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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짭짤한 함정, 초가공식품의 경고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역사무소는 초가공식품을 담배, 알코올, 화석연료와 함께 4대 건강 위험 요소로 지목했다.

초가공식품은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을 앞세워 현대인의 식탁을 빠르게 점령했지만, 그 이면에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숨어 있다.

부산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김혜미 교수와 함께 초가공식품의 위험성을 살펴봤다.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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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교수는…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텍사스 A&M대학교에서 영양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부교수로 근무하며 프리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오틱스가 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천연물 유래 소재가 장과 면역체계는 물론 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연구 중이다.

아침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시리얼과 편의점 매대에 놓여 있는 각종 빵, 물만 부으면 간편하게 조리가 끝나는 즉석식품까지, 바쁜 현대인의 식습관은 빠르고 간편한 식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 생활 습관을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는 ‘저속 노화’가 새로운 트렌드로 확산하면서 건강한 식단을 선택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지만, 가공식품은 여전히 우리 식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3년 가공식품 소비자 태도 조사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203가구 중 매일 가공식품을 구입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1.0%, 주 2~3회 구입한다는 응답은 23.9%, 주 1회 구입한다는 응답은 40.6%에 달했다. 10가구 중 6가구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가공식품을 구매한다는 의미다.

물론 식품 가공 과정이 항상 신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종 첨가물이 포함된 가공식품을 과다 섭취하는 것은 분명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식품을 어떻게 섭취해야 할까? 넘쳐나는 가공식품 가운데 특히 주의해 섭취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 UPFs)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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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 넘어 ‘초가공’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식품은 영양소와 열량을 기준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같은 식품이라도 가공 정도에 따라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식품 분류 기준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2009년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 카를루스 몬테이루 교수팀이 제안한 ‘NOVA’다. NOVA는 기존 식품 분류 기준과 달리, 식품을 가공 정도에 따라 네 그룹으로 나눈다.

NOVA에 따르면 과일이나 채소 같은 미가공 혹은 최소 가공식품은 1그룹, 소금·설탕·버터·식용유가 포함된 가공 식재료는 2그룹, 자연 재료에 소금·설탕·기름 등의 첨가물을 넣어 만든 통조림과 치즈 등은 3그룹, 다섯 가지 이상의 재료로 만들며 유화제·색소·인공감미료 같은 여러 첨가물을 함유하고 복잡한 공정을 거쳐 생산된 과자류·아이스크림·탄산음료·가당 주스·햄·소시지와 각종 즉석조리식품 등은 4그룹 식품으로 분류된다.

 

NOVA 체계에 따른 식품 분류 표.

여기에서 핵심은 3그룹과 4그룹, 즉 가공식품과 초가공식품을 어떻게 분류하느냐 하는 문제다. 3그룹 식품은 일반적으로 1그룹에 소금, 설탕, 기름 같은 2그룹에 속하는 재료를 첨가해 단순 가공한 식품으로, 보통 보존성과 맛을 개선하기 위해 가공한다. 반면, 4그룹 식품은 가정집 부엌에서 볼 수 없는 재료인 고과당 옥수수 시럽, 경화유, 카제인 같은 성분이나 다양한 식품첨가물이 추가된다. 복잡한 가공과정을 지나면서 영양소의 구조가 일부 변형되거나 비타민, 식이섬유 같은 유익한 성분이 감소하는 점 역시 4그룹 식품이 갖는 특징이다. 이런 공정을 거친 식품들은 대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편의성이 뛰어나 별도의 조리과정 없이 바로 섭취할 수 있다.

초가공식품에는 탄산음료처럼 몸에 좋지 않다고 알려진 먹거리 외에 시리얼이나 빵, 요거트처럼 건강한 식단의 일부가 될 만한 식품도 포함된다. 같은 식품도 제작 방식에 따라 가공식품이 될 수도, 초가공식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밀가루, 소금, 이스트로 만든 빵은 가공식품으로 분류되지만, 여기에 유화제·향료·감미료 등을 넣어 만들면 초가공식품이 된다. 요거트도 이와 비슷하다. 플레인 요거트와 달리 인공감미료나 착색제 등이 첨가되어 맛이 가미된 요거트는 초가공식품으로 분류된다. 시리얼이나 아이스크림 역시 마찬가지다.

