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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시골살이를 선택한
도시 남자 정원일 PD

바이크로 출퇴근하고, 둘째가라면 서러운 얼리어답터. 대한민국 CEO를 위한 콘텐츠를 기획하는 SERICEO 정원일 PD의 얼마 전 모습이다. 그런 그가 돌연 육아휴직계를 내고 시골살이를 시작한다고 하자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 입력 2021.10.03 12:25
  • 수정 2022.05.02 13:42
  • 2021년 10월호
  • 이영민 에디터
정원일. 1976년생, (주)멀티캠퍼스 SERICEO 기획PD
정원일. 1976년생, (주)멀티캠퍼스 SERICEO 기획PD
 

지난 8월 중순, 정원일 PD는 가족과 함께 전라남도 함평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예약해둔 낡은 고택을 손보는 일. 지자체에서 가구며 가전제품이 어느 정도 채워진 집을 빌려주었지만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만큼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비록 오래된 한옥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완전히 독립된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다.” 그렇게 도시 남자 정원일 PD의 시골살이가 시작되었다. 

배달 음식은커녕 편의점도 없는 시골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려는 그에게 ‘굳이 왜?’라는 시선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용기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는 오늘도 새로 마련한 놀이터에서 멋대로, 즐겁게 놀 궁리를 한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살이를 시작한 것인가?

회사를 그만둔 것이 아니고, 6개월간 육아휴직을 하고 내려온 거다. 딱 반년 살고, 겨울에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40대 중반에 육아휴직을 감행하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회사가 일과 가정의 양립을 권장하는 분위기여서 육아휴직에 관대하긴 했지만, 나 스스로는 육아휴직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았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이니 더 열심히 일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야근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인문학 강연을 기획하는 일을 맡으면서 자연스레 인문학을 공부하게 됐고, 연세대 사회학과 김왕배 교수님의 강연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요즘 세대와 과거 세대가 다르다’는 내용이었는데, 발전이 한계에 봉착한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거와 달리 젊은 세대가 ‘열심히 일하면 뭐 해? 그거 다 회사 잘되라고 하는 건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야겠더라. 6개월의 휴식이 내 인생에 긍정적 영향을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고. 마침 아내도 시골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 터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시골살이를 하면서 느낀 점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은퇴 이후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일어나도 출근할 데가 없고, 서두르라고 채근하는 사람도 없고, 성가신 이메일이나 밤새 온 문자메시지도 없다. 일어나면 날 반겨주는 건 마당의 감나무와 대추나무, 길고양이, 청명한 하늘이 전부다. 그때 드는 생각이 ‘오늘은 뭐 하지?’, ‘무슨 일을 하면서 오늘 하루 보람차게 보내지?’다. 마치 은퇴한 사람처럼.

 

시골에 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메타버스 생각을 많이 했다.

메타버스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지내길 원할 수 있고,

한적한 곳에 머물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고즈넉한 이곳에 머물면서

부캐를 키우게 됐고,

여긴 내게 일종의 메타버스다.

 

불안하지는 않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태해지면 안 되겠다’, ‘나중에 은퇴하면 더 보람되게 살아야겠다’ 하는 다짐을 하게 되더라. 일종의 은퇴 체험이랄까? 이런 경험을 글로 쓰고 영상으로 만들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 정리해보고 싶다는 계획도 생겼다. 

 

중년에 삶의 환경을 바꾼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선현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네가 바라는 삶인가?”, “너는 지금 행복한가?”, “인생이 재미있는가?” 등. 이 질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기 위해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고 변화를 주려는 것이다. 일단 무엇이든 해보는 게 중요하니까.

 

계획에서 실행까지 얼마나 걸렸나? 

석 달 남짓 치밀하게 준비했다. 지자체 지원을 받으면서 지방에 머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서울시교육청과 전남교육청이 공동 진행하는 ‘전남농산어촌유학’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끝난다. 말 그대로 아이를 지방에 유학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서울의 공립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으면 신청할 수 있다. 신청자는 전라남도 지역 중 한 곳을 택해 6개월간 머물 수 있으며, 내 경우 서울시교육청과 전남교육청에서 매달 70만원을 지원한다. 이사 온 첫 달에는 정착하는 지자체교육청에서 아이 한 명당 50만원씩 총 100만원을 더 지원받았다.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생계 유지가 아닐까?(웃음) 육아휴직을 하면 월급 최고액은 150만원이고, 그중 일부는 나중에 복직해야 수령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수령액은 100만원대 초반이다. 그래서 붓고 있던 연금, 보험, 적금 등을 일시 정지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봤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국민건강보험은 유예했고, 국민연금은 최저 비용을 내고, 보험은 원금에서 차감하는 식으로 돌렸다. 적금도 만기를 유예하는 식으로 대처했다. 물론 생활비도 이전보다 아껴 쓰고. 

다행히 코로나19 시국이어서 여행을 안 가고 모아놓은 돈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돈 한 푼 없이 시골살이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한다.

 

함평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에는 주최 측에서 전남 구례를 추천했다. 숙박 시설이나 주변 환경 등 모든 것이 좋았는데 주말마다 참여해야 하는 행사가 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유익한 프로그램이라 해도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쉬고 싶었던 내겐 부담스러웠다. 

