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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로 환자의 내일을 열다 [Den이 만난 명의]

환자에게 건강한 하루를 선물하는 것을 목표로 혁신 의료 기술을 적극 활용하며 앞장서는 이가 있다. 환자의 안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순환기내과 명의 박규태 교수를 만났다.

AI 시대, 인공지능 기술이 의료 분야에도 빠르게 도입되면서 질병 진단과 환자 케어에 이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심장 및 혈관 질환을 다루는 순환기내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첨단기술을 통한 정밀 진단과 치료가 새로운 의료 환경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에서 심혈관계질환을 치료하는 박규태 교수는 이런 변화의 최전방에 있다. 질환 진단 및 치료 수준을 한층 높이기 위해 의료 현장에 최신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는 한편, 기술 활용 방식을 동료 의료진에게 알리고, 질병 예측이 가능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것. 에크모 시술과 스텐트 시술로 환자를 돌보면서 연구에 매진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환자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할 수 있다면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흔히 첨단 의료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라면 차갑고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그러나 박규태 교수와의 만남은 이런 선입견을 단번에 날려버린다. 그는 환자의 고통과 회복 과정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환자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신하며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환자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라는 그에게서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Den
ⓒDen

 

박규태 교수는…

2015년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임상강사로 근무한 뒤 2016년 한림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거치고,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순환기내과에서 임상조교수를 지냈다.

현재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순환기내과 임상부교수를 역임하며 심인성 쇼크 치료, 에크모 시술과 함께 AI를 활용한 심장질환 예방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막 시술을 마쳤는데, 평소 시술을 얼마나 진행하나?

심근경색으로 병원을 찾는 응급 환자도 있고, 비응급 시술도 적지 않아 시술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응급환자의 스텐트 시술은 수시로, 비응급 시술은 일주일에 이틀 정도 날짜를 정해 진행한다. 방금 전에는 지속적으로 가슴 통증을 호소하던 미국인 환자의 심장 혈관을 확장하는 시술을 했다.

 

순환기내과는 시술이나 수술도 많고 소요 시간 역시 긴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환기내과를 전문 분야로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2006년에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에서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뎠는데, 당시 스승님이셨던 내과 교수님들이 정성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과 의사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꿈꾸게 됐다. 그중에서도 나를 매료시킨 건 순환기내과였다. 순환기내과는 응급이나 당직 진료가 많아 업무 강도가 높지만 보다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치료를 통해 생명이 위급한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몸을 불살라 환자를 살리는 순환기내과 교수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진로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현재 에크모 시술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에크모란 무엇인가?

패혈증 쇼크가 왔거나 급성심근경색으로 정상 혈압이 유지되지 않는 경우에 사용하는 의료기기다. 심정지 상태가 길어지면 뇌 손상이 올 수 있는데, 막혀 있는 혈관을 뚫고 정지된 심장이 제 기능을 하려면 3~5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에크모(ECMO, 체외막산소화장치)는 그런 상황에서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한다. 대퇴동맥과 대퇴정맥을 통해 큰 관을 넣어 몸에 정지되어 있는 혈액을 밖으로 빼낸 뒤 산소를 공급해 몸 안으로 넣어주는 기기다. 갑자기 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삶을 되찾아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에크모 시술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

내과 전공의 시절 한림대학교 성심병원에 국내 최초로 에크모 센터를 개소하신 흉부외과 김형수 교수님께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 갑작스럽게 생명을 잃어가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는데, 교수님께서 에크모 시술을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에크모라면 이런 환자에게 삶을 되찾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에크모를 배우고 싶어 새벽 6시 환자 라운딩을 할 때 심장초음파를 가지고 다니면서 에크모 시술을 받는 환자들의 심박출량을 확인하기도 했다. 사실 에크모 시술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지만, 이런 열정을 기특하게 여겨주신 덕분에 교수님과 함께 시술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임상강사를 했던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우리나라 최초로 에크모 시술을 시작한 흉부외과 이영탁 교수님, 순환기내과 권현철·한주용·양정훈 교수님께 시술법을 배웠다. 최고의 환경에서 스승님들께 배울 기회가 많아 지금 이곳에서 심정지 환자와 응급 환자에게 에크모 시술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의 에크모 기기. ⓒDen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의 에크모 기기. ⓒDen

이제까지 에크모 시술을 몇 례가량 진행했나?

