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024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됐다.
올해는 소설가 한강이 한국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01년 창설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노벨상은 그 권위와 명성만큼이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노벨상의 아버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열리는 시상식을 앞둔 지금, 한 번쯤 읽어보아야 할 재미있는 노벨상 상식을 모았다.
노벨상 ‘명문가’는 어디?
1901년 노벨상 창설 이후 가족이 함께 노벨상을 받은 사례는 단 열 번뿐이다. 그중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안은 퀴리 가문이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가 1903년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장녀 이렌 졸리오퀴리와 사위 장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도 1935년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1911년 마리 퀴리가 화학상을, 작은사위 헨리 라부이스 퀴리가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퀴리 가문은 노벨상 메달을 총 여섯 개 보유하게 됐다.
노벨상, 박탈할 수 있을까?
2017년 미얀마 정치인 아웅 산 수 치 고문이 로힝야족에 대한 미얀마 정부의 반인륜 범죄를 묵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그에게 수여된 노벨 평화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청원 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노벨 위원회는 ‘수상 이후에 벌어진 일로 상을 취소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그의 수상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노벨상 규정에 따르면 한 번 수여한 상은 철회할 수 없다. 노벨 재단은 상 수여 기관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에 명시하고 있다.
매년 달라지는 상금
노벨상은 다른 상과 달리 상금이 매년 새롭게 책정된다. 이는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 때문이다. 1896년 63세의 나이로 사망한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장에 자신의 재산으로 기금을 조성한 뒤 그 이자를 매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상금 형식으로 분배하라는 말을 남겼다. 노벨 재단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유산 투자에 따른 수익금으로 상금과 메달, 시상식 진행 전 과정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고 있는 만큼 투자 수익에 따라 매년 상금이 달라지는 것이다. 2012년 노벨 재단은 금융위기 여파로 상금을 800만 크로네(약 9억7000만원)로 삭감했지만, 2017년 900크로네(약 10억9000만원)로 증액한 바 있다. 2024년 노벨상 상금은 1100만 크로네(약 13억원)로 책정됐다. 공동 수상인 경우 기여도를 평가해 상금을 나눠 수여한다.
노벨상 상금은 ‘비과세’
노벨상을 수상하면 상금에 대한 세금을 내야 할까? 정답은 ‘아니오’다. 우리나라 「소득세법」 시행령 18조에 따르면, 노벨상 상금과 부상은 비과세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소득세를 과세하지 않는다. 상금을 수여하는 스웨덴 역시 1946년 이후부터는 노벨 재단에 세금을 물리지 않고 있다.
‘노벨 수학상’, 왜 없을까
노벨상에는 수학 부문이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수학자와 사랑에 실패한 알프레드 노벨이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학 부문을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알프레드 노벨이 사이가 좋지 않았던 스웨덴 유명 수학자 미타그 레플러가 첫 수상자로 지목되는 것이 달갑지 않아 수학 부문을 제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들을 뒷받침하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 최근에는 과학자이자 공학자였던 알프레드 노벨이 이론 위주인 수학을 실용 분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필즈상이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고 있는데, 캐나다 수학자 존 찰스 필즈의 유언에 따라 1936년 창설됐다.
영광보다 신념을 택한 이들
노벨상은 개인의 영광을 넘어 국가의 경사이기 때문에 수상자로 선정되면 대부분 수상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로 이 상을 거절한 사람도 있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목된 장 폴 사르트르는 노벨상이 서양인에게 주로 수여된다는 것과 작가로서의 독립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 결정 기관인 한림원에 수상을 거절하는 편지를 보냈다. 베트남 총리였던 레득토 역시 노벨상을 거절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파리평화협정 당시 협상을 이끈 공로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베트남에 아직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절했다.
갈수록 길어지는 ‘노벨 시차’
연구자가 연구를 시작해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의 시간을 ‘노벨 시차’라고 한다. 과학 저널 <네이처>에 인용된 논문에 따르면, 노벨 시차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연구자가 핵심 연구 성과를 낸 뒤 노벨상을 수상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대 30년에 달한다. 한국연구재단 역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10년간 노벨 과학상 수상자의 평균연령이 67.7세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결과는 연구 성과의 절대 수는 증가했지만 과학계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발견이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노벨 시차가 길어지고 있지만 노벨 위원회가 사후(死後) 수상을 금지하고 있어 획기적인 연구나 발견을 한 과학자가 수상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괴짜들의 놀이터, 이그노벨상
‘매드 사이언티스트’ 모임
이그노벨상(Ig Novel Prize)이란 ‘품위 없는’을 의미하는 영단어 ‘Ignoble’과 노벨상을 뜻하는 ‘Nobel’의 합성어로, 노벨상을 패러디해 만들었다. 1991년 하버드대학교 유머 과학 잡지 <Annals of Improbable Research(기발한 연구 연감)>이 제정했다. 매년 노벨상 발표에 앞서 재미있고 기발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에게 수여한다.
시상 부문은 유동적이나 물리학, 생물학을 포함해 7~10개 부문이다. ‘바보 같으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는’ 연구를 수상작으로 선정하는데, 논문 심사와 시상에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석한다. 우리나라에는 5명의 이그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지난해에는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는 스마트 변기를 개발한 스탠퍼드대학교 의대 소속 박승민 박사가 공중보건상을 수상했다.
상금 10조 달러
이그노벨상 수상자에게는 10조 달러의 상금을 준다. 재미있는 건 이 상금이 미국 달러가 아닌, 폐지된 짐바브웨 달러로 수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2020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정이 악화했다며 위조 지폐로 상금을 주기도 했다.
상금과 함께 독특한 부상품도 제공한다. 2003년에는 1나노미터 크기로 자른 황금 벽돌을 부상으로 수여했다. 나노미터는 1미터보다 10억 배 작은 크기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에 해당한다.
기상천외한 연구 리스트
노벨상과 달리 이그노벨상은 엉뚱한 연구일수록 수상 확률이 높다. 1994년에는 고양이 귀 진드기가 인간에게도 전염될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자신의 귀에 진드기를 넣어 실험한 연구자가 곤충학상을, 2018년에는 상사에게 화가 난 사람들이 저주 인형을 만들어 마구 찌르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를 한 팀이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2024년에는 동전을 35만757번 던지는 실험을 통해 동전을 던질수록 같은 면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연구팀이 통계학상을 수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