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와 인구 급증에 따른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식품산업에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신산업 분야인 ‘푸드테크(FoodTech)’가 주목받고 있다.
푸드테크의 다양한 분야 중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실험실에서 만드는 고기, 배양육이다. 미국과 싱가포르 등의 국가가 배양육 판매를 승인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배양육 시장이 태동하고 있지만, 아직 일반 소비자에게는 그 존재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배양육은 일반 고기와 어떤 점이 다를까?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넘어야 하는 허들은 무엇이 있을까? 신기하지만 조금은 생소하게 느껴지는 배양육의 세계, 서울대학교 푸드테크학과 학과장이자 한국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인 이기원 교수와 함께 탐구해 봤다.
배양육이란 무엇인가?
동물세포를 배양해 실험실에서 만드는 고기를 말한다. 콩으로 만드는 식물성 고기처럼 대안 식품의 일종이다.
배양육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50년 동안 지구의 전체 인구수는 40억 명에서 80억 명으로 늘었고, 2050년에는 100억 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육류 소비량도 늘고 있는데, 현재의 축산 방법으로는 그 수요를 감당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배양육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육류 수요량을 감당할 효과적인 대안이다.
배양육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가축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한 뒤 세포와 배양액을 바이오 리액터라는 배양기에 넣고 증식시킨다. 이후 세포를 배양기에서 분리하고 3D프린터를 이용해 원하는 형태와 질감으로 가공한다. 원육의 형태도 가능하고, 소시지나 런천미트 같은 형태로도 만들 수 있다.
배양액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나?
채취한 세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야 한다. 영양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배양액이다. 배양액은 세포가 커질 수 있도록 하는 성장인자와 세포가 외부의 오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항생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삼겹살, 항정살 등 부위별로 고기를 만들거나 수산물도 만들어낼 수 있나?
배양육은 맛과 향, 물성과 영양까지 모두 커스터마이징해 생산할 수 있는 ‘디자인 푸드’인 만큼 부위별 생산이 가능하다. 수산물 역시 똑같은 세포배양 과정을 거치면 만들어낼 수 있다.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세포배양으로 수산물을 만드는 회사가 등장했다. 새우나 참치, 연어 등 어종도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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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 More 미국 소재의 세포배양 해산물 스타트업 ‘블루날루’는 도미, 연어, 참다랑어 등 세포배양을 통해 생선의 맛과 식감을 구현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해산물 배양육 스타트업 ‘셀미트’도 2021년 독도새우 배양육을 만들었고, 2023년에는 세포 기반 캐비아 시제품을 공개했다. |
맛과 질감 측면에서 실제 고기와 비슷한가?
개인차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뿌리가 같으므로 어느 정도 유사하다. 실제로 미국에서 배양육으로 만든 미트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하기도 했는데, 테스트에 참가한 사람들이 세포배양으로 만든 고기인 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답했다.
영양학적 측면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나?
기본적으로 실제 고기와 다르지 않은데, 고기를 만들 때 비타민과 미네랄 등 어떤 영양소를 넣느냐에 따라 더 우수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식물성 단백질과 배양육을 혼합한 하이브리드 식품도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영양 성분을 함유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실제 고기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적·환경적 측면에서도 유리한가?
밀폐된 공간에서 동물을 사육하거나, 살아 있는 동물을 도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윤리적 소비가 가능하다. 환경적 측면에서는 가축을 기르는 데 들어가는 물과 에너지, 토지 면적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설비 가동 등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에너지와 온실가스 배출량이 기존 축산업보다 많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기술 발전에 따라 대응이 가능해 개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본다.
GMO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인가?
GMO는 유전자를 변형해 만든 식품을 의미한다. 반면 배양육은 유전자변이 없이 동물의 세포를 그대로 이용한다. 두 기술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사람이 섭취해도 안전한가?
배양육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다 보니 생산 과정이나 환경이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된다. 또 완전한 멸균 환경에서 세포를 배양하기 때문에 오염 물질 노출 가능성이 낮다. 위생 측면에서는 확실히 이점이 있다. 노지에서 재배되는 채소는 농약을 썼는지 안 썼는지 알기 어렵지만, 스마트팜에서 생산되는 채소는 생산 환경이 공개돼 안전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 배양육 안전성 평가 가이드라인이 있나?
현재 식약처에서 규정을 만들고 있다. 이미 배양육 상용화가 이루어진 미국과 싱가포르의 가이드라인을 보면, 배양육 안전성 심사 기준에 실제 고기에 관한 심사 항목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다. 영양 성분, 독성 여부, 오염 여부 등도 평가 기준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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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 More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배양육 판매를 승인했다. 이후 배양육 닭고기로 만든 치킨 너겟을 시작으로 파스타와 샌드위치 등이 일반 대중 레스토랑에서 판매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도 배양육 판매를 허가하고 있다. |
배양육이 비싼 이유는 무엇인가?
배양육 가격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배양액이다. 배양액은 일반적으로 소 태아의 혈청에 화합물을 더해 만드는데, 생산량이 적어 1L에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현재는 배양액 연구도 많이 진행돼 무혈청 배양액을 사용하는 곳도 조금씩 늘고 있다. 아직 대량생산을 위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도 가격 상승 요인 중 하나다.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구입할 만한 가격이 되려면 큰 스케일의 생산 공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배양육 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연구 수준으로만 놓고 보면 미국이 앞서 있다. 그러나 한국 역시 최근 세포배양 식품에 대한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액이나 규모도 아시아에서 5위권에 들 정도이고, 대기업도 배양육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아직 시장을 이끄는 리더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상당히 앞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를 기반으로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연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통 축산업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배양육은 늘어나는 육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대안’ 중 하나로 기존 축산업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이 배양육을 선택할지, 그렇지 않을지 예측하기도 매우 어려워 배양육이 전통 축산업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배양육을 설명할 때 ‘대체’라는 단어보다는 ‘대안’, ‘선택’, ‘맞춤’이라는 개념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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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 More 현재 배양육을 가장 강하게 규제하는 국가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로 배양육 제조 및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와 관련해 “국민의 건강과 전통 식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라고 설명했다. |
배양육 상용화를 위한 선행 과제로는 무엇이 있나?
아무리 좋은 기술로 만든 제품일지라도 소비자가 선택해야 의미를 갖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배양육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아직은 배양육에 대해 잘 모르거나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식품으로 생각해 멀리하는 사람이 많다. 배양육 상용화를 위해선 배양육에 대한 인식 개선이 꼭 이뤄져야 하는데, 민간 기업에서는 이를 타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공에서 이에 관해 비용을 투자하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격 경쟁력도 갖춰야 한다.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한들 가격이 비싸다면 배양육을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 배양액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대량생산을 위한 인프라를 갖춘다면 가격을 충분히 낮출 수 있다. 소비자 인식이 개선되고, 실제 소고기값 정도로 가격이 낮아지면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배양육 시장의 전망이 궁금하다
인구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기후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배양육 기술이 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후변화와 가치 소비, 지속 가능한 식품 생산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배양육에 대한 이해도 제고와 시장 형성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기원 교수는···
서울대학교 푸드테크학과장이자 한국푸드테크협의회 공동회장.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정밀식의학 기반의 웰니스 솔루션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푸드테크 분야의 인재 양성과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