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태 교수는 마케팅 분야에서는 슈퍼스타다. 2016년 출간한 <배민다움>은 ‘배달의민족’이 배달 앱 시장을 석권하고 새로운 유통 플랫폼을 만든 2020년에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혁신’이라는 키워드에 몰두해 있을 때 ‘차별화’라는 개념을 적극 주장했다. 세상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아이디어도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하고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에는 얼마 못 가 경쟁자에게 따라잡히기 일쑤이니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경쟁자들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우리 인생이 행복하려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기보다 남과 다른 나만의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년을 앞두고 사직서를 낸 이유는?
인생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30세까지는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시기이고, 그 이후부터 60세까지는 사회의 주축으로 활발하게 일하는 시기다. 그리고 은퇴 이후에는 자신이 이룬 것을 누리고 후대를 위해 기여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가 그 시기에 맞게 사는 것은 아니다. 50대에 들어서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조금씩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더라. 학교 일을 하면서 새로운 일을 도모하는 게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멍하니 있다가 ‘은퇴를 당하겠다’ 싶어서 과감하게 사직서를 낸 거다.
교수직을 그만두는 데 고민은 전혀 없었나?
‘은퇴 후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면서부터 마음에 새긴 말이 ‘새로운 일을 하라’였다. 자기 분야의 일을 계속하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니까. 그래서 1년 정도 다방면으로 새로운 걸 찾아다녔는데, 그때 내린 결론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공을 살리되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돈과 명예가 아닌, 자기 분야에서 공헌할 수 있는 역할이 뭔지를 찾는 거다.
그렇게 찾은 일이 무엇인가?
경리단길에 마케터를 위한 아지트 ‘모비브’를 만들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마케터들이 모여 강의를 듣고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다. 크게 시니어를 위한 모비브 아카데미와 2030 모비브 사관학교 두 파트로 나눠 활동한다. 모비브 아카데미는 ‘브랜딩’ 특강을 통한 스터디 모임이고, 2030 모비브 사관학교는 모비브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젊은 기업가와 마케터를 육성하고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양평에서 보내는 시간이 힐링 타임이라면, 이곳에서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한다.
양평 집은 어떻게 마련했나?
나의 ‘오두막’이다.(웃음) 남자, 특히 중년기에 접어든 남자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평소 음악을 듣는 게 취미인데, 아무래도 서울 집에서는 볼륨을 크게 해놓고 음악을 들을 수 없으니 늘 답답했다. 이곳을 마련한 이후부터는 한밤중에도 볼륨을 한껏 키우고 음악을 들을 수 있어 너무 좋다. 새벽에는 강줄기를 따라 물안개가 끼는데, 그때 음악 듣는 걸 가장 좋아한다.
<Den>이 바로 그런 취지로 만든 잡지다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시행착오는 없었나?
10년 전쯤부터 집 지을 땅을 알아봤다. 일단 조건은 나의 일터인 한양대에서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그러면서 주변이 번잡하지도 너무 외지지도 않은 곳. 그런 곳이 양평이었다. 지금 자리가 아닌, 다른 곳을 먼저 보고 마음에 들어 계약을 하고 집 설계까지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지인이 매물로 나온 이 집을 소개했다. 따로 손볼 필요 없을 정도로 구조와 입지가 마음에 쏙 들어 바로 계약을 했다. 아무래도 인연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물론 처음 구입한 땅은 아직도 안 팔려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얼마나 자주 와서 시간을 보내나?
원래는 주말마다 와서 재충전하고 책도 쓸 계획이었다. 그런데 현직에 있을 때는 너무 바빠 짬을 내기가 어려웠다. 1년에 몇 번밖에 못 온 해도 있으니까. 은퇴하고 나서는 ‘이제 좀 놀아볼까?’ 했는데, 어째 현직에 있을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웃음)
그래도 요즘은 주말마다 와서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쉰다. 음악 못지않게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한다. 소리를 키워놓고 큰 화면으로 보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스무 번 넘게 본 영화도 여기서 보면 처음 보는 디테일을 발견하기도 해 놀랄 때가 많다.
무엇보다 이곳은 내 영감의 원천이다. 아침의 고즈넉함도 좋고 한밤중의 고요함도 기가 막히다. 그런 분위기에서 집중이 더 잘될 수밖에. 운동선수들이 전지훈련을 떠나는 것과 같은 맥락이랄까. 전지(轉地)의 뜻이 ‘땅을 바꾼다’인데, 영어로는 ‘change the air’다. 분위기를 바꾼다는 뜻이다. 환경을 바꾸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영감을 얻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콘셉트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LP 양이 어마어마하다. 언제부터 모은 것인가?
