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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뛰어넘는 배우, 김고은이 뽑아 든 신칼

배우 김고은은 지금까지 오로지 자신의 연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아 달려왔다. 최근 흥행작인 영화 <파묘>도 바로 그런 무대 가운데 하나임을 입증한다.

ⓒ 쇼박스
ⓒ 쇼박스

2017년 영화 <변산>을 준비하던 이준익 감독은 배우 박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2년 전 자신의 영화 <동주>의 모든 촬영을 마치고 회식을 하던 자리에서 주연 박정민이 힙합 가수 못지않은 랩 실력을 뽐낸 것을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변산>은 실제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를 배경으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뒤 래퍼로 성공을 꿈꾸는 혁수라는 청춘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준익 감독은 박정민을 그에 맞춤한 주연배우로 점찍었다.

그러고는 시나리오를 또 다른 한 배우에게 전했다. 제작비 50억여 원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작품에 이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충무로 관계자들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 배우는 <변산>을 선택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김고은의 연기 도전

그 배우의 이름은 김고은. 2016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방송된 tvN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의 여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진 얼굴. 드라마는 당시 2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안방극장을 달궜다. 자연스레 주인공 김고은도 이전과 전혀 다른 차원의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제작비 적고 외형 역시 작은 규모의 영화에 그를 캐스팅한다는 것은, 관행에 젖어버린 충무로의 시선에는 너무도 터무니없어 보인 것도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1991년생인 김고은은 2012년 정지우 감독의 영화 <은교>로 데뷔했다. 계원여고를 거쳐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그는 <은교> 오디션에 응해 합격했다. 영화를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영화 현장의 스태프를 꿈꿨지만 고교 시절 한 교사의 권유에 방향을 연기로 바꾼 뒤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지우 감독은 “호기심이 많고 내면에는 단단함과 중심을 갖고 있는 사람, 어리지만 휩쓸리지 않고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그를 주연배우 자리에 내심 올려놓았다. 하지만 김고은은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꺾고 말았다. 작가 박범신의 동명 원작 소설을 이미 읽으며 주인공 은교라는 캐릭터에 공감했지만, 이를 연기로 구현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동시에 영화 속 노출신도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정지우 감독은 그에게 시간을 더 주었다. 오랜 고민 끝에 김고은은 은교를 받아들였다.

아직 신인이었지만, 그는 영화의 화제성에 힘입어 단박에 스크린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올랐다. 극 중 17세의 고등학생으로, 호기심 가득한 싱그러운 얼굴과 그 한편에서 드러내는 미묘한 관능미가 그의 실제 순수해 보이는 얼굴빛과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종상을 비롯해 청룡영화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등 국내 다수의 영화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휩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쏟아지는 러브콜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연기자로서, 배우로서 더욱 확고한 자존감을 지니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학교로 되돌아간 그는 동기생들과 연극무대를 꾸미며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2년 뒤 김고은은 <은교>에서 빛을 발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객 앞에 다시 섰다. 이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로 잘 알려진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을 무대 삼았다.

더없이 차갑고 비정한 폭력의 세상에서 자라나지만 그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세상을 알게 되면서 위험에 빠져드는 인물. 김고은은 폭발적 에너지를 뿜어내며 액션 연기에까지 도전했다. 또 다른 주연 김혜수의 극 중 카리스마는 물론, 실제 현장에서 연기 경력의 큰 차이가 가져다줄 법한 부담감을 꺾어가며 김고은은 선배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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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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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해 <협녀, 칼의 기억>과 <성난 변호사>, 이듬해 <계춘할망>에 이르기까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스크린 안에서 생동하듯 뛰어다녔다. 하지만 각 작품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배우로서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즈음 무대를 바꿔 tvN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에도 출연했지만,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다 만난 무대가 바로 <도깨비>였다. 판타지 로맨스를 표방한 극 중 김고은은 10대와 30대를 오가며, 말 그대로 ‘스펙트럼 넓은’ 배우로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드러냈다.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띤 호응도 힘을 보태면서 김고은은 <은교> 이후 새롭게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 같은 호응과 지지는 정작 그를 혼란에 빠트리며 작지 않은 후유증을 안겨주고 말았다. 잔잔하게 밀려들던 파도가 한순간 높이를 한껏 높이며 들이닥치는 위험이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작품에 출연하거나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제야 김고은은 말한다.

 

막연한 두려움을 작품으로 이겨내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않는다.”

