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비-대사내과 전문의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외래 진료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먹을까요?’, ‘무엇을 먹을까요’다. 나는 매번 간단하게 그림을 그려 설명하는데,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밥은 쌀밥, 보리밥, 현미밥 가리지 않아도 되지만 하루에 한 공기만 먹을 것. 소고기를 많이 먹을 것. 핵심은 하나다. 탄수화물 섭취는 줄이되 단백질은 더 많이 섭취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지방은 생각보다 많이 먹어도 된다고 조언한다.”
혈당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하거나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칼로리다. 권장 섭취량을 외우고, 각 식품의 열량을 확인해 비교하며 안심하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칼로리의 맹점은 획일화되어 있다는 데 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운동량과 기초대사량이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과한 칼로리가 누군가에게는 적정 칼로리일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건강한 사람의 혈당 수치는 일반적으로 공복 시 70~99mg/dL, 식후 30분에서 1시간일 때 정점에 도달하는데 정상인 경우 140mg/dL 미만이다. 식후 2시간째에는 정상 범위로 돌아온다. 2시간이 지났는데도 140mg/dL 이상이면 위험하고, 200mg/dL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그런데 혈당은 사람마다 수치가 다르다. 예를 들어 똑같은 음식을 먹었을 때 누군가는 혈당이 20mg/dL 정도 올라가는데, 누구는 100mg/dL 이상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혈당 수치에 주목하면 내가 먹어도 괜찮은 음식과 먹으면 몸에 무리를 주는 음식을 선별할 수 있다. 나에게 맞는 건강한 식단을 만드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비만과도 관계가 있나?
비만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식사 습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혈당이다.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면 뇌, 심장, 근육 등 우리 몸의 주요 부위가 이를 에너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체내에 저장한다. 이때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주요 영양소가 탄수화물인데,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인슐린이 분비되어 우리 몸속 중요한 기관에서 사용될 수 있도록 포도당으로 변환하고, 나머지는 글리코겐 형태로 저장한다. 이때 1차적으로 저장하는 곳이 간인데, 간이 수용할 수 있는 글리코겐양은 70g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지방 형태로 몸속에 쌓인다.
당뇨병 환자가 아니어도 혈당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상 평균 혈당값은 약 100mg/dL이고, 몸속 혈액은 체중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5L 정도다. 따라서 우리 몸의 혈액 속에 녹아 있는 포도당은 대략 4g이다. 각설탕 한 개가 4g 정도이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 이 가능하다. 간혹 당뇨병 환자 중 급성 고혈당으로 응급 실에 실려오는 경우가 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는 고혈 당의 기준은 250mg/dL 이상이지만 이렇게 응급실에 오는 환자의 경우 혈당이 1000mg/dL를 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쉽게 말하면 각설탕 2개 또는 10개 이상이 녹아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마시는 탄산음료에는 포도당이 얼마나 들어 있을까? 콜라 한 캔에 무려 각설탕 13개 분량의 당이 들어 있다. 이게 다 혈액 속에 녹아든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는가? 반대로 혈당이 70mg/dL 이하면 저혈당이라고 하는데, 심하면 혼수 상태가 되기도 하고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처럼 혈당은 아주 미세한 범위 내에서 정밀한 기전을 통해 정상 범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곧 건강의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혈당을 관리하는 것 즉 식사요법에서 탄수화물을 적절하게, 그리고 제대로 섭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혈당이 높아지면 우리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나?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 당뇨병이 생길 위험이 크다. 또 체내에 흡수된 과도한 포도당이 지방으로 전환돼 우리 몸에 비축되어 비만이 발생하게 된다. 너무 많은 양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그만큼 혈당이 떨어지는 속도도 느려진다. 이를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한다. 인슐린을 생산하는 베타세포가 줄어들고 대사증후군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심장병, 암, 치매, 신경 손상 등 각종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질병은 초기에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고, 병이 심해진 후에야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혈당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식후 혈당이 중요한 이유는 뭔가?
