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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치노’라는 오디오 ① [인터뷰]

오디오 컬렉터이자 음악 마니아 오정수 대표는 기어이 ‘콩치노 콩크리트’라는 오디오를 지었다. 음반의 역사에 경외를 표하는 마음으로.

 

오정수<br>· 콩치노 콩크리트 대표<br>· 건화치과의원 대표원장<br>
오정수
· 콩치노 콩크리트 대표
· 건화치과의원 대표원장

 

음악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신줏단지처럼 간직하는 보물 같은 공간이 있다.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오롯이 음악으로만 채워진 공간 ‘콩치노 콩크리트’의 이야기다. 오정수 대표는 평일엔 치과의사로서 환자를 돌보고, 주말이면 콩치노 콩크리트 대표이자 DJ로 변해 자신만의 음악 취향을 청중과 나눈다. 거실을 가득 메운 오디오 컬렉터의 열정이 마침내 하나의 청음 공간이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음악을 즐기는 것을 넘어, 음악과 녹음의 역사까지 파고드는 그의 열정이 이룬 결실이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오정수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부터 오디오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성장 환경 자체가 음악과 가까웠다. 지인이 세종문화회관에 근무하면서 좋은 공연이 있으면 초대해 주기도 했다. 10대 시절부터 클래식과 뮤지컬 등 다양한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 개인적 노력을 기울이기 이전에 자연스럽게 음악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본격적으로 음악과 오디오에 몰입한 건 10대 후반부터다. 당시에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창구가 많지 않았다. 밤에 나오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이나 팝 등의 음악을 즐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1980년대 무렵, 친한 형이 일본을 다녀오면서 워크맨 하나를 선물해 줬다. 그때부터 테이프를 구해 워크맨으로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워크맨을 처음 받았을 때 소감이 궁금하다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지금도 그 당시 들은 음악이 생각날 정도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음악 기기라는 점에서, 당시의 워크맨은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명동 신나라레코드를 찾아 카세트테이프를 샀다. 옷을 사러 가다가도 걸음을 돌려 그 돈으로 테이프를 사기도 했다.(웃음)

그러다가 우리나라에도 CD가 들어올 거라는 소식을 접하고는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오디오 이노베이터라는 영국제 진공관 앰프, 스위스제 턴테이블 토렌스, 영국제 스피커 LS3/5A를 세트로 샀다. 그 당시 돈으로 거의 500만원에 육박하는 거금을 들였다. 그때 500만원이면 외곽 지역에 연립주택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었는데, 그 돈으로 다 오디오를 사버린 것이다.

 

 

워크맨을 사준 형님이 질투는 안 했나?

질투 정도가 아니라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았다.(웃음) 형보다 더 좋은 걸 사버렸으니까. 당시 고등학생이었으니 대입 준비도 해야 하는데, 오디오 기기에 빠져 공부하는 책보다 오디오 잡지 읽는 시간이 더 많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전문지를 읽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 순간들이 지금의 오디오 지식 수준을 갖추는 데 기틀이 됐다.

 

한 가지 분야에 열정을 쏟아붓는다는 건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청소년기부터 벌써 오디오에 열정을 쏟은 셈이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는 오디오에 올인했다. 오디오 잡지에 들인 시간만큼 공부했으면 뭐든 할 수 있겠다고 할 정도였다.(웃음)

당시 시대 흐름의 영향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우리나라 오디오 황금기라 불리는 시기로, 누구나 오디오 기기 하나 갖는 게 로망이었던 시절이다. 속된 말로 ‘영끌’해서 오디오를 살 정도로 열정적인 분위기였다. 실제로 오디오와 관련된 사연도 많다. 한 학교 선생님은 우연히 영국제 오디오 한 통이 매물로 나온 것을 보고는 결혼자금을 오디오 사는 데 다 써버려 단칸방에서 생활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중년 남성 사이에선 흔히 취미의 천적이 가족이라 하지 않나.(웃음) 가족의 눈초리를 받으면서까지 오디오에 열정을 쏟던 시기다.

 

취미의 천적이 가족이라니,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본인은 천적을 이겨냈나?

간신히 생존했다.(웃음) 신혼 때는 나도 처갓집에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빈티지 오디오 수집에 빠지면서 세계 각국의 희소한 오디오를 수집하다 보니 거실에 소파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침대 들어가는 공간 외에는 모두 오디오를 쌓아놨다.

 

 

음반에 녹음된 음 하나하나는

인류가 남긴 역사다.

이를 이해한다면 음반은 대충 들어선 안 되고,

이를 듣는 오디오도 타협해선 안 된다.

오디오는 단순히 듣는 기술을 넘어

음반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다.

 

꼭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지 않더라도 음악을 듣는 방법은 많다. 그럼에도 오디오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듣는 것과 제대로 된 오디오 시스템으로 듣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직접 가서 웅장한 폭포 소리를 듣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물론 나도 운동하거나 이동할 때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듣는 음악에선 깊은 감동을 느끼기 어렵다. 제대로 된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 음악을 들으면 오디오가 음악에 반응을 보인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말이다. 단순히 소리를 출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 생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거다.

 

오디오 시스템으로 듣는 음악이 살아 있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하이엔드 오디오는 음원 손실 없이 온전한 음악을 전하기 위해 모든 걸 집중해 만든 시스템이다. 재료 하나하나 영혼이 깃든 오디오 기기를 조합해 세팅했을 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에는 영혼이 깃든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디오는 살아 있는 생명체이지, 단지 기계가 아니다.

 

단순히 더 웅장하게 듣는 개념과는 다르다는 말인가?

오디오는 음반의 역사고, 음반의 역사에는 인류의 역사가 담겨 있다. 녹음 기술이 없었다면 역사적인 음악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42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고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예로 들 수 있다. 전쟁의 광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시기,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연주한 그 처절한 음악의 감동을 녹음 기술이 없었다면 현재를 사는 우리가 어떻게 느낄 수 있겠나. 그들이 남긴 음반 덕분에 연주가 끝난 이후에도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음반을 통해 역사의 순간에 참여하고, 오디오로 그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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