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초고령화사회를 향해 누구보다 성실히 나아간다. 그 결과, 30년 후엔 인구의 절반이 노인이 된다.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저자이자, 인구학자 이철희 교수가 초고령사회의 현실과 이에 맞선 대응책을 제안한다.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서울대학교 국가미래전략원 인구 클러스터장
·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저자
이철희 교수는 막연한 공포심을 넘어 현실적 대안을 말하는 인구학자다. 그는 앞으로 30년 내로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며, 전체 인구의 절반이 65세 이상으로 채워질 것이라 경고한다. 특히 그가 주목한 문제는 돌봄노동의 급격한 부족이다. 지금부터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돌봄 서비스가 무너지고, 결국 개인과 가족의 삶마저 위협받게 된다는 것. 이철희 교수를 만나 고령화로 인한 돌봄노동 문제의 실상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대응책을 물었다.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를 집필했다.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인구에 대한 연구는 대학원 시절부터 계속해 온 주제다. 최근 5~10년 사이 인구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으며 언론 보도 비중이 증가하고, 대중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런데 논점을 들여다보면 근거 있는 주장도 있지만 막연하거나 과장된 발언도 적지 않다.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이야기가 퍼지는 걸 보며 최대한 근거 있는 논리로 미래를 구체적으로 전망해 보고 싶었다.
보통 ‘큰일 났다’는 식의 경고는 넘치지만,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하지만 미래는 정해진 게 아니다. 인구변화가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준비와 대응으로 어려움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출판 제의를 받았고, 원래 책을 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 주제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집필하게 됐다.
책에서는 인구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주장하면서도 공포심보다는 대안의 필요성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단순히 공포심을 자극하기보다는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할 문제를 정확히 짚고자 했다. 흔히 인구가 줄어드는 것 자체를 걱정하지만 총량보다는 ‘속도’와 ‘구조’가 더 중요하다. 인구가 30% 줄어도 100년, 150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면 사회가 그에 적응한다. 문제는 한국처럼 50년 안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경우다. 지금 젊은 세대가 은퇴하기도 전에 사회구조가 크게 바뀌게 된다.
더 심각한 건 구조적 문제다. 출생아 수가 빠르게 줄면서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사회 시스템 자체가 균열을 겪는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 보육시설, 교육, 국방, 대학 등은 매년 태어나는 인구수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 그런데 그 수가 10년 만에 절반, 30년 만에 3분의 1로 감소하면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산부인과가 줄고 있다는 보도에서 이미 실감한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전체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부문 간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직종이나 숙련도, 지역에 따라 노동력이 넘치는 곳과 모자라는 곳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미스매치 문제다. 앞으로 한국이 당면할 가장 현실적인 인구문제는 이런 불균형이다.
총량만 보고 인구문제를 막연히 걱정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이유다. 언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변화가 어떤 분야나 지역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인구문제가 심각한 시점으로 30년 후를 짚었다
당장 심각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것만큼 급박하지 않을 수 있고, 정말 심각한 지점은 다른 데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노동인구에 관해 ‘절벽’이나 ‘붕괴’ 같은 표현을 하는 건 과도하다는 생각이다.
노동 공급이 완만하게 줄어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 한국은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젊은 세대는 오히려 낮은 구조다. 그래서 고령화가 진행돼도 일하는 사람 수 자체는 급격히 줄지 않는다. 통계상 생산연령인구는 빠르게 감소하지만, 실제 경제활동인구는 그보다 더디 줄어드는 셈이다.
둘째, 생산성 문제다. 보통 고령화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지난 50년간 압축성장을 거치며 고학력 인구가 크게 늘었다. 앞으로 고령자가 되는 세대는 과거와 달리 건강하고, 학력도 높고, 직업의 질도 나쁘지 않다. 이로 인해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저하보다 학력 향상 등 인구 질 개선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요인을 모두 감안하면, 노동 투입 감소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완만하다. 시뮬레이션상 2047년까지는 현재의 90%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만약 앞으로 여성과 장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고, 여성의 상대적 생산성이 OECD 평균 수준까지 도달한다면 2047년까지 노동인구는 사실상 줄지 않을 수 있다. 즉 노동력 감소는 고정된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도 특히 85세 이상 초고령층의 증가가 두드러진다.
이들은 돌봄이나 의료 수요가 가장 높은 집단이기 때문에
고령화의 양적 증가뿐 아니라 질적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흐름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인구문제 중에서도 특히 고령화의 심각성을 짚었다
지금도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 20년 사이에는 그 속도가 훨씬 가파를 전망이다. 현재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인구 중 약 20%를 차지한다. 이 수치는 낮다고 보기 어렵지만, 아직은 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20년 후에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고령인구 비율 1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마저 제치는 것이다.
더 나아가 50년 뒤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65세 이상일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 약 30년 안에 고령인구 비율이 20%에서 45%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한다. 이처럼 압축적으로 진행되는 고령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현상이다.
현재 시점에서도 벌써 돌봄노동 인구 부족 문제가 언급된다
물론 지금 돌봄 인력이 부족한지 적정한지를 정확히 따지는 건 매우 어렵다. 의사 인력 문제와 마찬가지다. 어떤 시점에, 어떤 지역이나 분야에서, 어떤 조건의 인력이 부족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단순히 총량으로 판단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황을 보면, 이미 돌봄 인력은 부족한 상태에 가깝다고 본다. 예를 들어, 요양 등급을 받고도 요양보호사를 구하지 못해 대기하는 경우가 많고, 신청 후에도 인력을 배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간병인 구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인력의 질도 낮아지는 추세다. 원하는 조건의 인력을 찾기 어렵다는 건 그만큼 수급이 빠듯하다는 방증이다.
정확히 몇 명이 부족한지 숫자로 말하긴 어렵지만, 수요 대비 공급이 빠르게 뒤처지고 있다는 건 현장에서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2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