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선을 넘는 녀석들>, tvN <수요미식회> 등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린 스타 셰프 장준우. 그는 2016년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셰프의 길로 들어선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학창 시절부터 요리를 좋아한 데다 호기심까지 많은 그에게 음식 만드는 것은 낯설지 않은 일 이었다.
기자 생활을 접은 후 장셰프는 곧바로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에 입학해 1년여간 음식과 와인을 배웠다. 그 자체로 행복했지만 문화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그저 요리를 하는 것에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다. 조리법, 식재료, 먹는 방식 등이 탄생하게 된 본질적 이유를 알고 싶었다. 결국 그는 주방을 박차고 나왔다. 미식 여행이 시작된 순간이다. 셰프의 음식 여행은 방랑에 가까웠다.
‘음식 방랑자’가 되기로 한 계기는?
처음 미식 여행을 떠났을 때는 요리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 전까지 유럽은 여행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요리 견습 이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온통 요리와 관련한 것이 었다. 요리를 접하다 보니 시선이 달라진 거다.
그러다 각국의 식문화로 관심이 번져 나갔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웠는데, 체코의 식문화는 전혀 달랐다. 우리가 ‘유럽’, ‘서양’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하던 것이 사실은 그 안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걸 그때 알았다. 서로 다른 식문화가 보이기 시작한 뒤로 밀려 드는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서양 문화를 좀 더 이해하고 요리를 해야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여행을 떠났다.
언제 처음 여행을 떠났나?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 10개국 60개 도시를 다닌 것이 첫 번째 미식 여행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곧바로 식당을 여는 대신 꾸준히 여행을 떠났다. 해외 미식 도시와 한국을 오가며 내공을 쌓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정보가 열려 있는 시대에 해외 각국의 음식을 만들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셰프가 현지에서 먹어보지 않고 만든 메뉴가 과연 얼마나 좋은 음식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지의 맛을 기억하고 요리 감각을 키워 재현하는 걸 목표로 여행지 곳곳을 다니며 최대한 많은 메뉴를 먹어보았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요리 인생에 영향을 미친 건가?
그렇다. 사실 여행할 때는 몰랐는데 한국에 와서 알았다. 미식 여행을 다녀온 뒤 한국에서 음식을 해보니 뭔가 부족했고, 그래서 다시 떠난 유럽은 첫 여행 때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첫 여행 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식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있었다.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때는 이탈리아 요리에 익숙한 상태라 두 나라 요리의 차이를 몰랐다면, 한국에서 나름 공부하고 요리 경험도 넓힌 뒤 프랑스에 두 번째 방문하니 훨씬 다양한 식문화를 알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견문이 넓어진 것을 체감했다.
여행 전에 공부를 많이 하는 편인가?
공부는 여행과 상관없이 계속해 왔다. 음식과 관련한 인문학,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다. ‘이 음식은 왜 특정 문화권에서 발달했을까?’, ‘이런 음식이 나타나게 된 배경은 뭘까?’ 등이 궁금했다.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부를 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음식 문화 전체에 대해 탐구하게 됐다.
셰프 하면 보통 더 맛있는 레시피를 공부하지 않나?
레시피를 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그 레시피가 나오게 된 배경, 즉 본질을 알면 더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바질 페스토 파스타가 인기인데, 이탈리아에서 바질 페스토 파스타를 제일 잘하는 파스타집을 찾아가 맛본 뒤 레시피를 연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왜 하필 제노바에서 이런 음식이 나온 걸까?’ 하는 점이 더 궁금하고, 답을 찾은 뒤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식으로 접목하면 되겠구나’로 발전시키고 싶어 공부를 한다. 단순 레시피 암기는 요리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로 하는 여행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실제로는 어떤가?
내 여행은 출장에 가깝다.(웃음) 공부한 걸 다시 확인하러 가거나 그동안 놓친 부분은 없는지, 뭔가 더 알만 한 게 있는지 등을 보러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여행할 때 느끼는 여유 같은 건 없다. 특히 음식을 주제로 하다 보니 그냥 편하게 있을 수 없다. 어찌 됐든 음식은 먹어야 하는 거고, 무엇을 먹을지 찾아야 한다. 현지에서도 물어보는 과정이 모두 재미있는 포인트다. 전부 내가 모르던 것이니 놓칠 수가 없더라. 결국 의식주 중 하나를 업으로 삼아 여행하니 괴로움은 따르지만 나름 원하는 걸 얻는 묘미가 있다.