미국 유학 시절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주리 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이후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했지만, 유학생 신분일 때는 영어가 달리다 보니 공부하기도 바빠서 취미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교수로 임용되고 나서야 여유도 생겼고,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였다. 무엇보다 당시 음반이 LP에서 CD로 넘어가던 시절이라 좋은 음반을 헐값에 살 수 있었다. 여기 있는 음반 대부분이 원판인데, 어떤 건 겨우 몇십 센트에 산 것도 있다.
다시 LP 붐이 일면서 한번은 내 음반을 통으로 사고 싶다며 거액을 제시한 사람도 있었다.(웃음) 물론 거절했지만. 하나하나 발품 팔아가며 모은 음반이다 보니 제각각 사연이 있고 자식처럼 느껴진다. 구하기 힘든 희귀 음반도 꽤 있는데, 이건 처남 덕을 좀 봤다. 처남이 이쪽으로 ‘선수’라 조언도 구하고 많이 배웠다. 자기가 모은 음반 중 전집 종류를 여럿 내게 선물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집에 있는 전축으로 음악 듣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음반도 모으게 된 거고,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오디오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남자가 하지 말아야 할 3대 취미’ 중 하나가 오디오라는데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은 열에 아홉은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좀 더 좋은 소리를 찾으려고 장비에 투자하다가 어느 순간 선을 넘는 것이다. 미세한 음질 향상을 위해 수천만원짜리 케이블을 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 역시 한때 장비병에 빠져 별짓 다해봤다. 금으로 된 케이블과 은으로 된 케이블 사이에서 고민한 경험도 있다. 이제는 타협점을 찾았지만, 주위를 보면 아직도 아낌없이 쏟아붓는 사람이 많다.
오디오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 해줄 얘기가 있다면?
내가 아무리 얘기해봐도 어차피 한 번은 ‘당해봐야’ 안다.(웃음) 그러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궁금한 기기들을 써보고 교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좋다. 그러다 언젠가는 결단을 내릴 순간이 올 텐데, 그때는 어쭙잖게 주변에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진짜 ‘선수’에게 조언을 얻어야 한다. 나도 에이프릴뮤직 이광일 대표에게 조언을 받았다. 국내 최고 명장이 “이 정도면 충분히 좋아요”라고 하는데 무슨 토를 달겠는가?
음악에서 브랜드 마케팅에 관한 영감도 받나?
예전에 레너드 번슈타인이 음악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거기서 클래식 음악 작법에 대해 설명했는데 주제가 있고, 변주가 있고, 리듬을 타는 일련의 과정이 있다. 이게 마케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케팅도 지식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변주를 하고 리듬을 타고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 사실 마케팅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동소이하다. 문제는 어떻게 전달하느냐다. 내가 이처럼 음악의 원리를 예로 들어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다들 색다르게 받아들인다.
개인에게도 ‘브랜딩’이라는 단어가 통할까?
물론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기 브랜드가 뭔지, 남들과 차별화된 점이 뭔지를 찾아야 하는 시대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수십 개의 브랜드를 관리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자기 이름 석 자다. 내 책에 나오는 ‘기업’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보자. 책 내용이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항상 1등만 기억한다고 하는데, 중요한 건 ‘어디서’ 1등을 하느냐다. 누구나 자기가 1등이 될 수 있는 분야가 있는데, 이걸 찾지 못하는 게 문제다. 그 카테고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 물론 크면 클수록 좋겠지만, 어쨌든 용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낫다.
은퇴 후 더 행복해 보인다. 비결이 뭔가?
나는 중년 이후의 남자들이 행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환갑이 넘은 내가 30대 젊은 CEO들과도 재미있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안 되면 ‘꼰대’가 되어 인적 네트워크가 점점 말라간다. 이런 공감 능력은 사실 젊을 때부터 부단히 연습해 몸에 배게 만들어야 한다. 나이 들어 갑자기 소통하겠다고 나서면 본인도, 타인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내가 음악을 들으려는 건지, 장비를 모으려고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되더라.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장비 공부하고 제품 검색할 시간에 차라리 음악 한 곡 더 듣자고 마음먹고는 지금 있는 시스템만 남기고 다 정리했다.” “시쳇말로 ‘아다지오’라는 말이 있다. ‘아XX는 닫고, 지갑은 오픈하라’는 말인데, 중년 이후 남자들은 이 아다지오의 미덕이 필요하다. 혼자 떠들지 말고 좀 들으라는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