김고은은 “어떤 건 (출연을) 안 하고, 어떤 건 하고 싶고…, 제 안에 그런 (구분 같은) 건 없다. 모든 배우가 그렇지만, 어떤 한 작품이 크게 각인되면 비슷한 결의 작품을 제안받는다. 분명 배우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있지만, (제작하는 입장에서) 그걸 끄집어내는 도박 같은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도 그런데 제 안에서 한계를 두면 정말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해 온 것을 입증하듯 <변산>을 선택했다.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는 “작품으로 이겨내 보자는 생각에 이준익 감독님의 <변산>에 참여했다”라고 밝혔다.

그의 출연 결정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준익 감독이나 상대 배우 박정민이나,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고은은 이준익 감독과 박정민을 비롯한 출연진과 스태프가 어우러진 ‘밝은 현장’에서 에너지를 얻었다고 돌이켰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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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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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과정은 김고은이 연기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확연히 들여다보게 한다. 김고은에게 연기 무대는 흥행을 기대하게 하는 제작비 규모나 톱스타급 상대 배우 등은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연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아서 달려왔다.

최근 흥행작 <파묘>도 바로 그런 무대 가운데 하나임을 온몸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1000만 관객 돌파라는, 배우 개인으로서 영광이자 기쁨을 누리고 있다.

영화는 한 부잣집의 묘를 이장하려는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에게 벌어지는 심상치 않은 사건을 그렸다. 오컬트 장르의 외피로 일제강점기에 얽힌 고통스러운 역사를 감싼 이야기다.

극 중 젊은 무속인 화림을 연기한 김고은은 원혼을 달래는 무속인 역할을 매끄러우면서도 강렬하게, 또 넉살스러우면서도 진중한 무게감으로 이야기를 튼실히 받쳤다. 굿판을 벌이고 혼을 불러들이는 경문을 읊으며, 특히 대살굿 장면으로 상징되는 ‘투혼’의 연기를 펼쳤다는 호평을 영화계와 극장가 안팎에서 받고 있다. 함께 연기한 풍수사 역 최민식은 그런 그를 두고 “무당으로 투잡 뛰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던질 정도였다.

실제 무속인을 만나 무속에 관한 지식을 얻어듣고,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관찰하고, 관련 영상을 찾아보는 등 스스로 펼친 노력 덕분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번 무대와 캐릭터가 “굉장히 반가웠다”라고 할 만큼 그는 그야말로 신명 나게 연기한 것으로 보인다.

굉장히 매력적이고 포스 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어설프지 않게 표현해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터다. 극 중 굿을 준비하며 몸을 살짝 떨거나 목을 꺾는 등 세밀한 동작도 거기서 나왔다.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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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무속인들 특유의 뉘앙스와 허스키함이 있다. 극 중 경문을 읊는 것도 어려운데, 디테일은 물론 그런 뉘앙스까지 연기해 냈다”면서 김고은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고는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멋진 배우다”라며 웃었다. 이에 김고은은 “<파묘> 속 화림 같은 유형의 캐릭터는 많지도 않고, 잘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김고은은 1000만 관객 돌파라는 기쁨과 영광을 넘어 자신의 시선을 이미 <파묘> 이후로 던져놓은 건지 모른다. 대중적 호응과 지지는 크지 않아도, 자신이 서서 연기해야 할 자리를 잊지 않고 꾸준히 달려온 과정에서 그 호쾌한 흥행의 단맛을 즐겨도 좋으련만, 김고은은 어느새 다음 자리와 무대를 준비하는 듯 보인다.

이미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을 촬영 중이거나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에는 두 작품 모두에서 <파묘>나 앞선 <차이나타운> 등에서 드러낸 강렬함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김고은은 스스로 말하듯 ‘한계를 짓지’ 못하게 한다. 그야말로 연기 스펙트럼이 무엇인지 관객과 시청자로부터 인정받아왔다. 자신이 연기한 작품이 대중적, 상업적으로 불운이 겹칠 때 다음 무대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척박한 현실 안에서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고, 또 앞으로도 한참을 걸어갈 테다.

김고은에 대해 장재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김고은은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라고 본다. 그리고 전성기가 이제부터 시작된 거라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다 밑밥이었다.”

<파묘> 속에 감독과 김고은을 비롯한 최민식, 유해진, 이도현 등 주역들이 숨겨놓은 ‘밑밥’과 ‘떡밥’을 둘러싸고 누리꾼들은 ‘해석놀이’를 벌여왔다. 이를 바라보는 김고은 역시 카메라 앞 무대에 올라 한껏 자신의 일에서 즐거움을 찾으며 발랄하고 싱그러운 몸짓을 펼쳐왔고, 또 펼쳐갈 것이다.

“겁나 험한 것이 나왔다.”

<파묘>가 남긴 가장 유명한 대사가 되어버린, 화림의 말이다. 화림은 바로 김고은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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