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을 암살한
데린저 (Derringer)
몸속에 숨기기 좋은 총
서부영화나 <007> 시리즈를 보면 종종 손바닥보다 작다 보니 여성들이 스타킹 속에 숨겨 호신용으로 사용하는 깜찍한 권총이 등장한다. 미국 발명가 헨리 데린저(Henry Derringer)가 1825년에 만든 뇌관식 소형 권총을 그 시작으로 보아 흔히 이런 종류의 작은 권총을 데린저라 통칭한다. 권총이 원래 휴대하기 간편한 총이지만 그중에서도 데린저는 소지하기 가장 편한 형태다.
유효사거리, 파괴력 등 성능 최악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41구경 림파이어(Rimfire) 탄을 사용하는 2연발 레밍턴(Remington) 데린저다. 하지만 총으로서 데린저의 성능은 낙제점에 가깝다. 유효사거리가 불과 5m 내외인 데다 그나마 정확도도 떨어진다. 총이 작은 만큼 발사 속도도 느려 날아가는 총알이 다 보인다는 비아냥거림이 있을 정도다.
장난감처럼 취급된 총의 반전
이 총은 1865년 링컨을 암살하는 데 쓰이며 미국 역사를 바꿔놓았다. 당시 광신적 남부 지지자였던 배우 존 윌크스 부스는 포드 극장에서 희극 공연을 관람하기로 한 링컨을 암살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특등석에 자리한 링컨 뒤로 다가가 뒤통수에 한 발의 총알을 발사했는데, 이때 사용된 무기가 바로 데린저였다. 장난감처럼 취급되던 총도 총이었던 것이다. 링컨이 이 사건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비전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케네디를 저격한
카르카노 M38 (Carcano M38)
충격적 암살 사건에 사용된 구식 소총
1963년 11월 22일,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암살됐다. 저격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케네디에겐 의학적 사망 선고가 내려졌고, 권력 공백을 막기 위해 존슨 부통령이 사상 최초로 비행기 안에서 취임선서를 하며 대통령직에 올랐다. 이 모든 일은 불과 한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케네디가 인근 건물 6층에서 날아온 총탄에 절명했을 만큼 암살범 오스왈드의 사격은 정확했다. 그런데 당시 사건에 사용된 무기는 흔히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최신예 저격용 총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하던 소총 중 가장 평판이 좋지 않았던 이탈리아제 카르카노 M38이었다.
단번에 유명해진 2류 소총
케네디 암살은 지금까지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오스왈드는 2초 동안 세 발을 발사한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카르카노 M38은 그만큼 빠르게 연사가 가능한 소총이 아니다. 아주 뛰어난 사수라면 혹 가능할지 몰라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해 연속 발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가될 정도다. 따라서 제2의 저격범, 음모론 같은 여러 의혹이 아직 걷히지 않고 있다. 어쨌든 케네디 암살사건으로 그저 그런 2류 소총이던 카르카노 M38은 일약 유명해졌다.
중동 평화를 깨뜨린
에이케이-47 (AK-47)
평화의 시작에서 비극의 시작으로
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을 주도했던 이집트의 모하메드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은 1977년 이스라엘을 전격 방문해 중동 평화를 모색했다. 1978년 이스라엘 메나헴 베긴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아랍국들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했다. 1981년 10월 6일, 사다트는 군사 퍼레이드 도중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암살당했다. 이집트군 소속이던 칼리드 이슬람불리와 공범들이 행진 대열을 이탈한 뒤 연단을 향해 37발의 AK-47 소총탄을 난사하며 돌진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다트는 수많은 관중과 TV 중계를 통해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 앞에서 피할 틈도 없이 즉사했다. 그의 비극적 죽음은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역사상 가장 많이 제작된 총
당시 테러에 사용된 AK-47은 개발국인 소련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지금까지 약 1억 정 정도가 생산된, 역사상 가장 많이 제작된 총이다. 65년 전인 1947년에 양식이 정해진 구형 총임에도 AK-47은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지고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최고의 돌격소총(Assault Rifle)으로서 현재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을 만큼 성능이 뛰어나면서도 저렴하고 제작하기 쉽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AK-47은 상품으로서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총인데, 그러다 보니 정규군뿐 아니라 게릴라나 소말리아 해적 같은 무장 단체까지 애용하고 있다.
유신시대 종말을 예고한
발터 PPK (Walther PPK)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독재에 반대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지만 유신 독재 권력은 철옹성 같았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1분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한 발의 총성을 시작으로 격렬한 사격이 이어졌다. 어이없게도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권력 핵심부의 비밀 장소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수하가 발사한 총탄에 생을 마감했다.
게슈타포가 애용한 권총 PPK
사건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충성 경쟁을 벌이던 경호실장 차지철에게 권총 사격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사격에서 김재규는 박정희의 가슴을 향해 총알을 발사했고, 이 총상이 직접 사인이 되었다. 이때 사용된 권총이 흔히 ‘007 권총’으로 알려진 독일 발터사가 제조한 PPK(Polizei Pistole Kriminale)다. 기존에 경찰용으로 납품하던 권총 발터 PP를 사복 경찰이 휴대하기 간편하도록 총신을 짧게 개량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게슈타포 같은 조직에서 애용했다
미국 대선 판도를 뒤흔든
에이알-15 (AR-15)
트럼프 전 대통령 피격 사건
지난 7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대선 유세 도중 범인이 쏜 총에 맞아 오른쪽 귀에 총상을 입었다. 이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피를 흘리며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치켜드는 모습이 사진에 담겼는데, 이 사진이 대중에 확산되며 트럼프의 지지율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역전, 미국 대선 판도를 뒤흔든 사건이 되었다.
‘민간용’이라기엔 뛰어난 살상력
암살 미수범이 사용한 총은 AR-15 계열 소총이다. 총기 제조사 아말라이트의 앞 글자를 차용해 AR-15라는 이름이 붙은 반자동 소총으로, 군용 소총 M-16의 민간용 개량 버전 총기다. ‘미국 소총’이라 불리며 미국에 보편화된 총기인데, 민간용 총기임에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어 각종 총기 테러에 이 소총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최악의 총기 사고로 알려진 2017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총기 난사 사건, 2016년 플로리다주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 난사 사건에 쓰인 총기도 AR-15 계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