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라]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정복한 션 베이커가
오랜 동료 쩌우스칭과 함께 [왼손잡이 소녀]로 돌아왔다.
현시점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션 베이커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성노동자의 신데렐라 스토리 [아노라]로 2024년 칸 국제영화제와 2025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동시에 석권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만들어낸 성과를 재현하는 동시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션 베이커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뿐 아니라 편집상까지 수상하면서 올 라운더로서의 다재다능함을 입증했다.
올해 5월, 션 베이커는 [아노라]의 영예와 열기가 식기도 전에 다시 칸 영화제를 방문했다. 이번에는 감독이 아니라 제작자 자격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왼손잡이 소녀]의 제작, 각본, 편집을 맡았다. 놀랍게도 그가 함께한 감독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쩌우스칭. 쩌우스칭은 [스타렛](2012), [탠저린](2015),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레드 로켓](2021) 등 션 베이커의 주요 작품에서 프로듀서를 맡은 한 식구이자 영화적 동지다.
션 베이커와 쩌우스칭의 시작, [테이크 아웃]
두 사람의 인연은 2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뉴욕의 뉴 스쿨에서 아비드 편집 수업을 들으며 만났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영화에 관한 생각이 비슷해 함께 작업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때 처음 논의한 영화가 쩌우스칭의 사적 경험을 담은 [왼손잡이 소녀]였지만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훗날을 기약한 채 잠시 멈춰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영화 제작을 포기하지 않고 초저예산 영화를 기획했다. 바로 이 영화가 두 사람의 공동 연출작 [테이크 아웃](2004)이다.
[테이크 아웃]은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는 불법 중국 이민자의 이야기로, 2004년 내슈빌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사채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빗속에서 자전거로 배달하는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쩌우스칭은 “철저히 경제적인 이유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뉴욕 로케이션 촬영에 주연배우 1명으로 영화를 완성했다”라고 담담하게 회고하지만, 그동안 주류 영화가 담지 않은 뉴욕의 모습을 보여 주는 신선한 시도였다. 당시 중국 레스토랑 위에 있는 집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 배달원들에게서 여러 경험담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션 베이커가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한 후 직접 편집했다. 촬영 스태프를 쓰지 않고 션 베이커와 쩌우스칭이 일당백으로 작업했다. 두 사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낸 셈이다. 제작비는 겨우 3000달러. 당시 주무대였던 레스토랑의 주인이 흔쾌히 장소를 무료로 빌려준 덕분이다.
2000년대 초반, 영화광들에게 자전거로 기억되는 영화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한 왕 샤오솨이 감독의 [북경 자전거](2001)다. 사실 이 시기에 [테이크 아웃]은 회자되는 영화가 아니었다. 션 베이커가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칸과 아카데미 등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을 받고 성공을 거두면서 초기작이 재평가받는 기회를 맞았다. 따라서 많은 이에게 션 베이커와 쩌우스칭이 공동 연출한 [테이크 아웃]은 재발견 영화에 가깝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션 베이커가 ‘도그마 95(Dogme 95)’에 푹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95년 라스 폰 트리에를 필두로 4명의 덴마크 영화감독이 그들의 영화 정신을 담아 발표한 선언이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반기를 들었던 이 운동은 [셀레브레이션]과 [백치들]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 더욱 주목받았고, 여러 나라의 감독이 도그마 영화 제작에 참여하거나 지지 선언을 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테이크 아웃]도 분명 도그마 95의 영향권 안에 있다. 로케이션 촬영이나 현장음 고수, 핸드헬드 카메라 사용이나 현재 시점만 보여 주기 등 많은 점에서 영향을 받았다. 두 사람이 기꺼이 동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년 만에 현실화된 [왼손잡이 소녀]
