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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K-팝 열풍, 성장세 이어가려면

K-컬처 확산의 주역인 K-팝. 매력적인 문화 소재가 되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 입력 2024.01.30 09:00
  • 2024년 2월호
  • 길정우(한국예술종합학교 발전재단 이사)

코로나19 시기, 어쩔 수 없이 집콕하던 어르신들의 우울증 예방에 크게 기여한 것 중 하나는 바로 ‘트로트’다. 나이 불문하고 익숙한 리듬뿐 아니라 매력 있는 젊은 가수들의 무대 매너 덕분이다. 그들 가운데 대표격인 가수 임영웅과 영탁은 해외에도 잘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이나 일본 동포가 주된 청중이지만, 영탁은 동남아시아 현지 젊은이 사이에 인기도 누리고 있다.

 

해외를 겨냥한 K-엔터테이너의 도전 정신

사실 본격적인 K-컬처의 확산은 재능 있는 음악 들의 공격적 해외 공연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일부 언론은 부산 월드 엑스포 유치를 위한 최종 발표에 과거 인물(?)인 싸이를 등장시켰다고 빈정거렸지만, 그의 ‘말춤’과 어우러진 ‘강남스타일’은 한때 전 세계를 휩쓴 K-팝의 대표 주자였다. 싸이만 해도 어린 시절 소위 ‘외국물’을 먹은 세대지만, 이후 등장하는 아이돌 그룹은 모두 국내에서 자라고 훈련받은 이들이거나 일부 해외 동포와 외국인이 섞여 있다. 애초부터 해외시장과 청중을 겨냥해 팀을 꾸리고 노래와 춤 등을 준비한 것이다. 해외에서 K-팝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다. K-팝의 주인공은 젊은 남녀 가수지만 오늘날 그들 을 만든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방탄소년단(BTS)은 ‘하이브’ 창업자 방시혁 의장이고, 걸 그룹 뉴진스를 세계무대에 올린 이는 하이브에서 파생된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다. 민희진 대표는 연초 일본 NHK TV 다큐멘터리 <세계를 울리는 노래-일한(日韓) 팝스(POPS) 신시대>에 출연해 “기존 스타일을 깨고 메인스트림에서 보이지 않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그 나이대에 어울리는 거리낌 없고 해맑은 모습이 나오길 바랐다”라고 말했다. 민 대표는 “획일화되지 않은,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게 뉴진스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BTS를 만든 방시혁 의장 © hitmanb
BTS를 만든 방시혁 의장 © hitmanb
뉴진스를 세계 무대에 올린 민희진 © min.hee.jin
뉴진스를 세계 무대에 올린 민희진 © min.hee.jin

 

한일 양국 관계가 지난날에 비해 많이 개선되자 일본 언론에도 한국 문화에 대한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특히 K-팝의 세계적 인기와 그 배경을 분석하는 내용이 일반적이다. 유난히 ‘내 탓이오(Mea Culpa)’에 익숙한 일본인들은 왜 자국 젊은이들은 해외 진출이 지지부진한지 묻고 또 묻는다. 그들은 한국 연예 기획자와 회사들의 국제적 안목과 훈련 방식에서 그 답을 찾는다. 팀 구성원 선발부터 폭넓게 해외를 망라하고, 긴밀한 관계로 한 가족을 만들어 팀원 간 호흡을 맞추는 트레이닝 방식도 제법 효과를 보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실 BTS 막내 정국이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내 재능은 형들과 함께 지내며 형들 각자가 지닌 재능에서 배우고 얻은 게 많다”고 언급했는데, 그의 말은 이런 문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

기획자 이야기가 나왔다면,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노래, 작곡, 춤까지 직접 소화해 내는 만능 재주꾼이다. 결국 사람의 재능이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내가 주목하는 그의 재능은 팀 구성에 국내외를 가르지 않고 애초 일본 젊은이 중심의 팀을 만들어 우리 방식으로 훈련시켜 보려는 시도 같은 것이다. 그의 상상력이 자아낸 최근 작품은 ‘골든걸스(Golden Girls)’가 압권이다.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 등 알만한 이들은 익히 알고 좋아했던 여성 가수, 댄서들이 한데 모였다. 이들의 활동 경력은 총 155년. 중년여성 그룹이 제각기 경력의 정점을 넘어 다시 뭉치는 계기를 마련한 건 모두 박진영 덕분이다. 이들의 공연에 카메오처럼 등장해 함께 춤추는 박진영은 진정한 예능인, 엔터테이너다. 이런 사례는 전 세계를 무대로 인기를 누리는 미국이나 영국 그룹에서도 보기 힘들다.

