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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브루스 윌리스

영화 속 정의로운 터프가이, 브루스 윌리스가 걸어온 액션 인생.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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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가족에게 정말 힘겨운 시기입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사랑과 동정,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2022년 3월 30일(현지 시간) 미국의 SNS에 오른 글의 일부다. 한 가족이 갑작스레 닥쳐온 슬픔 앞에 차분함을 애써 유지하며 쓴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글을 쓴 사람은 세계적 스타 브루스 윌리스(69)의 딸 루머 윌리스다. 그는 “여러분(팬)께 브루스 윌리스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에 소식을 전한다”며 아버지에게 닥친 불운을 밝혔다. 실어증 그리고 그로 인한 인식능력 저하였다. 루머는 “브루스가 최근 실어증 진단을 받았다”며 “실어증이 그의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심사숙고한 결과 브루스는 자신에게 너무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썼다. 배우인 아버지의 은퇴 결정이었다.

전 세계 영화 관객을 사로잡았던 스타와 그 가족이 전한 소식에 많은 팬이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루머는 “브루스는 항상 인생을 즐기라고 했다”고 말한 뒤 “우리는 강하다. 이번 일도 잘 헤쳐나가고 있다”며 오히려 팬들을 위로했다. 브루스 윌리스의 전처이자 배우 데미 무어와 또 다른 딸인 스카우트와 털룰라 등 가족들도 이를 공유하며 서로를 보듬었다.

브루스 윌리스는 그로부터 1년 뒤 전측두엽성 치매(FTD) 진단을 받았다. 앞서 앓아온 실어증과 인지능력 저하 증상도 전측두엽성 치매가 원인이라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브루스 윌리스와 그 가족들이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 예상됐다.

브루스 윌리스 가족들이 전한 소식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1980년 영화 <죽음의 그림자>로 데뷔한 그를 오랜 시간 애정 어린 시각으로 지켜봐 온 숱한 팬들은 자신들의 스타가 겪고 있을 아픔을 결코 남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이하드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인 ‘다이 하드:굿 데이 투 다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다이하드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인 ‘다이 하드:굿 데이 투 다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다이 하드>로 각인시킨 액션 히어로

브루스 윌리스는 한국 시청자에게는 <블루문 특급>으로 알려진 1985년 TV 시리즈 <문라이팅(Moonlighting)>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에미상과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품에 안는 영광도 누렸다. 이후 브루스 윌리스는 스크린으로 영역을 옮겨 할리우드 대표 스타로 거듭났고, 명성은 여전히 많은 관객과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그 상징은 1987년 영화 <다이 하드>다. 미국 뉴욕 경찰관으로 휴가를 얻어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와 악당 무리를 통쾌하게 물리치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주인공인 터프가이 형사 존 맥클레인이기도 하다. 브루스 윌리스는 홀로 악당과 맞서며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응징에 나서는 존 맥클레인을 냉소적이면서도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로 그려냈다. 그가 기지를 발휘해 온몸으로 위험에 맞서가며 끝내 정의로운 결말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본 관객은 당시 서울 지역에만 70만 명에 달했다. 그뿐 아니라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도 1억4100만 달러(현재 기준 1881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영화는 아직도 시나리오 구성의 ‘모범’으로 영화 학도들에게 전수되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온전히 브루스 윌리스의 개인적 성취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는 2편(1990년)과 3편(1995년), 4편 ‘죽어도 산다’(2007년), 5편 ‘굿 데이 투 다이’(2013년)까지 <다이 하드> 시리즈를 평생 대표작으로 필모그래피에 새겼다.

4편과 5편의 제목에 앞서 ‘죽었다고 믿기 전에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 또는 ‘고독한 도전은 시작됐다’는 서울올림픽 기간이던 1988년 9월 24일 추석 명절을 앞두고 국내 개봉할 당시 1편의 신문 광고에 담긴 카피로, 극 중 존 맥클레인과 브루스 윌리스의 고군분투 그 자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사실 <다이 하드> 연출자 존 맥티어넌 감독은 <록키> 시리즈의 실베스터 스탤론,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 당대 액션 스타에게 먼저 캐스팅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이들은 고사했고, <블루문 특급>으로 활약하던 브루스 윌리스가 존 맥클레인 역을 맡게 되었다.

그는 <다이 하드> 시리즈를 통해 이전의 액션 스타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매력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완벽함과 초인적 능력에 가까운 ‘육체적 전투력’을 지닌 것처럼 이미지를 쌓은 실베스터 스탤론이나 아널드 슈워제네거 등과 달리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 하드> 속 존 맥클레인을 통해 그려낸 바,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의 ‘인간적’ 모습을 당당히 노출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죽었다고 믿기 전에는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정의로운 집요함과 끈기와 함께 현실적이면서 인간적인 이미지로 많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영화 식스 센스에서 아동심리학자를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영화 식스 센스에서 아동심리학자를 연기한 브루스 윌리스 ©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코리아

강렬하게 각인된 액션 스타의 새로운 면모, <식스 센스>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 하드>의 세계적 흥행에 힘입어 할리우드의 주류에 진입했다. 그러고는 쉼 없이 카메라 앞에 섰다.

