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스물두 살이던 안시내 작가는 350만 원을 들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배낭 하나 둘러메고 두 발로 세상을 누비겠다는 작지만 큰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부족한 돈으로 141일 동안 여행하느라 포기한 것이 숱하지만,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행복을 경험했다. 8년이 지난 지금, 베테랑 여행 작가가 된 그는 그 때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여행이 가능했던 시기’, ‘편견 없이 누군가를 온전히 받아들이던 때’.
인생 첫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또 다른 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자 안시내’야말로 가장 나다운 삶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던 20대 청춘이 평범한 삶의 궤도를 이탈하는 순간이었다. 9년 째 여행자로 살고 있는 그에게 20대라서 가능했던 여행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여행 작가로 이런저런 일을 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일단 국내외 취재 일정이 적잖이 잡 혀 있다. 얼마 전에는 제주 가파도에 다녀왔다. 고정 출연하는 라디오 스케줄도 여럿이 다. 연중 6~7개월은 열심히 일하고 그 외 기간에는 여행을 떠난다.
스물두 살에 떠난 첫 해외여행이 엄청난 화제였다
350만원을 들고 141일간 말레이시아, 인도, 모로코, 스페인, 이집트 등 여러 나라를 돌 았다. 많지 않은 돈을 최대한 절약하며 여행하는 모습을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 딱 1년만 ‘나답게 살아보자’ 하는 마음으로 휴학하고 은행, 카페 등에서 일하며 여행 경비를 모았다. 번 돈 대부분을 가족의 병원비로 지불하고 수중에 남은 돈이 그만큼이었다.
350만원으로 141일간 여행이 가능했던 비결이 있나?
운 좋게 인천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12만원짜리 항공권을 발견했다. 당시 첫 여행지가 말레이시아였던 이유다. 모로코에 간 것도 저가 항공권을 구했기 때문이다. 사실 지출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교통비를 줄이는 것이 중요했다. 현지 숙소 역시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한 푼이라도 덜 내는 곳을 찾았다.
숙박비를 아끼려고 ‘카우치서핑’도 했다
카우치서핑이란 소파를 의미하는 카우치(couch)와 파도타기를 뜻하는 서핑(surfing)의 합성어다. 현지인의 집을 숙소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에어비앤비와 비슷한데, ‘무료’라는 게 핵심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교류하는 문화에서 시작됐다. 집을 고를 때 리뷰를 꼼꼼히 확인하면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실제로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만난 마음씨 좋은 호스트 가족과는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무료로 숙박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문화를 교류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올해로 서른 살이다. 지금 350만원으로 여행을 떠난다면?
체류 기간을 조금 줄이더라도 당시 돈이 없어 포기한 일들을 해보고 싶다. 예를 들어 이집트 다합에서는 대부분 여행자가 스쿠버다이빙을 배운다. 하나, 그때의 나에게 40만원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스쿠버다이빙 대신 다른 추억을 쌓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여행을 계속한 이유가 있나?
여행 중 SNS에 올린 여행기를 모아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딱 1년만 나답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다녀온 여행인데, 정말 행복했다. 1년만 그렇게 살 순 없었다. 여행에서 내가 꿈꾸던 삶이 뭔지 깨달았다.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내가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또다시 여행을 떠났다.
두 번째 여행지로 아프리카를 택한 이유는?
첫 여행에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니 보다 의미 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때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24만원짜리 편도 항공권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곳을 경유해 도착하기까지 42시간이 걸리는 티켓이었다. 여담이지만 이제는 이런 장시간 비행은 허리 디스크 때문에 힘들다. 20대 초반이라 가능했다. 부족한 여행 자금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후원받았다. 미지의 땅 아프리카 곳곳을 여행한 후 발간할 여행 에세이의 인세를 아프리카 아동 교육사업에 기부하는 프로젝트였다. 여행하는 내내 후원자들과 메신저로 소통했다. 후원자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등반할 때는 어마어마한 책임감이 뒤따랐다. 힘들어도 끝까지 오를 수밖에 없었다.
20대 초반과 지금, 여행 방식이 달라졌을까?
여행하면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여행자를 살갑게 맞아준 현지인, 용돈을 쥐여준 출장 온 한국인 등 감사한 분이 많다. 그때 받은 호의를 차곡차곡 쌓아뒀다 이제는 내가 다른 여행자에게 베풀고 있다.
지금까지 몇 개국을 다녔나?
40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가장 즐겨 찾은 나라는 태국이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열 번 정도 방문했다. 태국에는 방콕, 파타야 말고도 매력적인 섬과 도시가 많다. 휴양하기 좋은 끄라비, 다이빙 성지 꼬따오. 또 치앙다오의 샴발라 페스티벌에 가면 전 세계에서 모인 히피와 교류할 수 있다. 7월에는 코팡안이라는 섬에 한 달 정도 머물 생각이다.
여행의 매력은 무엇인가?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여행자 안시내가 되면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좋다. 그래서인지 여행지에선 사람을 대할 때 더 솔직해진다.
나만의 여행법이 있다면?
현지 물가, 숙소 이동 방법, 교통편, 사기 유형 같은 정보를 자세히 조사해 나만의 가이드북을 만든다. 현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는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우범 지역에 간다거나 밤늦게 혼자 다니는 등의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안전 수칙은 꼭 지킨다.
여행은 하나의 응축된 삶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진하게 녹이면 수만 가지 빛깔을 띤 여행이 나오는 것 같아서. 또 여행은 가장 나다운 시간과 공간을 구하는 방법인 것 같다. 지금까지 계속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
아프리카 여행 중에 옷과 세면도구를 넣어둔 배낭을 잃어버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여권, 지갑 같은 귀중품은 보조 가방에 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는데 막상 지내보니 별문제 없더라. 며칠 동안 같은 옷만 입고 다녔어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 정체성은 여행 작가보다는 여행자에 가깝다. 지금처럼 소박하게 삶을 꾸리면서 자유롭게 여행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면 배우자, 아이와 함께 여행해도 즐거울 것 같다. 직업 면에서는 여행 작가로 성실히 일할 예정인데, 마음 한편에 동화 작가라는 목표가 있다.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해 온 꿈이니 언젠가는 이루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