식품 가공의 정도에만 초점을 맞추는 NOVA 분류 체계는, 식품에 유익한 영양소가 풍부하더라도 첨가물이 포함된 순간 초가공식품으로 분류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NOVA 체계는 정의가 모호하거나 세부적인 분류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따라 일부 영양학자들은 초가공식품을 영양소 함량에 따라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 견을 제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식품 가공을 기준으로 하는 NOVA 체계와 함께 식품의 영양학적 품질을 평가하는 유럽의 ‘Nutri-Score’를 보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NOVA와 Nutri-Score를 비롯해 명확한 식품 분류 기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식품첨가물을 확인하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다 건강한 식습관을 정립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초가공식품에 포함된 일부 첨가물이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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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공식품이 남기는 흔적

초가공식품의 위험성을 둘러싼 연구는 2009년 ‘초가공식품’이라는 단어가 학계에 등장했을 때부터 이어져왔다. 초가공식품 섭취를 10% 늘릴 때마다 사망 위험이 15% 증가한다고 경고한 프랑스 소르본대학교의 연구를 포함해, 초가공식품이 고혈압, 지방간, 대사증후군, 인지기능 저하 등 다양한 질병의 유발 가능성을 높인다는 논문이 잇따라 공개됐다.

2024년 2월에는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역대 최대 규모의 메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연구는 전 세계 988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선행 연구 자료를 종합한 것으로, 초가공식품이 32가지 질환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특히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많을수록 심혈관질환, 제2형 당뇨병, 정신질환의 발병 위험이 유의미하게 증가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초가공식품 섭취가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 위험을 최대 50%, 불안·우울·수면장애 같은 정신질환의 위험을 최대 53%, 제2형 당뇨병의 위험을 12%까지 높인다고 밝혔다.

 

장부터 뇌까지, 전신 건강 ‘적신호’

초가공식품이 신체는 물론 정신 건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혜미 교수는 초가공식품에 과다하게 들어 있는 첨가당, 포화지방, 트랜스지방, 염분 그리고 인공감미료, 유화제, 색소 등의 여러 가지 식품첨가물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성분들은 심혈관질환과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일 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 환경에 영향을 미쳐 뇌 건강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장내 미생물은 유해균과 유익균으로 구성되며, 그중 유익균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병원균에 대한 방어기전을 담당해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유익균은 식이섬유 등의 프리바이오틱스를 발효해 단쇄지방산(SCFAs)을 생성한다. 단쇄지방산은 면역 조절, 장 점막 보호, 장-뇌 축 기능 유지 등의 다양한 역할을 한다. 초가공식품은 프리바이오틱스 함량이 낮아 유익균의 먹이를 제한함으로써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유해균 증식을 촉진할 수 있다. 이러한 장내 미생물의 변화는 신체적 문제에 그치지 않고,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내 신호는 미주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며, 장에서 생성되는 도파민과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은 장-뇌 축을 통해 신경계 활동에 관여한다. 장-뇌 축 메커니즘은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되었으며, 장내 미생물과 신경계 간 상호작용은 여러 연구를 통해 검증되었다. 김혜미 교수는 장내 유해균이 생성하는 독소가 장 점막의 투과성을 증가시켜 전신 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염증은 혈류를 통해 뇌로 전달되어 뇌 염증과 인지기능 저하, 불안, 우울증 같은 정신 건강 문제를 초래하며, 가속 노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초가공식품의 섭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의 경우 아동 및 청소년의 초가공식품 섭취 비중이 특히 크다. 연세대학교 심지선 교수의 논문 <한국인의 초가공식품 섭취 실태와 건강 영향>에 따르면, 전체 열량 중 13~19세의 초가공식품 섭취 비율은 34.4%, 1~12세의 섭취 비율은 29.6%였다. 최근 김혜미 교수가 수행한 6~8세 아토피 아동 97명을 대상으로 한 관찰 연구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소시지 같은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는 아이들이 장내 미생물 불균형과 더 심한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김혜미 교수는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초가공식품 섭취가 늘면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고, 면역체계 조절 기능이 약화해 아토피, 식품 알레르기 같은 면역질환을 앓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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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칠 수 없는 초가공식품의 유혹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근무나 가사 부담으로 수면 시간마저 부족한 현대인의 식탁에서 이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건강에 여러 해악을 미칠 가능성이 있음에도 우리 식탁에는 초가공식품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 브라질, 미국 등 다국적 연구팀은 2023년 논문을 통해 1990년대 이후 대부분 국가에서 초가공식품의 판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거나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일일 에너지 섭취량의 58%, 영국에서는 57%가 초가공식품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역시 에너지 섭취 식품 중 초가공식품의 비중이 증가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이러한 비율은 2010~2012년 23.1%에서 2016~2018년에는 26.1%로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초가공식품 섭취를 멈추기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 때문이다. 초가공식품은 대량생산 방식 덕분에 자연 재료로 만든 식품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여러 재료를 따로 구입하고 손질하는 것보다 때로는 초가공식품을 구입하는 것이 시간과 비용 면에서 훨씬 효율적일 때도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 보니 대량으로 구매해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쉽게 소비할 수 있어 경제적 부담도 적다. 바쁜 일상생활 중에도 저렴하고 간편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으니, 초가공식품은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초가공식품을 구입하게 되는 두 번째 이유는 의존성이다. 더운 날 물 대신 탄산음료가 더 당기거나, 감자칩에 멈추지 않고 손이 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초가공식품은 자연 재료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강렬한 맛과 높은 칼로리로 뇌의 보상 체계를 활성화시키고, 이는 동기부여, 쾌락, 학습에 관여하는 보상 체계에 과도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미시간대학교 애슐리 기어하트 교수 팀의 연구 결과, 8주간 지방과 당분 함량이 높은 음식을 섭취한 참가자들이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뇌의 도파민 생성 활동이 활발해진 것이 관측되기도 했다. 애슐리 기어하트 교수는 “이러한 효과는 사람들이 니코틴, 알코올 및 기타 중독성 약물을 사용했을 때의 효과와 유사하다”라고 지적하며 초가공식품의 중독성을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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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분표 확인은 선택 아닌 필수

