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생
•한화 이글스 수석 트레이닝 코치
•<뛰지 마라, 지친다> 저자- 40 -
부산 출신인 이지풍 코치는 ‘야구 키드’였다. 학창 시절에는 선수의 꿈을 키웠지만 체격이 작아 포기했다. 대학생 때는 ‘야구 전문 기자가 되어볼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결국 2004년 현대 유니콘스 트레이너로 일하게 되면서 ‘덕업일치’에 성공했다. 야구단에 입성한 그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트레이닝 기법을 팀에 적용했다. 야구 선수에게 적합한 웨이트트레이닝과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지론은 2014년 넥센 히어로즈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약체로 평가받던 넥센 히어로즈가 준우승을 차지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선수가 아닌 트레이닝 코치에게 쏠렸다. 트레이너가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치까지 끌어냈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말 한국시리즈 최약체 팀인 한화 이글스에 합류하면서 또 한 번 도전에 나섰다. 그와 동시에 야구판에서 느낀 인생의 교훈을 책으로 엮어냈다. 재치 있는 입담과 필력으로 이미 온라인에서 입소문이 났던 만큼 이 코치의 인터뷰는 거침이 없었다.
최근 한화 이글스에 합류해 화제가 됐다
꼴찌를 면하려고 애쓰고 있다.(웃음) 알다시피 한화 이글스는 순위가 높은 팀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한화 이글스는 젊은 선수를 집중 육성하고 있어 코치로서 할 일이 많다. 덕분에 매우 즐겁게 일하고 있다.
트레이닝 코치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 달라
헬스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퍼스널 트레이너라고 생각하면 된다. 트레이닝 대상이 야구 선수일 뿐이다. 개별 선수마다 적절한 운동법과 식단을 제시하고 이를 관리한다. 재활 치료는 물론 부상 방지나 정신 건강 관리에도 신경 쓴다. 한마디로 야구를 잘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벌크업’의 핵심이 뭔가?
지금은 웨이트트레이닝의 중요성을 모든 사람이 인지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스피드 저하, 햄스트링 부상 위험 등을 이유로 금기시되곤 했다. 벌크업이란 무작정 몸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야구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 거다. 그러면 타자의 타구 스피드는 올라가고 비거리도 늘어난다. 당연히 홈런 타구도 많이 나온다. 야구 선수는 경기 시간 3시간 동안 20여 분 움직인다. 그런데 굳이 달리기에 목숨 걸 필요가 있나. 물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선수들에게 쉬라고 강요하는 코치였다던데?
훈련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훈련이나 경기에 제대로 집중하기 위해서는 쉴 때 확실히 쉬어야 한다. 경기를 마치고도 온갖 훈련을 시키면서 선수에게 최상의 컨디션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운동선수라면 고강도 훈련에 매진해야 한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지 않나. 예전에는 더 심했다. 또 선수 스스로 불안해서 멈추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선수에게는 정신적 이유로 몸을 혹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휴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나?
2005년 미국 전지 훈련 때 피츠버그 소속 마이너리그 트레이너와 함께 일했다. 훈련 첫날, 선수들에게 조언을 부탁하니 그저 잘 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시만 해도 늦은 밤까지 운동하고서 손바닥에 잡힌 물집을 훈장처럼 여길 때였다. 그러나 그는 아픈 손으로 어떻게 경기를 제대로 치르냐면서 의아해했다. 그때부터 한국 프로야구단의 훈련 방식에 의구심을 가지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이미 다들 아시는 대로다.
트레이닝 코치로서 뿌듯한 순간은?
더 이상 벌크업이나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에 보람을 느낀다. 대부분 사람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몇 년 사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젠 선수가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럼 수년 뒤 개선된 환경을 보면서 더욱 뿌듯할 것 같다.
선수들을 위한 ‘멘탈 코치’도 유명하다
야구는 장기전이다. 봄에 시작해 여름, 가을까지 거의 매일 경기를 치르지 않나. 하루하루 승패에 연연하다 보면 금방 지친다. 오늘의 승리 팀이 내일의 패배 팀이 되기도 한다.