[테이크 아웃]은 완성 이후에도 극장 상영까지 5년이 걸렸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결과였다. 션 베이커가 [아노라]에 도착하기까지 다사다난한 여정, 동시에 쩌우스칭이 [왼손잡이 소녀]를 완성하는 출발점에는 이렇게 [테이크 아웃]이 있다. 그 후 쩌우스칭은 션 베이커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으며 동고동락했고, [레드 로켓](2022)에서 단역(도넛 가게 주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 사이 20년이 흐르고, 션 베이커의 국제적 성공이 [왼손잡이 소녀] 프로젝트를 다시 소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을 배급한 프랑스 회사 르 팍트(Le Pacte)가 제작과 배급을 맡으며 현실이 됐다. 쩌우스칭은 “영화뿐 아니라 모든 일이 결국 타이밍인 것 같다. 2001년에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갖고 이런저런 고민을 했지만 결국 지금에야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시아 영화가 지금처럼 많이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아시아 영화가 전 세계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왼손잡이 소녀]를 만들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왼손잡이 소녀]는 싱글맘 ‘슈펀’(자넬 차이)이 두 딸과 함께 타이베이로 돌아와 야시장에 국수 가게를 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준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고 엄마와 딸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하는 닮은꼴 영화다. 물론 무대가 플로리다의 디즈니 월드 주변이 아니라 활기찬 대만 야시장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영화를 편집한 션 베이커는 아이의 에너지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대만 타이베이 야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오토바이 소리와 휘황찬란한 색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물론 중간에는 고요처럼 숨을 쉴 수 있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이의 에너지를 생생히 보여 주길 원했다.” 그의 바람대로 ‘악마의 손’을 가진 주인공 소녀 ‘이징’(니나 예)은 지칠 줄 모르고 야시장을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그러고는 마치 스크린을 뚫고 나온 듯 부산국제영화제에 도착해 영화의전당 앞마당을 자유롭게 활보했다. [탠저린] 상영 이후 10년 만에 부산에 돌아온 션 베이커, [왼손잡이 소녀]로 첫 방문하는 쩌우스칭 감독과 주연배우들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오랫동안 함께 영화를 만들어왔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쩌우스칭 뉴욕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시절 처음 만났다. 당시 션은 영화 편집을 하고 있었는데, 대화하다 보니 좋아하는 영화의 결이 비슷했다. 대만이나 한국 영화도 좋아했고, 특히 도그마 95의 영화에 매료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자” 하면서 의기투합했다. 그때 생각한 것이 [왼손잡이 소녀]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왼손과 오른손을 함께 썼는데, 할아버지가 그걸 보시고는 “왼손은 악마의 손이니 쓰지 말라”라고 하셨다. 그 뒤로 왼손 쓰는 것이 무척 수치스럽고 잘못된 일처럼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션에게 했더니 흥미로워하면서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2010년 대만에 가서 첫 번째 버전의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당시에는 제작비를 확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아시아 영화가 지금처럼 인기도 없었고, 유럽에서 지원을 받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션과 계속 협업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쌓고 네트워크를 넓혀 갔고, 결국 지금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션 베이커 [왼손잡이 소녀]를 제일 먼저 구상했지만, 안타깝게도 지원금을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훨씬 작은 프로젝트를 먼저 하기로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공동 연출한 [테이크 아웃]이다. 벌써 20여 년이 넘은 일이다. [왼손잡이 소녀]는 쩌우스칭의 사적 경험을 담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언젠가 그가 단독 연출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현실화하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왼손’에 얽힌 독특한 경험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션 베이커 서양인 입장에서 이국적이고 색달랐다. 동시에 아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 관객에게는 이미 혼란스러운 콘셉트인데 아이의 눈으로 보면 더 혼란스러울 거다. 장난꾸러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할아버지가 한 말씀을 오해해 생기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쩌우스칭 처음엔 특정 문화권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칸 영화제에서 프리미어를 마친 뒤 많은 분들이 자신도 그런 경험을 했다는 말을 하더라. 이게 대만,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문화권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는 걸 깨달았다.
션 베이커 맞다. 나도 어릴 때 미국에서 왼손으로 글씨 쓰는 학생이 있으면 좀 특이하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찾아보니 전 세계 인구의 12%가 왼손잡이라고 한다. 왼손잡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난 혼자가 아니야’, ‘내 이야기가 나오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동안은 션 베이커 감독, 쩌우스칭 프로듀서였는데, 역할이 바뀌었다
쩌우스칭 이번에는 내가 연출을 맡았다. 달라진 점은 내가 영화의 얼굴로, 전면에 나서서 영화를 어떻게 찍었는지 혹은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조금 어색하고 어렵다.