반면 함평은 이런 행사조차 없었다. 또 광주 시내까지 차로 20분 거리여서 종합 의료 시설도 가까웠다. 비상 상황 발생 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시내 접근성이 이렇게 좋은데 동네 분위기는 완전한 시골이다. 생태 보전이 잘되어 있기로 소문난 천혜의 환경이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후보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알아본 것인가? 

전남농산어촌유학 홈페이지에 선택할 수 있는 지역, 학교, 주거 형태 등이 나와 있는데, 그걸 엑셀로 정리해가면서 비교했다. 구글 맵, 네이버 지도, 다음 지도 등을 총동원해 지역을 이 잡듯이 훑었다. 로드뷰가 워낙 잘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또 다녀간 사람들의 블로그도 열심히 찾아보며 동네 분위기를 파악했다. 그다음에 최종 선정한 곳을 다녀왔다. 

 

처음 내려왔을 때 느낌은 어땠나? 

처음 왔을 때 먼지와 곰팡이가 가장 문제였다. 며칠간 청소와 곰팡이 제거에 온 힘을 쏟은 후 집 안 코팅을 싹 하고 나니 괜찮아졌다. 제습기와 보일러를 며칠 동안 돌리면서 사람 사는 집을 만들었다. 이젠 아이들도 시골살이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라 서울에 다시 안 간다고 할까 봐 걱정이다.(웃음) 애들은 토방 아래 길고양이에게 밥 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한옥을 고른 이유가 뭔가? 살기 불편할 것 같은데 

나는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전형적인 도시 남자다. 도어록 소 리가 안 나면 잠을 못 자는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담장이 낮고 도어록도 없는 이곳에서 편안하게 지낸다. 사실 아직까지는 아침에 아이들 학교 갈 때를 제외하면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 덕에 사색도 많이 하고 있다.

 

유튜브도 시골살이를 하면서 시작한 건가? 

그렇다. 회사 생활 15년 중에 7년 정도를 영상 콘텐츠 제작하는 일에 집중했다. 대학에서 언론홍보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이전에도 방송국 등에서 영상 제작 업무를 계속해왔다. 그런데 일로 영상을 다루다 보니 어느 순간 싫증이 나더라. 그렇게 한참 동안 카메라를 잡지 않았는데, 이번에 쉬면서 내가 잘하는 게 영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삶을 기록하는 의미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정원일 PD가 시골살이를 기록한 영상
정원일 PD가 시골살이를 기록한 영상

 

시골에서의 일상이 궁금하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영상 촬영하고, 글을 쓴다. 멍하니 산책을 하기도 하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이런 일상은 서울에서 누리지 못하던 삶이다. 아침 8시에 눈을 뜨는 지금 이 내게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차로 10분 거리에 마트가, 15분 거리에 편의점이 있다. 음식 배달은 아예 안 되고, 심지어 마트 배달도 안 된다. 동네 자체의 패러다임과 문화가 다른 것이다. 그래서 한 번 갈 때 2~3주 분량의 장을 본다. 어찌 보면 ‘슬로 라이프’를 실현하고 있는 셈이다.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일단 저질러보라고 말하고 싶다. 변화는 의외의 곳에서 나올 수 있으니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다. 나는 마흔에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열심히 운동해서 ‘어좁이(어깨가 좁은 이)’를 탈출했고, 격투기의 ‘ㄱ’도 모르다가 서른 아홉 살에 입문해 마흔다섯 살에는 프로복싱 라이선스를 땄다. 오토바이도 마흔다섯 살에 배웠다. 그전까지는 오토바이 타면 죽는 건 줄 알았다.(웃음) 무엇보다 살사댄스를 배우다가 아내를 만났으니, 내 경우에는 뭐든지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찾은 것 같다.

“시골에 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메타버스 생각을 많이 했다. 메타버스는 새로운 삶의 공간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지내길 원할 수 있고, 한적한 곳에 머물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나는 고즈넉한 이곳에 머물면서 부캐를 키우게 됐고, 여긴 내게 일종의 메타버스다.”

 

How to

지자체 지원으로 시골살이 도전하기 

➊ 전남농산어촌유학 홈페이지(jne.go.kr/jne/main.do)에 접속해 머물 수 있는 지역, 학교, 신청 대상 등 프로그램 정보를 확인한다. 

➋ 프로그램 신청 대상이라면 머물 지역, 학교, 집 등을 선택한다. 

➌ 현재 자녀가 다니고 있는 학교(서울)에 신청서를 제출한다. 

➍ 가구, 가전제품 등 웬만한 살림살이는 세팅되어 있으니 옷 등 당장 사용할 짐 위주로 간단히 싸 가면 된다. 

➎ 이사와 동시에 아이와 부모의 전입신고를 한다. 

➏ 유학 비용 (매달 서울과 전남교육청에서 30만원씩 총 60만원 지원) 

※수령 첫 달에만 정착금 명목 아이 1명당 50만원씩 추가 지원, 월세 및 공과금은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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