현재 우리 병원은 강원도 권역응급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강원도 전역에서 심정지 환자가 내원한다. 한 달에 2~3건 진행해 4년 동안 100례 가까이 한 것 같다.

 

심혈관계질환 특성상 골든타임 사수가 중요할 것 같다

급성심근경색 환자는 최대한 빨리 풍선확장술을 해 혈관 협착 부위를 개통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골든타임은 90분 이내로, 우리 병원에서는 60분 이내에 치료를 시행한다. 집에서 병원 응급실까지 뛰어서 15분, 차로 5분 거리인 심인성쇼크로 심정지가 온 환자가 내원한 경우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갈 때가 많다.

 

연구실에 간이침대가 마련돼 있다

한 달 중 20일 정도를 병원에서 잔다. 지난 추석 새벽에는 12회 정도 병원에 나왔다. 콜 받은 것만 열두 번이고, 에크모 환자도 있었으니 20일 동안은 거의 밤을 샜다. 몸은 힘들지만, 열두 번 나왔으니 12명의 생명을 살린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늘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체력 관리가 중요할 것 같다

심혈관 자체가 매우 예민하다 보니 시술 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치료를 마치고 시술장에서 나오면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된다. 체력 관리가 중요하지만 응급 중증질환을 다루다 보니 제대로 시간을 내 운동하기는 어렵다. 예전에 수영을 하고 싶어 수영장에 등록한 적이 있는데, 수영을 하는 30분 동안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지 너무 불안했다. 환자들이 찾아오면 매일 30분 정도 땀이 날 때까지 걸으라고 말하는데, 나도 시간을 내 운동을 할 수 없으니 집까지 빨리 걷기 운동을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심혈관계질환 치료에 첨단기술을 도입했다

실시간으로 입원 환자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씽크’ 시스템을 이용한다. 무선 네트워크와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생체 신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반지형 연속혈압측정기 '카트비피’, 웨어러블 심전도 패치 ‘모비케어’도 사용 중이다.

 

의료 현장에는 어떻게 적용하고 있나?

응급 병동과 호흡기 병동에 씽크를 적용한다. 가슴이 아프거나 의식을 잃어 병원을 찾은 환자 중 기계 호흡이 필요하거나 중증이 아니라면 응급 병동으로 이송되는데, 의료진이 부족하다 보니 환자 한 명 한 명을 케어하기가 쉽지 않다. 씽크 시스템은 CCTV 관제 센터처럼 널스 스테이션의 큰 모니터를 통해 각 환자의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급성 호흡부전과 낙상을 예방하기 위한 알람 시스템도 갖췄다. 각종 웨어러블 기기는 환자가 착용한 뒤 수집된 데이터를 대형 모니터나 모바일 기기로 전송해 환자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했다.

 

사고 발생 시 의료진이 즉각 대응할 수 있겠다

그렇다. 환자가 갑작스럽게 쓰러졌거나 호흡곤란 등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바로 알 수 있어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혈압, 심박수, 호흡수, 산소포화도 등의 생체 신호를 분석할 수 있고, 부정맥 발견 정확도도 90% 이상이다. 적은 인력으로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환자를 보살필 수 있다.

 

입원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 ⓒDen
입원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씽크’. ⓒDen

동료 의료진에게 최신 의료 트렌드를 소개하는 ‘스피커 닥터’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씽크는 의료진의 부하를 줄이면서 환자를 효과적으로 보살필 수 있는 시스템이다. 특히 인력이 부족한 1차, 2차 의료기관에서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본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진단과 치료에 적용하면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강연을 열고 다양한 새 기술을 동료 의사들에게 적극 소개하고 있다.

 

강연 이후 동료 의료진의 반응은 어떤가?

대부분 놀라워한다. 최신 기술에 대한 정보는 대체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이러한 시스템을 경험하거나 현장에 적용해 본 사람은 드물다. 강연을 통해 기술의 잠재력과 의료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려 노력한다.

