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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 가슴 뛰는 연구를 한다”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이용호 교수

새로운 만성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해 노화 연구에 몰입한 의사를 만났다. 젊은 의학상을 휩쓸고 있는 그는 “내 연구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Profile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rofile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이용호 교수는 인터뷰 내내 ‘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명의로 추천받은 이유를 물었을 때도, 젊은 의학상을 다수 수상한 이유를 물었을 때도 자신의 연구가 운 좋게 두각을 나타내 그런 것 같다고 겸손하게 답하며 웃었다. 해외 연수 기간에 있었던 일을 물으니 미국 연구 환경을 벤치마킹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며 연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국내 의학교수들이 연구에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는 필자의 말에 “아버지(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를 역임한 이현철 교수)는 ‘연구하지 않으면 교수를 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셨다”며 다시 한번 연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가설이 연구를 통해 증명되어 진료에 실제 적용 될 때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가 결실을 봐 많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그를 보니 전 세계를 강타할 새로운 치료제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서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D 명의로 추천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해온 연구와 임상에서 환자를 열심히 진료한 것을 좋게 봐주셔서 추천해 주신 것 같다.(웃음)

 

D 정민규 교수는 “똑똑하고 겸손한 연구를 하는 교수”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겸손한 연구란 무얼 얘기하신 걸까?

겸손한지 모르겠지만(웃음), 요즘은 워낙 자기 PR 시대라서 논문을 쓰면 홍보를 많이 하는 분위기인데 나는 연구를 해도 크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환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10년 가까이 계속해 오고 있다. 운 좋게 임팩트 있는 몇몇 저널에 소개되고, 특허나 기술 이전 같은 것이 잘 진행돼 그런 부분을 좋게 말씀해 주신 것 같다.

 

D 명의의 조건이 있다면 무엇일까?

현재 9년째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명의라고 평가받을 만한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향후 내가 정말 명의가 되려면, 우선 연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성과를 꾸준히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환자에게 진정 도움이 될 만한 연구, 또 임상 측면으로 본다면 정말 환자 한 명 한 명 성심성의껏 최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경험과 식견. 연구와 임상 모두에서 실력을 갖춰야 명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D 내분비내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아버님의 영향이었나?

영향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늘 연구하시는 모습을 보다 보니 의대생 때나 전공의 시절에 자연스럽게 연구에 몰두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내과 전공의 시절에는 종양내과나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이렇게 세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신약 개발이나 새로운 치료법이 활발히 연 구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다.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실질적인 것에 관심을 갖다 보니 세 분야에 더욱 관심이 갔다. 그런데 종양같이 거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질환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연에 예방해 건강을 유지하는게 더 중요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했고. 비만이나 당뇨 같은 질환의 초기 단계부터 환자들을 돕고 싶어 내분비내과를 선택했다. 사실 연구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내분비내과를 선택 하기도 했다.(웃음)

 

D 연구를 굉장히 즐기는 것 같다

교수마다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연구하지 않으면 교수를 할 필요가 없다”라고 하신 아버님 말씀처럼 교수라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를 통한 즐거움이나 리워드가 없다면 사실 꾸준히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연구를 위한 연구를 하면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하고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데, 연구가 환자의 진료에 실제 적용되어 도움이 되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D 젊은 의학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사실 의학상도 지원을 해야 심사를 통해 수상할 수 있는 상들이 있다. 상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선배 교수님이 세브란스병원에 연구를 잘하는 훌륭한 인재가 많은데 이를 좀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런 조언이 기억에 남아 하나씩 지원해 보게 됐다. 다행히 평가를 잘해 주셔서 좋은 상을 받은 것 같다.

 

D 겸손하게 대답했지만, 근감소증과 지방간의 직접적 연관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펠로우(전임의) 때 어떤 연구를 하면 좋을지 고민이 깊을 때였다. 당시 피검사를 하지 않고 지방간이 있는지 없는지를 미리 알 수 있는 예측 모델을 개발하는 과제를 진행해 논문을 냈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몇 점 이상이면 지방간 가능성이 높겠다는 걸 파악할 수 있는 예측 모델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방간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또 군대를 다녀온 뒤라 한창 운동에 관심이 높을 때였다. 문득 근육과 지방간의 관계가 궁금해져 논문을 뒤져보니 근감소증과 지방간의 관계에 대한 논문이 없었다. 그때부터 연구를 진행한 끝에 논문을 냈는데, 그 분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처음이다 보니 임팩트 있는 논문이 완성되었다. 지금까지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

 

D 만성질환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당뇨병인데, 당뇨에 관한 최근 이슈가 있다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젊은 층에서 당뇨가 많이 발병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까지의 당뇨병 인구가 크게 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당뇨병 환자와 비교했을 때, 젊은 당뇨병 환자들은 합병증이 동반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향후 합병증이 발생할 위험도 훨씬 높다. 젊을 때는 일이 바쁘다 보니 당뇨병 진단을 받고도 관리를 하지 못해 그렇다. 두 번째는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65세 이상 당뇨병 인구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것이 뻔하다. 현재 출산율이 굉장히 낮은데, 노인 인구에 대한 의료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정책적으로 미리 준비가 필요하다.