션 베이커 내가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지만 사실상 진짜 프로듀서는 쩌우스칭이다. 나는 [아노라]를 미국에서 촬영 중이어서 대만 현장에는 하루도 방문하지 못했다. 내 역할은 아이디어 개발과 공동 집필, 그리고 편집과 색보정, 믹싱 등 후반 작업이다. 우리가 함께 작업한 지 25년이 됐다. 그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오랫동안 작은 규모의 작품을 여럿 해오면서 한 사람이 다양한 역할을 맡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쩌우스칭은 프로듀서를 하면서도 그 모든 걸 능숙하게 해냈다. 그가 감독으로서도 충분히 훌륭한 성과를 낼 거라 확신했다.
홀로 연출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쩌우스칭 사실 25년 동안 션과 함께해 온 시간 자체가 이 영화를 혼자 연출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션이 감독한 영화에 프로듀서로 참여했지만 그 외에도 의상 디자인, 로케이션 헌팅, 길거리 캐스팅 등 정말 많은 일을 했다. [테이크 아웃]은 단 둘, [스타렛]은 10명, [탠저린]은 6명, [레드 로켓]은 8명, 항상 정말 작은 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업하다 보면 서로서로 손을 보탤 수밖에 없다. 그런 기간만 25년이다. 스토리를 제작자의 눈이 아니라 감독의 눈으로 끌어내고, 어떻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배웠다. 이번 단독 연출을 하면서 느낀 건, 진정성 있는 세계를 구축하면 그다지 많은 디렉팅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다. 배우들이 현장을 느끼고 내가 만든 세계에 들어가 몰입해 자기 역할을 다하면 그걸로 된다.
주인공 소녀가 야시장을 뛰어다니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인데, 영화를 보고 대만 야시장에 반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션 베이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대만과 사랑에 빠졌다. 쩌우스칭 덕분이다. 영화 안에 여러 메시지가 있지만, 꼭 이루고 싶은 건 관객들이 나처럼 대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몰입해 마치 야시장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왼손잡이 소녀]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션 베이커 이 영화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일까 혹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보편적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했다. 영화 안에는 다양한 층위의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처럼, 진실이 밝혀졌을 때 모두가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본다. [왼손잡이 소녀]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특수성과 함께 가족과 사랑, 또 진실이 드러남으로써 얻게 되는 궁극적 자유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쩌우스칭 내게 이 영화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관객이 ‘정말 진짜 같다’고 느끼길 바랐다. 첫 각본을 완성한 2010년부터 매년 대만을 오가며 야시장에 들러 이야기를 계속 수집했다. 그 사이에 내 가족에게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그 경험을 시나리오에 녹여내기도 했다. 대만의 진짜 가족 이야기를 여성의 시선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동아시아 특유의 체면을 차리는 인물과 상황이 나온다
쩌우스칭 체면을 차리는 건 대만이나 중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문화다. 긍정적이지 않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체면 때문에 뒤로 숨고 위장하곤 한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좋지 않은 면이 있다면 그것을 말하지 않고 감추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정해진 틀에 모두를 욱여넣으려고 하는 것이 체면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신을 잃게 되고 나 스스로를 보여 주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션 베이커 중요한 질문이다. 영화에서 체면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되고, 그로 인해 소통이 단절된다. 체면 때문에 창피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자신을 숨기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을 드러내는 우리 영화는 체면이라는 가면을 벗겨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동안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에는 비전문 배우가 자주 등장했다. 이안 캐스팅도 그런가?
쩌우스칭 ‘이안이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분명히 있었다. 대만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미국에 있다 보니 물리적으로 어려워 인스타그램에서 아름다운 분들을 하나하나 찾아봤다. 그러다 시 유안 마를 발견했다. 첫인상은 터프하고 강인한데 대화해 보니 애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다!’ 싶었다. 그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후에 비슷한 느낌의 가족 구성원을 찾다 보니 점점 퍼즐이 맞춰졌다. 그동안 션의 영화에서 캐스팅하며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 배우를 선택할 때 이런 특성이나 이런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다.
