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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피곤한 당신, 번아웃입니다 ① [인터뷰]

누구나 쉰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쉬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중년 남성은 번아웃인 줄 모른 채 쉼을 미룬다. 이들에게 휴식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 기술이라고,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저자 김은영 교수는 말한다.

 

김은영
·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저자

 

누구나 쉬고 싶다 말하지만, 누구도 쉬지 못하는 시대다. 자기 계발을 게을리하면 뒤처질까 조마조마하고, 남들보다 더욱 노력해야 당장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기술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요즘, 사람도 업그레이드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녹슨 톱니바퀴가 구태여 돌아가는 모양새다.

현대인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단순히 늘어지고, 누워서 핸드폰만 보는 시간이 아니다. 내면을 가다듬고 자신을 돌보는 진짜 휴식이 필요하다.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 한 뼘 그늘이 되고자, 김은영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를 집필했다.

 


 

책을 출간한 계기가 궁금하다

서울대학교에서 20대 학생부터 40대 교직원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이들은 각자 바쁜 삶을 살면서 불안, 수면 장애 등의 문제를 안고 나를 찾아온다. 의학적 측면에서 정신질환 진단 기준에 미치는 정도는 아니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상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들 일상생활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정신질환은 일이나 일상에 큰 장애가 있을 때 진단하는데, 여기서는 일을 하면서도 지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약물 치료나 상담도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일상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작은 습관이라고, 이들을 보면서 느낀다. 무기력할 때 활력을 주고, 불안하거나 힘들 때 자신을 진정시키고, 잠이 안 올 때 더 잘 잘 수 있도록 돕는 방법 말이다.

이런 걸 조금만 알고 있으면 굳이 정신과까지 오지 않아도 지금 일을 스스로 감당하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그래서 환자들과는 일상에서 어떻게 자신을 쉬게 하고, 조절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런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썼다.

 

현대인이 지쳐 있고, 휴식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 해야 할 일을 하긴 하는데 늘 피곤하고 지쳐 있고 불안해하는 분이 많다. 정서적으로 소진되어 있다. 번아웃 증상을 어느 정도 가지고 살아가는 분이 너무 많다.

어떤 분은 진료실을 찾아와 “잠을 못 자고, 너무 피곤하다. 몸이 천근만근이고, 쉽게 짜증이 난다. 그런데 내 주변에 보면 다 그 정도는 하는 것 같다. 그럼 이게 정상인가, 아니면 내가 남들보다 지쳐 있는 건가” 묻는다.

모든 현대인이 지쳐 있어 ‘지침의 정도’를 헷갈려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본인이 이 정도는 힘들어야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건강하고 조금 몸에 활력이 있으면 ‘체력이 남아도는 것 같은데, 내가 일을 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중년 남성들이 번아웃을 인식하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흔히 중년 남성은 ‘일’로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90% 이상을 ‘일하는 나’로 정의하고, 성과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래서 쉬거나 지치거나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걸 나약하다고 여긴다. 불안하거나 우울한 감정을 의지가 약해서, 게을러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쉬는 건 내가 무가치해 사회로부터 필요 없어진 결과라고 느낀다. 감정을 돌보는 걸 부끄러워하고, 억누르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감정을 억누르면 부작용이 있을 텐데?

정서적 어려움을 억압하고 회피하면 몸과 마음이 계속 긴장 상태에 머문다. 그게 바로 스트레스다. 중년 남성은 스트레스가 누적돼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병원을 찾는다.

 

 

스스로 ‘내가 지쳤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금방 알아챈다.

표정이 달라졌고, 웃지 않고, 한숨을 자주 쉬는 등이

번아웃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이 번아웃 극복의 첫걸음이다.

중년이 겪는 번아웃은 주로 어떤 증상으로 나타나나?

신체 증상이 좀 더 두드러진다. 젊은 사람들은 표현을 중시한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중년보다는 더 자유롭게 표현한다.

반면에 중년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를 돌보는 걸 어색하게 느낀다. 내가 조금 힘들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다른 사람도 다 그렇다’며 자신을 억압한다. 휴식을 게으름이나 무가치함, 또는 나약함의 근거로 받아들이는 탓이다. 그렇게 번아웃을 끝까지 참다 보면 결국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 심한 두통, 만성피로, 어깨 근육통, 답답함, 두근거림 등이 그 예다.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니 정신질환으로 인식하기 어렵겠다

그렇다.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한다. 두통이 있으면 MRI를 찍고, 가슴이 답답하면 내과에서 심전도 검사를 하지만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스트레스성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정신과를 찾는다.

정서 감각이나 감정 표현이 익숙지 않다 보니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한다. 자세가 위축되거나, 눈을 잘 마주치지 않거나, 잠을 설치거나, 여기저기 통증이 오는 방식으로 표현되면서 타인은 분명 신체 이상을 인지하는데, 정작 본인은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다. 그냥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가’라며 넘기는 경우가 대다수다.

 

번아웃 상태가 계속돼 과로하다 보면 어떻게 되나?

결국 신체는 물론 정신까지 셧다운이 된다. 번아웃은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상태다. 흥분과 이완이 적절히 반복돼야 신경계가 건강한데, 긴장이 계속되면 이완이 되지 않아 자는 동안에도 몸이 편히 쉬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며칠 바쁘고 하루 쉬면 괜찮아지겠지’ 착각한다. 그러나 하룻밤을 새우면 회복하는 데 최소 3일, 한 달 과로하면 회복하는 데 3개월 정도가 걸린다. 생리학적으로 무리한 만큼의 시간을 들여 회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이 회복 시간이 더 길어진다. 주말 하루 쉬고 에너지가 돌아올 거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번아웃을 겪는 이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나?

가장 중요한 건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이다. 중년 남성은 자기 정체성의 90% 이상이 ‘일하는 나’에 맞춰져 있다. 일을 쉬라고 말하면 오히려 더 불안하고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느낀다.

실제로 일을 멈췄더니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는 분도 많다. 일을 거절하고 시간이 생겼는데 ‘왜 아무도 나를 찾지 않지?’라는 불안이 밀려온다. 그러다 보면 차라리 일하는 게 낫다고 느낀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일터에 있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쉬는 게 불안하다고 해서 나에게 쉼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그동안 너무 일 중심으로 살아와 쉼이 어색할 뿐이다.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힘들다고 바로 포기하지 않듯, 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나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 번아웃에서 벗어날 수 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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