 

D 당뇨 예방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당뇨병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비만이다. 체중 관리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는 건강검진이 워낙 잘되어 있으니 빠르면 35~40 세부터 정기적으로 최소 1년에 한 번 혈액검사 등을 통해 당뇨의 위험도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검사를 통해 위험군임을 알아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비만도 질병으로 생각하고 치료하면 좋은데 지금 대부분 비만 치료 시장은, 뭐랄까, 미용적 측면에 치우쳐 있어 조금 안타깝다. 특히 해외에서는 좋은 비만 치료제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여러 규정 문제로 우리나라에는 못 들어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가 단계부터 굉장히 까다롭다 보니 일본, 대만 같은 동아시아 나라에 이미 들어와 있는 약재가 우리나라만 몇 년째 못 들어오고 있기도 하다. 비만 치료를 하고 싶어도 약재가 없어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의사로서는 이런 점이 매우 아쉽다.

 

D 발병 후 관리법은 어떤가

실제 발병 후 치료는 정기적으로 적절한 처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사질환은 약만으로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다.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바꾸는 게 훨씬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약을 쓰더라도 평소 생활을 바꾸지 않은 채 많이 먹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약물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뇨병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는 병이기 때문에 발병 후 관리에 대한 교육을 통해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데, 의사들이 거기까지 신경을 못 쓰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의 의료 현실상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의무감만으로 지속적 관리까지 신경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조언이나 관리 방법은 얘기해 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약을 처방하고 끝나버린다.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데, 당뇨병이 오래 지속될수록 발병 확률이 높아지므로 합병증 위험이 있을 때 미리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특별한 증상이 없다 보니 환자들은 검사의 필요성을 잘 못느낀다. 사실 증상이 있으면 이미 늦은 것이다. 당뇨 환자라면 검사를 통해 미리 관리해야 한다는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

D 관리를 통해 호전되는 경우가 있었나?

심한 당뇨병으로 인한 콩팥 합병증 때문에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했던 80대 환자가 있었다. 요즘은 팔이나 배에 혈당 센서를 붙이면 데이터가 휴대폰으로 자동 전송되는 연속혈당측정기가 있다. 그래서 먹거나 운동을 했을 때 혈당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시시각각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자신의 몸 상태를 지속 체 크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니까 인슐린 주사를 맞지 않아도 합병증이 개선되고 혈당도 거의 정상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관리가 잘된 환자가 기억에 남는다. 80대의 고령임에도 요즘도 식후에는 30분씩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을 병행해 혈당 관리를 잘 하고 있다. 그런 환자를 보면 보람을 많이 느낀다.

 

D 간헐적 단식이나 탄수화물 제한식이 당뇨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가?

최근 들어 많은 사람이 간헐적 단식 같은 칼로리 제한식을 한다. 매일 30%씩 칼로리를 적게 먹는다든지, 하루는 완전히 금식을 하고 다음 날은 잘 챙겨 먹고. 그런데 이렇게 하루를 온전히 금식 하는 칼로리 제한식은 일상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실천 하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에 간헐적 단식은 하루 중 12~16시간 금식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먹는 것이다. 오랫동안 금식을 하면 혈당이 떨어지면서 혈당을 조절해 주는 인슐린이나 관련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고 우리 몸의 활성이 증가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케톤 대사다. 인슐린 대사 수치가 낮 아지면 간에서 케톤체가 만들어진다. 케톤은 굉장히 효율적인 에너지원으로 뇌나 심장, 콩팥 같은 장기에서 사용되는데, 노화나 만성질환의 원인이 되는 산화 스트레스를 줄여 활성산소를 낮춰준다. 한국인 성인 8000여 명에서 소변의 케톤 수치를 측정 하고, 12년 동안 이들의 당뇨병 발병 여부를 추적 관찰했더니, 수치가 높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당뇨병이 절반 가까이 예방이 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간헐적 단식을 통해 케톤 수치를 높이면 당뇨 같은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D 그렇다면 간헐적 단식은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까?