선수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거다. 야구에서 ‘3할 타자’는 최고 수준의 타자를 말한다. 그런데 그 3할 타자조차 1000번의 타구 중 300번 성공하고 700번은 실패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3할을 향해가는 과정이니 타구 하나하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잘했든 잘 못했든 훌훌 털고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난해 잠깐 일을 쉬면서 딴지일보에 야구 칼럼을 게재했다. 프로야구계에서 은퇴까지 염두에 뒀던 터라 다소 예민한 업계 이야기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변 반응도 괜찮았다. 답답하던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는 후기도 있었다. 그때 쓴 칼럼에 인생 이야기를 추가해 책으로 엮었다. 한때 야구 전문 기자를 꿈꾸기도 했는데, 이렇게 책을 발간하니 감회가 새롭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3할 타율의 원리를 인생에 적용하면 삶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물론 나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우리 팀이 연패하면 나 역시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그럴 때일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야구와 인생은 닮은 점이 많다. 인생도 야구처럼 장기전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속상해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실패한 건 결코 본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고.”
야구 트레이닝 기법을 인생에 적용해 보자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수란 열심히 하는 선수다. 여기서 ‘열심히’란 연습을 열심히 한다는 뜻이 아니다. 연습, 휴식, 스트레스 등을 두루두루 잘 관리하는 선수다. 야구는 한 시즌에 144경기를 한다. 6~7개월 동안 100%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날은 150%의 실력을 보이다가 다음 날은 50%의 기량을 선보이면 곤란하다. 차라리 80% 상태를 쭉 유지하는 게 낫다. 기복을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도 야구처럼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다. 이제 100세 시대이니 잘 먹고 잘 놀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게 좋지 않을까. 멀리 내다보고 조급해 하지 말자.
‘리더십’에 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Den> 독자 중에는 관리자가 많다. 조언을 해준다면?
야구단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었다. 막내 시절을 지나 이제는 많은 후배와 함께 일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맡긴 일에 세세하게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불필친교(不必親校)라는 사자성어를 늘 마음에 새긴다. 리더가 모든 일을 직접 챙겨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후배들에게 내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그들의 방식대로 일하도록 내버려둔다. 각자 맡은 위치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 더불어 아는 것을 실천하라는 뜻의 지행일치(知行一致)도 여러 번 되새겨볼 만하다. 후배에게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면 잊지 말고 실천하자는 거다.
한창 경기 중인 선수에게 코치가 이런저런 조언을 던진다고 해서 그 결과가 크게 바뀔까? 코치가 선수 대신 경기를 뛸 수 없는 것처럼 경기 중에는 선수의 플레이를 믿어주는 게 최선일 때도 있다. 오히려 코치의 과도한 조언이 선수를 혼란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언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을까?
선수들이 물어볼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코치가 현명한 코치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필요로 하지 않는 정보는 굳이 전달할 이유가 없다. 조언도 양보다는 질,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간섭하기보다는 후배가 요청할 때까지 기다리자. 수시로 얘기하기보다는 진지하게 한두 마디 건네는 것이 더 효과가 좋을 수 있다.
야구와 인생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야구처럼 인생도 실패의 연속이다. 힘이 들 때면 3할의 타율을 내기 위해 1000번의 타구 중 700번의 실패를 맞닥뜨리는 타자를 생각해 보라. 야구에서 3할 타율은 대단히 어려운 수치다. 실패를 통해 개선점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실패라는 단어에 너무 얽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은 팀 전력을 키우는 것이 목표다. 한화 이글스 트레이닝 코치로서는 한화 팬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지난번 한 경기에서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었는데, 1점을 냈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기뻐해 주시더라. 이지풍 개인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단기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뛰지 마라, 지친다>를 읽어주시면 좋겠다. 또 기회가 된다면 다른 책을 한 권 더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