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이 사랑한 샴페인
위대한 개츠비
(2013)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 작품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가난한 군인에서 억만장자가 되어 첫사랑과 재회하려는 개츠비와 그런 그를 사랑하지만 결정적 순간 배신하고 떠나는 데이지 뷰캐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려함의 절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성대한 파티에서 개츠비가 닉 캐러웨이에게 웃으며 “I’m Gatsby”라고 외치는 순간이다. 이 때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와인이 샴페인 모엣 샹동이다. 모엣 샹동은 샴페인 하우스의 대표격으로 1743년 메종 모엣이 시초다. 샴페인을 즐겨 마신 루이 15세와 마담 퐁파두르는 궁정 연회에 모엣 샹동을 종종 사용했으며, 나폴레옹은 1814년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기 직전까지 이 샴페인을 즐겼다.
감독 배즈 루어먼 주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제이 개츠비), 캐리 멀리건(데이지 뷰캐넌), 토비 맥과 이어(닉 캐러웨이)
생산지 프랑스 에페르네 • 도수 12% • 품종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샤르도네
약 100가지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으로 신선한 사과, 감귤류의 풍미가 느껴져 견과류, 과일 등의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도 두 주인공이 모엣 샹동을 마시며 사랑을 속삭이는데, 남자가 여자에게 딸기와 함께 마셔볼 것을 권하며 이렇게 말한다. “딸기가 샴페인의 향을 돋워주거든.”
와인으로 배우는 인생
사이드웨이
(2004)
마일스는 와인 애호가이자 영어 교사로 소심하고 무료한 삶을 살지만 훌륭한 와인을 마실 때만큼은 활기가 넘친다. 그는 절친이자 한물간 배우 잭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와인 산지인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로 여행을 떠난다. 떠나간 사랑에 미련이 많은 마일스와 여자라면 환장하는 잭의 좌충우돌 여행기는 코믹하면서도 왠지 짠하다. 다수의 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작품상 등을 수상한 이 영화는 곳곳에 와인이 등장하는데, 와인 애호가들이 열광할 정도로 수준급이다.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명품 와인과 콜라 컵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와인 중 단연 으뜸은 1961년산 샤토 슈발 블랑이다. 50년간 생테밀리옹 최고의 와인으로 손꼽히며, 그중 1961년 빈티지는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 중반부터는 ‘마일스가 1961년산 샤토 슈발 블랑을 언제 마시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를 깨고 그는 패스트푸드점에 앉아 콜라 컵에 샤토 슈발 블랑을 따라 마신다. 심지어 햄버거를 안주 삼아. 최고급 빈티지 와인이 이렇게 허무하게 낭비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와인의 매력이 배가한다.
감독 알렉산더 페인 주연 지아마티(마일스), 토머스 헤이든 처치(잭)
저는 와인이 겪었을 삶을 생각해요.
포도가 자라던 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햇볕은 어땠는지, 비는 얼마나 내렸는지.
와인은 변화무쌍하잖아요.
병을 따는 시기에 따라 맛이 제각각이니까요.
와인은 살아 있어요.
- 영화 <사이드웨이> 대사 중
생산지 프랑스 보르도 • 도수 12~13% • 품종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보르도 와인 산지인 생테밀리옹은 독자적인 와인 등급 체계가 있다. 1955년 생테밀리옹 와인 등급이 만들어졌을 때, 가장 뛰어난 와인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프뤼미에 그랑 크뤼 A등급에 단 두 곳의 와이너리만 선정되었고, 그중 하나가 슈발 블랑이다. 1998년 루이 비통이 인수하면서 작은 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소량만 양조해 명품 반열에 올랐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돋보이는 와인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2005)
결혼 5년 차에 접어들며 권태기를 겪고 있는 존과 제인. 둘은 평범한 회사원인 척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경쟁 조직의 킬러들이다. 어느 날 각자 자기 조직에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데, 하필 두 사람의 타깃이 같다. 타깃의 단서를 쫓다 서로의 정체를 알아버린 당일 저녁, 두 사람은 긴장을 풀지 않고 식사를 한다. 이때 존이 제인의 정체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와인 병을 떨어뜨리고, 제인은 와인 병이 바닥에 닿기 직전 안전하게 잡아낸다. 이때 등장하는 와인 은 캘리포니아의 케이머스 빈야드 스페셜 셀렉션 카베르네 소비뇽이다. 1972년 찰리 와그너 가문에 의해 탄생해 현재까지 세계 최고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적 와인 매거진 <와인 스펙테이터>가 뽑은 올해의 와인에 무려 두 번이나 선정되며 카베르네 소비뇽의 제왕이라 불린다.
