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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법

피사체를 대하는 사진가의 철학은 무엇인가? 김재욱 원장의 고민이다.

  • 입력 2023.04.17 09:36
  • 수정 2023.05.24 14:25
  • 2023년 5월호
  • 김구용 에디터
Profile  김재욱• 1973년생• 민트병원 대표원장
Profile 김재욱• 1973년생• 민트병원 대표원장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의대 1학년 때 몽골로 의료 봉사를 하러 갔다. 1학년이 의료 봉사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열심히 심부름하고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막상 찍으려니까 아쉽더라. 기왕 멀리 가는데 좀 갖춰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SLR 카메라를 장만했다. 그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붙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취미로 이어진 계기는?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교회 활동을 하는데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까 어느 순간 내가 우리 교회 전속 사진가가 되어 있었다. 교회 행사에서 사람들을 찍다 보니 뷰파인더 속 사람들의 감격적인 순간을 목격하게 되고,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경험이 이어졌다. 그때의 쾌감을 잊을 수 없는 데다 영원한 기억으로 남아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된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이 부분에서 사진의 맛을 느낀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연출보다는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아내는 캔디드 포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다음 수순은 ‘장비병’이었을 듯하다

대한민국 취미 사진가라면 아마 다 똑같지 않을까? 나도 디지털카메라 초기에는 캐논 크롭 보디부터 풀프레임 보디, 흔히 말하는 ‘백통’과 대구경 렌즈를 다 써봤다. 그렇게 장비를 갖추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 순간 사진이 취미가 아닌 노동으로 다가왔다. 당시 가벼운 미러리스 카메라가 막 출시되던 때인데, 이상하게 미러리스는 끌리지가 않더라. 그러던 차에 ‘라이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다. 크기는 작은데 오히려 내가 원하는 순간을 담는 용도로 활용하기에는 더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카메라 좀 만져본 사람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라이카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라이카 보디를 들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DSLR을 사용하다가 RF 시스템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라이카는 레인지포커스(RF) 방식의 카메라다. 오토포커스는 차치하고, 초점 링을 돌려 뷰파인더 안에 보이는 희미한 두 상을 일치하게 만들어 초점을 맞추는 ‘이중 합치’ 방식이다. 이게 처음 보면 초점이 정확히 맞은 건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일반적인 SLR 카메라와 달리 보이는 대로 찍히는 게 아니어서 생각한 구도에서 구석이 약간 잘려 나가는 경우도 있다. 행사 사진을 찍으려면 애로 사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라이카로 기변한 후에는 행사 사진을 안 찍었다. 사진은 목적에 따라 필요한 장비가 다르다. 스트리트 포토, 캔디드 포토라고 하는 카테고리에서 결정적 순간을 담기 위해서는 라이카처럼 작고 티 안 나는 카메라가 어울린다. 마침 그때쯤 후배가 내 역할을 물려받기도 해서, 난 내가 찍고 싶은 사진만 찍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불편함은 어떻게 극복했나?

조금 쓰다 보니 앞서 말한 단점이라고 생각한 요소들이 장점이 되었다. 조리개 수치와 렌즈의 화각, 피사체와의 거리로 계산하는 피사계 심도를 이해하고 나서 내 렌즈의 특성을 알게 되면 렌즈의 거리계만 보고도 정확하게 초점을 잡을 수 있다.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원하는 피사체를 발견하면 다가가면서 뷰파인더를 보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결과물을 상상하며 조리개 수치를 맞춘 후 다가가면서 거리계를 확인해 초점 영역을 예상한다. 좁은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보면서 원하는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초점 포인트를 조작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머릿속으로 결과물을 그리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난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에 카메라를 들어 구도만 확인하고 셔터를 누르면 내가 원하는 사진이 찍힌다. 이 방식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자동카메라의 AF 성능에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촬영이 가능하다.

 

카메라는 항상 휴대하나?

안 갖고 다니면 허전하다. 사실 요즘은 사진을 많이 찍지 않는데, 그럼에도 들고 다닌다. 이런 ‘핸디’함이 라이카의 또 다른 장점이다. 장기간 도보 여행 시에는 무게를 1g이라도 줄여야 한다. 무거운 걸 짊어지고 가면 걷다가 하나씩 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예전에 한 달간 아내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적이 있다. 그때가 막 라이카로 넘어가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M 보디 하나에 50mm와 28mm 렌즈 딱 두 개만 들고 떠났다. 그렇게 작으니까 여행도 무사히 마쳤고, 기억에 남는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가?

예를 하나 들어보자. 수렵시대를 거치며 우리 몸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놓고, 음식을 먹지 못할 때는 신체에 저장된 잉여 영양분을 꺼내 쓰는 식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현대인은 그 잉여 영양을 꺼내 쓸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음식을 섭취한다. 그러고는 옛날로 돌아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이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버리는 사진’이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노출과 구도를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셔터를 눌렀을 상황에서, 요즘은 그냥 수십 컷 찍은 뒤 한 장을 남기는 식이다. 남은 사진은 쓰레기가 된다. 이런 모순을 깨닫고 나서 ‘사진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라이카에서 LCD가 없어서 찍고도 사진을 볼 수 없는 디지털카메라인 M10-D가 나왔길래 바로 구입했다. 지금도 주력으로 쓰고 있는 보디다. 찍고 마음에 안 들면 버리고 새로 찍는 패턴이 불가능하니 한 컷 한 컷이 소중해졌다. 전원을 켜기 전 촬영 의도에 따라 노출을 오버로 잡을 것이냐, 언더로 잡을 것이냐 판단해 노출값을 세팅한 뒤 결정적 순간을 기다려 셔터를 누른다.