김혜미 교수는 현재 초가공식품 섭취 적정량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지만, 단계적으로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김혜미 교수가 수행한 관찰 연구에 따르면, 건강식을 주로 섭취하는 아토피 환아들은 초가공식단을 중심으로 한 아토피 환아들보다 가려움증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가공육과 아이스크림 섭취량이 초가공식단을 중심으로 한 아이들에 비해 약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따라서 우선 초가공식품 섭취량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예를 들면, 현재 한국인은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섭취하고 있다. 이를 2주에 한 번으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시지나 게맛살 등을 물에 데쳐 염분과 일부 첨가물을 제거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첨가물 제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초가공식품의 구입과 섭취 자체를 조금씩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식품성분표도 꼭 체크해야 한다. 초가공식품에 함유된 성분은 대체로 일반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글루텐, 카제인, 유청, 고과당 옥수수 시럽, 말토덱스트린 같은 낯선 성분이 하나 이상 포함돼 있다면 해당 제품은 초가공식품일 가능성이 크다.

김혜미 교수는 낯선 재료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어렵다면, 원재료명이 짧은 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스턴트식품이나 간편조리식품으로 식탁을 구성하는 빈도를 줄이고, 초가공식품 섭취량을 점차 줄여나가며, 신선한 자연 식재료를 활용한 식사를 통해 건강한 식습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가공식품 섭취량 조절은 이렇게!

➀ 현재 섭취량의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단계적으로 섭취량을 줄인다.

➁ 인스턴트식품 및 간편조리식품 식사 빈도를 줄이고, 자연 식재료로 식탁을 구성한다.

➂ 소시지나 게맛살 등을 섭취할 때는 물에 데쳐 염분과 일부 첨가물을 제거한다.

➃ 식품 포장지 뒷면의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고, 첨가물이 최소로 구성된 제품을 선택한다.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면 초가공식품일 가능성이 높다.

 

식탁의 변화가 삶을 바꾼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되며, 음식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는 말을 남겼다. 한 끼 식사가 단순한 영양소 공급을 넘어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의미다.

초가공식품의 지나친 섭취가 건강에 비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경고하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어느새 일상이 된 초가공식품 섭취가 식탁을 넘어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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