감독 더그 라이먼 주연 브래드 피트(존 스미스), 앤젤리나 졸리 (제인 스미스)
생산지 미국 나파 밸리 • 도수 15.2% •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의 블랙 커런트, 블랙 체리, 자두 등의 과실 향과 은은한 오크 향의 밸런스가 환상적이다.
음식의 감칠맛을 더하는 부르고뉴 와인
줄리&줄리아
(2009)
한때 작가를 꿈꾼 주인공 줄리 파웰. 그러나 현실은 전화 상담 공무원으로 스트레스 가득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유일한 낙이 요리인 그녀는 삶에 활력을 얻고자 블로그를 개설해 1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20세기 전설적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의 저서에 소개된 프랑스 요리 524가지에 도전하고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
영화 속 최고 음식은 단연 뵈프 부르기뇽이다. 소고기, 버섯, 각종 채소를 넣고 끓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고기 스튜로, 일반 소고기 스튜와 가장 큰 차이는 부르고뉴 와인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줄리는 중요한 손님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뵈프 부르기뇽에도 전하는데, 부르고뉴 와인 대신 보르도 스타일의 레드 와인을 사용했다가 실패한다. 부르고뉴 와인의 섬세하고 은은한 향이 음식의 정체성을 살려준다.
감독 노라 에프론 주연 메릴 스트립(줄리아 차일드), 에이미 애덤 스(줄리 파웰)
생산지 프랑스 쥬브레 샹베르탱 • 도수 13% • 품종 피노 누아
쥬브레 샹베르탱은 프랑스 부르고뉴 중에서도 최고 와인 생산지로 손꼽히는 코트드뉘에 위치한다. 라보 생자크는 풍부한 체리 향과 적당한 타닌이 특징이다.
치유제가 되는 와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2010)
작가 겸 저널리스트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2006년 출간한 책이 원작이다. 주인공 리즈는 이혼 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첫 번째 여행지인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맛있는 음식과 사랑스러운 언어를 배우고, 두 번째 여행지인 인도 아슈람에서는 기도와 명상으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다양한 사랑을 경험한다.
로마에서 만난 이탈리아어 선생 조반니는 그녀에게 ‘함께 건너자’라는 뜻의 ‘아트라베르시아모 (attraversiamo)’라는 단어를 알려준다. 그녀는 화답으로 와인 병을 들어올리며 이렇게 답한다. “세러피스트(Therapist).” 그녀가 표현한 것처럼 와인은 치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하우스 와인을 주문하면 투명한 물 잔에 담아주는 곳이 종종 있는데, 격식 없는 문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감독 라이언 머피 주연 줄리아 로버츠(리즈 길버트), 제임스 프랭코 (데이비드)
생산지 이탈리아 토스카나 • 도수 13.5% • 품종 몬테풀치아노
몬테풀치아노 포도는 최상급 와인 품종으로 손꼽힌다. 토르 델 콜레는 적당한 타닌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가볍게 즐기기 좋다.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네”
안녕, 헤이즐
(2014)
갑상선암이 폐로 전이된 암 환자 헤이즐. 그녀는 산소통을 생명줄처럼 지니고 힘겹게 살아가던 중 우연히 암 환자들의 모임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어거스터스를 만난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호감을 느끼고, 책을 통해 함께 세상을 여행한다. 어느 날 결말이 모호한 책을 보며 궁금증을 느낀 두 사람은 저자에게 연락하기에 이르고, 만남이 성사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근사한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헤이즐과 어거스터스. 여기서 샴페인 동 페리뇽이 등장한다.
프랑스 오비예 수도원의 수도사 동 피에르 페리뇽이 만든 세계 최초의 샴페인이다. 생산 과정에서 생긴 발포성 와인을 우연히 마셨다가 그 맛에 감탄한 어거스터스는 이렇게 외친다.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어!”
영화 속 소믈리에는 로맨틱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별을 두 사람의 잔에 담았죠.”
감독 조시 분 주연 셰일린 우들리(헤이즐 그레이스 랭커스터), 앤 설 엘고트(어거스터스 워터스)
생산지 프랑스 제브레 샹베르탱 • 도수 12.5% • 품종 샹파뉴 블렌드
부드러운 향신료와 과일 향이 입안을 가득 메운다. 무게감과 깊이가 있어 샴페인의 왕으로 불린다.