 

사진의 본질로 돌아간 듯하다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이 카메라가 너무 좋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모순인 것이 이 보디는 와이파이 기능이 있어 이미지를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볼 수가 있다. 가끔 M10-D로 찍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보는 내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다.(웃음)

 

라이카 특유의 ‘느낌’에 대해 동의하나?

색감이 ‘진득하다’거나 ‘쨍하다’는 표현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라이카는 찍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카메라다. 그리고 콤팩트한 사이즈에서 오는 캔디드 포토에서의 장점. 마지막으로 최신 기술로 무장한 카메라들이 각축을 벌이는 시대에 불편함을 끌어안은 채 사진의 본질에 다가서는 브랜드라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이 있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라이카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항상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세팅하고 걸으면서 주변을 살폈다. 이 사진 속 인물은 순례길 일부 구간을 함께 걸은 필립 할아버지다. 당시 일흔 가까운 나이였는데, 정년퇴직 후 인생을 돌아보고 계획하기 위해 순례길에 나섰다고 하더라. 인생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새로 출발하려고 준비한다는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순서는 산티아고 성당 미사 참례다.  미사를 드린 후 수많은 사람이 물밀듯 빠져나가는 가운데 하얀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기도 중인 필립이 보였다. 그 순간을 카메라에 조용히 담았고, 이후 한국에 와서 메일로 보내줬다. 순례길에서 삶으로, 대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에게 많은 감동을 준 분이다. 지금도 내 진료실 벽에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고 계신다. 이 사진도 사진사의 존재감을 숨겨 주는 라이카였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혹은 영향을 받은 사진가가 있다면?

아무래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우선이다. ‘결정적 순간’에 대한 개념을 고민하고 만들어낸 데다 그 순간을 가장 잘 잡아낸 작가니까. 라이카의 정체성과 가장 잘 맞는 사진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종진 작가다. 이분의 사진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포토 저널리즘과 사진가의 철학에 대한 강의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사실 사진은 폭력적이다. 피사체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진가가 주제를 만들어낸다. 간혹 가난을 팔아 작품을 만드는 듯한 사진이 있다. 혹은 캠페인이나 좋은 뜻이라고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필름에 담을 때도 있고. 이 과정에서 사진가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어떤 생각을 갖고 촬영에 임해야 하는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내 사진은 결정적인 순간과 우리 일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쪽으로 점점 변화했다. 언젠가 출근길에 횟집 근처를 지나는데 방어로 보이는 큰 생선을 내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때 빛이 너무나도 좋아 홀린 듯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때마침 빛도 도와주는 상황, 그런 결정적인 순간이면서도 아름다운 일상을 담고 싶다.

 

명품으로서 라이카가 갖는 의미가 있을까?

지금 시대에 이렇게 불편한 카메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유저도 많지 않은데 수많은 전문가가 손을 모아 하나의 제품을 만든다. 사실 밑지는 장사다.

 하지만 라이카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라이카라는 브랜드가 명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소니, 캐논, 니콘 같은 대중적인 브랜드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돈이 안 되니까. 말도 안 되게 비싼 가격이지만 그 불편함을 끌어안고 사진 본연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건 라이카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라이카의 가치다. 하지만 앞으로도 시장에서 계속 먹힐지는 잘 모르겠다. 라이카도 고민이 많을 거다.

 

라이카를 사용한다는 부담감이 있을까?

아내가 항상 말한다. “이렇게 비싼 카메라를 쓰는데 사진은 왜 이 모양이야?”

 

어떻게 답하나?

사진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제일 잘 나온다.(웃음) 라이카는 남들 보기에 좋은 사진,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쓰는 게 아니다. 그런 사진 찍으려면 소니 같은 브랜드의 고성능 보디와 렌즈로 조명 터뜨려가며 찍으면 된다. 계속 얘기한 것처럼 라이카는 내가 원하는 순간을 담기 위해 쓰는 거다. 그러니 브랜드와 관련한 논쟁에서는 초탈하게 되더라.

 

바쁜 가운데 사진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일상이다. 만약 모델 사진이나 풍경 사진을 찍는다면 그 촬영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출근하다가 빛이 좋으면 잠깐 멈춰 서서 찍고, 퇴근하다가도 아름다운 장면을 보면 또 찍는다. 내 촬영 스타일이 이런 식이다 보니 사진을 계속 찍을 수 있었다.

 

라이카에 관심이 생긴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라이카는 확실히 호불호가 나뉘는 카메라다. 관심이 있다면 연식이 조금 지난 카메라를 중고로 구매해 사용해 보기를 권한다. 사용하다 그 매력에 빠지면 더 좋은 기종이나 렌즈를 구입하고, 맞지 않는다면 되팔아도 수업료치고는 많이 들지 않을 거다.(웃음)

 

요즘은 무엇이든

너무 풍족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사진도 그렇다.

너무 흔해서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

그렇지만 자신만의 의미를 담는다면

무엇보다 소중한 사진이 되고,

그 과정인 사진 찍기는 흥미진진한

취미가 되리라 생각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중 만난 순례자 ‘필립’, 2015년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중 만난 순례자 ‘필립’,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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