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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입맛 홀린 K-푸드의 힘

외국인들의 입맛을 자극하며 빠르게, 또 폭넓게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K-푸드. K-컬처의 한 영역을 구축하며 새로운 기회를 노리고 있다.

  • 입력 2024.03.27 14:00
  • 2024년 4월호
  • 길정우(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 이사)

문화란 한 나라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서서히, 그리고 주변 분야와 동반해 진화한다. K-컬처도 예외가 아니다.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뉴진스의 활약이 축구선수 손흥민이나 프로 골퍼 고진영 등과 같은 시대에 벌어진다. 이러한 대세에 힘입어 K-푸드도 점차 관심을 받고 있다. 평소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우리 음식 문화가 언제쯤이나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까 궁금했다. 음식 또한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부터 세계 주요 도시에 고품격 한국 식당이 속속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주요 도시들의 식당을 평가하는 ‘미쉐린 서울편’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해외 한국 식당의 인기가 음악인들을 향한 세계인의 관심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흘렀다. 우리 음식을 통해 세계인에게 다가가려는 전문 셰프들의 집념과 성취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몇몇 기업의 관심과 공헌도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미쉐린 부산편’이 새롭게 추가된 데는 엑스포 개최를 추진했던 부산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한몫했을 것이다. 정부는 물론 대기업들이 모두 나서 뛰었던 엑스포 유치였던 만큼 새로운 시장을 겨냥해 미쉐린 기준에 걸맞은 몇몇 고품격 식당이 주목받는 건 오히려 당연하다.

미쉐린의 평가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음식이 갖는 맛과 멋이 세계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미쉐린의 식당 평가는 그 자체가 엄연한 사업이다. 그들 나름대로의 수익 구조를 확인해야 추진한다. 그런 만큼 한식이, 그리고 K-푸드가 세계시장을 향한 K-컬처 반열에 오르고 있음을 반영한다.

 

K-푸드의 세계적 인기, 셰프의 집념과 열정 덕분

K-푸드는 오너 셰프들의 노력과 창의력이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도시에서 각광받는 한식당과 한식 퓨전 식당들은 거의 모두 오너 셰프들이 이끌고 있다.

뉴욕 맨해튼의 ‘정식(Jungsik)’은 임정식 셰프가, ‘단지(Danji)’는 김훈 셰프가, 록펠러센터의 ‘나로(Naro)’는 ‘아토믹스(Atomix)’로 미쉐린 별 2개를 받은 박정현 셰프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이분들의 선배 격인 셰프는 샌프란시스코의 미쉐린 별 3개를 받은 ‘베누(Benu)’의 코리 리(Corey Lee)다. 작년도 미쉐린 서울편에서 별 3개를 받은 ‘모수’의 안성재 오너 셰프는 코리 리의 이끌림에 따라 본격적으로 미국 식당업계에 진출했다.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선보인 메뉴. ©jungsik_nyc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선보인 메뉴. ©jungsik_nyc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선보인 메뉴. ©jungsik_nyc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선보인 메뉴. ©jungsik_nyc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선보인 메뉴. ©jungsik_nyc
임정식 셰프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의 '정식'에서 선보인 메뉴. ©jungsik_nyc

서울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란 코리 리는 열일곱 살에 뉴욕의 스시 레스토랑 ‘블루리본 스시’에서 경력을 쌓으며 업계에 입문했다. 그리고 뉴욕에서 프렌치 퀴진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은 다니엘 불뤼 셰프, 고든 램지의 스승 기 사부아 셰프가 운영하는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수련하며 자신의 요리 세계를 넓혔다.

25년이 넘는 그의 셰프 경력은 2001년 토머스 켈러 셰프가 이끄는 ‘프렌치 런드리’에 합류함으로써 본격 궤도에 올랐다. 10년이 넘는 기간 그는 이 레스토랑의 헤드 셰프 자리에까지 올랐고, 뉴욕에 새로운 레스토랑 ‘퍼세(Per Se)’의 개점을 돕기도 했다.

코리 리 셰프는 2010년 샌프란시스코 도심에 자신의 레스토랑 ‘베누’를 오픈했다. ‘베누’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 혹은 ‘재탄생’을 뜻한다. 오픈 첫해에 ‘미쉐린 가이드’에서 2스타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3스타를 받게 된다. 아울러 샌프란시스코의 현대미술관 안에 ‘인 시투(In Situ)’를 오픈해 미쉐린 1스타를 받기도 했다. 라틴어로 ‘제자리(본향, 本鄕)’를 의미한다. 코리 리 본인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오랜 노력 끝에 자신의 레스토랑을 개점할 당시에는 새로운 탄생을 꿈꾸었던 그가 6년 후 또다시 새로운 식당을 오픈할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음식 분야에서 대표적인 잡지 <푸드앤와인(Food and Wine)>과 <사뵈르(Saveur)> 등에 단골로 등장하는 셰프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 ‘베누’ 소개와 메뉴 등은 파이돈(Phaidon)이라는 세계적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뉴욕타임스>는 올해 2월 23일 자 기사에서 샌프란시스코 지역 25개 베스트 레스토랑 중 하나로 ‘베누’를 꼽았다.

