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등단한 이우성 시인은 2015년 설립한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의 대표이자 러너다. 남성지 , 에디터 출신으로 2017년과 2018년에는 러닝 전문 잡지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콘텐츠 제작에 익숙 한 데다 달리기까지 능한 이우성 시인에게 딱 맞 는 자리였다. 20대에 달리기를 시작해 30대 들 어 본격적인 러너가 된 그는 40대인 지금도 멈추 지 않고 달리고 있다. 혼자 또는 여럿이, 때로는 코치와 함께 뛰며 러닝 기술을 연마해 왔다. 이우 성 시인에게 달리기는 마치 그날의 일기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과 중 유일하게 내면을 들 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요즘 달리는 자신이 제일 멋지게 느껴진다는 그에게 달리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시인이자 미남컴퍼니 대표로 열심히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티빙 오리지널 속 ‘이효 리 사진전’을 준비하며 즐겁게 일했다. 2012년 첫 시집 출간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시집 도 곧 나온다. 이번 여름이 끝나기 전에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달리기는 주로 언제 하나?
1회에 5~8km, 일주일에 두세 차례 달린다. 주변 에 러닝이 취미인 사람이 많아 “오늘 뭐 해요?”, “함께 뛸까요?” 같은 연락도 종종 온다. 매주 월요 일에는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인 김민준 코치에게 전문 교육을 받는다. 기록 경신보다는 계속 달리 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훈련 중이다.
언제부터 달렸나?
군 제대 후 왕성한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무작정 뛰었다. 별다른 훈련 없이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 하기도 했다. 5시간 만에 완주했는데, 너무 힘들 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20대여서 가능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뒤이어 출전한 대회에선 낙오했다. 그때만 해도 기록 경신에만 욕심을 냈다. 그러다 보니 달리는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와 달리기를 잠시 멈췄다. 30대 중반부터 러닝을 본격적인 취미로 삼았 다. 20대와 달리 30대부터는 기록에 대한 욕심을 살짝 내려놨다. 그러자 즐기면서 달릴 수 있게 되 었다. 이런저런 러닝 크루에도 참여해 다양한 사 람과 달리는 일도 흥미롭다.
러너(runner)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다.
달리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시인은 문장의 한계를
넘어서고, 기업체 대표는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시인, 에디터, 회사 대표 등 나의 정체성 중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모든 걸 아우를 만한 표현이
곧 ‘러너’라고 생각한다.
러닝 전문 잡지도 만들었다
〈러너스월드〉는 1966년 미국에서 창간한 글로벌 러닝 전문지로, 한 국판 초대 편집장을 맡게 돼 매우 영광이었다. 러닝은 상당히 전문적 인 운동이다. 잡지 에디터로서 업계 사람을 만나거나 관련 자료를 보 면서 이를 글로 풀어낼 줄 알아야 했다. 러너인 동시에 에디터인 내 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달리기의 매력은?
달리는 시간은 마치 명상을 하듯, 나를 치유하는 시간과 같다. 특히 밤에 달릴 때면 그날의 일기를 쓰는 기분이 든다. 달리기는 요가나 명상처럼 정서적 만족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내면의 여러 정서가 확장되는 느낌이다. 고민이 많은 때는 달리면서 생각도 정리하고 스 트레스도 푼다. 또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달렸다는 이유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 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시기에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내 모습에 도취될 때도 있다. 요즘엔 달리는 순간의 내가 제일 멋져 보인다.(웃음)
달리기가 글쓰기에 도움이 되나?
글이 술술 써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달리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한다. 뉴턴의 사과나무 일화처럼 말 이다. 또 오랜 시간 뛰면서 몸은 물론 마음의 근육도 단련할 수 있 다.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여러 번의 수정 과정을 반복했다. 어 떻게 보면 지지부진한 작업을 이어가는 데 달리기가 많은 도움이 됐 다. 오랜 달리기를 통해 무언가 견디는 데 익숙해진 거다.
달리는 일이 싫증 나거나 힘들 때는 없었나?
그럴 때가 종종 있지만 멈추기 싫어서 달린다. 그만두면 창피하니까. 자존심 때문에라도 가까스로 버텨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 또 어느 때는 몸이 원해 계속 달린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7년 가을에 미국 뉴욕시티 마라톤에 참가했 다. 세계적 대회인 데다 뉴욕 시내를 달린다는 점 에서 굉장히 설렜다. 오랜만에 풀코스를 뛰는데 하필 날씨가 좋지 않았다. 비바람을 맞으며 장장 7시간 만에 완주했다. 그중 3시간은 걷기만 했을 정도로 힘들었다. 특히 마지막 코스인 뉴욕 센트럴 파크에 진입 하면 수천 명의 관중이 환호를 보낸다. 그때부터 대부분 러너가 곧 끝난다는 안도감을 안고 달린 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2~3km에 불과 한 마지막 구간을 뛰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피 날레의 흥겨움이 가득한 곳에서 홀로 고군분투한 거다. 그 순간순간을 하나도 잊을 수 없다. 마치 슬로모션 효과를 걸어둔 것 같다.
그 순간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인간 승리를 한 기분이었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 해 난생처음 뉴욕에 갔는데, 낯선 풍경 속에서 다 양한 인종, 성별, 연령대의 러너와 함께 뛰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 시력을 잃은 사람, 계속 달리자 고 독려해 주는 참가자. 왠지 눈물이 흘렀다. 서럽 고 힘들었다.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 봤는데, 외 로웠던 것 같다. 길 위에 선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나에게 달렸다. 멈추든, 계속 달리든 혼자다. 그 레이스의 주인공은 오로지 나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라는 말에 동의하나?
사실 둘 사이에 연관성이 없으면 좋겠다.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이 라면 기록 경신에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몇 달에 걸쳐 준비하는 만 큼 1분 1초라도 기록을 단축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 다. 그런 면에서 인생과 마라톤을 같은 선상에 놓고 싶지 않다. 마라 톤 기록을 단축하듯, 인생의 시간도 앞당겨야 할 것 같아서. 그럴 필 요 없지 않나. 난 오래 살고 싶다.
달리기를 망설이는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혼자서 뛴다고 생각하면 조금 심심할 수 있다. 동기부여와 즐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러닝 모임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 함 께하면 그만큼 시너지 효과가 난다.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가 엄청나 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3km 정도를 목표로 하되, 걷고 뛰기를 반복 해 봐라.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가면 된다.
현재 준비 중인 대회가 있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몇 년간 마라톤 출전이 어려웠다. 오는 10월 에 열리는 ‘2022 서울레이스’에서 하프 코스를 뛰려고 한다. 개인 기 록을 경신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목표는?
첫 시집 출간 이후 또다시 시집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 음 시집을 좀 더 빨리 선보이고 싶다. 미남컴퍼니 대표로서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분위기의 회사를 꾸릴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한편 러 너로서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꾸준히 달리는 거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래오래 달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