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는 ‘씨엘(그룹 2NE1 리더) 아빠’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명망 있는 물리학자이면서 로봇 ‘뚜띠’를 주인공으로 한 열 권 이상의 동화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며,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연애 칼럼을 연재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한 그는 다방면의 재주꾼이다. 게다가 얼마 전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혈당 측정 기술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최근에는 뜬금없이 디자인 페어에 작품을 출품하며 ‘화가’ 타이틀도 달았다.
사실 이기진 교수는 몇 해 전 종로 창성동에 ‘창성동 실험실’이라는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고는 주말마다 이곳을 찾아 예술적 실험을 펼쳐나갔다. 6년 전 덴맨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를 창성동 실험실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꾸준히 ‘딴짓’을 해왔더니 사람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것도 되더라”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최근 연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걸 축하한다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혈당 측정 기술이다. 마이크로파는 원래 연구하던 영역이다. 2000년이었나? 알프스에 갔다가 한 노부부를 만났다. 남편이 저혈당으로 쓰러졌는데, 아내가 혈당측정기를 꺼내 채혈을 하고 바로 인슐린 주사를 놓더라. 피가 나고 정신을 잃는 등 아주 난리였다. 그걸 보면서 ‘당뇨병이 심각한 문제구나. 내 연구가 여기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때부터 쭉 연구해온 기술이다.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상용화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이슈가 되었다.
'화웨이 백지수표' 사건의 전말은 뭔가?
논문 발표 이후 화웨이 재팬에서 연구 지원에 대한 의사를 밝혀왔다. 마침 그때가 정부의 연구 지원이 끝나 곤란을 겪고 있을 시기였다. 그래서 “연구비를 얼마나 지원하려는데?”하고 물었더니 원하는 대로 쓰라고 하더라. 솔직히 그 말을 듣고 좀 흥분했다. 하지만 중요한 기술을 해외 자본으로 연구한다는 게 껄끄러웠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역시나 반응이 둘로 나뉘더라. 하나는 “마지막 기회다. 잡아라”였고, 다른 하나는 “위험하다. 성공하면 더 위험하다”였다.
'성공하면 더 위험하다'는 건 무슨 뜻인가?
성공하면 그쪽에서 기술에 대한 권리를 다 가져갈 게 아닌가. 우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비난도 면할 수 없을 거고. “과학은 조국이 없어도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이 있다. 결국 화웨이의 제안을 거절했고, 언젠가 때를 만날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다. 다행히 최근에 신청한 지원 사업에 채택되면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국내 기업의 제의는 없었나?
몇 번 있었지만 다 거절했다. 지금은 그냥 연구에 몰두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림을 그리는 건가?
그냥 시간 날 때마다 그린다. 사람이 365일, 24시간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건 아니잖나? 일과를 끝내고 짬이 생길 때마다 그린다. 물론 나의 정체성은 물리학자다.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에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고, 사람을 만날 일이 생기면 실험실로 불러 요리를 해 와인을 한잔하곤 한다. 그러니 연구가 바빠진다 싶으면 다른 것들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건 절대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물리학자, 화가, 동화작가, 너무 많은 걸 하고 있지는 않나?
글쎄, 남들이 보면 ‘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냥 일상이다. 예전에는 연구와 취미가 분리됐는데 언제부터인가 영역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물리학자인 나, 그림을 그리는 나, 동화를 쓰는 나, 모두가 내 모습인데 굳이 구분하려니 안 되더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림을 그릴 때나 글을 쓸 때 느낀 감정들이 연구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 물리학 연구를 하다 글감이나 그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모든 게 내 안에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가 ‘창성동 실험실’인데, 연구와 취미 등 모든 게 혼재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나의 내면과 비슷하다.
얼마 전 <부산 디자인 위크>에 참가했던데
내가 나가려고 한 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종종 내 일상과 그림을 올리곤 하는데, 한 갤러리에서 그걸 보고 출품해달라고 제안했다. 별생각 없이 동의했지만 그림이 팔리지 않아 괜히 갤러리에 민폐만 끼친 게 아닌가 모르겠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한 번도 없나?
그런 거 없다. 그저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끄적였다. 누구나 어릴 때는 낙서하면서 놀지 않나? 철이 들면서 대부분 그만두는데, 난 그걸 계속해왔을 따름이다. 딱히 누구를 따라 하거나 스타일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냥 계속하다 보니 일정한 나만의 스타일이 생긴 것 같다.
내 마음속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하나 있다.