왕년 디바들의 귀환을 알리는 또 하나의 여성 그룹 은 ‘댄스가수 유랑단’이다. 이름이 말해 주듯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보아, 화사 등 댄싱 퀸들의 전국 순회 나들이는 tvN <무한도전> 제작자 김태호 PD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이처럼 숙성된 엔터테이너들이 국내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유는 단순히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일과 삶의 여정을 나누며 시청자들과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젊은 아이돌과의 만남과는 결이 다른 기쁨을 안겨주고 있어 새롭고 반가울 따름이다.

 

K-팝 성장세를 가속화할 국내 지원 필요

이쯤 되면 K-컬처, 특히 K-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애초 세계에 우리를 알리고 비즈 니스 차원뿐 아니라 문화 강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해 다분히 전략적 계산에서 만들어진 조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잘나가는 국내 기획사들은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방법과 흥행을 연출하는 연줄도 갖고 있다. 물론 가야할 길은 여전히 무한대로 펼쳐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몸집을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그룹을 계속 발굴하고 국내외 재능 있는 혼성 팀을 만들어가야 한다. 외국어 노래가 부담스럽지 않고 수만 명 청중에 주눅들지 않을 정도로 국내 대형 공연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 문제는 그럴만한 공 연장이 없다는 데 있다. 고양시에서 CJ라이브시티 공연장을 만들고 있다지만 여전히 규모가 작고, 전국적으로 그 수는 부족한 실정이다.

작년 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미국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작년 8개월간 미국 내에서만 60회 공연을 열었는데, 모두 평균 관객 7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나 대형 경기장을 활용했다. 그리고 그의 ‘에라스 투어 (Eras Tour)’는 사상 최초로 매출 10억4000만 달러 (약 1조3700억원)를 기록했다. 올해 아시아와 유럽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로 “예술과 상업적 측면에서 핵융합과 같은 에너지를 분출했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어느 나라든 예술성과 상업성의 조화는 엔터테이너 들의 숙명적 과제인 모양이다. 결국 K-팝도 이런 조 건을 충족해야 나라 안팎에서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대형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미국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 taylorswift
대형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미국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 taylorswift

개인적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대형 공연장에서의 실황을 보고 싶은 이유는 그만큼 음향과 연출력 등에 동원되는 장비와 기술 및 전문 인력이 부럽기 때문이다. 규모가 요구하는 전문성과 확장성은 또 다른 문화 창출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예로 작년 7월 미국 독립기념일에 오픈한 대형 공연장 ‘스피어(Sphere)’가 있다. 오픈 후 첫 공연은 9월 보노가 이끄는 U2 그룹이 맡았다. 스피어는 마무리 하는데 대략 3조원이 들어간 골프공 모양의 공연 장인데, 높이는 40층짜리 아파트와 맞먹는 111m, 바닥 지름은 157m다. 외벽에 설치된 스크린은 5만 3884m²로 축구장 두 개 반을 합친 면적이다. 고해상도 LED 스크린과 첨단 음향장비가 1만7500개 객석의 절반을 감싸고 있다. 소위 첨단 장비를 동원해 관객들을 3D 입체 공간으로 빠져들게 하는 XR(확장현실) 공연이 가능한 장소로 만들었다.

미국의 대형 공연장 스피어 © spherevegas
미국의 대형 공연장 스피어 © spherevegas

유튜브를 통해 이 시설에서 펼쳐지는 U2 공연을 보면서 서울 고척동 실내 야구장 스카이돔에서 진행한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공연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운동 경기장을 공연시설로 활용하지만, 갈수록 첨단기술이 동원되는 공연에선 연출 효과 극대화 측 면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이젠 해외에서 인정받는 K-팝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관광객에게 새로운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문화 소재가 되어야 한다. 지난날 <난타> 공연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현재는 국내 팬들만으로도 매진되는 트로트와 K-팝 공연인지라 기획사들은 미처 생각지 못할 수 있지만, 외국 방문객들이 문화의 본토에서 즐기는 공연 실황의 설렘과 추억은 우리가 K-컬처를 외치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던 노력에 더해 새롭게 천착할 과제가 무엇인지 말해 주고 있다. BTS를 길러낸 하이브의 방시혁 의장은 최근 “이제까지의 K-팝 팬들은 강렬한 몰입도와 집중적 소비를 보여왔는데,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K-팝 확장성의 한계가 될 수 있다”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K-컬처와 K-팝의 지속성과 확장성은 우리가 문화에 ‘K’를 붙이는 데 연연하지 않고 세계인 사이에 보편적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할 때 비로소 그 사명을 다하고 이름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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