1991년작 <마지막 보이스카웃>을 시작으로 <허드슨 호크>, <위험한 상상> 등에 잇따라 출연한 그는 특히 1990년대 ‘명장’으로 불리는 연출자들과 호흡했다. <죽어야 사는 여자>의 로버트 저메키스, <플레이어>의 로버트 알트먼, <펄프 픽션>의 쿠엔틴 타란티노, <제5원소>의 뤼크 베송, <아마겟돈>의 마이클 베이 감독 등이 브루스 윌리스를 주연은 물론 카메오로 기용했다. 장르도 다양해 블랙코미디부터 SF에 이르기까지 브루스 윌리스는 영역을 확장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특히 1994년 칸 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 <펄프 픽션> 속 복서 역과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인류를 구하기 위해 우주로 향하는 <아마겟돈>의 유정 굴착 전문가 역은 브루스 윌리스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로 남았다. <펄프 픽션> 에서 그려낸 모습을 스스로 “매우 흡족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다이 하드>로 각인된 액션 스타 이미지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브루스 윌리스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를 탄생시킨 펄프 픽션 © 미라신코리아
브루스 윌리스의 또 다른 대표 캐릭터를 탄생시킨 펄프 픽션 © 미라신코리아

그런 그에게 새로운 면모를 안겨주면서 동시에 이를 발견해 낸 무대가 나타났다. 1999년 영화 <식스 센스>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명 연출자였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과 손잡는 데 주저하지 않은 브루스 윌리스는 이전 이미지와 다른 지적인 아동심리학자 말콤을 연기했다. 아역 배우 조엘 오스먼트를 세계적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한 <식스 센스>는 그와 브루스 윌리스의 활약, 샤말란 감독의 치밀한 연출력에 힘입어 전 세계 6억7200만 달러(현재 기준 약 8961억원)라는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렸다.

무엇보다 <식스 센스>는 ‘반전 스토리’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물의 대표작으로 세계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극중 여덟 살 소년 조엘 오스먼트의 정신 상담을 하는 아동심리학자로서 브루스 윌리스는 진지한 연기와 함께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전 이야기와 함께 당시 많은 관객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 같은 이야기 구조에서 한 소년의 성장기에 반전의 이야기를 대유했다. 지나치게 ‘반전 스토리’로만 기억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한계를 남겼지만, 브루스 윌리스는 <식스 센스>를 통해 자신이 왜 할리우드 주류 스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 입증했다. 이를 통해 2000년 <언브레이커블>에서 2019년 <글래스> 등에 이르기까지 <식스 센스>로 샤말란 감독과 맺은 인연을 오랜 시간 이어가기도 했다.

영원히 기억될 그의 액션 열정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 역시 세월 앞에서는 신체 변화를 막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연기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익스펜더블>을 비롯해 <루퍼>, <문라이트 킹덤> 등을 선보였다. 이병헌이 출연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지.아이.조 2>도 2000년 이후 브루스 윌리스의 대표작으로 알려졌다.

브루스 윌리스의 마지막 액션 영화 파라다이스 시티 © 누리픽쳐스
브루스 윌리스의 마지막 액션 영화 파라다이스 시티 © 누리픽쳐스

2016년, 브루스 윌리스는 할리우드의 창조적 연출가 우디 앨런과 손잡고 <카페 소사이어티>에 출연했다. 그러나 그는 이때부터 인지능력이 저하되고 기억력이 점차 희미해지는 증상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도 하차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2019년 샤말란 감독의 <글래스>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을까. 영화는 제작비 2000만 달러 규모의 10배가 넘는 흥행 수익으로 브루스 윌리스의 건재함을 증명했다.

브루스 윌리스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잇따라 국내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 11월에 개봉한 <브루스 윌리스의 라스트 미션: 데이 투 다이>를 비롯해 12월에 선보인 <인디펜던스 나이트>다. 여기에 <펄프 픽션> 이후 28년 만에 존 트래볼타와 호흡을 맞춘 무대로 화제를 모은 <파라다이스 시티>를 올해 1월 18일 공개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각 작품은 존재감도 희미하게 극장 간판에서 차츰 사라졌다. 그리고 전해진 투병 소식. 현재 많은 팬이 브루스 윌리스가 여전히 건장하고 든든한 캐릭터 이미지처럼 질병과 싸워 이겨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그는 최근 손주를 안고 미소 짓는 사진으로 팬들에게 다가왔다.

컴퓨터 모니터에 폭탄을 묶어 악인을 향해 날려 보내며 그는 말했다.

한 방 먹여줄까.(<다이 하드> 중)

말하고 싶어도 발화할 수 없는 아픔, 그리고 세상에 대한 추억과 기억을 조금씩 잃어갈지언정 팬들은 브루스 윌리스를 ‘영원한 존 맥클레인’의 정의로운 터프가이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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