평소 세상을 바라보다가 뭔가 아름다운 것,
인상적인 것이 눈에 들어오면 사진을 찍어놓는다.
그 이미지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가 그림을 그리곤 한다.
뭔가를 하면 몰입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일단 ‘해야 한다’고 생각되면 거기에만 빠져든다. 공부도 그렇다. 이걸 계속 질질 끌 수는 없으니 딱 정해진 시간에 끝내기로 하고 파고든다. 그러고 나서 딴짓을 시작한다. 뭔가가 내 눈에 포착되면 거기에 집중하는 스타일인데, 그게 빠르게 바뀌니까 주위에서는 산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앞에 두고서 딴짓한다고 오해받은 적도 많다.
과학동화 만화 <깍까> 시리즈도 열 권 넘게 나왔다. 어떻게 그리게 되었나?
젊을 때 프랑스, 일본, 아르메니아 등지를 돌며 유학 생활을 했다. 당시 어린 딸들을 위해 그림동화를 그렸다. 우리말로 된 동화를 구할 수 없어서 직접 그린 것이다. 나중에는 물리를 아이들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어 끄적여봤다. 그걸 우연히 출판사 관계자가 보고 책을 내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계속 책을 내긴 했는데, 호응이 거의 없었다. 출판사가 마케팅을 잘 못한 건지 내가 못 쓴 건지, 정말 처절하게 반응이 없더라. 역시 과학 이야기는 인기가 없다는 걸 확인한 셈인데, 다음에 낼 책도 과학 관련 내용이라 걱정이다. 쓰고 있는 책을 마무리하면 다음에는 연애 이야기를 써야겠다.(웃음)
'창성동 실험실'은 어떤 공간인가?
나만의 갤러리이자 실험실이다. 수집한 골동품, 소품이 많아지다 보니 집에서는 소화가 안 됐다. 그러다 보니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시가 없는 주말이면 항상 여기서 시간을 보낸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텃밭도 일구고.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음식을 해 먹기도 한다.
자기 공간에서 고독을 즐기는 건 굉장히 고급스러운 취미라고 생각한다. 그런 공간을 만들 줄 아는 게 중년 남자의 삶의 기술이 아닐까? 놀러 와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부러워한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공개하지 않는다. 너무 배 아파하거든.(웃음) 처음에는 개인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전시장 역할도 하고 있다.
여기서 전시회도 여나?
이 동네에는 예술가가 많다. 그들과 함께 전시를 열기도 하고, 때로는 공간을 빌려주기도 한다. 평일에는 어차피 이 구석까지 올 사람이 없으니까 보통 주말 사흘만 전시하고 끝내는 편이다. 거창하게 기획하거나 섭외하는 건 아니다. 인연이 닿으면 한다고 할까? 실험실에 와본 사람 중 관심이 있거나, 주변 사람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생기면 한다. 전시회를 여는 동안 나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금요일에 문 열어주고, 일요일에 전시 끝나면 와서 작가와 인사하고 문 닫아주는 게 내 역할이다.
가장 최근에 벌인 '딴짓'은 무엇인가?
말하기 좀 부끄러운데, 영화를 찍는다. 창성동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독립영화다. 나는 ‘조연 3’쯤 되는 역할을 맡았는데,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창성동 갤러리 주인으로 나온다. 오늘 하는 인터뷰 촬영도 이렇게 힘든데, 영상은 얼마나 힘들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대사 외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더라.
시간을 활용하는 비결이 있나?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당연히 시간이 모자라다. 20대는 하고 싶은 게 10개라면 11개를 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30대부터는 좀 줄여야지. 30대에는 10개만 딱 하고, 40대가 되면 2개 정도 줄이고, 50대가 되면 그중 절반인 5개만 해야 한다. 나이 들수록 덜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년 남자들? TV만 좀 덜 봐도 된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 그런지 항상 행복해 보인다
항상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인생 목표다. 뭘 먹더라도 맛있게 먹고, 뭘 보더라도 재밌어 하는 그런 삶의 ‘애티튜드’를 갖는 것. 적당한 스트레스를 즐길 줄 알고, 지금이 내 인생의 정점이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굳이 현재 상황에 대해 불평하면서 불행해질 이유가 있나.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앞으로 3년 정도는 마이크로파 연구에 집중해 상용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준까지 진도를 나갈 생각이다. 그사이 그림도 계속 그릴 거고.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파리에서 전시회를 해볼 꿈도 가지고 있다. 물론 거창한 게 아니라 뒷골목 자그마한 갤러리 같은 곳에 내 그림이 걸리는 걸 보고 싶다는 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