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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극복을 위한 실질적 휴식법 ② [인터뷰]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김은영 교수가 말하는 중년 남성 번아웃 극복법.

 

김은영<br>·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br>· &lt;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gt; 저자<br>
김은영
·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나는 왜 마음 놓고 쉬지 못할까> 저자

 

1부에 이어..

책에서 ‘수용의 창’이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린다

몸과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각성 수준의 범위를 말한다. 이 범위 안에 있을 땐 감정이 들뜨거나 가라앉아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범위를 벗어나면 ‘과대 각성 상태’가 되거나 ‘과소 각성 상태’가 된다.

과대 각성 상태가 되면 불면증이 생기고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빈도가 는다. 이럴 땐 긴장을 낮추는 활동이 필요하다. 조용한 산책, 호흡 조절, 따뜻한 차 한 잔 같은 것이 도움 된다.

과소 각성 상태가 되면 머리가 멍하고, 무기력하고, 해야 할 일 앞에서 도망치고 싶고, 자꾸 잠이 쏟아진다. 이럴 땐 스스로를 깨어나게 할 활동이 필요하다.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친한 친구를 만나거나,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는 것도 권장한다.

 

제대로 된 휴식을 위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휴식의 기술’은?

스스로를 위한 ‘마음 챙김’이 필요하다. 마음 챙김이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화 중에 ‘언제 끝나지?’, ‘내가 말을 잘하고 있나?’ 같은 생각이 들어도 그냥 흘려보내고 다시 대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보통 쉬는 시간을 가지면 과거나 미래로 떠도는 생각이 많아진다. ‘왜 그때 그런 말을 했지?’, ‘내일 해고되면 어쩌지?’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무수히 떠오른다. 연구에 따르면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의 70%는 부정적 생각으로 흘러간다.

휴식할 때는 어떤 활동이든 그 순간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산책할 때는 주변 소리와 풍경에 집중하고, 대화할 때는 말에만 집중한다. 그러면 짧은 시간에도 회복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누워 있을 때도 침대의 감각에 집중하고, 몸의 긴장을 의식적으로 풀어본다. 놀 땐 놀고, 먹을 땐 먹고,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한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휴식의 기술’이다.

 

 

경계해야 하는 휴식 방법은?

‘중독성 있는 휴식’은 경계해야 한다. 즉각적인 쾌감을 주지만 조절하기 어려운 탓이다. 유튜브 숏츠, 술, 담배, 카페인, 과도한 쇼핑 등이 그 예다. 이런 활동은 도파민을 자극해 강한 보상을 즉각적으로 주지만 습관화되어 통제력을 잃기 쉽다.

유튜브를 10분만 보려고 했어도 결국 30분, 1시간이 되고, 나중에는 매일 보게 된다. 술이나 쇼핑도 마찬가지다. 순간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것 같지만 다음 날 피로, 숙취, 죄책감이 뒤따른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산책이나 가족과의 대화처럼 느리고 잔잔한 기쁨에는 무뎌진다. 결국 일상의 소소한 만족을 느끼는 능력이 점점 사라진다.

물론 중독성 있는 활동이 모두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주된 휴식 방법’이 되는 건 위험하다. 다양한 ‘휴식 메뉴판’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끔은 자극적인 휴식도 괜찮지만 산책, 독서, 가족과의 대화 같은 느린 휴식도 함께 해야 한다.

 

휴식의 기술 중에도 수면을 강조했다

수면은 휴식에서 기초 중의 기초다. 의학적으로도 수면은 거의 모든 질환과 관련이 있다. 치매, 암, 심혈관질환, 우울, 불안, 만성통증까지 모두 수면과 밀접하다. 수면 부족이 삶 전체를 흔드는 셈이다. 단순한 피로를 넘어 감정 조절, 업무 능력, 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 잠을 잘 못 자고 있다면 그건 이미 내 몸이 보내는 경고인 셈이다.

 

수면이 중요한 만큼 잘 자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렇다. 단순히 오래 자는 것보다 ‘어떻게’ 자느냐가 더 중요하다. 특히 자기 전에 몸과 마음을 충분히 이완시키는 것이 깊은 수면을 위한 핵심이다. 긴장된 상태에서 잠들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같은 시간을 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특히 술은 깊은 수면을 방해하므로 삼가는 게 좋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 대사 과정에서 교감신경이 자극되고, 새벽에 깨거나 얕은 잠을 유도한다. 샤워나 가벼운 스트레칭, 명상처럼 몸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루틴이 도움이 된다.

 

보통 잠 자기 위해 술을 마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잠드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깊은 수면에는 방해가 된다. 수면은 보통 얕은 수면에서 시작해 깊은 수면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술을 마시면 이 과정이 차단된다. 술이 몸을 일시적으로 이완시키지만, 결국 깊은 수면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얕은 잠만 반복한다. 중간중간 자주 깨거나 꿈을 많이 꾸고, 새벽에 일찍 깨는 현상이 생긴다. 특히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치명적이다. 술을 마시면 평소와 달리 기분 조절이 어렵고, 다음 날 피로감이나 무기력감도 심해진다.

 

제대로 된 휴식이 필요한 중년 남성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중년은 제2의 사춘기라 불릴 만큼 신체적,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다. 오랫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며 성취와 책임에 집중한 남성은 이 시기에 공허함, 외로움, 허무함 같은 감정을 느낀다. 가족과의 거리감, 역할의 중첩,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는 왜 이렇게 지쳤을까’ 싶지만, 정작 그걸 드러내는 일에는 익숙지 않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이해하는 시선’이다. 지금 힘든 건 나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이다. 앞만 보며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내가 좋아했던 것, 나를 채워주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어릴 때 즐기던 취미나 청년기에 하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도 좋다. 성과와 일 중심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이다.

물론 일을 열심히 하고, 가족을 돌보며 살아온 당신의 삶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감정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난 삶 속에서 억눌렸던 감정과 취향을 다시 꺼내고, 그동안 잊고 지낸 자기 자신을 따뜻하게 돌아보는 것. 그것이 중년 남성이 진정 자신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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