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잠을 자는 동안 기능이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 손상된 신체 및 근육의 기능을 회복하고, 생체 에너지를 관리・저장하며 재생하는 것.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낮 동안 쌓인 피로를 회복하고 뇌, 위장관, 호흡, 면역 등 생체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즉 잠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잠이 부족하면 어떻게 될까. 필요한 수면 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부족한 수면이 몸에 차곡차곡 쌓여 빚을 만든다. 이를 수면의학계에서는 ‘수면 부채(Sleep Debt)’라고 한다. 수면 부채가 쌓이면 피로를 느끼는 것은 물론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숙면으로 갚지 못하는 날이 지속되면 각종 질환의 위험이 높아지며 결국 건강을 위협한다.
잠 못 드는 밤이 부르는 다양한 문제
수면 부채를 청산하지 않으면 생기는 질환, 첫 번째는 ‘치매’다. 치매의 정확한 발병 기전과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전체 치매의 약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는 베타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뇌에 과도하게 쌓여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베타아밀로이드는 깊은 잠을 자는 동안 뇌 밖으로 배출된다. 이를 뇌 청소 시스템, 일명 ‘림프 시스템’이라고 한다. 잠자는 동안 분비되는 멜라토닌이 뇌척수액을 통해 신경세포 사이사이로 들어가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독성 물질을 씻어내는 과정인데, 수면 부족으로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뇌에 독성 물질이 쌓여 치매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 연구진은 50~60대에 하루 6시간 이하로 잠을 짧게 잔 사람은 7시간 이상 숙면을 한 사람보다 치매에 걸릴 위험이 30%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수면은 심혈관계 건강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잠자는 동안에는 깨어 있을 때와 비교해 혈압이 10~20% 낮아져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그런데 수면이 부족하면 이 같은 정상적인 혈압 감소가 이뤄지지 않고,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문제는 활성화된 교감신경이 혈관을 수축시킨다는 것. 이는 혈압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게 해 고혈압을 부르고, 더 나아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의 원인이 된다.
수면 부채가 부르는 또 하나의 질환으로는 ‘비만’이 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양이 줄면 식욕을 자극해 허기를 느끼게 하는 그렐린 호르몬 분비는 증가하고, 반대로 식욕을 억제하는 렙틴 호르몬 분비는 감소한다. 즉 배부름을 느끼게 하는 신호는 줄고,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신호는 늘어 식욕 조절이 어려워진다.
또 수면이 부족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 당대사에도 문제가 생긴다. 인슐린 저항성이란 인슐린에 대한 혈당 반응이 정상보다 낮은 상태를 말한다. 인슐린 저항성이 생기면 혈당이 쉽게 떨어지지 않으며, 정상적인 혈당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인슐린이 필요해진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 상태는 인슐린 저항성을 일으켜 살이 찌는 체질로 바꿔놓는다. 수면 부족이 비만을 부르는 과정이다.
이 밖에도 수면 부채는 우리 몸에 다양한 악영향을 미친다. 신체의 염증 반응을 일으켜 암 발생 위험을 높이며 면역 기능 저하, 생식계 질환 등 여러 질환을 야기한다. 수면 장애가 오랜 기간 지속될수록 전원인사망률(All-Cause Mortality)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건강과 직결되는 ‘수면’, 잘 자려면
수면은 건강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평소 수면 부채가 쌓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수면 부채를 해소하기 위한 첫 단계는 원인을 찾는 것. 만성불면증, 수면무호흡증, 하지불안증후군, 렘수면행동장애 등이 대표적인 수면 부채의 원인으로, 이 같은 질환이 의심된다면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보길 권한다.
수면 습관 점검도 필요하다. 수면의 양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질인데,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올바른 수면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삼성슬립앤마인드의원 전세현 원장은 “좋은 잠을 자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수면 시간을 찾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똑똑한 수면 전략을 세울 것을 조언했다. 다음은 전세현 원장이 전한 좋은 잠을 자기 위한 수면 전략이다.
1. 규칙적인 수면 시간 확보하기
평일에는 적게 자다가 주말에 한 번에 몰아서 자는 경우가 있다. 주간 총수면 시간은 같더라도 수면의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
2. 올바른 수면 환경 조성하기
간혹 잠이 잘 오게 한다는 숙면 아이템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런 숙면 아이템에 과도하게 몰입하면 효과보다는 잠에 대한 집착을 초래해 불면증이 더욱 악화되기도 한다. 잠을 방해하는 질환 및 증상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한 뒤 숙면에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제품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만약 이 같은 노력에도 잠이 들기 어렵다면 침실의 온습도가 적당한지, 침실이 너무 밝지는 않은지, 수면을 방해하는 소음이 자주 들리지는 않는지 침실 환경을 살펴봐야 한다.
3. 적극적으로 치료·관리하기
수면의 질이 높아지면 일상이 달라진다. 좋은 잠을 자야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따라서 불면증이 고민이라면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