유럽 미식 여행의 매력은 무엇인가?
거리가 가까워도 굉장히 많은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동하기 편할뿐더러 아무리 작은 나라라도 그 지역만의 고유한 식문화가 존재한다. 한마디로 ‘굉장히 극적으로 음식 문화 차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 미식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도 유용하다. 최신 미식 트렌드는 런던에 가면 알 수 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같이 자국 음식 문화가 발달한 곳은 다른 문화에 경직돼 있어 트렌드가 잘 반영되지 않는다. 오히려 런던, 베를린 등 자국 식문화의 색이 강하지 않은 도시가 변화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반영해 세계 미식 트렌드의 중심이 된다.
최신 미식 트렌드는 어디로 가고 있나?
요즘 런던에서는 인도 요리가 대세다. 인도 전통 요리가 아니라 ‘인도풍’ 요리라는 게 포인트다. 커리를 가미하는 등 인도 요리 느낌이 나는 음식이 유행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갔다면, 이제 향신료가 발달한 동남아나 인도로 요리 유학을 가는 게 유리할 수 있다.
여행지에서 꼭 해보는 것이 있다면?
그 지역 전통시장에 간다. 신혼여행으로 떠난 발리에서도 시장을 찾았을 정도다. 시장에 가면 그 나라 국민의 식문화가 다 엿볼 수 있다. 무엇을 즐겨 먹는지, 주로 소비하는 채소나 과일은 무엇인지 한눈에 보인다. 닭고기만 해도 한 종류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서양에서는 굉장히 많은 종류의 닭고기를 구별해 먹는다. 튀김에 적합한 품종이 있고, 구이에 제격인 품종이 따로 있다. 그들에겐 사소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생소하고 흥미로운 부분이다.
여행 계획은 철저히 세우는 편인가?
큰 그림만 그려놓고 떠난다. 계획해서 떠나면 왠지 계획한 것만 하고 올 것 같아서다. 아무리 낯선 해외라도 동네 마실 다니면서 궁금한 가게가 보이면 들어가보고, 그때 우연히 접하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된다. 한마디로 많은 걸 운에 맡기는 셈이다. 한번은 인도 여행을 하다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이 음식 잘하는 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우리 집”이라고 답 하더라. 그는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환대해 줬다. 그런 즐거운 기억이 있기에 여행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않는다.
셰프가 다른 문화권의 요리를 한다는 건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통해 문화를 배운다. 결국 내가 미식 여행, 타국의 식문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는 음식의 본질을 탐험하기 위해서다.
그래도 현지의 유명한 식당은 가보지 않나?
물론이다. 엄청 유명한 식당은 일부러 찾아간다. 그런 경험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매끼를 소문난 맛집에서 해결하지는 않는다. 남들이 추천하는 맛집을 경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들은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데, 맛은 음식 자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르투갈 여행 당시 한 식당에서 굉장히 친절한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있다. 환대받으며 음식을 먹으니 객관적인 음식 맛은 의미가 없더라. 그 공간에서의 경험이 좋았던 만큼 맛도 일품으로 느껴졌다. 반면 맛있는 집이라고 추천받아 간 곳의 서비스가 별로이거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실망이 더욱 크다. 그래서 철저히 내 취향 중심으로 식당을 선택하는 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스페인 북부! 흔히 스페인 하면 남부의 뜨거운 지역을 떠올리는데, 음식은 의외로 북부의 것이 흥미롭다. 산지가 많고 바다를 끼고 있어 기후로만 보면 영국과 비슷하다. 재미있는 건 영국이 기후 등 환경 때문에 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면, 스페인 북부는 오히려 식문화가 매우 발달했다. 유제품, 해산물 요리 등이 유명하다. 마늘을 잘 쓰고, 향신료를 많이 쓰는 편이라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요리가 많아 나는 항상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웃음)
음식 방랑자로서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당연히 세계를 노리고 있다. 지금까지 대략 100개 도시를 돌았지만 대부분 유럽 중심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20년 계속해서 전 세계 음식을 탐험하고 싶다.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갔듯이, 다음은 미국이다. 미국은 멕시코 문화와도 섞여 있어 자연스레 남미 음식을 탐험하러 가고, 남미와 유럽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을 찾아 또다시 떠날 생각이다. 그러다 점점 아시아로 넘어오는 미식 세계 여행을 상상하고 있다. 모든 걸 마치고 돌아와보면, 첫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시야가 아주 많이 넓어져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