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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모델에 중독된 정신과 전문의 권용석

하나부터 열까지 굉장한 몰입이 필요한 취미인 프라모델 만들기. 권용석 원장은 그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짜릿한 성취감을 즐긴다.

 

 

Profile 권용석•1981년생•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Profile 권용석•1981년생•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권용석 원장은 프라모델 중에서도 자동차만 전문으로 만드는 ‘프로 모델러’다. 실차의 구조와 근접한 정밀 재현을 하는 것이 그의 장기. 권 원장은 프라모델을 “바쁜 병원 진료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취미”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에 구애하지 않고 혼자 조립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내면에 집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 특히 엄청난 인내와 세심한 노력 끝에 프라모델 하나를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중독될 수밖에 없을 만큼 강렬하다.

 

언제부터 프라모델 만드는 취미를 갖게 되었나? 

도구를 갖추고 꾸준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 무렵부터다. 당시는 문방구에만 가도 조립식 장난감이 많았다. 자동차부터 로봇, 밀리터리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만들었다. 

조립은 당시 관련 잡지를 보며 독학했다. 지금은 대부분 없어졌지만 어릴 때만 해도 동네마다 ‘모형 숍’이 있어서 자주 드나들며 주인한테 궁금한 것을 물어보곤 했다. 처음에는 엉망이었지만 점점 빠져들어 열심히 하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되었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편인가?

궁금한 건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사촌 형이라도 오면 당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대신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며 자랐고, 어느 순간부터 프라모델을 하게 됐다. 

 

그동안 만든 프라모델은 몇 개나 될까? 

세 자릿수는 될 것 같다. 하지만 현재 갖고 있는 것은 30개 남짓이다. 보관을 제대로 하지 않아 망가진 것이 많다. 몇 년 전부터는 제대로 보관하고 있는데, 지금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때부터 관리해 남아 있는 것이다.

 

완성품을 버리는 게 아깝지 않았나?

나는 컬렉션보다는 만드는 과정을 즐긴다. 만들면서 충분히 즐겼으니 망가진 것에 대한 미련은 없다. 지금은 실수를 잘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만드는 과정에서 실패도 많이 했다. 같은 모델을 서너 번 만든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건 하나의 과정이다.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으니까 실패한 것은 과감히 버린다. 그래도 아깝지 않은 건 그 나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아이템은?

타미야라는 회사에서 나온 24분의 1 스케일의 ‘Nissan R89C’. 일반적인 형태로 나온 제품인데, 설명서대로 안 하고 차체의 반을 잘라 내부가 보이도록 만들었다. 제품에 없는 부분은 재료를 따로 사서 직접 제작해 채워 넣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고 공도 많이 들여 가장 애착이 간다. 내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프라모델 제품 설명서에 없는 걸 만들어내는 건 본인의 아이디어인가?

프라모델을 오래 한 사람은 설명서를 보지 않는다. 제품을 살 때 아예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계획이 서는데, 경험이 많으면 카탈로그만 봐도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관건은 어느 부분을 어느 정도 자르고, 어떤 질감으로 표현하고, 마감은 어떻게 할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Nissan R89C 역시 사전에 잘라낼 부위의 모양을 철저히 계산해서 각도를 맞추고, 계산대로 정확히 잘랐다. 타이어도 속이 꽉 차 있었는데 내부를 다 파내 비어 있는 느낌을 줬다. 엔진도 원래 모습에 전선 등 디테일을 추가했다. 

 

키트에 없는 재료는 어떻게 구하나?

플라스틱 판이나 철 등을 사다가 직접 자르고 붙이며 만든다. 만들려는 부품의 모양은 웹 검색을 통해 이미지 자료를 찾아 그대로 따라 한다. 실제 존재하는 차인 만큼 웬만하면 이미지 자료를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질감, 색감 등을 실제 모양과 똑같이,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인데 이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실제 이미지대로 그려서 자르고, 색을 칠하고, 만든 부분을 연결해 세상에 없는 부품을 만들다 보니 프라모델 하나 완성하는 데만 석 달 이상 걸린다. 하루 대여섯 시간씩 매달려도 그렇다. 