 

첨단기술을 도입하고 소개하는 데 부담감은 없었나?

내가 근무하는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은 지역거점병원이면서 뛰어난 연구 역량을 갖춘 연구 중심 병원이다. 보건복지부, 식약처는 물론 과학기술부와 협력해 연구를 선도하며, AI나 딥러닝 같은 새로운 시스템을 연구하고 도입하는 데 적극적이다. 씽크, 카트비피, 모비케어 같은 첨단 시스템을 진료 현장에 신속히 적용해 진단과 치료에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병원의 연구 역량과 기술에 대한 개방적 접근 덕분이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를 의료진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주제가 궁금하다

입원 환자 중 갑작스럽게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질환 발병 전 환자의 건강 상태를 예측할 수 있다면 이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여기에서 착안해 현재 과학기술부와 함께 예측 가능한 심정지 모델과 심근경색 예방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는 심장에서 나오는 방대한 신호를 모은 뒤 데이터를 분석 및 추출하는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다. 3년 뒤에는 개발이 완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처음부터 AI와 딥러닝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

2~3년 전까지만 해도 관심이 전혀 없었다.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미국 4대 병원 중 하나인 메이요 클리닉의 세미나였다. 당시 세미나에서는 심전도 데이터를 통해 AI를 훈련시켜 심근경색 모델과 심부전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파월 프리드만 박사 등 전문가들이 참석해 미국 심장내과에서의 AI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발표를 듣다 보니 ‘내가 모르고 지나칠 뻔했던 AI와 딥러닝이 이렇게 활용될 수 있구나’ 싶어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이런 시스템을 개발하고 임상 현장에 빨리 적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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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기술이 발전할수록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해진다. 환자와 소통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사실 환자들은 자신의 병에 대한 정보나 치료 방식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적합한 명확한 의학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지식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환자들과의 유대 관계가 중요하다. 외래에 오실 때마다, 혹시라도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을 할 때마다 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약물 복용과 치료 방법, 치료기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을 처리하며 연구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응급 중증질환의 특성상 연구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렵다. 연구를 하다가 응급 환자 치료를 위해 연구실을 뛰쳐나가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서인지 이 길을 선택하려는 후배도 많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후배나 제자를 지속적으로 양성해 진료와 연구를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혈관계질환 특성상 비극을 마주할 일도 많을 것 같다

강원도는 면적이 워낙 넓다 보니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분이 많다. 아무리 빨리 신고해도 20~30분 이상 심폐소생술을 하고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는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

 

멘털 관리는 어떻게 하나

심장 혈관 특성상 아무리 쉬운 시술일지라도 조금이라도 엇박자가 나면 혈관에 상처가 나기 때문에 바로 심정지가 올 수 있다. 또 치료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병의 진행이 너무 빠르면 손쓸 틈 없이 악화하는 경우도 있다.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처음 심장 혈관을 시술할 때부터 오늘 하루도 환자분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도록 기도하고 시술에 임한다. 시술을 끝내고 난 후에는 연구실로 돌아와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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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환자가 우선인 것 같다

의사로서 첫발을 내디딜 때, 환자의 건강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시는 스승님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환자의 행복을 우선하는 책임감 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아침과 저녁 회진을 돌 때 잘 주무셨는지, 아픈 증상이 가라앉았는지 확인하면서 조금씩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행복이다.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아 일상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한다.

 

순환기내과 전문의로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전공의 시절 급성호흡부전에 빠진 일본인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 두 달 정도 에크모 시술을 받은 분인데, 에크모를 떼고 6개월 만에 걸어서 퇴원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사함을 느꼈다. 심장 혈관 협착으로 시술을 받고 내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본 미국인 환자도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당신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라고 말해 울컥한 적도 있다.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환자가 정말 많다. 여러 심근경색 환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가며 건네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에 보람을 느낀다.

 

의사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거창한 것은 없다. 다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환자들에게 행복한 삶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열어드리고 싶다. 항상 환자들 곁에서, 언제라도 뛰어나갈 자세가 되어 있는 의사로 남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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