제일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것은 오후 4시 이후에 16시간 정도 금식하고 다음 날 아침부터 8시간 동안 식사를 하는 방법이다. 사실 우리나라같이 저녁 약속이 많은 경우에는 오후 4시 이후 에 금식을 유지하기 어려우니 오후 8~9시 이후부터 16시간 동 안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 의료진과 상의 후 진행해야 한다.

 

D 새로운 트렌드로 연구되고 있는 식단이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있어도 몸은 금식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식단이 연구되고 있다. 단식 모방 식단(Fasting Mimicking Diet, FMD)이라고 하는데, 한 달에 5일 동 안 식단을 유지하면 실제로는 먹고 있지만 우리 몸은 금식을 하고 있다고 인식한다. 그 기간은 몸의 케톤 대사가 활성화되어 체중 감소가 잘 이루어지고, 대사 지표가 많이 개선된다. 5일 동안 먹으면서 금식 효과를 보기 때문에 실제 생활에서 부담이 적은 식단이다.

D 코로나19 시기에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연수를 위해 노화를 집중 연구하는 벅 노화연구소(The Buck Institute for Research on Aging)에 갔는데 한 달 뒤 코로나19 가 발생해 사실 6개월 가까이 바깥을 나가지 못했다. 노화는 대사질환뿐 아니라 암이나 치매 등 다양한 질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노화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해 주기만 해도 대사질환이 나 치매 등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코로나19 시기이다 보니 면역이나 감염 분야로 연구가 많이 집중됐다.

 

D 그곳에서도 ‘연수’가 아닌 ‘연구’를 진행한 것인가?(웃음)

그렇다.(웃음) 면역세포가 노화했을 때 변하는 현상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했다. 노화 연구가 시작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 노화 세포를 찾아낼 수 있는 특정한 마커(표지자)가 확립 되지 않았다. 노화 세포의 특성을 밝히고 마커를 확립하고 노화 세포를 찾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노화 세포들을 실제 제거하거나 줄이는 방법을 찾는다면 노화로 인해 발생하는 만성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D 혹시 한국에서 벤치마킹했으면 하는 미국 시스템이 있었나?

미국 시스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환자의 샘플을 확보하고 얻기가 수월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러 문제로 샘플을 확보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병원은 샘플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데, 일반 병원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연구소에서는 데이터를 확보하기 매우 어렵다. 그런데 미국은 병원이 나 관련 기관의 환자 샘플 보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환자가 자신의 샘플을 기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마련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샘플을 실제 연구에 매칭해 활용하기 수월하다. 연구비를 사용하는 데도 정책의 유연성이 있어 관심 있는 연구자끼리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D 연수기에 “매 순간이 평생 기억에 남을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이 된 것 같다”라고 썼다

한국에 있을 때는 병원, 연구 그리고 학회 일 때문에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매우 적었고, 육아에 도움을 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연수 기간에는 코로나19 시기와 맞물려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았다. 저녁때 연구소에서 퇴근한 뒤에는 거의 가족과 함께 있고, 주말 쉬는 시간에도 가족과 여행을 다니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건, 한국과 달리 미국에는 자연친화적인 캠핑장이 많다. 한국 캠핑장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다 텐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미국은 완전히 산속에 전기나 수도도 없이 그냥 딱 텐트만 칠 수 있는 캠핑장이 대부분이다. 그런 곳에서 캠핑하면서 아내, 아이들과 대자연도 만끽하고, 밤에는 다같이 별도 보고, 새벽 공기를 맡으며 일어나고, 바비큐 파티도 한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D 진료 차트를 쓸 때 모니터에 메모장을 띄워 환자의 특이점을 적어둔다고 들었다

사실 우리 대학병원에서는 2~3분에 한 명씩 진료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 짧은 시간에 환자에 대해 다 판단하고 고민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메모장을 띄워놓고 환자마다 각 특성을 기록한다. 예를 들면, 지방간이 생길 만한 위험 요소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검사해 보니 지방간이나 간섬유화가 심하 다든지, 어떤 환자는 당뇨가 발병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합병증이 굉장히 빨리 진행되었다든지 하는 특징적인 환자가 있어도 진료 후에는 금방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에 따로 기록을 해놓는다. 그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유전자 검 사 같은 다른 분석을 통해 질병의 원인을 찾거나, 치료 옵션을 좀 더 고민해 보기 위해 기록한다. 이게 또 하나의 연구 주제로 이어져 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D 최근에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연구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 주제가 있다. 첫 번째는 지방간 치료제 개발이다. 지방간과 근감소증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도 더 많이 진행하고 있다. 사실 지방간염 자체에 대한 치료제는 아직 없어 동물실험 과 임상실험을 같이 진행하고 있다. 두 번째는 노화가 대사질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대사질환 치료 시 타깃으로 잡기 위해서다.