 

프라모델 세계는 굉장히 창의적인 것 같다

프라모델을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이 말에 동의한다. 회화 감각, 조형 감각, 공구 다루는 기술, 사진 찍는 법도 잘 알아야 한다. 사진의 경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사진으로는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중요하다. 프라모델이 사이즈가 작다 보니 사진으로 볼 때 정교한 표현이나 질감 등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인내와 집중력도 중요해 보이는데? 

그렇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프라모델을 쉽게 보고 호기롭게 덤볐다가 끈기 부족으로 실패한다. 차곡차곡 경험을 쌓다 보면 실력이 늘어나는 만큼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미션을 완성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의학을 전공하면서 프라모델 취미를 지속하기 어렵지 않았나? 

프라모델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장소와 도구가 필요해서 학업과 병행하기 쉽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취미이기에 의사가 되는 데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중3 때부터 본과 2학년까지 7년 정도 프라모델에 손대지 않았다. 그러다 2012년 군의관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쉬는 동안 해외 잡지나 책을 보면서 계속 공부했기 때문에 감각은 유지하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라는 업무에 프라모델이 도움이 되는지? 

업무에 직접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취미 활동이 삶에 즐거움을 주고 에너지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차에 연기가 난 상황을 연출했다. 
차에 연기가 난 상황을 연출했다. 

 

자동차 모형만 만드는 ‘전문 자동차 모델러’가 된 이유는? 

나는 세상에 없는 거대 로봇 같은 걸 만드는 데 흥미를 못 느끼는 타입이다. 건담도 만들어봤지만 별로 재미가 없었다. 건담 프라모델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다 보니 창의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처럼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실물을 어느 정도 있는 그대로 만드느냐가 포인트다. 만드는 성향도 크게 다른데, 자동차는 먼지 없이 깨끗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은? 

프랑스에서 열리는 자동차 레이스 ‘르망’에 출전하는 차들을 주로 만든다. 요즘 만드는 모델은 ‘Mazda 787B’로, 플라스틱이 아닌 메탈과 레진으로 만들어져 있어 다루기 까다롭다. 차체를 반으로 잘라서 내부가 보이도록 하는 게 목표다. 

 

변색 등을 방지하기 위해 신발장에 보관 중인 프라모델들 

 

프라모델은 만들려는 모델에 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고, 몇 달이 걸리든 끝까지 만들겠다는 의지도 요구된다. 과정을 견딜 수 있는 인내심과 집중력은 필수다. 복잡하고 난해한 설명서를 자세하게 읽거나, 혹은 설명서에 없는 방식을 창조해서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르망’에 출전하는 차에 집중하는 이유는?

르망에 출전하는 자동차들 중에서도 1980~1990년대 모델을 만든다. 요즘에는 실제 판매되는 모델이 출전한다면, 당시에는 오직 레이싱을 위해 디자인된 차만 출전했다. 특이하고 희귀한 모델이라 감성을 자극한다. 지금은 더 만들 모델이 없을 정도로 많이 만들었다. 할 게 없으니 이렇게 번듯한 차를 자르고 있는 거다.(웃음)

 

프라모델 하나를 만들 때 어떤 과정을 거치나? 

요즘은 온라인 쇼핑으로 제품 구입이 가능하다. 제작 회사마다 카탈로그가 있으니 그걸 보기도 하고, SNS나 웹사이트로 정보를 검색하기도 한다. 온라인 구매 후 제품을 받으면 부품을 쫙 펼쳐서 반드시 부품 검수를 한다. 