코리 리 레스토랑 '베누'의 메뉴들. ©benu_sf
코리 리 레스토랑 '베누'의 메뉴들. ©benu_sf
코리 리 레스토랑 '베누'의 메뉴들. ©benu_sf
코리 리 레스토랑 '베누'의 메뉴들. ©benu_sf

 

빠르고 폭넓게 확장하고 있는 K-푸드

외국 땅에서 한국에 뿌리를 둔 셰프들은 한국과 아시아적인 맛을 서양식 혹은 세계적인 미각에 접목하면서 자신만의 창의적인 맛과 요리를 만들어낼 때 좋은 평가를 받는 게 통상적이다. K-푸드가 바깥세상에서 각광받는 것도 무언가 우리만의 미각 혹은 식재료나 조리 방식 등에 천착하며 서양식으로 훈련받은 조리법이나 미각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창의적 요리를 만들어낼 때 가능하다.

그런데 소위 파인 다이닝으로 시작해 고급 식당의 요리로 인정받는 경우만을 K-푸드 범주에 넣어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다소 애매하다. 고객들이 한국 출신 유명 셰프의 음식이라서 우리 돈 40만~50만원씩 내며 즐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음식 그 자체로 수준 있는 맛을 창출하고 만족감을 준다는 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식이거나 가성비 측면에서 만족도가 높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코리 리 셰프와 함께 미국 레스토랑 비즈니스에서 주목받아 온 데이비드 장(장석호) 셰프를 꼽을 수 있다. 일반 미국인 사이에 인기를 누린 그의 초기 메뉴들은 파인 다이닝이 아니라 패스트푸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독창성과 비즈니스 감각이 합쳐져 인기를 누렸고, 다양한 장르의 식당으로 영업을 확장해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모모푸쿠(Momofuku, 桃福)’를 시작으로 뉴욕뿐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라스베이거스의 식당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식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독창성을 각인시켰다. 주목받는 식당과 세프들에게 시상하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상을 세 차례나 받은 것도 그 덕분이다. 요리책 출간은 물론 TV 방송이나 자신의 포드캐스트, 그리고 넷플릭스 <디너타임 라이브(Dinner Time Live)>까지 운영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요리 분야를 넘어 페이스트리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는 셰프도 있다. 김나래는 파리 파크하얏트호텔에서 일한다. 당진 출신인 그가 페이스트리의 본고장 파리에서 배우고 일하면서 한국 출신 셰프의 이름을 날리고 있다면, 2022년 여름 오픈한 뉴욕 맨해튼 ‘리제(Lysée)’의 이은지 셰프는 김나래 셰프와 마찬가지로 배와 유자 등 한국 과일과 현미, 간장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작년 5월 1일 페이스트리 세계를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한국 출신 셰프들을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리제(Lysée)’의 이은지 셰프는 배와 유자 등 한국 과일과 현미, 간장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lslee_nyc
‘리제(Lysée)’의 이은지 셰프는 배와 유자 등 한국 과일과 현미, 간장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lslee_nyc
‘리제(Lysée)’의 이은지 셰프는 배와 유자 등 한국 과일과 현미, 간장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lslee_nyc
‘리제(Lysée)’의 이은지 셰프는 배와 유자 등 한국 과일과 현미, 간장 등 우리에게 익숙한 식자재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며 주목받고 있다. ©lslee_nyc

최근 K-푸드는 셰프들이 닦아놓은 명성에 힘입어 그 영역을 점차 확장해 가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베누’나 뉴욕 록펠러센터의 ‘나로’가 파인 다이닝 한식당이라면, 비비고의 다양한 밀키트나 삼양식품의 불닭비빔면 시리즈는 보통 사람을 위한 브랜드로 각광받고 있다.

바깥에서 본 K-컬처의 현주소는 정부와 민간이 긴밀하게 협력해 이룬 결과다. 하지만 K-푸드는 조금 다르다. 철저하게 몇몇 셰프들의 고군분투 덕에 이만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몇몇 기업인들의 관심과 기여가 이들의 외로운 노력에 크게 힘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힘든 여정에 단기적인 격려를 넘어 지속 가능한 버팀목이 되는 것은 한국인들이 한식 파인 다이닝에 지갑을 열 수 있는 자존감과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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