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존심이 무너진 자리에 자긍심이 피어난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작가

지난해 가을 무렵 시작된 쇼펜하우어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철학 교양서 최초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저자
강용수 작가를 만나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 물었다.

 

 

ⓒ Den
ⓒ Den

 

반년 정도 됐다. 서점 베스트셀러에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보이기 시작한 것. 그리고 이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 쇼펜하우어에 대해 아는 거라곤 ‘자살을 찬미한 염세주의 철학가’라는 얕은 지식뿐이었다. ‘힐링’ 에세이가 가득하던 베스트셀러 라인업에 자리하기엔 다소 어색한 인물이었다. 염세주의가 트렌드로 자리 잡는 건가 싶었다.

 

쇼펜하우어 인기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지난 2023년 11월,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배우 하석진이 출연했다. 하석진은 평소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라 불리며 지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그가 한 식당에 일찍 도착해 오픈할 때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읽은 책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다. 잠깐의 틈에도 철학책을 읽는 그의 모습이 부지런한 삶을 갈망하는 대중 사이에 화제가 된 것. 이 방송을 계기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 교양서 최초로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오른다.

 

이를 시작으로 쇼펜하우어가 본격적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한때는 대형 서점을 기준으로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쇼펜하우어의 책이 네권이나 오르기도 했다. 잠깐의 유행이라고 말하기엔 꽤나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다. 현시대는 어쩌다 쇼펜하우어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걸까.

 


 

ⓒ Den
ⓒ Den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감사한 일이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막상 이런 상황을 맞으니 기분이 좋더라.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베스트셀러 순위를 확인하곤 한다.(웃음)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다. 굳이 생각해 보면 ‘진심이 통했다’고 볼 수 있겠다. 과거에는 남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힘들고 비굴하게 지낸 경험이 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참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닌, 그저 나 자신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진심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전달됐다고 생각한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와 더불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담은 책이 대중에게 인기다. 위로를 전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룬 요즘, 냉소주의로 대표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주목받는 셈이다

쇼펜하우어는 헛된 위로를 건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든 인생은 고통’이라며, 고통을 직시하고 일상에서 만족을 찾으라고 말한다. 최근 몇 년간 희망과 노력을 강조한 책이, 시간이 지나도 고통을 겪는 이들에겐 ‘헛된 위로’로 느껴졌을 것이다. 현실적인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쇼펜하우어의 위로가 대중에게 와닿은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쓰기 전, 유튜브에 쇼펜하우어를 검색해 봤다. 그런데 생각보다 쇼펜하우어에 대한 오해가 많았다. 단적인 예가 고독에 대한 설명이다. 쇼펜하우어는 남에게 상처받아 혼자 지내는 것을 의미하는 비자발적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자발적 고독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타인과 거리를 두고 책도 읽으며 스스로를 대면하라는 의미다. 온라인에는 두 고독에 대한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 같다.

 

또 쇼펜하우어를 자살을 찬미한 염세주의자로 알지만, 실은 자살은 어리석다고 말했다. 자살해 봤자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라기보다는 현실주의자에 가깝다.

 

책에 담은 내용이 궁금하다

핵심 키워드는 ‘품위’다. 품위는 자신만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존심이 한 번 꺾일 필요가 있다. 내 능력을 남에게 온전히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이 온다. 자존심이 깨져 바닥을 치고 나면 자긍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남의 기준으로 사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만족하는 것이 자긍심이다. 품위는 자긍심에서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100점’만 찾는 것 같다. 물론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100점이면 좋겠지만, 100점만 좇다 보면 분명히 꺾이는 순간이 온다. 100점은 사실상 허영에 가깝다. 남이 보기에 80점이더라도 스스로 100점이라고 생각하는 자긍심을 갖는 것이 품위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쇼펜하우어가 직접 ‘품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 ‘품위’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스스로 당당하게, 품위 있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것 같다.(웃음)

 

만족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욕망으로 가득하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고통스럽다. 욕망이 충족되면 잠시 행복하지만, 곧 또 다른 욕망이 생긴다. 욕망이 충족되는 짧은 순간의 작은 행복에 만족하라는 의미다.

 

욕망은 크게 생물학적 욕망과 사회적 욕망으로 구분한다. 현대인은 사회적 욕망으로 많은 고통을 받는 것 같다. 배가 고파 괴롭기보다는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 남의 만족과 비교하며 고통받는 것이다.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 고통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Den
ⓒ Den

 

40대가 되면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을 겪는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과장하고 포장하다가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겪어봐야

자신의 능력을 믿는 자긍심이 생긴다.

자존감이 무너진 자리에 자긍심이 생기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인생은 고통인데,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통은 욕망에서 비롯되고,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하나의 고통이 제거되면 또 다른 욕망이 대기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고통을 없앨 수는 없지만, 이 모든 고통이 의미 있다고 본다. 인간이 불행과 고통을 겪으면서 지혜를 얻는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고통을 배에 실은 짐의 무게에 비유했다. 배가 너무 가벼우면 작은 파도에도 뒤집히지 않나. 반대로 짐이 너무 많으면 배가 가라앉는다. 어느 정도의 고통, 근심이 있으면 웬만한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인간이 고통을 겪으며 겸손을 배우고 지해를 쌓는 것이다.

 

‘고통은 욕망에서 나온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현대인이 고통스러운 건 지금이 욕망 과잉의 시대이기 때문일까?

글쎄, 굳이 따지자면 ‘생각이 많아서’라고 할 수 있겠다. 생각, 즉 정신이 있기에 과거에 대한 관심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데, 이것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

 

인간은 신체의 욕망과 정신의 욕망이 구분되는데, 우리는 정신을 과하게 믿는 것 같다.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하지 않나.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정신이 아무리 몸을 통제하려고 해도 장기는 계속해서 살기 위해 움직인다고 말했다. 인간의 몸 자체가 욕망이다. 신체의 어떤 장기도 욕망하지 않는 것이 없다.

 

많은 생각을 경계한다고 볼 수 있겠다

생각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역할이다. 몸이 욕망의 주인이고, 정신은 생존을 돕는 역할인 셈이다. 생존을 위한 욕망이 충족되면 뇌는 권태를 느낀다. 권태도 고통이다. 따분한 뇌를 다스리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 Den
ⓒ Den

 

개인적으로 이 책의 판매량이 줄었으면 좋겠다.

결국은 뭔가 고통을 많이 받고, 힘들어서 보는 게 아닌가.

이 책의 인기가 떨어지는 시점이면 많은 사람이 그래도

삶이 조금은 나아진 때가 아닐까 싶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가치인 ‘나다움’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그렇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핵심이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 나다움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다. 그래서 자아 성찰 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다른 걸 떠나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나다움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조건에서 90%를 차지하는 것이 건강이라고 봤다. 평소에는 건강하다고 행복을 느끼지 않지만, 병이 들고 아파 봐야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해 쇼펜하우어는 뭐라고 말했나?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그저 견디는 것이라고 하면서, 미래에 대해 엄청난 상상은 하지 말라고 한다. 미래를 상상하면 스스로 상처받기 때문에 현재를 견디는 데 집중하라고 말한다.

 

미래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란다. 그 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말년이 잘 풀린 사람이다. 오래 살다 보면 쇼펜하우어처럼 좋은 일이 있을 지 모르는 것이다.

 

 

저작권자 © 덴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