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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 ‘IAA 2023’ 현장 르포

전기차, 자율주행, 모터쇼의 비전은?

  • 입력 2023.10.26 15:19
  • 수정 2023.11.07 08:25
  • 2023년 11월호
  • 김형준(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전시장에 시민들이 찾아가야 했던 글로벌 모터쇼의 틀이 완전히 깨졌다. 독일 완성차 3사를 비롯한 수많은 완성차 업체들은 ‘전시장 탈출’을 감행하고, 개최지 중심 곳곳에 자리잡았다.

메르세데스-벤츠 CLA 콘셉트카 ⓒ셔터스톡
메르세데스-벤츠 CLA 콘셉트카 ⓒ셔터스톡

 

전시장은 ‘미팅 포인트’로 활용

지난 9월 5~10일 독일 뮌헨 일대에서 열린 아이에이에이(IAA)는 옛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의 명성을 이어받은 명실상부 세계 최대 모터쇼 가운데 하나다.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파리, 북미 행사와 함께 ‘세계 4대 모터쇼’로 꼽히는 IAA에선 올해 독일 완성차 3사의 전동화 전환 방향성을 비롯해 글로벌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신차들이 대거 공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차에 들어갈 배터리 기술을 들고 나온 삼성SDI를 비롯해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가 각각 반도체와 차량용 디스플레이 등 전장(電裝·차량 내 전자장비) 기술을 소개하며 관심을 모았던 무대다.

그런데 과거였더라면 신차와 신형 콘셉트카, 그리고 미래 기술들이 즐비해있어야 할 전시장은 꽤나 썰렁해졌다. 배터리와 전장 기업들의 기술 소개가 활발한 반면 완성차 기업들은 신차 또는 회사 차원에서 개발한 전장 기술 소개에 초점을 뒀다. 가능한 한 크게 벌렸던 회사별 전시 공간 면적을 줄이는 대신, 회의나 접견 장소를 더 늘려 고객사들과의 교류에 힘을 더 쏟은 모습이다.

독일의 대표 완성차 기업인 벤츠와 BMW, 폭스바겐그룹도 마찬가지.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아예 이번 행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전시 차종들을 ‘오픈 스페이스’에서 공개했고, 폭스바겐그룹도 오픈 스페이스에 마련된 전시장을 더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

오픈 스페이스에 마련된 전시장에 집중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 ⓒ셔터스톡
오픈 스페이스에 마련된 전시장에 집중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 ⓒ셔터스톡

 

미래차 비전 ‘오픈 스페이스’에서 공개

실제 IAA 기간 뮌헨은 도심 전체가 모터쇼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올드 타운(구도심)’의 중심이자 관광 명소인 ‘막스 요셉 광장’은 뮌헨에 본사를 둔 BMW의 전시 공간이 마련됐고, 옛 바이에른 왕국 통치자였던 비스텔바흐가의 본궁 ‘뮌헨 레지덴츠’에는 메르세데스-벤츠가 깃발을 꼽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 프랑스 파리의 샹제

리제 거리처럼 뮌헨의 상징적인 거리 ‘오데온 광장’에는 폭스바겐과 중국 BYD, 보쉬 등 수많은 기업들이 야외 전시장을 마련했다. 아우디와 포르쉐는 오데온 광장 인근 비텔스바흐 광장에 전진 기지를, 도시의 ‘랜드마크’ 격인 마리엔 광장에는 IAA 포럼 공간이 마련됐다.

이곳 도심에 마련된 오픈 스페이스는 밤낮으로 관객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맥줏집 정도를 뺀 나머지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는 시간에도 BMW는 오픈 스페이스에서 아예 ‘나이트 파티’를 열고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기념품과 음료, 칵테일을 아낌없이 나눠줬다.

시민들은 자유로이 이 곳을 들러 BMW가 처음 공개한 콘셉트카 ‘비전 노이어 클라쎄(Vision Neue Klasse)’와 신형 미니 컨트리맨 3세대, 뉴 5시리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그리고 바이크 브랜드 모토라드의 ‘CE 02’ 등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신차 공개의 현장이자, 축제의 장이 된 것이다.

BMW가 최초로 공개한 콘셉트카 ‘비전 노이어 클라쎄’ ⓒ셔터스톡
BMW가 최초로 공개한 콘셉트카 ‘비전 노이어 클라쎄’ ⓒ셔터스톡

 

현장에서 만난 BMW코리아 관계자는 “BMW 본사가 있는 뮌헨에서 열린 만큼 가장 많은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장소(막스 요셉 광장)에 넓은 공간의 오픈 스페이스를 차릴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시민들을 메쎄(도심에서 대중교통 약 30분 거리)로 부르기보다 신차들이 시민을 찾아간 행사라 반응이 뜨거웠다”고 했다.

벤츠의 전시장은 하나의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공식 행사장인 메쎄에서의 전시 공간규모를 확 줄였던 메르세데스-벤츠는 뮌헨 레지덴츠 마당 한 가운데에 2024년형 E클래스 왜건 ‘올 터레인’을 최초 공개하는 등 최근까지 발표한 콘셉트카와 신차들을 줄줄이 전시했다.

