부담된다면 올 연말, 트리에 포인트를 주는 킨츠기 오너먼트로 인테리어에 미감을 더해도 좋겠다. 단, 간이킨츠기 기법으로 제작된 제품이니 혼킨츠기 작품을 찾는 이는 유의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