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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 라이브즈], 닿지 못한 인연은 켜켜이 쌓여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리뷰

  • 입력 2024.03.12 17:00
  • 수정 2024.03.26 09:05
  • 정지환 에디터

 

ⓒ씨제이이엔엠<br>
ⓒ씨제이이엔엠

 

12살에 만난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은 서로에게 첫사랑이다. 그러나 나영이 가족과 함께 토론토로 이민을 떠나면서 해성과 멀어진다. 12년이 지난 후 나영은 ‘노라’라는 이름으로 뉴욕에 거주하며 연극 극작가를 꿈꾼다. 우연히 SNS를 통해 나영과 해성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화상통화로 매일 연락하며 두 사람 간의 오랜 감정이 무르익는다. 그러나 각자의 꿈과 현실에 집중하고자 또다시 둘은 연락을 멈춘다. 그렇게 다시 12년이 흐른다. 나영은 극작가의 꿈을 이루고 남편 아서(존 마가로)와 결혼했다. 해성은 상하이에서 만난 여자 친구와 이별한 상태다. 해성은 나영을 만나고자 뉴욕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결국 오래된 두 인연이 마주한다.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감독이 12살 때 토론토로 이민을 떠난 한국계 캐나다인이면서,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했던 걸 감안하면 영화 속 나영은 셀린 송 자신을 대변한다. 해성 같은 첫사랑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씨제이이엔엠<br>
ⓒ씨제이이엔엠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전생’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내내 ‘인연’을 주제로 이야기한다. 12년 단위로 그들의 만남이 성사되는데, 이는 하나의 생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총 세 번의 인생에 걸친 나영과 해성의 만남을 그리는 셈이다.

 

전생과 인연을 다루는 만큼 영화는 동양의 정서를 가져간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대사처럼 한국인이라면 오래도록 들었을 이야기들이다. 주요 영화제의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서양인의 입장에서 이런 동양의 정서는 흥미 요소가 되는 듯하다. 다만, 한국인인 나의 시선에서 전생과 인연은 그리 이색적인 소재는 아니었다.

 

아쉬운 건 언어다. 두 주연 배우의 어눌한 한국어는 영화 내내 어색하게 느껴진다. 나영과 해성 두 사람이 뉴욕에서 처음 대면하는 장면은 영화의 주요 장면 중 하나인데, “와, 너다”라고 말하는 나영의 대사가 어색해 몰입하기 어려웠다. 그레타 리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 한국어 연기 자체가 처음이니 그렇다지만, 어째선지 유태오의 한국어도 내내 어눌하다.

 

ⓒ씨제이이엔엠<br>
ⓒ씨제이이엔엠

 

그럼에도 영화는 좋았다. 따뜻한 색감과 빛바랜 필름의 질감이 좋았다. 먹먹한 피아노 사운드도 영화와 어울렸다. 인연이라는 주제를 12년의 세월로 구분한 각본도 좋았다. 영화의 마지막, 우버를 기다리는 2분의 시간으로 그들의 인연을 함축한 것이 좋았다.

 

두 사람의 감정을 ‘추억’으로 볼지, ‘인연’으로 볼지에 따라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추억이라면 첫사랑의 끝을 그리는 이야기일 것이고, 인연이라면 반복되는 이야기 중 하나일 것이다. 영화는 후자에 무게를 둔다. 나영과 해성은 그토록 닿지 못했음에도 다음 생에 또다시 서로에게 이끌리게 될까. 이번 생과 더불어 켜켜이 쌓인 그들의 짧은 인연들이 빛을 발하는 나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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