그다음부터 부품을 다듬고 도색과 조립을 병행하는데 차체 도색은 밑색, 본색, 바니시 도색 이후 광택 작업까지 해야 한다. 부품은 개별적으로 도색하고, 경우에 따라 데칼코마니 작업, 금속 가공 같은 복잡한 과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나의 경우일 뿐이고, 사람마다 각자 방식이 있다. 프라모델은 워낙 다양한 기법과 재료, 도구가 있기에 정답이 없다.

 

모델 하나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요즘은 퇴근 후 하루 한 시간, 주말 3~4시간만 하다 보니 완성하는 데 3~4개월이 걸린다. 지금 만들고 있는 건 6개월째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인데, 딱 한 시간만 하고 멈출 수 있나?

해야 한다. 우선순위를 두면 가족, 본업, 그다음이 취미다. 아무리 좋아해도 프라모델이 영순위가 될 수는 없다. 그게 하나의 취미를 오래 해온 비결이다. 나뿐 아니라 중년 남성 대부분은 가정, 사회에 소속되어 있으니 그것에 방해되는 취미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전해보고 싶은 모델이나 분야가 있다면?

프라모델로 특정한 장면을 연출하고 싶다. 예를 들어 커다란 트럭의 앞바퀴가 공중에 떠 있고 다른 차들을 뒷바퀴로 밟고 가는 장면이나, LED를 이용해 차에 불이 난 장면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장면을 만들어서 전시하는 것을 디오라마(diorama)라고 한다. 

 

디오라마를 시도해본 적이 있나?

판매되는 자동차 디오라마는 뻔하다. 정비하는 장면, 경주하는 장면이 전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장면을 창조해야 한다. 얼마 전에는 라이터만 한 차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만들었다. 솜으로 연기를 표현하고, 솜 안에 이쑤시개와 점토를 넣어 모양을 유지했다. 솜에는 검은색 명암을 줘 리얼리티를 더했다. 차 옆에 당황한 레이서를 세워뒀는데, 원래 자동차를 정비하는 제품 속에 들어 있던 정비사 인형이다. 레이서 인형이 없어서 정비사를 잘라 레이서 복장으로 도색했다. 

 

프라모델은 대표적인 키덜트 아이템이다. 어른 남자가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 

단순히 어릴 때의 추억 때문에 열광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미니어처는 만드는 사람에게 통제감을 갖게 한다. 내가 꿈에서 그리던 것을 컨트롤하는 느낌이랄까? 실제로는 레이싱 카를 컨트롤하지 못하지만, 축소된 세상에서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기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프라모델은 어떤 성향의 남자들에게 어울리는 취미일까?

만들고 조립하고 분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 성취감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프라모델로 재미있게 노는 방법을 알려달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야 한다.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하고, 도전해보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원하는 정도의 완성품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다. 그런 재미를 느끼려면 목표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목표가 있으면 다른 사람과 경쟁하게 되고, 취미와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가버린다. 프라모델은 무조건 재미로 하는 거다! 

 

 

권용석 추천! 프라모델 입문 팁

➊ 오래 한 사람들의 작품을 보지 마라. 나와 비교되면서 의욕이 떨어진다. 찾아보면 초보의 작품도 많다. 그것부터 참고하길. 

➋ 완성도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오래 하면 완성도는 자연히 높아진다. 

➌ 처음에는 설명서대로 해라. 오래 하는 게 가장 빨리 발전하는 길이다. 처음부터 온갖 기교와 기술을 시도하는 건 좋지 않다. 

➍ 설명서 내용이 부족할 때는 ‘구글링’하라. 실제 모델의 사진을 찾아보면서 만들면 쉽다. 구글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다. 

 

➎ ‘네이버 하비’ 사이트를 추천한다. 멋지고 희귀한 모델은 해외에 많지만, 처음에는 저렴하고 쉬운 국내 제품부터 도전하라. 

➏ 내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잘 모를 때는 자동차, 비행기, 건담, 밀리터리 등 다양하게 시도한다. 하다 보면 자신의 취향이 어느 쪽인지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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