진정한 남자라면 킹스맨처럼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5)
영국 최초의 독립 정보기관 킹스맨. 영화는 이곳의 베테랑 요원 해리와 그의 도움으로 성장하는 에그시, 이에 맞서는 세계적 IT 기업 대표 악당 발렌타인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는 작품이다. 영국 신사 하면 떠오르는 패션과 딱딱한 억양, 화려한 영상미와 액션 등 볼거리는 물론 양아치에서 신사로 변해가는 에그시의 성장기까지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영국 신사들의 무용담이 이어지는 만큼 위스키, 맥주, 와인 등 그들이 즐기는 각종 술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생산지 프랑스 보르도 • 도수 12.5% • 품종 카베르네 소비뇽
1855년 보르도 그랑 크뤼 등급이 정해졌을 때 가장 먼저 1등급 자리에 올랐다. 이후 베르사유 궁전의 공식 와인으로 지정되어 그 명성을 이어갔다. 타닌과 보디감이 최상급. 최근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이 1000만원짜리 샤토 라피트-로트칠드를 SNS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신경전도 와인으로 품격 있게
발렌타인은 해리를 만찬에 초대해 명품 중의 명품 와인으로 꼽히는 1945년산 샤토 라피트-로트칠드를 내놓는다. 이 와인에 곁들인 음식은 맥도날드 햄버거. 1945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간 해로, 영국인 해리를 비꼰 것이다. 뜻을 알아차린 해리는 이렇게 맞받아친다. “후식으론 트윙키와 1937년산 샤토 디켐이 어떻겠습니까?” 트윙 키는 노란 케이크 안에 하얀 크림이 들어간 미국인의 국민 간식으로 백인 행세를 하는 발렌타인을 비하한 말이다. 거기에 미국이 두 번째 대공황에 빠진 1937년에 생산된 샤토 디켐을 추천했으니, 이 승부의 승자를 감히 논할 수 있을까.
감독 매슈 본 주연 콜린 퍼스(해리), 태런 에저턴(에그시), 새뮤얼 L. 잭슨(발 렌타인)
생산지 프랑스 보르도 • 도수 13~14% • 품종 세미용, 소비뇽 블랑
프랑스 보르도 소테른에서 생산하는 샤토 디켐은 회색 곰팡이에 의해 탄생하는 귀부 와인 중 유일하게 특급 와인으로 지정되었다. 포도나무 한 그루당 와인 한 잔 정도만을 생산할 정도로 귀해 황금 액체로 부른다.
맛있는 음식 곁엔 항상 와인이
파리로 가는 길
(2016)
앤은 영화감독인 남편 마이클의 칸 출장에 동행했다가 컨디션 난조로 파리로 먼저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때 마이클의 사업 파트너 자크가 그녀를 파리에 데려다주겠다고 나서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자동차로 7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두 사람은 로마, 리옹, 베즐레 등 프랑스 곳곳을 다니며 장장 이틀에 걸쳐 파리로 향한다.
이 영화는 미식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감각적으로 플레이팅한 음식과 와인 페어링이 일곱 가지 정도 소개되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 만큼 정갈하고 맛있어 보인다.
감독 엘리너 코폴라 주연 다이앤 레인(앤), 알렉 볼드 윈(마이클), 아르노 비야르(자크)
생산지 프랑스 론 • 도수 14.5% • 품종 그르나슈
그르나슈는 향이 풍부하고 질감이 부드러운 레드 와인을 만든다. 영화에서는 프로슈토 멜론과 페어링하는데, 프로슈토의 짠맛과 멜론의 단맛이 농밀한 샤토뇌프 뒤 파프와 어우러져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꿈을 꾸는 그대에게 샴페인 한 잔을
라라랜드
(2016)
LA를 배경으로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 미아의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다. 미아는 영화 <카사블랑카>와 ‘일사 런드’를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먼을 사랑한다. 미아의 방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잉그리드 버그먼의 포스터나 그녀가 근무하는 커피숍 맞은편 건물이 <카사블랑카> 촬영지임을 세바스찬에게 설명하는 장면 등 영화 곳곳에 오마주가 드러난다. 오마주 장치는 샴페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극 초반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 풀 파티에 참석한다. 그곳에서 샴페인을 가득 채운 잔 속에 미아의 모습이 비친다. 이때 등장한 샴페인이 뵈브 클리코다. “뵈브 클리코라면 남겠어요”라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먼 대사 속 그 샴페인이다. 여성의 성공을 기원하거나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술이다.
감독 데이미언 셔젤 주연 라이언 고슬링(세바스찬), 에마 스톤(미아)
생산지 프랑스 샹파뉴 • 도수 12% • 품종 피노 누아, 샤르도네, 피노 뮈니에
복숭아, 배 등의 과일 향과 신선한 산미가 느껴지는 샴페인. 스위트하고 가벼운 스타일의 샴페인과 구분 짓기 위해 차별화된 옐로 레이블을 사용했는데, 이는 매출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