과량의 탄수화물 섭취로 혈당이 급상승하거나 급하강하는 것을 ‘혈당 스파이크’라고 한다. 혈당 스파이크가 잦고 오랫동안 지속되면 당뇨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일반적인 당뇨병 환자들이 혈당을 체크하는 패턴은 대부분 공복 혈당과 식후 혈당, 식후 2시간 혈당을 체크하는 식이다. 그런데 혈당 수치는 식후 2시간 사이에 급격하게 올라가 이 중간 수치는 파악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공복 혈당은 90mg/dL로 정상이었고, 식후 2시간 혈당이 118mg/dL이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 사이에 간격을 좁혀 혈당을 측정해보면 위험 수치인 200mg/dL를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정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계속 당뇨병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당뇨병이 아닌 당뇨병 전 단계(내당능장애 또는 공복혈당장애)는 물론 정상인에게도 혈당스파이크가 나타날 수 있고, 이는 당뇨병 발병 위험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발생과도 연관이 있다. 당뇨병 환자에게 식후 고혈당은 더욱 심각하다. 당뇨병 환자를 전문으로 진료하는 외래는 가히 ‘식후 고혈당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인슐린을 포함한 약물을 복용 중인 환자들이 공복은 정상 범위여서 안전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당화혈색소(3개월 평균 혈당 반영 수치)가 높은 경우가 많고, 식후 혈당을 재보면 공복보다 3~4배 이상 높게 측정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사람마다 혈당 변동치가 다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래서 당뇨병 환자가 아니어도 한 번쯤은 연속혈당측정기를 이용해 혈당 측정을 해보라고 권한다. 보름 정도 본인의 식습관을 추적 관찰하면서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 스파이크가 오고,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이 안정적인지 확인하는 거다. 이를 바탕으로 나에게 맞는 음식과 피해야 하는 음식을 가려 맞춤 식단을 만드는 게 중년 건강의 첫걸음이다. 실제로 외래에서 연속혈당기를 사용해본 환자들은 본인의 신체 변화를 눈으로 직접 확인한 후 처방을 받아들이는 순응도나 신뢰도가 매우 높아졌다.
식후 혈당은 자동차의 속도계와 같다.
차를 몰 때 과속과 급출발,
급정거가 위험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식후 혈당이 급격하게 높아진다는 건
우리 건강이 과속 상태의 자동차와 같다는 뜻이다.
혈당은 자동차가 정속 주행하듯이
정상 범위를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식후 혈당을 낮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는 음식을 피하는 게 우선이고, 그다음은 운동이다. 식사 후 바로 자리에 앉았을 때와 20~30분 걷고 앉았을 때 식후 혈당 수치가 유의미하게 변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직장인이라면 밥을 먹고 업무에 복귀하기 전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게 좋다. 또 평소에는 근육 운동을 통해 근육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 몸은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쓰는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관이 뇌고, 그다음이 근육이다. 따라서 근육량을 늘리면 같은 양의 식사를 하더라도 혈당 조절이 더 쉬워진다.
탄수화물 섭취의 기준이 있을까?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탄수화물 섭취량은 확실히 과한 편이다. 사실 적절한 섭취량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 정도 먹어라’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무실에 앉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무직군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먹어야 한다. 하루에 밥 한 공기면 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의사에 따라 소견이 다를 수 있는데, 나는 현미밥을 추천하는 편은 아니다. 현미, 백미, 보리밥 가리는 것보다 차라리 나물밥을 만들어 먹는 게 적게 먹으면서도 포만감을 쉽게 느낄 수 있어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한 가지 덧붙이면, ‘단것’은 탄수화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중년 남자 중에는 커피 믹스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믹스를 한 잔 마시면 혈당이 올라간다. 그러면서 기분이 좋다고 한다. 우리 몸에 도파민과 세르토닌 분비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면 갑자기 피곤해지고 무기력해지고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단것을 찾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당 수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지방 섭취를 늘리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지방은 우리 몸에 에너지를 제공하고 지용성비타민의 흡수를 도와주며, 세포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필수영양소다. 국내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일부 자료에 따르면 식사 시 권장 영양 섭취 비율은 탄수화물 50%, 단백질 30%, 지방 20% 정도다. 그러나 실제 섭취 비율을 보면 특히 중년 남성의 경우 탄수화물이 70% 가까이 되고, 지방은 15~16% 정도로 나타난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지방을 섭취해도 괜찮다는 거다. 그런데 세미나에서 만난 영양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권장 수준의 지방을 섭취한 중년 남자들은 하나같이 “느끼하다”고 대답한다고 한다. ‘지방=칼로리=비만’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식습관이 입맛을 바꾼 탓이다. 그러나 사실 지방은 물에 잘 녹지 않아 장에서 100% 흡수되지 않는 영양소다. 특히 고기나 버터 같은 포화지방산은 흡수율이 낮아 많이 먹어도 체내에 축적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중년 남성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조언을 한마디 한다면?
아직까지 국내 주요 사망 원인은 악성질환과 심혈관질환이다. 따라서 정기 검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최근 임상에서는 과거에 흔하던 위암 같은 암도 감소하는 추세고, 심한 정도도 덜한 경우가 많다. 즉, 조기에 발견해 치료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심혈관질환도 과거처럼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서 혈관 시술을 하는 응급 환자도 감소했다고 한다.
결국 남은 것은 우리 몸의 건강한 대사 과정이다. 혈당 관리 및 이상지질혈증 관리가 꼭 필요하다. 건강한 대사 과정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근골격질환이라고 생각한다. 중년일수록 관절이나 골격, 근육 등의 문제로 ‘건강한 일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즉 속과 겉이 건강해야 어떤 신체적·정신적 난관도 이겨낼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에 들어섰고, 곧 초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쉰 즈음의 중년에는 20~30년 후의 건강한 노후를 위한 몸을 만들어놓은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