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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컬처 다이어리,
감각이 피어나는 순간
[Editor's Review]

  • 입력 2025.04.30 16:00
  • 안우빈 에디터

 

초록빛이 짙어질수록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엔 잠시 멈춰 서서 문화를 향유해보는 것도 좋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관람하는 그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잠시 다른 세계를 살아볼 수 있다.

BOOK

신뢰와 희망

그린 레터

ⓒ 다산책방

잎에 새겨지는 문장으로 소통하는 ‘그린 레터’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현실적인 전개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SF나 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이야기는 시간을 지나 세대를 거치며 전쟁과 함께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반영한다. 전쟁, 폭력, 식민지, 차별, 난민 등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장르의 색깔을 잃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현실과 맞닿은 상상력을 경험하게 한다.

작가는 20대 후반부터 도쿄에서 생활하며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스스로를 이민자나 난민으로 규정하기를 꺼린다. ‘동포’라는 단어 대신 ‘재일조선(국)적 분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려 하고, 언어의 선택이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그런 그가 선택한 표현 방식은 바로 SF라는 언어다. 비현실처럼 보이는 세계 속에서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PERFORMANCE

661호의 목격자가 되는 순간

카포네 트릴로지 연극 

ⓒ 아이엠컬처, 쇼노트
ⓒ 아이엠컬처, 쇼노트

‘나쁜 일은 항상 같은 곳에서 일어난다.’ 75분의 러닝 타임 동안 동안 시카고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약 10년에 한 번씩 같은 방에서 터지는 세 가지 비극, ‘로키’, ‘루시퍼’, ‘빈디치’는 인물과 시간대가 모두 다른 독립적인 이야기다. 한 편만 봐도 무방하지만, 세 편을 모두 본다면 얽히고 설킨 조각들이 완성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에디터의 추천은 ‘롤라 퀸’이 등장하는 ‘로키’. 알 카포네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그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사랑, 죽음, 거짓말, 총성, 그리고 세 편 모두에 등장하는 빨간 풍선은 중요한 소품이다.

100석 남짓한 밀착형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몰입감이 뛰어나다. 특히 이 작품은 배우 페어가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세 명이 한 팀을 이뤄 공연하고 조합이 섞이지 않기 때문에 합이 단단하다. 배우들끼리 쌓은 호흡이 캐릭터 사이 감정선에도 자연스럽게 배어든다. 높은 인기로 연일 매진을 기록 중이며, 공연은 오는 6월 7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이어진다.

 

MOVIE

신념과 권력사이

콘클라베

ⓒ 네이버영화
ⓒ 네이버영화

교황이 선종한 뒤, 추기경들이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린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숨겨진 야망과 탐욕이 드러나는 선거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린다. 거대한 종교의 중심에서 신념과 권력이 교차하고, 시스티나 경당의 아름다운 공간감이 긴장감을 더한다.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을 연기한 랄프 파인즈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와 같은 배우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영화는 여성과 수녀 문제를 비롯해 가톨릭 내부의 모순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종교나 신에 대한 믿음이 없더라도, 이 작품은 신념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묵직한 주제를 품은 채, 교회 안팎의 권력 다툼을 정교하게 직조해낸 이 영화는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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