 

D 노화를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된 환자가 있었다고

막 교수가 되어 경상도에서 근무할 때 내원한 스물세 살 여성 환자였는데, 조로증을 앓고 있었다. 중증은 아니었지만 조로증 때문에 당뇨가 심해지고 심부전으로 심장이 약해지는 질환도 함께 나타난 환자였다. 점차 지방간과 고지혈증도 심해졌다. 이상해서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조로증 관련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환자의 경우 치료제가 딱 한 가지 있었는데, 미국에서만 시판되고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는 치료제였다. 결국 그 치료제는 포기하고 다양한 치료를 시도해 보았지만 잘 듣지 않아 심장 문제로 사망했다. 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노화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D 노화에 관한 연구 동향은 어떤가

노화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세계적으로도 임상 데이터가 매우 적고, 실제로 어떤 게 진짜 노화 세포인지에 대한 논란도 많다. 내 경우 지방간염에서 노화된 세포들이 대사와 당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다. 실제 당뇨 환자들에게서 노화 세포가 많이 증가하는지 약이나 생활습관 변화를 통해 노화 세포 가 정말 줄어들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임상 디자인부터 준비하고 있다.

 

D 사람이 늙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이를 최대한 늦출 방법이 있을까

중요하지만 어려운 질문이다. 좀 뻔할 수 있지만 스트레스 조절과 꾸준한 운동이 중요하다. 운동도 유산소운동만 해서는 안 되고,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는 식사 후에 운동을 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근육은 줄고 기능이 약해지는 근감소증이 나타나기 때문에 근력운동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근육량을 유지해 주어야 한다. 영양 섭취도 중요하다. 특히 고령 환자들은 냄새가 난다고 고기나 생선은 잘 먹지 않고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백질이나 채소를 잘 챙겨 먹으면서 영양적 요소를 고려해 섭취해야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수면도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중간중간 깨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최소한 7시간은 자는 것이 좋다.

D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 같은 약재가 개발될 가능성이 있을까

현재 미국에서 노화 분야를 리딩하고 있는 메이오 클리닉이나 스탠퍼드대, 하버드대에서 노화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예전에 일본 연구팀에서 노벨상을 받은 연구가 일반 세포에 유전자 4개를 넣어 줄기세포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는데 이를 최근 노화 기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화 세포를 젊은 세포로 바꿔주는 연구 나 노화 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약물을 배합하는 임상실험도 진행 중이다.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는 좀 지켜봐야 하고,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D 아무리 연구를 즐긴다고 해도, 여가 시간은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주말에 아이들이랑 강아지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여행을 좋아해서 주말에는 근교로 틈틈이 나가는 편이다. 자연 풍광 보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해외 학회를 갈 때면 시간을 쪼개 하이킹을 간다. 또 대학 시절부터 해외 축구 보는 걸 즐겼다. 인턴으로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영국에서 축구 를 보러 종종 다녔다. 요새는 바빠서 잘 못 가지만 경기장 다니는 것도 좋아했다. 운동도 즐겨 테니스나 골프를 친다. 향후에 시간 여유가 되면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웃음)

 

D 연구하는 의사로서 꿈이 있다면?

대부분 의사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 연구 결과가 실제 환자에게 적용되거나, 연구를 통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최근 지방간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임상시험 중이다. 사람에게 투여 했을 때 부작용이 있는지 확인하고, 당뇨병 환자나 지방간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확인한다. 차근차근 잘 진행되어 글로벌 회사와 함께 대규모 임상 시험을 한 뒤 실제 환자 치료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과정 중에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약물의 기전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야 하기 때문에 갈 길이 아직 좀 멀다. 앞으로 더 열심히 연구해서 꼭 성취하고 싶다.

 

D 연구 외에 다른 꿈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연구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데, 가족과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좋은 아빠로서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지금도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또 크리스천으로서 가정의학과 의사인 아내와 함께 의료 봉사를 많이 다니고 싶다. 아내는 지금도 1년에 한두 번 나가고 있는데, 바쁘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의료 봉사를 가보면 의료 현장의 도움을 못 받는 분이 아직 많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시간이 많아지면 아내와 함께 우리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인술을 베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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