핵심은 붉은 천막에 가려진 특설 전시공간. 이 곳에서는 벤츠 전기차의 방향성을 선보일 ‘콘셉트 CLA 클래스’를 모셔뒀다. 관람객들은 암실처럼 만들어진 특설 전시장 내부로 들어가 조명에 휩싸인 붉은색 콘셉트 CLA 클래스의 전면을 둘러볼 수 있었다. 차량이라기보다, 하나의 작품을 세워 둔 공간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콘셉트카 ‘비전 원-일레븐’ ⓒ셔터스톡
메르세데스-벤츠의 콘셉트카 ‘비전 원-일레븐’ ⓒ셔터스톡

 

사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전시장 밖 모터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파리모터쇼 기간엔 아예 공식 전시장인 ‘포르트 드 베르사유’에 전시 공간을 마련하지 않은 채 로댕박물관을 통째로 빌려 메르세데스-벤츠의 첫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E SUV’를 최초로 공개했다.

이 곳을 찾은 시민과 관계자들이 차량과 어우러진 박물관 전시품들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특히 파리에서도, 뮌헨에서도 핵심 공개 차종은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실내에서 여유롭게 찬찬히 살펴볼 수 있도록 세심한 공간 구성까지 곁들인 점도 인상 깊은 대목이다.

BYD 야외 부스 ⓒ김형준<br>
BYD 야외 부스 ⓒ김형준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간 신차들

오데온 광장에서는 약 500m에 달하는 거리 전체가 하나의 오픈 스페이스로 꾸려졌다. 폭스바겐은 내연기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 라인업인 ID.패밀리(ID.4, ID.5, ID.7), 최초 공개되는 콘센트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소개했다.

방문객들은 전시 차량들을 직접 들여다보고 타 볼 수 있었고,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을 위해 한 켠에는 작은 영화관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친환경차의 미래를 보여주는 영상을 소개하기도 했다. 폭스바겐 관계자는 “전시 공간은 전시 후 재사용이 가능한 목재와 유리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제네시스 스튜디오에서 전시된 ‘X 컨버터블’ 콘셉트카 ⓒ김형준<br>
제네시스 스튜디오에서 전시된 ‘X 컨버터블’ 콘셉트카 ⓒ김형준

 

오픈 스페이스를 차리지 않았지만 평상시 이 거리에 차량 전시장을 마련해 운영 중이던 미국의 고급 전기차 브랜드 루시드는 물론, ‘X 컨버터블’ 콘셉트카를 전시 중인 현대차의 ‘제네시스 스튜디오’에도 관람객들이 몰려 낙수효과를 본 모습이다.

제네시스 스튜디오 1층에는 ‘X 컨버터블’이, 2층에는 ‘GV60’과 ‘GV70’, ‘G80’ 전기차 모델이 전시돼 있었는데, 이곳 관계자 역시 IAA 기간 동안 방문자가 크게 늘어 퍽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도심 전체에 펼쳐져 있는 오픈 스페이스는 예술과 문화를 결합한 공간으로 온 가족과 모든 연령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는 IAA 주최 측의 전략이 나름대로 들어맞았다는 얘기다.

르노의 혁신기술 집약한 콘셉트카 ‘H1st’ ⓒ셔터스톡
르노의 혁신기술 집약한 콘셉트카 ‘H1st’ ⓒ셔터스톡

 

위상 떨어지고 있는 국내 모터쇼에도 힌트 될까

업계에서는 이번 IAA에서 보인 완성차 브랜드들의 실험적 행보를 의미있게 보고 있다. 기업들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온라인 신차 발표 효과를 어느 정도 확인한 데다, 비용 문제 등으로 행사 참가를 꺼리는 브랜드도 많아 모터쇼 위상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차와 기아, 토요타 등 아시아 강자들은 지난해 파리모터쇼에 이어 올해 IAA에도 불참하는 등 ‘선별적 참여’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빠진 자리에는 BYD와 CATL 중국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들이 전시장을 차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시장 밖 모터쇼’는 국내 모터쇼에도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지난해 7월 열린 부산국제모터쇼에 수입차 브랜드로는 BMW만 참가해 간신히 ‘국제’행사 위상을 지켜내는 등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IAA처럼 개최도시와 협력을 통해 시민들에 한 발 다가서는 방법이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한복판에 현대차의 신차가, 광안리 해수욕장 한복판에 기아의 콘셉트카가 전시된다면, 더 큰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서울모빌리티쇼 역시 관계 기관 협조를 이끌어 광화문광장이나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등 도심에 밀집된 명소에 브랜드별 대표 차종을 전시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 하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사실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해 여러 종류의 허가, 비용 등 부담은 큰 행사”라면서도 “전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기보다 도심에서 더 많은 시민들과 호흡하는 게 효과는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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