션 베이커 함께 각본을 쓰다 보니 캐릭터가 이럴 거 같다는 나름의 비전이 있었다. 그가 보내준 푸티지 영상을 보면서 감탄했다. 캐릭터를 하나씩 구현해 가는 과정을 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시 유안 마는 연기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하는데, 촬영한 것을 보니 감정의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었다.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 특히 웃거나 눈물을 자아내는 모습이 드라마틱했다.
영화를 보면 누구나 왼손잡이 소녀 이징을 연기한 니나 예의 귀여움에 반할 수밖에 없다
쩌우스칭 니나 예를 찾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길거리 캐스팅을 하고 싶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60여 개의 오디션 영상을 받았지만 모두 탐탁지 않았다. 연기 워크숍도 열었지만 성과가 없었다. 결국 배우 에이전트를 통해 여섯 살이던 니나를 만났다. 광고 모델로 3년 정도 연기한 경험이 있어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줄 아는 아이였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훌륭한 코치였다. 니나가 아직 글을 읽지 못해 어머니가 집에서 스크립트를 다 읽어주고 같이 외웠다고 한다. 어머니의 헌신 덕분에 현장에 왔을 때는 대사 암기뿐 아니라 촬영 준비가 완벽하게 된 상태였다. 연기할 때 자신만의 색깔을 녹여낼 줄도 알더라. 그래서 니나에게 크게 디렉팅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머니나 언니 역의 상대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션 베이커 감독 입장에서 보면 직접 연출하지 않는 작품을 처음 편집한 셈이다. 어떤 경험이었나?
션 베이커 기쁘고 뿌듯했다. ‘쩌우스칭이 우리 비전을 이렇게 실현해냈구나!’ 감탄하면서 편집했다. 쩌우스칭은 테이크를 여러 번 가지 않는 스타일이다. 나는 필요하면 8~10번 반복해 찍는 편인데 그는 한두 번으로 끝낸다. 내게 보내준 테이크를 보면 잘못되어 다시 찍은 것이 아니라 살짝 뉘앙스가 바뀐 장면들이었다. 편집하는 입장에서는 리소스가 정말 풍부했다.
쩌우스칭 션이 편집한 것을 보고 내가 보지 못한 것을 그가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중국어를 하지 못하니까 연기 자체에 집중해 포착한 것 같다. 내가 정말 이런 장면을 찍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 있어 재미있었다.
션 베이커 감독의 전작처럼 아이폰으로 촬영한 부분이 있다
쩌우스칭 제작비를 아끼고자 한 선택은 아니다. 실제 야시장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 촬영하려면 아이폰 촬영이 유일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한순간도 인위적으로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고, 야시장의 생생함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아이폰으로 촬영하면서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와 카메라를 숨겨야 했다.
션 베이커 [탠저린]은 전부 아이폰으로만 촬영했다. 제작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고 보니 제작비 절감 외에도 너무나 많은 이득이 있었다. 다른 디지털카메라가 줄 수 없는 것들, 그러니까 자연스러운 생동감이라든지 프로가 아닌 연기자들과 일할 때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 기동력이 있고 협소한 공간까지 들어가 촬영할 수도 있다. 또 신선한 미감도 있다. 아이폰으로 찍으면 젊은 에너지가 드러난다. 최근 패션 필름을 아이폰으로 찍었는데 결과가 더 좋았다. 앞으로도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는 실험을 계속하고 싶다.
두 사람의 영화에는 늘 사회 주변부 인물과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것이 자칫 착취나 나쁘게 이용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주의하는 점은 무엇인가?
쩌우스칭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들의 관점에서 전달한다. 사람들에게 직접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삶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이 시나리오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단순히 우리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션 베이커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많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다양한 방식의 협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삶을 스크린에 담을 때는 막중한 책임감과 의무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내 삶 밖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나에게 기꺼이 자신의 삶을 보여 주었을 때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슬픔이나 고통만 묘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게 만들지 않나. 개인적으로도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유머를 십분 활용하기도 했다. 내 모든 영화에는 유머가 들어 있다. 눈물과 눈물 사이에는 웃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실제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사람들의 삶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