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갇힌 교수보다는 평범한 삶을 관찰하고 해석하고 대리하는 헤르메스이고 싶어서.’ 대학교수이면서 ‘책방 주인’ 부캐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 노명우 교수가 나름의 소신을 말했다.
그는 서울 연신내 인근 작은 골목길에 10평 규모의 작은 책방 ‘니은서점’을 열었다. 2018년 가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3년 차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손님이 줄어 책을 한 권도 못 파는 날이 늘었지만, 그는 괜찮단다. “어차피 취미에 큰돈도 투자하는 시대에 수익 좀 안 나면 어떤가. 좋아하는 일에 투자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사회학자이면서 책방 주인, 책을 추천하는 북 텐더이기도 하다.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일이기 때문에 삶에서 제일 중요한 수단이 책이다. 책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디어이자 많은 시간을 보낸 도구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많이 봐야 하는 교수라는 직업과 책방 운영은 같은 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이 본업이 된 거고, 본업이 시대적 환경 변화에 맞춰 부캐로 나타난 것이다.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서점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언젠가부터 갈 만한 서점이 없어져서 아쉬웠다. 서점의 다양성이 사라졌다고 할까? 오프라인 서점은 하나둘 사라졌고, 대형 체인 서점은 점점 책보다 문구 판매에 주력했다. 그러던 중 ‘내가 서점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책방 주인이 부캐가 되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나?
이전보다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 책을 소개하고, 더 파고들고. 손님이 내가 읽지 않은 책을 가리키며 “이 책 어때요?”라고 물어봤을 때 안 읽어봐서 모른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 않나. 명색이 책방 주인인데.(웃음)
대형 서점만 살아남는 판국에 운영이 되나?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보통 동네 책방은 적자이거나 들어가는 품에 비해 아주 적은 흑자를 내는 걸로 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업종은 분명 아니다. 돈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돈을 벌지 못해도 괜찮은지?
사회학을 해서 그런지 막연한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낀다. 교수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육체적 노동강도가 낮고, 시간 배분에 있어 자율성도 높다. 거기서 오는 만족감은 사회로부터 받는 간접적 혜택인 것 같다. 내가 누리고 있는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책방만큼 내 능력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돈 문제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래도 돈은 벌어야 하지 않나?
수익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비용을 치른다. 그건 취미 활동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수익이 적든, 적자가 나든,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비용을 투입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건 생계가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의 직업을 갖고 살기도 힘든 세상인데,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게 힘들지 않나?
부캐는 ‘N잡(job)’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N잡은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걸 말한다. 당연히 육체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부캐는 보람, 만족 등을 느끼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돈을 버는 또 다른 형태의 직업이 아니다. 물론 부캐 활동으로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나처럼 쓰기만 할 수도 있는 거다.(웃음) 내게 돈을 버는 것은 본업인 교수이고, 책방은 돈을 쓰는 곳이다.
'니은서점'은 어떤 곳인가?
2018년 9월에 오픈한 10평짜리 작은 책방이다. 니은서점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시작했다. 장례를 치르고 남은 조의금을 가치 있게 쓰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런 것처럼 부모님은 많이 못 배우셨지만 자식 교육에 헌신적이었다. 부모님의 뜻을 깃들어 교육적 공간을 만드는 데 사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게 서점이었다. 서점은 여러 형태의 교육적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니은서점의 니은은 노씨의 ‘ㄴ’이다. 이처럼 니은서점에는 가족사가 들어 있다.
주요 고객층은 어떤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젊은 사람도 많이 오는데, 중년인 내가 추천해주는 책이 취향에 안 맞을지도 몰라서 1990년대생 북 텐더 3명을 뒀다. 그들이 내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해결해준다. 니은서점은 그렇게 세대 융합도 이루고 있다.(웃음) 만약 내가 책방을 안 열었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다. 이런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긍정적 효과다.
'책방 주인'이 된 지 곧 3년인데, 달라진 점은?
3년 중 절반을 코로나19와 보냈다. 인생 참 쉽지 않다. 코로나19를 예상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생각지 못한 즐거움, 기쁨도 많이 생기는 것 같다. 확실히 책방을 운영하기 전보다 마음이 더 편안해졌고, 세상에 대한 막연한 분노가 줄었다. 젊어진 느낌도 들고.
부캐 덕분에 은퇴 이후에 대한 고민은 없겠다
동료 교수들도 그런 말을 종종 한다. 아직까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분명한 건 직업으로 부캐를 이어갈 생각은 없다는 점이다. 은퇴 이후 다른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본업과 부캐의 경계를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니은서점의 최종 목표는 오래 버티기다. 처음 시작할 때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지금은 진지하다.
본캐와 부캐의 균형을 유지하는 비결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의 인생은 저마다 고유한 가치가 있기에 인생은 상대평가가 아니다. 내가 누구보다 돈이 없다고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결국 현대의 빈곤은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다. ‘누구는 저런 집에 사는데’, ‘누구는 저런 차를 타는데’ 같은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그런 비교 대상의 성공이 내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회학자로서 부캐에 열광하는 우리 사회의 최근 흐름을 어떻게 보는가?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이 더 이상 돈에서 오는 만족감이 아니라 보람, 내적 기쁨 등에 대한 욕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모든 걸 돈으로 환산하기보다 다른 것에 대한 갈망, 필요성 등을 사회가 점점 알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한국이 점점 선진국이 되어간다는 증거다.
돈도 재주도 없는데, 누구나 부캐를 가질 수 있을까?
당연하다. 묵묵히 자원봉사하는 것도 부캐라고 생각한다. 돈도 안 들고 재능도 필요 없다. 다만 부캐일 때는 본업에서 얻은 지위 같은 걸 다 버려야 한다. 부캐의 가장 좋은 점은 그런 ‘버리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교수지만 책방에서는 그렇지 않다. 책방에서 교수 대접을 받으려고 하면 손님들이 재수없다고 할 것이다.
버리는 연습은 덴맨들에게도 필요할 것 같다
그렇다. 부캐를 통해 본업에서 이룬 성과와 지위를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중년의 위기를 관리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된다. 중년에 어느 정도 지위에 오른 남성이라도 직장 밖으로 나가거나 은퇴하면 그냥 아저씨일 뿐이다. 그게 현실이니 평소부터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나?
책방 옆에 멋진 프라이빗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나는 스스로 꽤 좋은 북 컬렉터라고 자부한다. 문학,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의 책 3만 권 정도 소장하고 있는데, 혼자만 이용하기는 아깝다. 도서관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